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산티아고_DMZ평화의 길_6일차 (8-1코스,9코스)
8.22. 금요일. 날씨 맑음 (8-1코스,9코스 일부 총 14.8km)
6일차 :
구간 8-1코스 : 10.2km (임진강역 4.7km - 장산1리 마을회관 1.8km - 장산전망대 입구 2.7km - 화석정 1km - 율곡습지공원)
구간 9코스 : 8.5km (율곡습지공원 2km - 두포교차로 2.8km - 파평면사무소 3.7km - 리비교 거점센터) 중 4.6km
누적 : 114.5km
문산자유시장에 있는 숙소에서 눈을 떴다. 오늘은 걷는 거리가 많지 않아서 여유롭게 준비를 하고 나왔다. 임진강역으로 가는 교통편을 알아보고 시간을 확인한 후 아침 먹을 식당을 찾았다. 시장 안 식당에서 된장찌개를 주문해서 아침을 먹는다. 아침에 무친 깻잎도 한 접시 주셨다. 너무 맛나게 먹었다. 7,000원. 커피도 한잔 대접 받았다. 정말 감사하다.

문산타워 앞 건물 화장실을 이용했는데 변기가 막혀서 불편했다. 마음도 불편하구나.
임진강역 가는 58B 버스 탑승 08:33분에 출발하면 20분 정도 소요되었다.



4.7km 구간에 있는 장신1리 마을회관 버스정류장에 화장실이 있네. 필요한 사람은 여기 화장실을 이용하면 좋겠다. 휴게실도 있으니 휴식도 하고 화장실도 이용하고 쉬어가면 좋겠다.
좌측에 하천, 우측에는 벼가 심어진 논 사이로 난 길을 걸으며, 길과 하나가 되어본다.

들꽃.
들킬까봐 숨어 핀 꽃이 아니외다. 온갖 비바람에 흔들리지 않으려 낮게 핀 들꽃이외다.
때로는 외로운 연인들이 흘리고 간 밀어의 조각들을 외우며 사랑은 받는게 아니라며,
누구도 알아주는게 싫어서 외돌아 핀 들꽃이외다.
덜 크고, 덜 아름다워도 짙은 하늘 향해 가슴을 벌리고 있나이다.
밤마다 떠돌이 별들과 이야기 나누며,
때론 곤줄박이 녀석이 의미없는 노래로 고요를 허물고,
호랑나비 날갯짓만 바라보며 핀 야윈 들꽃이외다.
오래오래 피기 싫어 사랑이 무언지 알지못하고 질
이름지운 들꽃이외다.
아직도 덥다.
임진리 마을을 지나고 정자가 있어 거기서 10분간 쉬어간다.

관북과 관서의 분기점이자 의주대로의 중요한 길목이었던 임진나루에 도착했다. 임진나루는 한국의 역사와 민속 이야기에서 중요한 장소 중 하나로 간주되며, 임진강(현재의 한강)을 건너는 중요한 나루 중 하나였다. 이 나루는 관북(현재의 평양 방향)과 관서(현재의 서해 방향)의 분기점이었으며, 한양(현재의 서울)에서 의주(현재의 의정부)로 향하는 의주대로의 주요한 길목이기도 했다.
임진나루의 역사와 관련된 이야기 중 하나는 다른 곳의 뱃사공이 임진나루의 뱃사공을 속이려고 양반으로 변장하고 시험을 벌인 에피소드이다. 그러나 임진나루의 뱃사공은 그 속임수를 간파한다. 그 이유는 뱃사공의 수염이 한쪽으로 구부러져 있고 노를 젓느라 고개가 돌아간 모습을 보고, 바로 자신과 동일한 뱃사공의 특징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임진나루의 지혜로운 뱃사공은 속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는데 이러한 이야기들은 한국의 민속과 역사를 풍부하게 표현하는 소중한 자료이다.
이어서 나타난 화석정.
준비의 달인 율곡선생은 임진나루에 있는 화석정에 틈이 날 때마다 들기름을 묻힌 걸레로 정자 마루의 기둥을 닦도록 하였으며, 임종 때 "어려움이 닥치면 열어보라" 고 밀봉한 편지를 남겼다고 한다. 이후에 임진왜란(1592년)이 일어나 선조가 의주로 피난하게 되었는데, 폭풍우가 너무 심해 한 치 앞을 볼 수 없자 이에 피난길을 따르던 이항복이 율곡의 밀봉한 편지를 열어보니 "화석정에 불을 지르라"고 쓰여 있었다. 기름이 잘 먹은 화석정에 불길이 올라 나루 근처가 대낮같이 밝아져서 선조 일행이 무사히 강을 건널 수 있었다. 1593년 다시 한양으로 돌아오면서 나라와 백성을 위하여 순국한 병사들의 넋을 달래고자 위령제를 지냈다. 의주로 피난 가던 당시 노심초사 고생 끝에 이 나루를 건너게 된 쓰라린 아픔을 기억하고, 강을 지키고자 목숨을 지푸라기와 같이 버린 용감한 충신들의 명복을 기원하는 가운데 선조가 통곡하며 "하늘의 도움을 받아 이 나루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구나" 하였다하여 신지강(神智江)을 임진강(臨津江)으로 개칭하게 되었다는 일화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건물 정면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쓴 "花石亭" 현판이 걸려있고, 내부에는 율곡이 8세 때 화석정에서 지었다는 「팔세부시(八歲賦詩)」가 걸려있다.
林亭秋已晩(임정추이만) / 騷客意無窮(소객의무궁)
숲속 정자에 가을이 이미 깊어드니 / 시인의 시상(詩想)이 끝이 없구나.
遠水連天碧(원수연천벽) / 霜楓向日紅(상풍향일홍)
멀리 보이는 물은 하늘에 잇닿아 푸르고 / 서리맞은 단풍은 햇빛을 향해 붉구나.
山吐孤輪月(산토고윤월) / 江含萬里風(강함만리풍)
산은 외로운 둥근 달을 토해내고 / 강은 만리의 바람을 머금었네.
塞鴻何處去(새홍하처거) / 聲斷暮雲中(성단모운중)
변방의 기러기는 어느 곳으로 날아가는가? / 울음 소리가 저무는 구름 속에 끊기는구나.
율곡 이이는 조선 중기의 대표적인 유학자로 한반도 역사상 최고의 천재로 손꼽히는 인물 중 한 분이다. 1536년 외가인 강릉 오죽헌에서 태어나, 파평면 율곡리에서 성장하였으며, 1584년 사망했다. 율곡은 장원급제를 9번이나 하고, 23살에 이기일원론을 정립하였다. 이황과 함께 조선을 대표하는 유학자이자, 이론에만 몰두하지 않고 현실 개혁에도 적극적으로 노력한 정치인으로 우리나라 오천원권 지폐의 모델이며, 신사임당이 오만원권 지폐의 모델이 되며 모자(母子)가 지폐 인물이 된 최초의 사례가 되었다.
율곡은 선조에게 "지금 나라의 기세가 떨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10년 안에 반드시 나라가 무너지는 큰 화를 만나기가 쉬울 것이니, 10만 명의 병사를 기르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라고 상소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율곡의 사회,정치적 견해에서 중요한 것은 국방론이었다. 집권통치자들이 태평성세만을 노래하면서 국방에는 전혀 관심을 돌리지 않고 있는 당시의 형편을 통탄하는 동시에 적극적인 국방론을 제기 하였다. 그는 국방을 강화하기 위한 선결조건으로 백성들의 생활을 안착시키는 것을 내세웠다. 또한 당시의 국제정세를 볼 때 10년 이내에 국가에 화가 있을 것을 예측하고 유사시에 대비하여 10만 양병설을 주장하였다. 미리 10만 명의 군사를 양성하여 서울에 2만, 각 도에 1만 명씩 배치하되 군사에게는 호별세를 면해주고 무술을 단련시키며 6개월 만에 교대로 서울을 지키도록 하다가 변란이 일어날 때는 10만 명을 합쳐서 지키게 하는 등 위급한 때와 그렇지 않을 때를 위한 대비책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율곡의 10만 양병설에 대하여 유성룡 등은 태평한 시대에 병사를 기르는 것은 화를 자초하는 것이라는 이유로 반대했지만, 10만 양병설이 제기된 후 8년 만에 임진왜란이 일어나니 율곡의 식견이 놀랍기만 하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대통령이 '안보가 곧 평화'라는 관점으로 율곡의 식견대로 자주국방을 위한 노력을 충실하게 이행하고 있다.
화석정 옆에는 수령이 560년 된 느티나무와 230년 된 향나무가 팔을 활짝 벌리고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시원한 그늘을 제공하고 있다.



화석정을 지나 율곡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9,000원. 한식부페로 여러가지 반찬을 먹을 수 있었다. 나는 그중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콩국이었다. 갈증과 배고픔을 동시에 풀어주는 콩국을 3그릇이나 먹었다. 사장님께서 눈치주지 않아서 너무 기분 좋게 먹었다.

8-1코스의 종점인 율곡습지공원에는 자전거부대가 한무리 휴식을 하고 있다. 그 옆을 지나 종점에 QR을 찍었다. 비둘기 조형물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정자에서 30분 쉬어서 9코스로 출발한다.


9코스는 임진강을 따라 걷는 길이다. 오늘은 파평면 눌노리에 있는 임진강 모텔을 숙소로 정했기 때문에 천천히 여유를 가지고 간다. 파평면 행정복지센터를 지나 5km지점에 있는 cu편의점에서 20분 쉬어 간다. 아이스카라멜마끼야또에 포카리 한 통. 4,700원. 신발도 벗고 양말도 벗고 편안하게 휴식을 한다. 세상을 모두 가진 것 같다.


파평삼거리에서 오늘의 걷기는 마무리한다.
숙소가 파평삼거리에서 약 2km 마을로 들어가서 있어 도로를 이용해서 조심해서 걸어간다. 자동차들이 제법 많이 다녀서 안전을 확인하면서 걷는다. 목표를 낮게 잡으면 역시 짧은 거리도 힘들다. 오늘은 이곳 임진강모텔에서 일찍 쉬고 내일 아침엔 05:30에 출발해야겠다.
모텔에 들어왔다. 결재를 하니 방 번호만 알려주고 열쇠도 안준다. 50,000원. 가장 먼저 오늘 입은 땀젖은 옷을 모두 벗어 손으로 조물조물 땀기 빼서 대충 널어놓고 이른 저녁 먹으러 나간다. 이곳은 식당도 손님이 있으면 열고 그렇지 않으면 일찍 문을 닫는다는 모텔 사장님의 이야기를 듣고 모텔 뒤에 있는 막국수집에 갔는데 역시나 문을 닫았다. 현재시간 오후 3시40분인데.
조금 더 내려와서 찾은 현대식당에는 다행히 밥을 먹을 수 있었다. 백반을 주문하고 맥주도 두 병 주문해서 폭풍흡입한다. 16,000원. 맛나게 먹고 들어가서 일찍 쉰다. 세탁물은 에어콘과 선풍기를 최대로 돌려 말린다.

금일 소요비용 : 86,700원 (아침 7,000+점심 9,000원+저녁 16,000원 + 숙소 50,000원+간식 4,700원)
누계 소요비용 : 224,05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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