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군의 모습이 아닌가. 그것도 비겁한 폭군이 아닌가." "차라리 전쟁터에 나가는 게 낫지." "그러게, 시원하게 한판 붙어 이기면 되지, 이 무슨 생고생이람." 노역에 끌려나온 백성이나 병장기 대신 연장을 든 병사나 불평불만을 쏟아내기는 매한가지였다. 그들은 하나같이 요하벌판을 내달리며 이르는 곳마다 승전고를 울리던 을불의 고구려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개마대산을 울리며 진군(晉軍)을 궤멸시킨 개마기병의 위용, 최비의 낙랑군을 전멸시키다시피 한 낙안평 대전, 그리고 천하 불세출의 영웅 모용외를 죽음에 이르게 한 하성 전투까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 고구려의 추억이었다. 그러나 그 추억만을 되새기기에는 현실의 고통이 너무도 컷다. 축성이란, 더구나 사유가 고집하는 석성(石城)의 축성이란 농사일과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