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어떤 친절

햇살처럼-이명우 2016. 5. 25. 10:58

어떤 친절

몇 해 전 내가 혼자서 폭스바겐을 몰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에 갑자기 차의 엔진이 꺼졌다.
나는 가까스로 길가에 차를 세우고 차 밖으로 나왔다.
사방에 보이는 것이라곤 끝없이 펼쳐진 옥수수 농장뿐이었다.

잠시 후 차 한 대가 와서 멈추더니 한 남자가 내렸다.
그는 지독한 아일랜드 사투리로 물었다. "도움이 필요하슈?"
나는 얼른 그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그러자 그가 말했다. "내가 좀 들여다봐도 되겠수?"
그가 엔진을 점검한답시고 차 앞뚜껑을 여는 순간 나는 모든 희망이 사라지는 걸 느꼈다.
폭스바겐은 다른 차와는 달리 엔진이 앞에 있지 않고 뒤에 달려 있다.
이런 기본적인 사실조차 모르는 사람에게 도움을 기대한다는 건 무리였다.
그는 깜짝 놀라더니 엔진이 어디로 가버렸는냐고 물었다.
내가 엔진은 뒤에 있다고 가리키자 그는 전혀 놀라는 기색도 없이 위치를 바꾸더니 여기저기 살피기 시작했다.
2,3분이 흐른 뒤 갑자기 그가 고개를 쳐들고 소리쳤다. "무엇이 문젠지 알았슴다. 나한테 연장이 있으니 걱정하지 마슈."
그는 자기의 차로 돌아가 한참을 뒤진 끝에 스카치 테이프를 들고 돌아왔다.
그것을 본 순간 나는 완전히 맥이 빠졌다.

나를 구조해 줄 다른 차가 오지 않나 싶어 나는 고개를 빼고 길게 뻗은 도로를 살폈다.
옥수수 농장 사이로 난 2차선 도로에는 아지랑이만 피어오를 뿐 차 그림자 하나 얼씬거리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에 그 남자는 스카치 테이프를 들고 기적이라고 펼쳐 보이려는 듯 다시 태 차 엔진속으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잠시 후 그가 자신 있게 말했다. "어서 시동을 걸어 보슈."
나는 속는 셈치고 그의 말을 따랐다. 그러자 놀랍게도 시동이 걸리는 것이었다.
나는 서둘러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차를 몰고 그 자리를 떠났다.

그런데 달리면서 백미러를 보니 그가 계속해서 내 차 뒤룰 따라오는 것이었다.
마침내 도시가 나타나 내가 안전하게 자동차 정비소에 도착한 것을 보고서야 그는 손을 흔들며 자기 갈 길을 갔다.
놀랄 만큼 친절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내 설명을 듣고 정비소의 일급 정비사가 엔진을 조사하기 시작했는데,
그 남자가 어디에다 스카치 테이프를 붙였는지 찾아내는 데 무려 20분이 걸렸다는 것이다.


/교훈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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