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사는 세상

영원한 오빠 '조용필'

햇살처럼-이명우 2013. 9. 11. 17:18

조용필의 신곡 ‘바운스’, 참 좋네요. 그리고 ‘헬로’도 참 좋습니다. 올해 우리 나이로 64살인데 그 나이가 도무지 믿어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그를 이렇게 40년이 넘도록 꾸준히 좋아하는 까닭은 그가 단순히 노래만 잘 부르기 때문만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가 ‘가수 조용필’도 좋아하지만 ‘인간 조용필’도 그에 못지않게 좋아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조용필씨의 숨은 선행은 의외로 우리에게 많이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그가 자신의 선행이 알려지는 것을 몹시 꺼려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2003년에 사랑하는 아내를 먼저 떠나보내면서 아내가 남긴 유산 24억 원을 심장병 어린이들을 위해 모두 내놨습니다.
2010년 6월에는 올림픽주경기장에서 소아암 어린이들을 돕기 위해 ‘러브 인 러브’라는 공연을 펼쳤습니다. 그리고 그 수익금 전액을 신촌 세브란스 어린이병원에 모두 기부했습니다.
그 금액이 소아암 어린이를 500여명이나 치료할 수 있는 금액이라고 하니 어림짐작으로 대략 약 25억 원에 이르는 큰 금액이라고 합니다.
조용필의 소속사인 YPC프로덕션이 최대 주주인 조용필에게 현금배당을 하지 않는 이유도 감동적입니다. 회사에서 나오는 적지 않은 배당금은 전액 사회에 기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조용한 나눔을 하면서도 그는 아직 전세에 살고 있습니다. 세상을 떠나면 가져갈 것이 하나도 없는데, 굳이 집을 사고 땅을 넓힐 이유가 없다는 것이 이유라면 이유입니다. 집을 넓히고 땅을 넓히는 것보다 선한 일 한 가지라도 더 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그는 온 국민에게 마음으로 사랑 받는 사람입니다.
돌아와요 부산항에, 창밖의 여자, 단발머리, 못 찾겠다 꾀꼬리, 킬리만자로의 표범, 꿈, 모나리자, 그 겨울의 찻집…. 모두가 주옥같은 명곡들입니다. 어느 한 곡도 마음 설레지 않은 곡이 없습니다.

그는 지난 2010년에 한센인들이 거주하는 전남 소록도를 방문했습니다. 한센인들이 누구입니까?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는 스텝들을 모두 데리고 그곳을 방문했습니다.
그리고 그곳의 마을회관에서 300여명의 주민들을 모아놓고 1시간 30분 동안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의 공연을 펼쳤습니다. 그는 대충 공연을 한 것이 아니라 월드컵경기장에서 수만 명의 군중들 앞에서 하는 공연처럼 혼신을 힘을 다해 공연을 펼쳤습니다.

그리고 2010년에는 10억 원의 자본금을 출연하여 조용필 장학재단을 설립했습니다. 그리고 그 돈으로 학습의 기회나 질병의 치료를 받지 못하는 청소년들을 돕고 있습니다. 그 장학금은 매년 꾸준히 늘어나고 있습니다.

늘 최고의 자리에 서 있지만 그는 늘 이렇게 따뜻함을 잃지 않는 사람입니다.

많은 분들이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최근 온라인 게시판에는 조용필의 노래 ‘비련’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게재되어 화재가 되기도 했습니다. 조용필씨의 전(前) 매니저였던 최동규씨가 인터뷰를 통해 밝힌 내용이었습니다.

아래는 최동규씨의 인터뷰 내용입니다.

“4집 발매로 바쁜 활동 중에 전화가 왔습니다. 어느 시골 요양병원의 원장이었는데 14세 지체 장애 여자 아이가 조용필의 ‘비련’을 듣더니 입원 8년 만에 처음으로 감정을 보이면서 눈물을 흘렸다고 했습니다.
그 모습에 감동한 여자 아이의 보호자 쪽에서 돈은 원하는 만큼 줄 테니 조용필씨에게 직접 노래를 불러줄 수 없냐고, 안 되면 와서 얼굴이라도 한 번 보게 해줄 수 없냐고 부탁을 해왔습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조용필씨에게 그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는 지금 바로 그 병원으로 출발하자고 했습니다. 그 날 행사가 4개나 잡혀있었는데 그 행사들을 모두 다 취소하였습니다. 더구나 위약금까지 물어주고 그는 시골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조용필을 본 여자 아이는 아무 표정도 없이 멍하니 있었습니다. 조용필이 그 아이의 손을 잡고 ‘비련’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아이가 그 노래를 들으면서 펑펑 울음을 터트렸습니다.

그렇게 아이만 운 것이 아니라 아이의 부모도 울고 거기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함께 울었습니다. 노래가 끝나고 조용필은 여자 아이를 꼭 안아주면서 직접 사인한 CD를 건네주었습니다. 그리고 차에 타서 출발을 하려는데 아이의 엄마가 돈을 어디로 보내면 되냐고 물었습니다. 그 때 조용필씨가 대답했습니다.

“따님의 눈물이 제가 평생 벌었던, 또 앞으로 벌게 될 그 어떤 돈보다 훨씬 더 비쌉니다.”

그 말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게 남습니다."


우리가 조용필씨처럼 이렇게 귀한 삶을 살지는 못할지라도 조용필씨와 비슷한 마음을 먹고 살 수는 있지 않겠습니까. 우리의 삶이 그러했으면 좋겠습니다.(박완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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