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 로마인 이야기 1~15, 시오노 나나미, 한길사, 2002
1권. 로마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에드워드 기븐 - <로마제국 쇠망사>
아놀드 토인비 - 고대 로마를 찾아 이탈리아 전역을 자전거로 답사.
초대왕 로물루스
2대왕 누마
로마를 강하게 한 요인은 종교에 관한 사고방식이었다.
2권. 한니발 전쟁
1차 포에니 전쟁(기원전 264~기원전 241년, 23년간)
하밀카르(한니발 아버지)
2차 포에니 전쟁(기원전 219~기원전 201, 18년간)
한니발 전쟁
티치노 전투
칸나이 대승 - 한니발
자마 대패 - 스키피오에게 패함
1차 포에니 전쟁
- 오랫동안 실전 경험을 쌓지 못한 군대는 약체화를 피할 수 없다.
- 팍스 로마나(로마 주도의 평화)
- 갈리아(지금의 프랑스 지방)
- 현역 17세~45세 '유이오레스' 주니어(junior)의 어원
- 예비역 46세~60세 '세니오레스' 시니어(senior)의 어원
- 한니발이 알프스를 넘는데 보름이 걸렸다고 한다. 그의 병력은(이탈리아 도착 병력) 보병 2만, 기병 6천, 합 2만6천. 론강 건넘 시첨에서 보병, 기갑 합 4만6천이었으니 알프스를 넘으며 치른 희생이 무려 2만명, 피레네 산맥을 넘어온 시점과 비교하면 3만3천명의 희생이 있었다. 처음 출발 때 보병 9만, 기병 1만2천, 코끼리 37마리였는데...... 이때 로마군대는 로마연합에서 동원된 병력을 포함하여 6만2천800명.
-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
- 천재는 그 개인에게만 보이는 '새로운 사실'을 볼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누구나 뻔히 보면서도 그 중요성을 깨닫지 못했던 '기존의' 사실을 깨닫는 자 만이 천재다.
- 대부분의 일은 그 자체로는 불가능한 일처럼 보인다. 하지만 관점만 바꾸면 가능한 일이 될 수 있다.
- 시칠리아 섬, 시라쿠사의 아르키메데스는 로마군 2개 군단을 물리쳤다.
- 로마군의 행군거리 하루 20km, 네로 800km를 8일만에 주파했다.
- 자마전투 - 한니발이 스키피오에게 패배한 전투
- 승자와 패자의 구분만 있지 그 자체가 정의, 비정의 구분은 아니다.
- 헬레니즘 세계의 왕국들 : 기원전 323년은 10년이라는 단기간에 유럽과 아시아에 걸친 지역을 재패한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33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 해다. 그의 대 제국은 그 후 휘하 장군들에게 분할되었다. 그리하여 마케도니아의 안티고노스 왕조, 시리아의 셀레우코스 왕조,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가 탄생하고, 그 밖에 중간규모의 왕조로는 페르가몬이 있고, 그리스에는 언제나 그렇듯이 많은 도시국가들이 할거해 있었다. 이 시기를 헬레니즘 시대라 부른다.(B.C323~B.C200년 기간)
- 알렉산드로스 - 한니발-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
- 패배는 적에게 지기보다는 자신에게 지는 것이다.
3권. 승자의 혼미
- 3차 포에니 전쟁 : 스키피오 아이밀리아누스는 폴리비오스를 돌아보며 "폴리비오스, 지금 우리는 지난날의 영화를 자랑했던 제국의 멸망이라는 위대한 순간을 목격하고 있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내 가슴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승리의 기쁨이 아니라, 언젠가는 우리 로마 또한 이와 똑같은 순간을 맞이할 것이라는 비애감이라네." 함락된 카르타고는 로마 원로원의 훈령에 따라 성벽도, 신전도, 민가도, 창고도 모두 파괴되었다. 로마군은 돌덩어리와 흙 밖에 남지않은 지표면을 가래로 고른다음 소금을 뿌렸다. 신들의 저주를 받은 땅에는 소금을 뿌리는 것이 로마인의 방식이었다. 카르타고는 700년의 역사를 쌓은 뒤에 멸망했지만, 이 무렵의 로마도 건국된지 600년이 지나가고 있었다.
- '자식은 어머니의 뱃속에서 자랄 뿐 만 아니라, 어머니가 맡아보는 밥상머리에서도 자란다.' -코르넬리아(티베리우스와 가이우스의 어머니)
- 적이 외부가 아닌 내부에 있다는 것, 그것이 바로 진정한 '혼미'였던 것이다.
- 남성의 경우, 로마시민은 세 개의 이름을 갖고 있었다. 개인 이름(프라이노멘), 일족이름(노멘), 가문이름(코그노멘) 의 세 개다. 푸불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는 코르넬리우스 일족에 속하는 스키피오 가문출신의 푸불리우스 임을 나타내고,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는 쿠르넬리우스 일족에 속하지만 술라가문인 루키우스임을 나타낸다. 영어로 읽으면 줄리어스 시저가 되는 인물의 라틴어 이름은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인데, 어머니는 그를 부를 때 "가이우스야 밥먹어라"하고 말했을 것이다.
- 인간은 먹고 살 수 없게되면 먹고 살 수 있을 것처럼 보이는 땅으로 이동하는 법이다. 이는 동서고금을 통하여 변치않는 현상이다. 이런 종류의 민족이동을 고대에는 야만족의 침입이라고 불렀고, 현대에는 난민발생이라 부른다.
- 매사는 좋은 면과 나쁜면을 갖게 마련이다. 좋은면 밖에 없는 제도는 신의 솜씨로도 만들어낼 수 없다. 따라서, 개혁이란 원래부터 나빴기 때문에 고치는 것이 아니라, 처음에는 좋았지만 세월이 흐름에 따라 나빠진 면을 고치는 행위라 할 수 있다.
- '가죽부대'를 열심히 수선하고 있었다. 낡은 '가죽부내'는 이제 내버려야 한다는 생각, 그래서 가죽부대를 새로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은 그들의 이해를 넘어서 있었다.
- 술라의 묘비명 : "동지에게는 술라부다 더 좋은 일을 한 사람이 없고, 적에게는 술라보다 더 나쁜일을 한 사람도 없다."
- 스파르타쿠스의 반란, 기원전 73년 카푸아의 검투사 양성소에서 집단 탈주한 스파르타쿠스를 비롯한 노예74명은 양성소에 있던 무기들을 가지고 나와 폼페이 배후에 우뚝 솟아있는 베수비오 화산으로 도망갔다. 영화도 커크 다글러스가 주연하여 나왔는데 끝내 실패하고 제압된다.
- 체제가 갖는 장점은 누가 실행자가 되더라도 그럭저럭 괜찮은 성과가 보장된다는데 있다. 반대로 체제가 갖는 단점은, 그럭저럭 괜찮은 성과밖에 거둘 수 없는 현실이 패배로 이어지게 되는 경우, 공동체가 입을 수 밖에 없는 실질적인 피해는 너무 크다는 점에 있다.
- 폼페이우스, 크라수스(로마 최대갑부), 카이사르 삼두정치
4권.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上.
- 이탈리아의 일반 고등학교에서 쓰이고 있는 역사교과서에서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자질은 다음 다섯가지이다.
지성, 설득력, 지구력, 자제력, 지속적인 의지
카이사르 만이 이 모든 자질을 두루 갖추고 있었다.
- 로마건국 B.C653년, B.C100년 7월 12일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로마의 수부라에 있는 집에서 태어났다.
- 변호사의 아버지 '키케로'
- 카이사르는 23세 때 변호사를 개업했다가 참담한 실패를 맛보았다.
- 가장 값비싼 색깔은 보라색인데, 망또 한벌을 보라색으로 물들이는데에도 그 염료를 채취할 수 있는 조개가 1만5천 개나 필요했다. 그래서 보라색 망토는 개선장군에게만 허용되었고, 공화정에서 제정으로 바뀐 뒤에는 황제의 색깔이 될 만큼 귀중한 색이었다.
- 키케로의 연설 '카탈리나 탄핵'
- B.C 62년 로마군단의 총사령관은 북쪽에서 귀국할 때는 루비콘 강, 남쪽에서 돌아올 때는 브린디시에 도착했을 때는 군단을 해산하도록 규정되어있었다.
- 카이사르는 부하를 잘 고르는 지도자가 아니라, 부하를 잘 다루는 지도자였다. 부하를 잘 다루려면 부하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제 때 주어야한다.
- 루카회담, 삼두정치의 3두 카이사르, 폼페이우스, 크라수스의 회담
- 로마인은 해양민족이 아니다. 따라서 배에 대한 고정관념이 없기 때문에, 배에 이상한 것을 설치하는데에도 별다른 저항감을 느끼지 않았다.(돛에 의존-> 노 부착)
- 풀브라이트 장학제도, 2천년 뒤에 미국 상원의원 풀브라이트씨가 창안한 장학제도. 전쟁으로 복속시킨 땅의 인질을 데려와 교육시켜 돌려보냄으로서 로마 동조자로 활약토록 한 것을 비유
- 카이사르는 돈에 굶주려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남의 돈을 자기 돈으로 만들어버릴 생각도 없었다. 단지 남의 돈과 자지돈을 구별하지 않았을 뿐이다. 그의 일거수 일투족은 모든 사람이 자기를 돕기 위해 태어났다는 전제에서 출발했다.
- 카이사르 개인의 사전에는 복수라는 낱말이 없다. 복수심에 불타는 쪽과 복수의 대상이 되는 쪽이 같은 수준에 있지 않으면 복수심은 성립될 수 없는 감정이라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 전쟁도 하고, 작전도 짜고 일개 병졸의 역할까지 맡은 이 전쟁의 달인에게 전쟁이란 거대한 창작이었다.
- 병사는 지휘관의 얼굴을 보며 싸운다.
- 로마인 가슴에 패배에 대한 기억은
1. 기원전 390년 켈트인(갈리아인)의 수도 로마 점령
2. 기원전 312년 '카디움의 굴욕' 삼니움족에 패해 로마군이 무장해제
3. 기원전 216년 '칸나이 회전' 한니발에게 완패, 로마군 7만명 전사
- 창안한 사람이 죽으면 그가 창안한 것 까지 잊어버리는 것은 오리엔트의 결함이다. 옥시덴트(서방)에서는 사람이 죽어도 그가 이룩한 일은 계속 살아남는 경우가 많다. 파르티아의 수레나스가 죽은 것을 보고
- "너희들의 의욕은 충분히 알고 있다. 나에게 영광을 안겨주기 위해서는 어떤 희생도 감수 할 생각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내가 너희들의 목숨보다 나 자신의 영광을 중시한다면, 지휘관으로서는 실격이다."
- 나는 너희들에게 용기와 긍지 높은 정신을 바라지만, 그 못지않게 겸허함과 규율바른 행동을 바란다."
- 내 생각에는 전투도 오케스트라 연주회와 비슷한게 아닌가 생각한다. 무대에 오르기 전에 70%는 이미 결정되어 있고, 나머지 30%는 무대에 올라간 뒤 성과로 정해진다는 점에서 그렇다.
- '나' 보다는 3인칭 '카이사르'를 사용했다. 갈리아 전쟁기 기술
- 에피쿠로스(쾌락주의) : 남이 어떻게 생각하든 개의치 않고, 또한 공적으로 이룩하고 싶은 무언가를 갖지 않은 사람은 실질적인 은둔생활로 일관해야 인간사회에 해를 끼치지 않는다.
5권. 카이사르. 下 (카이사르 기원전 100년~기원전 44년 3월 15일)
- 적을 용서하는 카이사르와 자기편을 버리는 폼페이우스는 얼마나 다른가?
- 내가 석방한 사람들이 다시 나한테 칼을 들이댄다해도, 그런일로 마음을 어지럽히고 싶지 않소. 내가 무엇보다도 나 자신에게 요구하는 것은 내 생각에 충실하게 사는거요. 따라서 남들도 자기 생각에 충실하게 사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오.
- 실패에 대처하는 방법. 두 부류. 실패로 끝난 사례를 개선하려고 애씀으로서 불리함을 만회하려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그것은 일단 그대로 놓아두고 다른 일에 성공함으로서 정세를 단번에 만회하려는 사람이 있다. 카이사르는 후자의 대표자라해도 좋았다.
- 행운은 신이 내려주는 것도, 스스로 만들어 내는 것도 아니고, 적이 가져다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 증오는 자기와 대등하거나 아니면 자기보다 우위에 있는 사람에게 품는 감정이기 때문에, 남보다 절대 우위에 있다고 자부하는 카이사르가 열등한 사람의 감정인 증오감을 거부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 말이라는 동물은 발앞에 토끼가 움츠리고 있어도 멈춰서 버린다.
- 곤경은 친구를 적으로 만든다 - 카이사르 -
-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VEN, VIDI, VICI : 베니, 비디, 비시) - 포토스 정벌, 파르살로스 회전 승리
- 문장은 어휘선택으로 결정된다. -카이사르-
- 인간의 행동원칙을 바로 잡는 역할을
종교에 맡긴 : 유대인
철학에 맡긴 : 그리스인
법률에 맡긴 : 로마인
이 것만 보아도 이 세 민족의 특징이 떠오를 정도다.
종교는 그것을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행동의 원칙을 바로잡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철학은 그것을 이해할 만한 지적능력을 갖지 못한 사람에게는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다. 아테네의 외항 피레우스에서 일하는 부두노동자에게 소크라테스의 교묘한 논법으로 접근한다 해도, 철학이 그 사람의 '행동원칙을 바로잡는 역할'을 하지 못할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처형을 아테네 시민들이 압도적으로 찬성한 사실은 이런 종류의 '바로잡기'가 지닌 영향력의 한계를 보여준다. 그런데 법률은 다르다. 법률은 종교를 달리하거나 철학에 무관심한 사람이라도 인간사회에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규범이기 때문이다.
- '1차 삼두정치'는 폼페이우스, 크라수스, 카이사르
' 2차 삼두정치'는 안토니우스, 레피두스, 옥타비아누스
- "저의 위다한 장군님, 물고기를 잡는 것은 어부들한테 맡기세요. 장군께서 낚을 수 있는 것은 도시이고, 왕국이고, 대륙이니까요"
- 안토니우스에게 클레오파트라가 한 말 -
- 옥타비아누스의 기다림(후에 아우구스투스 황제, 로마 최초의 황제가 되는 인물), 인물등용, 외무장관에 마이케나스(후일 2천년 뒤 일본에도 알려진 '기업의 메세나 운동의 시조, 문예의 후원자를 뜻하는 '메세나'는 마이케나스라는 라틴어 이름을 프랑스식으로 발음한 것), 국방장관에 '아그리파'를 등용하여 로마의 새 시대를 짊어질 삼총사가 탄생한다.
- 옥타비아누스는 클라우디우스 네로와 결혼한 유부녀 리비아를 사랑했다. '티베리우스'라는 세살바기 아들을 둔 어머니이기도 했고, 둘째아이를 임신하고 있는 몸이었지만, 남편과의 담판을 통해 결혼했고, 24세의 남편(옥타비아누스)과 19세의 아내(리비아)는 평생을 해로했고, 2대 황제가 된 것은 바로 리비아가 데려온 전남편의 자식 티베리우스였다.
- 로마인들 사이에는 '전사(戰死)로 부(富)를 만들수는 있지만, 富로 戰死를 만들수는 없다'는 말이 있다.
- 악티움 해전에서 패한 안토니우스는 도망치다 미리 노예에게 칼로 자기를 죽여달라고 했지만, 이런 상황이 되면 노예는 자기를 찔러 죽고 만다. 노예에게서 칼을 뽑아 자기를 찔렀지만 바로 죽지 못하고, 클레오파트라에게로 데려다 달라고하여 사랑하는 클레오파트라의 품 안에서 죽었다. 이집트를 정벌한 옥타비아누스는 카이사르와 클레오파트라 사이에서 난 아들 카이사리온은 살해되고, 나머지 아이들은 로마에서 양육된다. 그리고 클레오파트라는 자살한다. 이로서 클레오파트라의 판단착오로 이집트왕국은 멸망을 맞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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