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관리

그 분도 허허로이 떠났다.

햇살처럼-이명우 2018. 1. 8. 09:36

그 분도 허허로이 떠났다. 
35년간의 인사전문 경력자였음에도 조직의 특성조차 이해 못해 인사를 망치고 떠났다. 조직구성도 3년 동안 실험만 거듭한 끝에 기형적인 괴물로 남겨졌고, 그 원형을 살리기 위해 남은 이들은 또 다른 악전고투를 해야 할 것이다. 그리도 강조하던 리더십은 노욕으로 변질되어 서로 다투다가 퇴임식 인사도 몇 줄의 글로 대신하고 퇴장했다.

물론 이 모든 결과는 주인의식 없는 직원들의 예스맨십 문제이다. 조직의 특성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그가 회장이라고 시키는데로, 대기업의 임원출신이었으니 그가 알고 있는 것이 모두 정답일거라는 논리학에서 말하는 '숭경심에 의한 오류'에 빠져 3년 동안 헤어나지 못한 결과였으리라. 거기에다 세계적인 컨설팅 기관에서 기업진단을 한 결과라며 적용했지만 결과는 혼란만 가중되었다. 인사전문가에게 대한 반대의견은 피도 눈물도 없는 반대급부가 따를거라는 두려움에 위축되어 제대로 할 말을 못한 직원들의 피해의식 또한 지적해야한다. 그렇지만 가장 큰 문제는 결정장애에 빠진 리더십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글로벌의, 대기업의, 선진의 기법을 가르치고 학습한다는 미명아래 이루어진 수 많았던 토론의 시간들은, 결정 한 번으로 해결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많은 시간을 소비했다. 결국 토론의 결과물은 그의 의도대로 나왔으니 그 토론시간을 결정으로 절약하여 활용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물론 토론의 시간들이 우리들의 내면에 양식으로 저축된 내용도 있었지만, 대부분이 시중 서점의 진열장에서 구할 수 있는 철지난 경영학이론었던 것이 아쉽다.

학습하는 조직으로 만드려는 시도는 좋았다. 나태해져 있던 나에게 다시 학습에 대한 욕구가 생기게 하였다. 더 많이 읽었으며, 내면을 채우려고 많은 노력을 하도록 동기를 부여하였다. 나는 우리 조직이 항상 학습하는 조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안전관리컨설팅을 주업으로 하는 우리 무기의 파괴력은 결국 '지식과 경험' 즉 우리의 학습량에 좌우되기 때문이다. 다양한 외부교육과 OJT를 연간 학습시간을 정해 학점으로 이수하도록하는 사내대학을 설립하여 우리들의 무기의 파괴력을 향상시켜야 한다.

우리는 대한민국 산업현장의 재해예방을 위해서 일해야 한다. 내가 담당하고 있는 그 사업장에 대한 세심한 안전관리, 그 것이 안전으로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첫걸음이며 우리의 초심이다. 그런데 지금 그 초심이 가려져서 잘 보이지 않는다. 성과관리, 실적위주, 목표달성에 매진한 결과 진정으로 우리가 지켜야 하는 소중한 초심을 잃어버린 것은 아닌지 반성해야 한다. 사업장에 가서 관리자와 근로자와 대화하고, 그들의 위험요인을 알려주고, 개선대책을 제시하고, 개선하도록 설득하는 지루한 일을 꾸준하게 해야 한다. 안전관리는 '우공이산'의 신념이 없으면 이룰 수 없다. 최근의 타워크레인 사고가 끊이지 않는 이유가 안전기준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지 않은가.

돈을 벌려고 안전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있다. 안전관리기관을 만들어 영리를 추구하려는 회사들이 많다. 훌륭한 안전기술을 개발해서 현장에 제공하여 재해를 예방한다면 훌륭한 일이라고 평가한다. 그러나 여기에 모순이 숨어있다. 안전으로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면 안전의 가치는 가진자만이 누리는 가치가 될 것이다. 안전은 인간이면 누구나 누릴 수 있는 보편적 가치여야 한다. 물론 그러려면 '국가가 나서서 무료로 지원을 해야한다' 말할 것이다. 그리해주면 더할나위 없겠지만 우리나라 사정이 그렇지는 못하니 답답하다.

군에간 아들은 무사히 전역해야 하고, 현장에 출근한 아버지는 무사히 퇴근해야 한다. 우리는 군에간 아들의 무사한 전역을 위하여 비가오나 눈이오나 노심초사 걱정한다. 그러나 정작 현장에 출근하는 아버지가 무사히 퇴근하기를 그런 마음으로 노심초사하는 사람은 드물다. 재해율을 따지면 현장에 출근하는 아버지가 재해를 당할 확률이 훨씬 크고, 위험속에서 근무하고 있음에도 우리는 무감각하다. 현장에 출근하는 아버지에게 가족들은, 군에간 아들에게 편지하는 심정으로 배웅을 해야하며, 퇴근했을 때는 휴가온 아들을 대하듯 안아줘야 하지않을까. 이런 마음이 확산되지 않으면 아무리 국가가 무료로 안전망을 구축한다고 해도 효과가 없을 것이다.

초심을 잊지말고, 현장의 구성원들을 군에간 아들에게 편지쓰는 심정으로 대한다면 안전한 세상으로 조금 더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돈을 많이 버는 욕심이 있는 사람은 대기업으로 가기를 바란다. 그럼 안전을 하는 사람은 가난해야 하는가라고 반문할 것이다. 물론 우리도 글로벌 기업처럼 폼나게 일해야 한다. 월급도 많이 받으면 좋다. 그들과 견주어 경쟁력을 가져야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렇게 성과관리의 초점을 매출과 수익성에만 맞춘다면 세상은 우리를 외면할 것이며, 사람들은 더이상 안전하는 우리를 존경하지 않을 것이다. 
재해예방의 사명감을 가지고 현장에 투입되는 안전관리자들이 초심을 오래 유지하며 활동할 수 있도록 기업들이 관점을 바꿔주기를 희망한다.

몇 일이 지나면 또 다른 3년간의 리더십이 시작된다. 이번의 리더십은 어떨까? 이번 리더십은 초심을 이해하는 리더십이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3년 후 직원들의 박수를 받으며 아름답게 퇴장하는 리더십을 바라는 것은 나만의 생각인지도 모른다. 퇴장하는 뒷모습을 보며 뜨거운 박수를 보내는 그의 리더십을 기대한다.

흐린 겨울날 아침에 3년전을 추억하며 몇자 적다.

2017.1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