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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7. 살아간다는 것 活着, 위화, 2002, 푸른 숲

햇살처럼-이명우 2011. 12. 30. 13:31

267. 살아간다는 것 活着, 위화, 2002, 푸른 숲

신문에서 읽은 한 칼럼에서 이화여대 에코학부 최재천교수가 추천한 책이다. 책을 빌려서 앞을 조금 보다가, 영화를 봤는데 책을 다 읽으며 비교를 해보니 책 내용과는 조금 느낌이 다르다.

사람은 살아가는 것 자체를 위해 살아나가고 있는 것이지, 살아가는 것 이외의 어떤 것을 위해서 살아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내가 복귀라는 노인을 만난 것은 여름이 막 시작될 무렵이었다......먼 곳에서 한 노인이 대나무 뗏목을 두드리며 낭랑하게 어허어허 고함을 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꿈인가 생시인가 놀라 퍼뜩 잠에 깨어보니 그것은 생생한 현실이었다. 몸을 일으켜보니 근처 밭에서 한 노인이 소를 부리고 있었던 것이다.
소는 이미 피곤에 지친 듯 머리를 숙인 채, 그 자리에서 한참동안 서 있었고, 뒤 쪽에는 웃옷을 벗고 노인이 소의 소극적인 태도가 불만스러운 듯, 목청높여 소에게 야단을 치고 있었다.

" 소가 할 일은 밭을 가는 것이고, 개가 할 일은 집을 지키는 것이며, 중은 탁발을 해야 하는 것이고, 닭이 하는 일은 새벽을 알리는 일이고, 여자가 할 일은 베를 짜는 것이지. 그런데 너는 어찌 소인 주제에 밭을 안갈겠다는 거야? 이것은 옛부터 있는 도리라고, 가자 가자."

피곤에 지친 소는 노인의 고함소리를 알아들은 듯 머리를 들고 쟁기를 끌며 앞으로 나아갔다. 노인의 뒷 잔등과 소의 하나같이 까무잡잡한 것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저물어가는 두 생명이 그 낡은 판자 같은 밭을 화락화락 갈아엎는 모습이 수면위로 솟구쳐오른 파도 같았다. 이윽고 투박하지만 사람을 감동시키는 노인의 목소리가 선연하게 들려왔다. 옛날 가요였는데, 먼저 어허어허 선소리가 길게 뽑아 나오더니, 뒤이어 두 마디 노랫말이 이어졌다.

" 황제는 나를 불러 사위삼겠다지만
길이 멀어 안 가려네! "

길이 멀어서 황제의 사위가 되지 않겠다는 것이다. 노인의 자신만만함에 나는 소리없이 웃었다. 그러나 노랫소리도 잠시 소가 발걸음을 느릿거릴라 치자 노인은 또 고함을 질렀다.

"이희야, 유경아, 게으름을 피워선 안 돼. 가진, 봉화야 잘하는구나, 고근아, 너도 잘한다."

한 마리 소가 이렇게 이름이 많다니? 나는 이상스러워 밭께로 가서 노인에게 물었다.

" 이 소는 도대체 이름이 몇 개나 됩니까?"

노인이 쟁기를 붙들고 서서 나를 위아래로 한 번 훑어보더니 물었다.

" 당신 도시 사람이지?" "네 "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노인은 의기 양양하게 말했다.

" 내 한눈에 알아 보았지"
" 이 소는 그러니까 결국 이름이 몇개입니까?"
" 이 소는 복귀라고 하니, 이름이 하나요."

" 아......"

노인은 기쁘게 웃으며, 나를 향해 신비스럽게 손을 저었다. 그러고는 내가 다가서자 말하려다 말고, 소가 머리를 바로 들고 있는 것을 보고는 그를 꾸짖었다.

" 너 엿듣지 마. 고개 숙여 "

" 소가 자기만 밭을 가는 줄 알까봐, 몇 개의 이름을 불러 그를 속인거요. 다른 소도 밭을 갈고 있다고 알면 신이 날 것이고, 그러면 밭가는 일도 힘이 날 것이 아니겠소 "

이희는 사위, 유경은 아들, 가진은 아내, 봉하는 딸, 고근은 손주의 이름인데 모두 죽었으며, 이 늙은 소의 이름을 자신의 이름과 같은 복귀로 지어 살아가고 있는 한 인간의 일대기를 잔잔히 그려내는 이 소설은 읽는 내내 코끝이 시큰시큰하게 만든다.

2008. 7. 20 일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