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산티아고_DMZ평화의 길_8일차 (12, 13코스)
8일차 : 8월25(월) 맑음 아침25도, 낮 32도
12코스(16.2km), 13코스(19.8km 중 약 11.8km) 총 28km 누적 : 172.5km
12코스(16.2km) (숭의전지 2.2km - 연천 당포성 3.2km - 동이리 주상절리 4.6km - 인진교 6.2km - 군남홍수조절지)
13코스(19.8km) (군남홍수조절지 3.0km - 그리팅맨 8.8km - 신망리역 8.8km - 대광리역)
아침 : 동두천중앙역앞 씨유편의점
점심 : 냉국수
저녁 : 치킨마루 치맥
숙소 : 연천역 신라모텔(031-834-0059)
05:45분 집에서 출발, 도농역에서 전철을 탄다. 06:10분 회기역에서 환승, 동두천중앙역 0703도착.
역앞 씨유에서 컵라면에 삼각김밥, 커피 한 잔으로 아침을 대신한다. 가면서 먹을 간식으로 군계란을 두개 샀다. 7,000원.



아침을 해결하고 07:51분 동두천중앙역에서 숭의전으로 가는 52번 버스에 탑승, 08:40분 숭의전 앞에 하차. 화장실을 다녀와 비우고 가벼운 몸으로 12코스를 활기차게 출발한다.

연천 숭의전(사적 제223호)
숭의전은 조선시대에 전 왕조인 고려의 태조 왕건을 비롯하여 나라를 부흥시킨 4명의 왕들과 고려 충신 16명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낸 사당이다. 조선 초기 처음 사당이 건립되어, 1451년에 숭의전이라 이름 지어졌으며 이후로 숭의전의 관리와 전례도 고려황조의 후손에게 맡겨졌다. 숭의전의 설치 배경에는 조선이 유교국가로서 역대 시조의 의례체계를 정비한 과정과 더불어 고려 왕족 및 고려 유민 등에 대한 회유차원에서 이루어졌을 것으로 이해된다. 숭의전 건립 이래 수차례에 걸쳐 중수와 보수가 이어져왔으나, 한국전쟁으로 전각이 모두 소실 되었다. 숭의전 복원은 1972년부터 1986년 까지 수년에 걸쳐 이루어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까지도 봄과 가을 두 차례에 걸쳐 숭의전 대제가 이어지고 있다. 숭의전은 고려시대 옛 왕조의 영광과 고려왕조를 사모한 충절이 깃들인 곳이다.
옆에는 조선 문종 2년에 심은 것으로 전해지는 수령 609년의 느티나무가 보호수로 지정되어 우뚝 서있다.

숭의전으로 올라가는 오르막에 들어서니 벌써 땀은 비오듯 흐른다. 아침에 전철타고 오면서 읽었던 기사가 생각났다.
"땀샘도 없어 입 벌리고 '헉헉'...벌써 5만마리 죽었다." (SBS NEWS 2025.8.24.)
'처서'가 지났지만, 절기마다 비껴간 무더위에 지치는 건 사람만이 아닙니다. 가축들고 더위와의 사투를 벌이고 있는데요.
춘천시 신북의 한 양계장. 계사 위로 물이 쉴 새 없이 흘러내립니다.
아직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면서 1도라도 온도를 낮추기 위해서입니다. 땀샘이 없어 체온조절이 힘든 닭들은 계사 내 온도가 30도만 넘어가도 호흡이 어려워 입을 벌리기 시작합니다. 닭의 생활 최적 온도는 24도에서 25도 사이. 하지만, 올여름 기록적인 폭염에 닭이 버티지 못하면서 피해가 컸습니다. 이 양계장도 병아리를 포함해 7천 마리가 넘는 닭이 폐사했습니다.
올여름 폭염으로 발생한 도내 가축 피해만 모두 5만 1천600여마리. 닭이 4만 8천여 마리로 가장 많고, 돼지도 3천100여 마리가 폐사했습니다. 지난해 대비 166% 증가한 규모입니다.
8월 중순 이후 폭염이 계속되면서 축산 당국도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습니다.
최고 체감온도가 33도 이상으로 치솟는 무더위가 앞으로 더 지속될 것으로 보여, 축산농가의 푹염과 사투는 당분간 이어질 전망입니다.
(https://tv.naver.com/v/82869575)
"40도지만 괜찮아" 한증막 공장 누비는 로봇[르포](이데일리 2025.8.24.)
여름철 무더위가 한창이던 지난 19일, 중국 동부 장쑤성 우시시에 위치한 공업회사 텐치(영어명 미라클) 작업장에 들어서니 뜨거운 열기가 확 밀려온다. 이곳은 자동차 도색, 건조 작업 중이었는데 고온의 열처리 때문에 내부 온도가 40도 가까이 올라간다는 게 현지 직원 설명이다.
연신 흘러내리는 땀을 닦으며 이동하는데 한 부스에서 휴머노이드 로봇 한 대가 자동차 외판 이곳저곳을 살피고 있었다. 도색을 마친 외판의 건조가 제대로 됐는지 직접 가까이에서 확인 하는 절차다.
옆에 있던 회사 관계자는 "도색과 건조 라인을 지난 외판은 엄청나게 뜨거워 사람이 가까이 가기 어렵지만 로봇은 할 수 있다"면서 "프로그래밍 후 충전만 계속하면 15시간이든 20시간이든 피곤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텐치가 사용 중인 휴머노이드 로봇을 중국 유명 로봇 기업 유비테크와 갤봇 모델이다. 텐치는 로봇을 구입해 자동차 도색 등 주요 작업 내용을 학습 시킨 후 다른 기업에 판매하는 사업을 하고 있다.
중국 주요 전기차 없체인 지커를 비롯해 실제 다수 자동차 공장에 납품 실적을 갖고 있다고 회사측은 전했다. 아직 사람을 100% 대체하진 못하나 검사 등 여러 분야에서 휴머너이드 로봇이 도입되고 있는 것이다.(......)
(https://v.daum.net/v/20250824182338505)
오전인데 기온은 30도를 넘어서고, 티셔츠는 땀으로 달라붙었다. 땀구멍이 없어서 폐사하는 닭 보다는 땀구멍이 있어서 땀을 흘릴 수 있음에 감사하다고 생각했다. 앞으로 이런 분위기의 기후현상이 계속된다면 온열질환에 대하여 철저한 대비책을 강구하더라도, 많은 일자리는 휴머노이드 로봇으로 대체될 수 있음은 자명한것 같다.
연천 당포성을 지나고 12코스의 종점인 군남 홍수조절지를 향하여 도로길을 지루하게 걸어서 동이리 주상절리에 도착했다.
정자에서 잠시 휴식한다.



동이리 주상절리는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임진강을 따라 펼쳐지는 주상절리는 자연이 빚어놓은 예술작품이다. 한탄강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은 한탄강과 임진강을 따라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진 주상절리와 폭포등이 웅장하면서도 아름답게 펼쳐진 현무암 협곡지역으로 지질명소를 다수 포함하고 있다. 대부분의 현무함 주상절리는 바닷가에 나타나지만 이 곳의 현무암 주상절리는 강 주변에서 볼 수 있어 국내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매운 드문 사례이다. 또한 이곳은 한반도 형성과정은 물론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모든 지질시대의 암석들로 볼 수 있어 한반도의 지질 교과서로 알려져 있다.



길이 비로 유실된 구간이 있다. 지나가는 순례객이 사고를 당하지 않도록 보수해 달라고 안전신무고 앱을 켜고 신고를 했다. (9월4일에 문자메시지가 왔다. 연천군 문화광광국 관광과에서 수용하고, 빠른 시일내에 장비임차를 통하여 둘레길 보수를 실시하도록 하겠습니다. 주무관 연락처 전화번호까지 적혀있었다.) 위험한 곳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않고 안전신문고 앱을 켜서 신고하는 것, 이것도 직업병인가?

임진강 옆 둘레길을 따라 걷다가 뚝방 위로 올라왔다.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서 벤치에서 잠시 쉬어간다.

임진교를 건너니 드디어 식당이 보인다. 진상삼거리에 있는 진상맛국수집에 들어가서 냉국수 곱배기를 주문했다. 8,000원. 땀을 많이 흘려 시원한 국물이 있는 국수가 먹고 싶었다. 맛나게 먹고 물도 보충하고 다시 출발한다.

하늘은 뜨겁고 그늘은 없다. 하천옆 자전거길을 따라 계속 걸어 드디어 12코스 종첨 군남홍수조절지에 도착했다.
13:06분 12코스 완보.


QR찍고 13코스 출발. 신망리역까지 11.8km.
오늘은 거기서 자기로 하고 걸어간다. 홍수조절지 뒤로 이어진 둘레길을 따라가니 전망대가 나오고 전망대를 지나니 모두 산길이다. 산길을 지나서 평화누리길 어울림센터에 도착해서 물도 보충하고 조금 쉬어간다. 연천어울림센터에서 귀한 분을 만나 멋진 이야기도 들었다. 김신영 작가님과 그의 책 '레클리스(김신영, 동양북스, 2025)' 이야기를 듣자마자 바로 교보문고앱으로 책을 구매 했다. 작가께서는 현재 연천에 살면서 한탄강 지질공원 해설사로 자원봉사를 하고 계신다, 친절하게 안내하고 편하게 쉬어갈 수 있도록 배려해 주셨다. 너무 감사하고, 책에 나오는 내용이 너무 감동적이라 여기에 소개하지 않을 수 없다.
"레클리스"
레클리스는 비록 체구는 작지만 불가능한 임무를 거뜬히 해냈습니다. 1953년 3월 26일. 레클리스는 험준한 산길을 오십번 넘게 오르내렸습니다. 높고 가파를 길을 오르내리며 무거운 탄약을 나르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히 떠오릅니다. 레클리스는 탄약이 바닥나 절망할 때마다 약속이라도 한듯 어김없이 나타났습니다. 말 그대로 '전장의 구세주'였죠.
레클리스가 운반한 포탄은 총 386발, 무게로 따지면 4천 킬로그램이 넘습니다. 포탄이 터지는 소리에도 흔들리지 않고, 언덕을 수십번이나 오갔습니다. 부상상한 병사를 등에 태워 안전한 곳으로 데려왔죠. 누구도 레클리스에게 이 일을 가르친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레클리스는 우리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고, 그 임무를 묵묵히 해냈습니다.
레클리스가 부상을 입고도 임무를 멈추지 않았다는 사실을 전투가 끝난 뒤에야 알게된 일도 있습니다. 등에 파편을 맞고, 왼쪽 눈 위가 찢어지면서도 임무를 완수했죠. 전쟁이 종식된 후 많은 사람이 물었습니다. "어떻게 그 작은 말이 온몸을 던져 임무를 다했을까요?"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레클리스를 전우로 생각했기 때문에 레클리스도 우리를 전우로 생각한 거라고.
레클리스 이야기는 단순히 전쟁중에 일어난 기적같은 동물 이야기가 아닙니다. 레클리스는 진정한 용기와 헌신, 희생의 의미를 알려주는 상징입니다. 레클리스는 우리에게 진정한 해병, 진정한 전우가 무엇인지 가르쳐 주었습니다. 레클리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레클리스! 넌 우리의 전우고, 우리의 영웅이고, 영원한 미 해병 대원이야." - 레이섬 병장의 연설문 -
지금으로부터 70여년 전, 한국전쟁 당시에 군마 레클리스가 있었다. 매년 5월이되면 육군 제25사단은 한미참전용사와 가족들을 초청해 네바다 전초전투를 상기하는 행사를 개최한다. 네바다 전초 전투는 1953년 판문점 동북방 16km지점인 경기도 연천군에서 미해병대 제1사단과 중공군이 격돌한 전투가. 이때 활약한 해병이 레클리스다.
무반통총소대에 탄약을 운반하기 위해 투입된 이 말은, 우리나라 이름은 '아침 해'였지만 무반동총의 애칭인 '레클리스'로 불리게 되었다. 1952년 10월 26일부터 레클리스는 탄약 운반 임무를 끈기있고 충실하게 수행하였다. 하루에 스물네번, 각각 6발의 고폭탄을 탄약보급소에서 사격진지까지 운반했다. 하루에 약 30km이상을 이동하고 총 1.5톤 이상의 포탄을 운반했다.
어떤 날은 하루에 총 쉰한번의 탄약운반을 완료했다. 레클리스가 나른 포탄은 모두 386발, 무려 4톤이나 넘는 무게였다. 페더슨 중위는 레클리스가 포탄을 나르기 위해 이동한 거리가 60킬로미터 이상일 것이라고 추정했다. 평지도 아닌 산악지형이라는 사실을 고려하면 그야말로 경이로운 성과였다.
이런 성과에 대한 보상으로 미해병대 제1사단장 에드윈 폴록 장군은 레클리스 해병에게 퍼플하트(Purple Heart)훈장*을 수여했다.
1953년 7월 27일 마침내 휴전협정이 체결되었고, 레클리스 상병은 미합중국 해병대 보병연대에 복무하면서 전투작전 중 세운 많은 공로를 인정받아 하사로 승진한다.
입대 후 정확히 24개월 후 레클리스는 캠프 펜들턴에서 지내기 위해 미국 캘리포니아 땅을 밟았다.
2006년 미국 작가 로빈 허튼은 책을 한 권 썼다. 한국전쟁 당시 해병으로 복무한 말의 이야기 레클리스에 관한 책이다. 책을 위해 자료를 찾고, 해병들을 만나던 작가는 어느 날 레클리스를 기념할 동상을 제작하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레클리스가 해병이니 해병대 출신의 조각가가 작업하면 좋겠다는 생각했고, 드디어 야생동물과 역사적 인물을 사실적으로 구현하는 청동조각 예술가 조슬린 러셀과 의기투합하였으며 총 6점의 동상을 제작했다. 첫 동상은 제막식까지 총 7년이 걸렸고, 동상은 레클리스 보다 조금 큰 높이 3.25미터로 제작되었다. 미해병대 국립박물관 셈퍼 피델리스 기념공원을 시작으로 캘리포니아주 캠프 펜들턴, 켄터키주 호스파크, 일리노이주 베링턴 힐스, 텍사스주 포트위스, 플로리다주 월드 이퀘스트리언센터가 그곳으로 동상은 모두 조슬린 러셀이 만들었다. 조슬린 러셀은 조각가로서 수많은 작품을 만들었지만 그 중 가장 유명한 작품은 레클리스 청동상이다.
미군의 레클리스를 대하는 태도에서 그들의 전쟁영웅에 대한 인식을 느낄 수 있었다. 전투중에 어떤 위험을 극복했는가, 얼마나 어려운 가운데 임무를 완수했는가, 그 임무가 전체 전투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가, 그들은 이를 따져서 영웅을 가려내 추모한다. 동료와 가족들에게 영웅에 대해 일컫고, 영웅의 이야기는 대를 이어 전해진다. 그 대상이 아니라 동물일지라도 추모한다. 레클리스 이야기는 우리 주변의 숨은 영웅들을 기억하고 기리는 일의 중요성을 다시금 깨닫게 해준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평화와 번영은 조용한 영웅들이 만들어준 것이다. 우리의 오늘을 위해 그들은 자신의 미래를 희생했다. 그런 그들을 우리가 잊는다면 그들이 남긴 가치 또한 잃어버리고 말 것이다.
<레클리스, 김신영, 동양북스,2025> 중에서
이런 사건을 만난 것은 내게 엄청난 행운이었다. 여러분도 연천을 찾아 이 행운을 만나기를 희망한다.

연천어울림센터에서는 원래 게스트하우스 등 숙박할 수 있는 쉼터로 계획을 했는데, 주변의 민원으로 그냥 쉼터만 운영한다고 한다. 신망리까지는 자그마한 동산을 하나 넘으면 된다고 알려주셨다.
쉼터 앞에 있는 로하스파크를 지나 걸어가는데 비가 온다. 산길을 넘어가는 내내, 비는 계속해서 내리고, 산길에는 금새 물웅덩이가 생겼다. 나도 신발속 양말이 젖지않도록 하는 노력을 포기했다.
연천(漣川)이라는 지명을 보면 다른 지역과는 특이한 느낌이 든다. 눈물흘릴 연(漣)자에 내천(川)자 이다. 이 지명이 생기게 된 것은 고려 진사 이양소(李揚昭)와 관련이 있다. 조선 태종은 친구 이양소를 조선왕조에 참여시키려고 무려 다섯번이나 연천을 찾았다. 삼국지에서 유비가 제갈공명을 모시기 위해 세번이나 찾아 삼고초려
(三顧草廬)라는 말이 생기기도 했지만 태종 이방원은 오고초려(五顧草廬)하였으나, 이양소는 고려진사라는 이유로 끝내 응하지 않았다. 이에 태종은 거듭하여 불렀으나 이양소의 거절과 사양에 돌아서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래서 연천을 연(漣:눈물흘릴 연)이라 쓰고, 이 지역이 원래 내가 많다보니 천(川)이라고 하여 '연천(漣川)이라고 하였다 한다. 이후 이양소가 죽자 태종은 친구의 산소를 점지해 달라며 무학대사에게 명을 내렸다.
무학대사는 철원 땅에 묻힐 길지를 선택했으나, 장지를 연천땅을 벗어나면 안된다는 이양소의 유언으로 이 또한 좌절되었다. 결국 태종은 철원땅 십리를 베어 연천에 붙이라고 명을 내렸다고 한다. 또한 연천읍내를 끼고 도는 차탄천을 우리말 이름으로 '수레여울(수레울)'이라고 하게 된 지명의 설화도 태종이 이양소를 만나고 어가를 타고 왔다가 수레가 이곳 여울에 빠졌기 때문에 붇여진 이름이다. 전곡읍 은대4리 '어수물'이라는 마을의 이름도 태종이 이양소를 만나러 친행할 때에 이곳에 이르러 목이 말라 우물 물을 마셨기 때문에 그 뒤부터 임금님께서 드신 우물이라는 뜻으로 '어수정(御水井)'이라 부른 것이 지금의 '어수물'로 일컬어지고 있다.
산길을 헤치고헤치고 드디어 마을로 내려왔다. 신망리 역 앞 벤치에 앉아서 지도를 검색해본다. 청수여관, 보문여관, 철원여인숙, 네이버지도에 나온 숙소는 찾아가보니 모두 폐업하여 문을 닫았다. 식당에 들어가서 물어보았더니 신망리에는 숙소가 없고, 하룻밤 묵으려면 연천역 근처로 버스타고 나가야 된다고 했다. 지방소멸의 한 단면인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최**부장님 전화가 왔다. 9/13(토) 태능cc 예약이 되었는데 함께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날은 동기생 아들 결혼식이 있어서 안된다고 했지만, 태능cc는 예약이 정말로 하늘에 별따기라 이런 기회가 흔하지 않은데 많이 아쉽다. 버스정류장에서 연천역으로 나가는 버스를 기다린다. 오늘은 총 42,524보를 걸었다.


신망리역에서 연천역앞으로 버스타고 이동해서 신라모텔로 숙소(40,000원) 정하고, 샤워를 한 후, 모텔 사장님이 소개해주신 치킨나라에 가서 치맥한다. 34,000원. 혼자서 한마리를 다 먹지 못해 반마리는 포장해와서 모텔 사장님께 드렸다. 숙소에서 푹 쉰다.

금일 소요비용 : 89,000원 (아침 7,000+점심 8,000원+저녁 34,000원 + 숙소 40,000원)
누계 소요비용 : 347,95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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