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것이 지혜로운지?
중앙마라톤 출발점에서 힘차게 출발한다.
2만 1천명의 달림이들이 폭죽소리와 함께 출발한다.
나는 오늘의 목표가 완주이기 때문에 천천히 페이스를 유지하면서 달려 나간다.
그런데 주변으로 많은 주자들이 내 옆을 추월하여 달려나가는데, 나의 페이스를 유지하기가 힘들 정도이다.
출발을 했으니 이제부터의 마라톤 경영은 온전히 나의 몫이다.
나의 목표는 완주이다.
늘 달릴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완주가 없으면 기록경쟁도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나만 아는게 아니다.
나는 아직도 어떤 것이 더 지혜로운지 알 수 없다.
두 마라토너가 있다.
마라토너 A는 자신의 최고 속도로 열심히 빨리 달렸다. 그 결과 25km 지점에서 더 이상 경기를 진행하지 못하고 포기했다. 다리에 쥐가 나서 더 이상 이동할 수 없었다.그렇지만 그는 본인의 최선을 다했다. 다른 마라토너 B는 출발 때부터 천천히 자신의 페이스로 달린다. 다른 주자들이 자신을 추월해 나가는 것에 게의치 않고 자신의 페이스로 달린다. 자신의 목표가 완주이므로 완주가 가능한 속도로 달려나간다. 그리고 조금 느린 기록이지만 완주했다.
나는 아직도 이 두 마라토너 중 누가 더 지혜로운지 알 수가 없다.
사회생활에서도 이런 의문은 계속된다. 지금 현재 빨리 달리는 사람들이 내 주변을 메우고 있다. 사람들은 그들보다 느리게 달리는 나에게 "너는 왜 빨리 달리지 않느냐?" 라고 나무라듯 질책한다. 나는 분명 완주를 목표로 내 페이스에 맞게 정상적으로 달리고 있는데 말이다.
25km에서 지친사람들은 포기하고, 35km까지 간 사람들도 다리를 질질 끌며 고통의 레이스를 계속한다. 길가에는 다리를 잡고 고통스러워하는 주자들이 눈에 많이 보인다. 자기 페이스를 초과한 경기 운영의 결과다.아니면 연습 부족이거나..
35km부터는 멘탈의 영역이다. 정신의 영역인거다. 나도 왼쪽 장딴지에 쥐가나서 이동하기가 어렵다. 연습부족의 값비싼 교훈인거다. 이 영역에서 나는 언제나 육체와의 싸움에서 이긴다. '장딴지 네가 정신을 이기려고? 어림도 없다.'
드디어 육체와의 싸움에서 정신이 승리하고 결승점으로 향하는데 여러 대의 버스가 지나간다. 회수차. 더 이상 경기를 진행하지 못하고 포기한 사람들이 잔뜩 타고 있다. 묘한 표정을 지으며 버스에 앉아 있는 그들도 나름 최선을 다했다고 항변할 것이다. 무엇무엇 때문에 이리되었다고, 나름의 핑계도 이야기 할 것이다.
하지만 늦은 시간까지도 꼴찌를 기다려주고, 완주한 사람을 높이 평가해주는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일까? 회수차를 타고 오면 훨씬 더 편하게 빨리 도착할 수 있는데..
그것은 아마도 완주의 의미가 경기운영의 의미보다도 더 크기 때문이 아닐까? 짧은 구간의 빠르고 느림은 의미가 없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알려주는게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나는 왜 빨리 달리지 않느냐고 추궁을 당하고 있다.
과연 어떤 것이 더 지혜로운가?
2011. 1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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