324. 길없는 길 3, 최인호, 샘터, 2002
차례 : 생각의 화살
세 개의 달
경허는 그의 법제자 한암에게
"난 정말 중 노릇이 하기 싫었네. 이날 이때껏 기회가 있을 때마다 중노릇을 때려 치우려고 노력하였네. 그래서 한 때 <장자>를 천번이나 읽었네 중노릇을 안하면 선비가 될 수 밖에 없을 터인데 선비들과 사귀려면 한문을 많이 알아야 하므로 그래서 젊었을 무렵 <장자>를 천번이나 읽었지. 그러나 차마 중 노릇을 그만 두려고 하니 차마 부처님의 말씀을 여읠 수가 없었네.그려."
<장자>의 제 17편 '추수(秋水)'
'도를 아는 사람은 사리에 통달하고, 사리에 통달한 사람은 일에 걸리지 않으며, 물은 그를 해치지 못해 안으로는 하늘과 밖으로는 사람의 공(功)을 얻게 된다. 그래서 옛말에 '자연은 안으로 발현하고, 인위(人爲)는 외부에 존재하며, 덕(德)은 하늘에 있다고 한 것이다.
소와 말은 네 발이 있으니 이것을 천(天)이라 한다. 천은 자연이다. 말머리에 굴레를 씌우고 쇠코에 코뚜레를 꿰면 이것이 인위이다. 그래서 인위 때문에 천진(天眞)을 멸하지 말고 사지(私知)로써 천명(天命)을 멸하지 말며 명예를 위해서 德을 멸하지 말라고 한 것이다.'
"소가 되어도 고삐 뚫을 구멍조차 없다는 뜻이 무엇인가요?"
이 질문에 경허는 활연대오 했다.
또, '추수(秋水)편에
사람들은 이 천지 사이에 무궁한 도가 있음을 모른다. 그들에게는 무궁한 무엇을 말해보아도 그것을 이해하지 못할 뿐 아니라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말하자면 '두레박'줄이 짧은 것은 생각하지 않고 도리어 우물이 말랐다(불사경단 각위천고不思綆短 却謂泉凅)'고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여기에서 크고 작은 대소의 구별이 확연하다. 그러나 대소를 구별하려는 것은 아직 도를 모르기 때문이다. 곧 물량은 무궁하고 시간은 끝이 없으며, 득실은 무상하고, 기한은 종말이 아니라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쇠 코를 뚫지마라(不要아牛鼻)
일 없음이(無事) 오히려 제가 바로 할 일입니다.(無事猶成事)
'보임' - 보호임지(保護任持)의 준말. 견성하여 참된 자기(眞我)를 발견한 뒤에 이 발견한 참된 자기를 보호하고 지켜나가는 생활을 가리키는 불교용어.
6조 혜능도 15년 동안 보임생활, 용천선사, 향엄선사는 40년, 경허 1년 3개월 장좌불와(長座不臥)
"얻기는 쉬워도 지키기는 어렵도다.(득이수난得易守難) 또한 조금 얻는 것을 만족해 하지마라. 모름지기 많은 단련의 고행이 있어야 비로소 얻으리라."
생각을 없이 하려면 감각의 문을 닫아야 할 것이다.
염궁문念弓門 - 생각의 화살이 쏘아지는 문
1년 3개월 동안 쪽방에서 長座不臥 하면서 경허는 그 無念處를 향해 끊임없이 생각의 화살을 쏘아 보냈을 것이다. 마침내 33세가 되던 1881년 경허는 문을 박차고 일어나 이가 들끓고 있는 누더기 한 벌을 활짝 벗어버리고, 짚고 다니던 주장자를 문 밖으로 내던져 꺽어 버리고 다음과 같은 오도가를 불렀다고 전해진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사람이 없어 의발(衣鉢)을 누구에게 전하랴. 아아. 의발을 누구에게 전하랴. 사방을 둘러보아도 사람이 없구나. 봄 산에 꽃이 활짝 피고 새가 노래하며 가을 밤에 달이 밝고 바람은 맑기만 하다. 정녕 이러할 때 무생(無生)의 한노래(一曲歌)를 얼마나 불렀던가. 한 노래를 아는 사람이 없음이여. 때가 말세더냐, 아니면 나의 운명이냐.
산 빛은 문수(文殊)의 눈(眼)이요, 물소리는 관음(觀音)의 귀로다 '이랴, 쯧쯧'하고 소 부르고 말 부르는 소리가 곧 보현(普現)이요 張서방 李첨지가 본래 비로자나로다. 불조(佛祖 석가모니)가 선과 교를 설한 것이 특별한 무엇이었던가. 분별만 냄이로다.
석인(石人)이 피리를 불고 목마(木馬)가 졸고 있음이요, 범부들이 자신의 성품을 알지 못하고 말하기를 '성인의 경계이지 나의 분수가 아니다(聖境非我分)'이라고 한다. 아아 참으로 가련하구나. 이런 사람은 지옥의 찌꺼기 밖에 못 됨이로다. 나의 전생 일을 돌이켜 생각하니 4생(생물이 태어나는 네가지 형태 : 태胎, 난卵, 습濕, 화化)과 육취(六趣 : 중생이 업에 따라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 인간, 천상의 여섯가지로 태어나는 것)의 그 험한 길에 오랜 세월 돌고 돌아 신고辛苦를 겪음이 이 금생에 와서 눈앞에 대한 듯이 분명함이라. 사람으로 하여금 차마 어찌하랴.
다행이 숙연宿緣이 있어 사람되고, 장부되고, 출가하고, 득도하니 네가지 얻기 어려운 일 가운데 하나도 모자람이 없도다. 어떤 사람이 희롱하여 말하길 '소가 되어도 고삐 뚫을 구멍이 없다(작우무비공作牛無鼻孔)'고 하여 그 말 한마디에 나의 본래 면목을 깨닫고 보니 이름도 공하고, 형상도 공하고, 공허한 처적처處寂處에 항상 밝은 빛이여.
이로부터 한 번 들으면 천가지를 깨달아 눈 앞에 의로운 광명이 적광토(寂光土 : 부처의 대각경지)요. 정수리 뒤의 신비한 모습은 금강계(金剛界 : 만적이 대적못할 무적의 제왕 금강신)이로다.......(중략)......또한 기특하고 기특하도다.
시원한 솔바람이여, 사면이 靑山이로다. 가을 달 밝은 달빛, 하늘과 물이 하나로다. 노란꽃, 푸른 대(竹), 꾀꼬리 소리, 제비들의 노랫소리들이 항상 그대로의 대용(大用)이어서 어느 곳에서도 드러나지 않음이 없도다. 하늘의 명을 받아 나라를 다스리는 천자(天子)가 무엇이 특별히 귀할까 보냐. 모름지기 평지위의 파도요, 하득한 하늘에 도장을 찍듯 한 물건의 형적도 없어 '구천九天의 옥인玉印이로다.'
참으로 괴이하도다.
해골 속의 눈동자여, 한량없는 불조佛祖가 항상 나타남이여, 초목 기왓장과 자갈이 곧 화엄華嚴이며 법화法華로다. 내가 늘 설하노니 가고, 머무르고, 앉고, 누움이 곧 이것이며, 부처도 없고 중생도 없는 것이 곧 이것이로다.
내가 거짓을 말하지 않노라.
지옥이 변해서 천당의 이루니 다 나늬 마음 작용에 있으며 백천법문과 무량묘의無量妙義가 마치 꿈 속에서 연꽃이 핀 것을 깨달음과 같도다.
이변(二邊 : 有나 無)과 삼제(三際 : 과거, 현재, 미래)를 그 어느 곳에서 찾을 것인가. 시방세계가 안과 밖이 없는 큰 광명 한덩어리 뿐이로다.
일언이 폐지하고 내가 큰 법왕이 되었음이로다. 저 모든 법에 다 자재自在함이니 옳고 그르고, 좋고, 나쁘고 어찌 걸림이 있을까 보냐. 어리석은 사람은 이 말을 들으면 내가 헛소리를 한다 믿지를 않고, 또 따르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귀 뚫린 사람이 있어 자세히 믿어 의심이 없으면 문득 안신입명처(安身立命處)를 얻게 되리라
문득 진세인塵世人에게 말은 붙이노니 한 번 사람의 몸을 잃으면 만겁萬劫에 다시 만나기 어려움이니 하물며 또한 뜬 목숨이 아침에 저녁을 꾀하지 못함이로다.
눈 먼 당나귀가 다리만 믿고 가다가 안전하고 위태로움을 알지 못하는구나. 저것도 이러하고, 이것도 이러함이니 어찌하여 그대들은 나에게 무생법無生法을 배워 인천人天의 대장부가 되려하지 않는가
내가 이와같은 까닭에 재삼 입을 수고로이 하여 부촉咐囑 하노니 일찍이 방랑자가 되었기에 내 나그네를 불쌍히 여기노라.
아아 슬프고 슬프도다.
이를 어찌할 것인가.
대저 의발을 누구에게 전할 것인가. 사방을 둘러보아도 사람이 없구나. 사방을 둘러보아도 사람이 없으니 의발衣鉢을 도대체 누구에게 전할 것인가."
경허의 첫 상당법어식, 어머니 박氏에게
'저래가지고서야 어찌 나의 어머니라고 할 수 있단 말인가. 내가 아주 어렸을 때는 이 몸을 발가벗기고 목욕시켜 씻기고, 안고, 물고, 빨고, 쉬이- 소리질러 오줌까지 뉘어주시더니 이제와서는 왜 그렇게 못하시고 벌거벗은 내 모습을 보시고 낯을 붉히고 화를 내시는 것일까. 나는 예나 지금이나 어머니의 아들인데 어머니는 나를 외간 남자로 보셨는가. 내 어릴 때는 내 잠지를 귀여워도 하시더니 왜 이제는 흉물이나 바라보듯 원수처럼 여기실까.참으로 이상하구나. 참으로 알다가도 모르겠구나'
'변함없이 아들인 하나의 몸을 어머니는 두 개의 눈으로 본단 말인가. 어릴 때는 품안의 아들이더니 이제는 불알에 털이 좀 났기로 콩밭매다 노방에서 만난 방물장수의 불알이나 본 듯 한단 말이냐. 참으로 이상하구나. 참으로 알다가도 모르겠구나. 나는 예부터 어머니라고 부르고, 지금도 변함없이 어머니라고 부르는데 어머니는 간 곳 없고, 여자하나 남았구나. 이 무슨 이상한 일이냐. 나를 변함없이 어린 아들로 보았다면 화날 일이 무엇이고 부끄러울 일이 무엇이냐. 그런데 나를 형상으로만 보는구나. 아들을 아들로 보지 못하고 형상으로 보는구나.
아 아, 이 몸이 둘이 없는 집(無二堂)임을 모르는구나'
' 우리는 추우면 더운 곳으로 피하려 한다. 더운 곳으로 피하면 추위를 가실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추위를 벗어난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고통이나 근심이 있으면 본능적으로 그 고통을 잊으려 술을 마시거나, 노름을 하거나 다른 방법으로 이를 피하고 잊으려 한다. 그러나 이를 피하고 잊는다고 해서 그 고통이 소멸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고통은 더 큰 고통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고통을 없애기 위해서는 이를 잊으려 할 것이 아니라 고통의 원인과 그 고통의 실체 속으로 뛰어들어가야 한다.
고통이나 불안을 잊으려 하거나 피하려 한다면 우리는 고통의 노예가 되어 마침내 술과 도박에 중독이 되어버리는 보다 큰 고통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
물론 고통이나 불안의 실체를 바라보는 그 일은 마음의 상처에서부터 비롯되었으므로 이 또한 고통스런 일일 것이다. 그러나 그 고통을 보다 큰 고통속에서 직시할 수 있다면 마침내 고통은 사라지게 될 것이다'
추위와 더위가 없는 곳은?
당나라 말기 동산 양개(807~869)스님에게 어느 선객이 찾아와서 동산에게 물었다.
선객 : 매우 춥거나 너무 너우면, 이를 어떻게 피해야 합니까?
동산 : 추위와 더위가 없는 곳으로 가면 되지 않겠느냐?
선객 : 그렇다면 도대체 어디가 추위와 더위가 없는 곳입니까?
동산 : 추울 땐 그대를 춥게하고, 더울 땐 그대를 덥게 하는 곳이다. 寒時寒殺闍黎 熟時熟殺闍黎
마왕 '파피야스(波句)' : 권세와 재물과 욕망의 무기로 욕계欲界를 지배하는 마왕, '그 이상없이 나쁜 놈'
수월水月은 천수경 외기를 즐겨했다.
천수경이라 함은 천개의 손과 천개의 눈과 27개의 얼굴을 가진 관세음보살에게 드리는 계청啓請으로 대자대비大慈大悲한 관세음에게 지송持誦하며 특히 지옥의고통을 해탈케하여 모든 원을 성취하게 해주고 모든 죄업이 소멸된다는 송주誦呪인 것이다. 천수경이라 함은 천개의 손을 가진, 그 손바닥 하나하나에는 눈이 있어 천개의 눈을 가진 천수관음을 향해 비는 송주誦呪(주문을 외는 것) 인 것이다. '천수千手'는 자비의 관대함을, '천안千眼'은 지혜의 원만 자재함을 나타내며 천개의 눈으로 모든 중생들의 고통을 보고 그 손으로 구제한다는 염원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세 개의 달(상현달 : 북-수월, 하현달 : 남-혜월, 보름달 : 중-만공)
水月, 慧月, 滿空
水月 : 무주상보시無住想布施 : 베푸는 사람이나, 그것을 받는 사람이나 자연스럽게 주고, 자연스럽게 받고 있었기 때문에 굳이 인사치레를 하거나 생색내지 않는 보시, 백두산 근처 마루고개에 화엄사라는 암자를 짓고, 짚신을 삼고, 밥해서 지나는 길손에게 무주상보시함.
慧月 : 11세 동진 출가, 76세 입적, 천진불, 솔방울 따러 부산 범일도 안양암 뒷산에 올랐다가 솔방울을 줍고, 따고 하여 자루하나에 잔뜩 솔방울을 채우고서 산을 내려오던 혜월은 밑바위 앞에 이르러 소나무 가지를 붙들고 그대로 영원히 서버렸다.
滿空 : 세수 75세 법랍 62세, 1946년 10월 12일
스무살 김좌진과 팔씨름, 이긴 사람에게 진사람이 무엇이든 원하는 것을 들어주기로, 김좌진은 불과 2천5백명의 독립군으로 일본군 19, 21사단 5만 병력과 싸워
3천3백명을 일시에 섬멸한 풍운아였다......설사 이긴 사람이 진 사람에게 목숨을 내놓으라 요구한다해도..... 김좌진은 42세에 김일성의 꾐에 빠진 박상실이라는
자의 총탄에 맞아 암살당한다.
'노파의 소암燒庵'
한 선객이 20년 동안 여인을 멀리하라는 수행에는 철저히 하면서도 한 점의 자비심은 익히지 못함을 알고, 비록 도를 이루었지만 그 도가 메마를 고목처럼 인정이 없고, 낱낱이 규율이나 따지고 율법이나 헤아리는 죽어있는 도임을 깨닫고, 암자를 태워버린 고사. 살아있는 활선, 죽어있는 사선을 '고목선枯木禪'이라 한다.
'부처의 젖' - 덕숭산 꼭대기 정혜사 뜨락에 '불유각佛乳閣' 부처님의 젖이 나오는 정자.
스스로 몸을 씻고 거울을 들여다보며 거울속의 자신에게 "자네와 내가 이제 이별할 인연이 다 되었나보구려. 그럼 잘 있게나" 그리고 나서 만공은 문득 입적하였다.
서산대사 청허淸虛 휴정休靜은 세수 85세, 법랍67세때 조선 선조 37년 1월 묘향산 원적암圓寂庵에서 임종게를 마치고 시자들에게 거울을 가져오라하여, 거울 속 자신을 보면서 "팔십년전거시아 八十年前渠是我 팔십년후아시거八十年後我是渠" "팔십년 전에는 그대가 나였더니, 팔십년 후 오늘에는 내가 그대로구나"
"耳不聞人之非이불문인지비 目不視人之短목불시인지단 口不言人之過구불언인지과 庶幾君子서기군자 -명심보감明心寶鑑-
황희정승 젊은 시절, 밭 갈던 농부에게 "두 마리 소 중 어느 고가 더 일을 열심히 합니까?"라고 묻자 농부가 다가와서 귀에다 대고 "이 쪽 소가 더 일을 잘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보고 위대한 교훈을 얻어 이 말을 평생 경구로 삼았다.
'귀로는 그릇됨을 듣지말고, 눈으로는 남의 잘목을 보지 말고, 입으로는 남의 허물을 말하지 말아야 거의 군자에 가까우느니라 -명심보감-
2009. 10. 3 토 추석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