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산티아고/DMZ평화의 길

나의 산티아고_DMZ평화의 길_18일차 (29,30-1코스)

햇살처럼-이명우 2025. 11. 27. 17:58

나의 산티아고_DMZ평화의 길_18일차 (29,30-1코스)

 

9/16(화) 맑음

29코스(양구통일관 5.5k-먼맷재 입구 7.7k-설악금강 서화마을(DMZ 평화쉼터) 13km

30-1코스(설악금강서화마을 9.3k- 용늪자연생태학교 10.5k- 인제 냇강마을 5k- 원통버스터미널) 24.8km

아침 : 숙소에서 컵라면

점심 : 편의점식

저녁 : 굽네치킨 맥주

숙소 : 원통 킹스톤모텔 / 50,000원 / 

 

  일찍 일어나 세수하고, 숙소에서 컵라면을 하나 끓여서 먹고 나왔다. 새벽 5시 반에 농장 사장님차를 얻어타고 어제 누루누비앱을 중단했던 해안모텔로 이동했다. 모텔 사장님은 사과농사를 하는 과수원 사장님이셨다. 청송에서 올라왔는데 멀리 앞날을 내다본 그런 선택이었다고 했다. 여기 양구로 올라온지는 10년쯤 됐는데 양구사과가 요즘 제일 각광받는 아이템이 되었다고 말씀하셨다. 미래를 읽는다는 것은 대단한 능력이다.

  어제는 해안면소재지의 모텔에 빈방이 없어서 사장님 집 방을 두개 빌려서 동행한 선배님들과 각각 4만원에 잤다. 하긴 해안면소재지에 외지인이 묵을 숙소라고는 해안모텔 하나 밖에 없는데, 그나마도 농번기라 외국인근로자들이 많이 들어왔으니 빈방이 없는것이 당연하지. 이런 사정을 알지못하고 들어왔다가는 잠자리가 없어서 낭패보기가 십상이다. 

  과수원 사장님이 새벽 5시반, 이른 시간인데도 어제 약속한대로 나를 해안모텔까지 자동차로 데려다 주셨다. 나는 너무 감사해서 택시비라며 1만원을 더 드렸는데 오히려 사장님이 고맙다며 뒷트렁크에서 커다란 사과를 두개를 챙겨주셨다. 가면서 출출할 때 간식으로 먹으면 너무 맛있을 것 같다고, 고맙다 인사하고 받았다. 

  5시 반에 나왔는데 해안면 소재지에는 벌써 일하러 나온 사람들로 분주하다. 외국인근로자들이 많이 보인다. 농번기라는 말이 실감난다. 두루누비 앱을 다시 켜고 28코스 마지막 구간을 시작한다. 어제 밤에 내린 이슬은 비가 되어서 뚝뚝 떨어진다. 

 

  양구 통일관 28코스 종점에서 QR찍고 화장실에 들렀다 나오니 6시가 조금 넘었는네 날이 밝아온다. 오늘도 멋지게 한번 걸어보자. 

  29코스는 통일관 뒷편 산으로 연결되며 시작된다. 올라가는 길에는 풀이 무성하게 나 있었고, 이른 아침이라 풀잎에 많은 이슬이 있었지만 발토시를 한 나는 불편하지 않았다. 반바지를 입은 다리에 전해지는 이슬 먹은 풀잎의 감촉은 서늘하여 오히려 정신을 맑게 해주었다. 작은 돌맹이가 신발에 들어가서 불편함이 많았던 지난 경험으로 발토시를 준비했는데 효과가 너무 좋다. 이런 풀밭 길을 새벽에 걷는다면 신발이 모두 젖어서 불편할텐데 발토시 덕분에 멀쩡하다. 산길은 아직 어두워서 준비한 후레쉬를 켜고 정신을 집중하면서 이동한다. 얼마나 걸었을까 산길을 벗어나 도로로 접어드니 발이 밝아온다. 얼마나 집중을 하면서 걸었는지 티셔츠는 벌써 땀으로 흠뻑 젖었다. 숙소 사장님이 주신 사과 하나를 꺼내어 간식으로 먹었는데 너무 맛나다. 사과가 너무 커서 한 개를 한 번에 먹지 못하고 반쪽을 먹고 반쪽은 지퍼백에 넣었다.   

 

  인북천 물골교를 건너서 잠시 후 먼멧재길이 시작된다. 지금 시간 아침 7시 12분 드디어 안개 속에 들어있던 해가 모습을 드러냈다. 안개와 나무와 그 사이를 비추는 햇살은 몽환적이다. 수채화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아득히 먼 곳에 있는 원에서 빛이 새어나와 주변으로 쫘-악 스며드는 그런 모습이다. 조만간 저 햇살이 풀잎에 있는 이슬을 말려주겠지. 뒤따라오는 선배님들이 불편하지 않게 풀잎의 이슬을 말려주기를 희망하며 걷는데 발걸음이 가볍다. 드디어 인제군 경계 이정표가 보이기 시작한다. 

 

  날씨는 여전히 덥다. 먼멧재길은 양구에서 인재로 구불구불 이어진다. 드디어 오늘 종점인 원통 이정표가 보인다. 36.2km가 남았다.

 

  어제는 자전거 순례객도 한 분을 만났는데 그분은 코리아둘레길을 자전거로 순례하는 중이라고 했다. 해파랑길, 남파랑길, 서해랑길을 모두 완주하고 DMZ평화의 길 몇 구간만 완주하면 코리아둘레길을 완주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각 둘레길의 특징을 설명해주었는데, 이 곳 DMZ평화의 길이 가장 힘들다고 했다. 거리는 510km정도 코리아둘레길 중 가장 짧지만 가장 힘든 이유는 숙소와 식당이 부족하다는 것인데 거기에는 나도 동의한다. 해파랑길이 750km, 남파랑길이 1,470km, 서해랑길이 1,800km이지만 DMZ평화의 길 둘레길과는 상대적으로 숙소와 식당이 풍부하여 그런 불편은 없다고 말해주었다. 덤프트럭 운전을 오래 하셨고, 노후를 위해 개인택시를 준비했고 현재는 수원에서 개인택시 운전을 하고 있다. 이번 순례는 택시에 자전거를 싣고 와서 종점에 주차하고, 자전거로 시작점으로 이동해 원점회귀하는 방식으로 진행한다고. SUV자동차 뒷열을 뉘면 차박이 가능해서 숙소는 구애받지 않고 순례중이라고 했다. 자전거로 이동하면 빠르기는 하다지만 4,500km의 코리아 둘레길을 완보한다니 정말 대단하나는 생각 밖에 들지 않는다. 

 

  9시가 조금 넘어서 인제로 넘어왔다. 서화마을. 인제 12사단에서 군생활을 한 사람들은 서화리로 잘 알려진 마을이다. 선배님과 동기생 한 명이 12사단에서 근무했는데 서화리와 천도리는 하도 많이 들어서 익숙한 지명이다. 이른 시간이라 서화리 DMZ평화의 길 방문자 센터는 아직 문이 닫혀있다. 마당에 있는 표지판에서 29코스 종점 QR을 찍고 나왔다. 들어오면서 보았던 마을 어귀 정자에서 잠시 쉬어가야겠다.

  간식을 먹고 있는데 동네 주민 한 분이 다가와서 말을 건넸다. 무엇 때문에 힘들게 걷느냐? 나는 올해 말 정년을 맞아 공로연수로 쉬고 있는데, 쉬는 동안에도 월급을 주는 회사가 고마워서 뭔가 의미있는 일이 없을까 고민했다. 고민 끝에 이렇게 회사의 미션인 '우리는 안전으로 행복한 세상을 만든다' 는 문구를 등에 메고 안전순례에 나서게 되었다고 말했다. 대단하다는 칭찬과 함께 끝까지 완보하라는 응원까지 받았다. 감사하다. 30-1코스를 힘차게 시작한다. 

 

  30-1코스는 서화마을에서 용늪 자연생태학교, 인제 냇강마을을 지나 원통터미널까지 약 24.8km 구간이다. 이 코스는 인북천을 따라서 걷는 길이다. 인북천은 서화리, 천도리를 휘감고 내려와 원통의 북천과 만나 소양강으로 흘러간다. 서화리를 지나면 천도리 마을이 나온다. 이곳 천도리 마을 앞에 있는 인북천은 겨울이면 꽁꽁 얼어서 빙상장이 된다. 12사단 장병들이 겨울마다 사단장배 스케이트 대회에 참가하느라 스케이트를 원없이 탔다는 동기생의 이야기가 기억에 선하다. 지금도 그런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지금은 땀이 뻘뻘 나는 늦여름. 인북천 물빛테마공원 매점에 들어가서 아이스크림 하나 사서 더위를 식힌다.  

 

  용늪마을은 용늪이 있는 마을이다. 용늪은 용이 쉬어갔다는 전설이 있는 대암산 고산 습원지이며 금강초롱, 끈끈이주걱 등의 희귀식물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 인제군에서는 생태탐방프로그램을 여러 개 운용하고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용늪 생태관광 프로그램이다. 용늪마을에서 시작하는 용늪 가이드 탐방로는 12km로 산행시간은 대락 5~6시간이다. 가이드의 안내를 받으며 이곳에서 자생하는 희귀식물을 찾아보는 재미를 느낄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쉼터 벤치에서  휴식하면서 점심을 먹는다. 편의점에서 사온 삼각김밥과 군계란, 과수원 사장님이 주신 사과 한 개, 양갱이와 에너지바를 먹으면서 30분 정도 푹 쉰다. 신발도 벗고, 양말도 벗어 수고하는 내 발에게도 신선한 공기를 선물한다.

 

  계속 걸어서 용늪 대바위마을에서 기념촬영을 한다. 인북천을 따라 이어지는 자전거길은 지루하다. 지루한 길을 걸으면서 평화와 안전에 대해 생각했다. 평화와 안전이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생각하다가 문득 내가 안전협회에 들어와서 개성공단에 현장 안전점검을 처음 갔을 때 일이 생각났다. 계동 현대 본사 앞에서 관광버스를 타고 파주로 이동했다. 출경사무소에서 보안교육을 받고 혹시 모른다며 현금도 100달러 환전해서 지갑에 넣고 다시 버스에 올랐다. 검정색 썬글라스를 쓴 민정경찰 완장을 찬 군인이 지키고 있는 남쪽 통문이 활짝 열리고, 깨끗하게 포장된 도로로 차량 수백대가 행렬을 지어서 북으로 이동을 하는 장관이 펼쳐졌다. 이럴수가!

  나는 강원도 고성에 있는 전방부대 철책에서 소대장으로 근무를 했다. 그곳 전방 철책부대(GOP)에서 근무할 때만해도 철책 마다 순찰패를 부착해서 순찰자가 순찰할 때마다 뒤집어서 색깔을 바꾸었다. 철책 아래에는 철책기둥 하나당 2-3개 작은 돌탑을 쌓아두었는데 만약 적이 침투한다면 이게 쓰러질 것이기에 적의 침투흔적을 확인하는 경계수단으로 삼았다. 순찰도중 이 돌탑 하나만 쓰러져 있어도 원인을 파악하기 전까지는 비상사태였다. 그만큼 적의 침투를 철저히 방어하는 것이 전방철책 부대 경계근무의 핵심이었고,  작은 하나의 구멍도 용납하지 않았다. 다행이도 돌탑을 쓰러뜨린 것이 산양의 소행이라고 밝혀지면 상황은 빨리 끝났다. 그렇게 철저히 방어했던 적이 있는 곳으로 난 길에 있는 통문을 우리 군인이 활짝 열어젖히고 차량을 통과시켰다. 통문이 열리자 아스팔트길 위로 수백대의 차량이 북으로 북으로 이동하는 놀라운 현장의 그림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북한을 주적이라고 교육받고 3년간 철책부대에서 근무하는 경험을 했지만, 매달 한번씩 개성공단으로 현장 안전점검을 다니면서 나도 아무런 의식을 하지 않았다. 무엇이 이렇듯 극명하게 내 인식을 변화시킨 것일까? 그건 평화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적대관계에 있더라도 심지어 주적이라고 하는 상대와도 평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우리는 서로를 죽이지 않고, 공존할 수 있다. 결국 안전도 평화와 맞닿아 있다. 우리가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어야 하고, 평화로운 세상이야말로 안전을 위한 기본적인 조건이다. 이번 DMZ평화의 길을 걸으며 가장 깊이 깨달은 것은 안전은 평화의 토대 위에 구축해야 한다는 멋진 원칙이다. 

   

  가다가 어제 만났던 자전거 순례객을 다시 만났다. 원통에 차를 세워두고 30-1구간 시점으로 갔다가 원점회귀하는 중이라고 했다. 원통까지 시간도 많고 하니 함께 가자고 해서 동행한다. 이제야 두루누비 앱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다. 휴식을 할때는 휴식 버튼을 눌러 시간을 정지시키고, 휴식이 끝나면 완료하기 버튼을 눌러야 이동 구간에 해당하는 소요시간을 정확하게 알 수 있다. 

 

 

  원통이 가까워 지는 지점에서 비가 내렸다. 처음에는 땀을 식혀주어 고맙다고 생각했는데 빗줄기가 굵어져 우산을 꺼내서 썼다. 자전거 순례객은 비가 오니 먼저 가시라 하고 나는 빗길을 계속 나아간다. 원통 생활체육공원을 지나고 원통 읍내에 들어오니 자전거 순례객님이 택시를 타고 내 옆에 섰다. 비가 오니 숙소까지 태워주시겠다고 했는데 땀과 비에 젖은 내가 택시에 타는 것은 민폐라고 생각하고, 감사한 마음만 받겠다고 감사하다고 사양했다. 그분은 이번 여정은 오늘로 마무리하고 수원으로 돌아갔다가 다음에 마무리를 한다고 말하고 떠났다.

  30-1코스 종점에 도착. 원통 중앙공원에 있는 QR확인하고 숙소를 예약하러 간다. 숙소는 원통 킹스톤 모텔(5만원)로 정하고 샤워를 하고 땀에 젖은 옷을 세탁해서 널어놓고 나왔다.   

 

  굽네치킨에 들어가서 닭이 나오기도 전에 생맥주를 두 잔 연거푸 들이켰다. 치킨에 맥주를 몇 잔을 더 폭풍 흡입하고 나니 좀 살것 같다(32,900원). 불콰하니 최한 기분으로 숙소에 도착했다.

 

  

  들어오는 길에 CU편의점에서 내일 아침 샌드위치와, 저녁 라면과 햇반, 모레 점심의 삼각김밥과 군계란(합 12,100원)을 샀다. 왜냐하면 내일 숙소가 산속에 있는 펜션이라 근처에 식당이 없어 점심과 저녁 ,다음날 아침거리까지 준비해야 했다. 식당이 부족한 것이 불편함으로 극치로 다가오는 저녁이다. 내일 숙소는 8만원에 연화스테이로  예약했다. 내일은 천천히 가자. 

 

 

금일 소요비용 : 95,000원 (저녁 32,900원 + 숙박비 50,000원 + 간식비 12,100원)

누계 소요비용 : 1,337,35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