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

미래의 것을 기대하고 기뻐하라.

햇살처럼-이명우 2011. 11. 25. 18:08

새로 시작된 사랑, 낯선 곳으로의 여행, 영화의 첫 장면. 우리는 동요하기 시작한다.
손가락의 근질근질한 느낌, 다리에서 느껴지는 가벼운 긴장감, 두근거리는 심장.
어떤 약속이 대기 중에 떠도는 것 같다.
우리는 아직 무어라 이름 붙일 수 없는 것에 희망을 건다. 삶의 예기치 않은 전환, 우리를 사로잡는 어떤 체험. 그러면서 우리는 동시에 우리가 기대하는 것이 실제로는 그렇게 기쁜 양태로 나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떤다. 그렇게 우리는 앞으로 ㄷ가올 미지의 무엇일지도 모를 느낌들을 극도의 긴장감으로 주의 깊게 받아들인다. 여행자의 시선은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벌써 호기심에 차서 주의를 살핀다. 그리고 사랑에 빠진 사람은 전화벨이 울리자 마자 깃털처럼 튀어 오른다. 가슴 속에서 느껴지는 이 나비의 날갯짓 같은 느낌은 무엇인가? 이것은 뭔가 의미를 지닌 것인가?
뇌 연구자 볼프람 슐츠(Wolframm Schultz)가 이러한 동요의 이면을 살피게 된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그리고 이 우연은 진화가 도파민을 그토록 강력한 것으로 만든 수수께끼의 한 가운데로 그를 인도했다. 당시 스위스의 프리부르 대학에서 일하던 슐츠는 원숭이의 뇌에 있는 몇몇 특정한 신경세포를 관찰하여 도파민이 어떻게 움직임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알아내고자 했다. 이러한 연구를 통해 그는 파킨슨병에 대한 열쇠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파킨슨병을 앓는 환자들의 경우에는 도파민 호르몬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근육을 더 이상 자유자재로 움직이지 못한다. 슐츠는 원숭이들이 움직이기 위해서는 흑질에서 생성되는 도파민-뉴런들이 활발히 움직여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결과는 기대 이하였다. 그가 관찰한 뉴런들은 움직임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게 분명했다.
실험 결과는 실망스러웠지만 그래도 실험에 동참해준 원숭이들에게 노력의 댓가를 지불해야 했다. 그래서 슐츠의 동료 하나가 사과 몇 조각을 우리 속에 넣어 주었다. "그러자 갑자기 뉴런들이 미친 듯이 튀어 오르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 사실을 전혀 믿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 슐츠는 전한다.
슐츠와 그의 동료가 발견한 것은 예기치 않은 사건을 담당하는 어떤 회로였다. 나중에 밝혀진 것이지만, 이 회로가 인간의 경우에도 미래의 것에 대한 기대와 기쁨을 책임진다.
슐츠와 그의 동료들은 이 뉴런들을 정밀히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이 뉴런들이 실제로 어떤 보상이 기대되는 경우에만 작동한다는 것을 밝혀냈다. 사과를 보기만 하면 언제나 원숭이들의 뉴런이 튀어올랐다. 그러나 학자들이 과일 대신 평소에 이 과일이 꽂혀있던 철사만 우리 안에 넣어주면 신경세포들은 침묵했다.
연구의 그 다음 단계에서 실험동물들은 앞으로 먹게 될 식사를 기다리도록 훈련되었다. 연구자들은 사과를 주기 전에 전등불을 깜박였다. 처음에는 달라진 게 별로 없었다. 그러나 몇 번 시도하자 뉴런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따라서 이 뉴런들이 활발하게 움직이게끔 자극한 것은 다가올 것에 대한 기대였지 먹을 것 그 자체는 아니었던 것이다.
뇌의 이 메커니즘은 종종 '보상 체계'라고 불린다. 그러나 이 명명은 정확하지 않다. 실제로 뉴런을 자극한 것은 보상, 즉 사과가 아니라 사과를 받을 것이란 기대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기대체계'라고 부를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기대 속에 최고의 쾌락이 놓여 있다고들 말해왔는데, 이것은 맞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기대 속에 약속된 보상 그 자체에 대해서는 별다른 흥분을 보이지 않는다. 월급을 올려주겠다는 약속을 받은 회사원은 기뻐한다. 그러나 막상 오른 월급이 자신의 계좌에 착실히 입금될 때 그의 기쁨은 그다지 크지 않다. 원숭이의 경우도 분명 이와 비슷했던 모양이다.

- 행복의 공식(슈테판 클라인, 웅진 지식하우스, 2006) 중에서 -

'심리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비교>  (0) 2011.11.29
<100원짜리의 행복>  (0) 2011.11.29
[스크랩] 스트레스 측정기  (0) 2010.06.03
그리스 철학의 기원은...  (0) 2009.02.03
마음에 관해서...  (0) 2009.0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