學以時習之 不亦說乎

근검 : 다산 정약용이 두 아들에게 남긴 유산

햇살처럼-이명우 2016. 3. 11. 16:07

근검 : 다산 정약용이 두 아들에게 남긴 유산

이 편지는 1810년 9월에 다산초당 동암에서 쓴 것이다.

나는 벼슬하여
너희에게 물려 줄 전답을 마련하지 못했으나,
오직 두 글자의 신비로운 부적을 마음에 지녀서
삶을 넉넉히 하고 가난을 구제할 수 있기에
이제 너희들에게 주노니,
너희는 이를 소홀히 여기지 말아라.

한 글자는 ‘근(勤)’이요
또 한 글자는 ‘검(儉)’이다.
이 두 글자는 좋은 전답이나
비옥한 토지보다도 나은 것이니
일생 동안 쓴다 해도 다 쓰지 못할 것이다.


그러면 ‘근(勤)’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오늘 할 수 있는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며,
아침에 할 수 있는 일을 저녁때까지 미루지 말며,
갠 날에 해야 할 일을 비 오는 날까지 끌지 말며,
비 오는 날에 해야 할 일을 날이 갤 때까지 지연시켜서는 안 된다.

늙은이는 앉아서 감독할 바가 있고
어린이는 다니면서 받들어 행할 바가 있으며,
젊은이는 힘든 일을 맡아하고,
아픈 사람은 지키는 일을 하며,
아낙네는 밤 사경(四更)이 되기 전엔 잠자리에 들지 않아야 한다.
이렇게 집안의 상하 남녀가 한 사람도 놀고먹는 식구가 없게 하고
한순간도 한가한 시간이 있어서는 안 된다.
이를 일러 근(勤)이라고 한다. 斯之謂勤也

그러면 검(儉)이란 무엇을 뜻하는가?
의복은 몸을 가리기 위한 것을 취할 뿐이다.
가는 베로 만든 옷은 해어지기만 하면 세상없이 볼품없어지고 만다.
그러나 거친 베로 만든 옷은 비록 해어진다 해도 볼품없진 않다.
한 벌의 옷을 만들 때마다 모름지기 이후에도 계속하여
입을 수 있느냐의 여부를 생각해야 하는데
만약 그렇게 하지 못하면 가는 베로 만들어 해어지고 말 뿐이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면 고운 베를 버리고
거친 베로 만들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음식이란 생명만 연장하면 된다.
모든 맛있는 횟감이나 생선도 입 안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더러운 물건이 되어버리므로 목구멍으로 넘기기도 전에
사람들은 더럽다고 침을 뱉는 것이다.

사람이 천지간에 살면서 귀히 여기는 것은 성실한 것이니
조금도 속임이 없어야 한다. 하늘을 속이는 것이 가장 나쁘고,
임금을 속이고 어버이를 속이는 데서부터 농부가 농부를 속이고
상인이 상인을 속이는 데 이르기까지 모두 죄악에 빠지는 것이다.

오직 하나 속일 게 있으니 바로 자기의 입이다.
아무리 보잘것없는 식물(食物)로 속이더라도 잠깐
그때를 지나면 되니 이는 괜찮은 방법이다.

금년 여름에 내가 다산(茶山)에 있을 때
상추로 쌈을 싸서 먹으니 손님이 물었다.
“쌈을 싸서 먹는 게 절여서 먹는 것과 차이가 있습니까?”
그래서 내가 이렇게 대답했다. “이건 나의 입을 속이는 법일세.”

어떤 음식을 먹을 때마다 모름지기 이런 생각을 가져라.
정력과 지혜를 다하여 변소 간을 위해서 애쓸 필요가 없으리라.
이러한 생각은 눈앞의 궁한 처지를 대처하는 방편일 뿐만 아니라
비록 귀하고 부유함이 극도에 다다른 사군자(士君子)일지라도
집안을 다스리고 몸을 바르게 하는 방법으로
이 ‘근(勤)’과 ‘검(儉)’ 두 글자를 버리고는 손을 댈 곳이 없을 것이니
너희들은 반드시 가슴 깊이 새겨두도록 하라.


다산이 아들들에게 남긴 ‘근검’이란 유산. 이 얼마나 값진 유산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