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3. 일차원적 인간, 마르쿠제, 차인석 옮김, 삼성출판사, 1989.
해제 : 허버트 마르쿠제가 60년대 행동파 젊은 대학생들의 사상적 지도자로서 유명해졌을 때, 그는 이미 70세의 고령이었다.
미국과 소련과 같은 고도로 발달한 산업사회는 1차원적 이라고 규정하며, 이 1차원의 범주가 그의 사회이론에 있어서는 일반적 역할을 한다. 이 범주는 선진 산업사회에 있어서 인간존재의 제현상을 총체로 특징지운다. 사회는 1차원적으로 발전했으며 이 사회에 있어서 인간, 그의 의식, 예술, 언어 등은 1차원적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상적인 사회는 이 1차원적 체제를 타파하고 2차원으로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산업이 자기폐쇄적이고 자기규제적 체제가 되면 어느 누구도 이 악순환을 분쇄하고 그의 기업의 방향과 성격에 대한 자유롭고, 의식적인 결정을 할 능력을 갖지 않는다.
그 결과가 자본주의 기업주가 책임있는 대행자로서 그의 동일성을 상실하고 거대한 기계인의 관료로서 기능하게 된다. 풍요의 표면 뒤로 수탈의 원천은 사라지고 기술의 베일이 자본주의적 수탈을 은폐하면서 지배는 관리로 변형해버렸다.
개인들은 기술지배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신민(臣民)이 되었다. 그는 스스로 기술의 문화에 동화되고 이것이 그의 문화가 되었다. 기술의 통제가 이성의 통제이고, 이는 모든 집단과 이해관계를 위한 통제이며, 모든 모순은 비이성적이고, 모든 반동은 불가능하다. 기술적 합리성은 이탈을 허용하지 않는 사회적 지배이다. 사람들은 승용차와 스테레오 세트에서 자신의 영혼을 발견하며, 그렇게 함으로써 행복을 느낀다.
행복과 자유는 완전한 삶의 궁극적인 요소지만, 그 양은 기술적 자원에 의해 규정된다. 기술진의 정도에 따라 행복과 자유의 범위가 규정된다.
생산성의 증가는 자유의 상실을 수반한다. 미국 사회에 있어서 서부 개척자의 공장노동자로의 전화(轉化)가 그 좋은 예다. 자유는 안전과 교환되고 보다 더 큰 풍요와 바뀌어진다. 그 대가는 규제, 통제 그리고 지배이다.
지배는 그 가장 선진단계에 있어서는 관리로서 기능하게 되며, 대량 소비가 가장 진전된 영역에서는 관리된 삶이 전체의 좋은 삶이 되고, 이를 방어하기 위해서 대립하는 것들은 통합된다. 노동자는 기성체제에 대하여 더 이상 싸우지 않고, 거기에 가담한다. 그는 그 이득이 주어진 사회 전체의 성공에 달려 있다는 것을 확신하며, 그 회사에 좋은 것은 나라를 위해서도 좋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해서 현대 산업사회는 1차원적이 되며 그 반대파를 흡수해 버린다. 이것은 지배의 순수형태이다. 그 부정은 기존 체제가 그 생산성을 발전시키고 삶의 고통을 덜어줄수록 비합리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기술적 합리성 안에서의 반대의 통합은 환산적 통합이며, 이 통합은 성장하는 생산성과 그 억압적 사용간의 모순을 배제하지 않는다.
차례
서론
제1부 1차원적 사회
1. 통제의 새 형태
2. 정치세계의 끝
3. 불행 의식의 정복 : 억압적 탈승화
4. 진술세계의 끝
제2부 1차원적 사유(思惟)
5. 부정적 사유 : 패배한 저항의 논리
6. 부정적 사유에서 긍정적 사유로 : 기술적 합리성과 지배의 논리
7. 긍정적 사유의 승리 : 1차원적 철학
제3부 선택의 기회
8. 철학의 역사적 참여
9. 해방의 파국
10. 結論
우리들은 선진 산업문명에서 가장 불쾌한 모습 중의 하나와 봉착한다. 즉, 비합리성의 합리적 성격이다. 그 사회는 생산력과 효율성, 안락을 증진, 보급시키며 낭비를 욕구로, 파괴를 건설로 바꾸는 능력 그리고 이 문명이 대상세계(對象世界)를 인간의 정신과 육체의 확장으로 바꾸는 그 규모가 소외개념을 문제가 되게 만든다. 사람들은 상품 속에서 자신을 확인한다. 그들은 자동차에서, 하이파이 전축에서, 층층의 집에서, 부엌시설에서 자신의 영혼을 발견한다. 개인을 그 사회에 묶어 매는 바로 그 메커니즘이 변했으며, 사회적 통제는 그 사회가 생산한 새로운 욕구 안에 정착한다.
플로베르(Flaubert)의 <<보봐리 부인>>
하나의 세계 내에서 초월인 이 다른 질서의 표현을 위해서는 , 시적 언어는 일상적인 언어 속의 초월적 요소에 의존한다. 그러나 모든 매체를 기성 현실을 방위하기 위해 전면 동원하는 것은 초월적 내용의 커뮤니케이션이 기술적으로 불가능하게끔 표현수단들을 등질화 했다.
오직 기술을 통해 인간과 자연은 조직의 대체 가능한 대상이 된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환자의 병은 그가 살고 있는 병든 세계에 대한 항의의 반응이다.
갈릴레오의 과학은 그것이 배반받고 있는 동안에도 참된 것이었다.
2022.4.7. 목요일. 스크린 한 게임하고 와서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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