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산티아고_DMZ평화의 길_16일차 (25,26-1코스)
9/5(금) 맑음
16일차 : 25(14.1km), 26-1코스(12.8km) 약26.9km 누계 : 376.5km
25코스(종점상회 4.4k- 금악교 2.6k- 양구 백자박물관 7.1k- 양구 두타연갤러리)
26-1코스(양구 두타연갤러리 6.2k- 도사 삼거리 6.6k- 피의능선 전적비)
아침 : 펜션 컵라면에 삼각김밥
점심 : 편의점 음식
저녁 : 집
숙소 : 집
아침에 일어나니 뽀쏭하게 말라 있어 기분이 좋다. 컵라면, 삼각김밥 하나 먹었더니 든든하다. 종점상회쪽으로 올라가서 두루누비앱을 켜고 25코스 시작한다. 오늘은 땀흘리지말고 천천히 여유롭게 즐길 것은 즐기면서 가자고 마음 먹는다. 25코스는 오미리 동네를 바깥으로 크게 한바퀴 돌아서 이어진다. 인삼밭 뒤쪽으로 이불로 감싼 듯 안개가 산허리에 걸렸고, 태양은 안개속에서 신비한 색채로 하늘과 어우러져 몽환적인 분위기다. 여기에 상쾌한 아침공기까지 기분 좋은 아침이다.
방산리에서 시작된 수입천의 시원한 물줄기는 오미리 동네를 휘감아 흘러간다. 수입천 쪽다리를 건너야 하는데 가보니 엊그제 내린 비로 물이 불어 출입을 통제해서 건널 수 없었다. 어쩔수 없이 한참을 우회하여 각시교를 건너 이동한다. 덕분에 오미리 동네를 구석구석 걸을 수 있는 호사를 누렸다. 다음에 다시 온다면 추억이 진하게 느껴질 것 같다.



오미리를 둘러싼 산세도 정말로 웅장하다. 안개와 산과 하늘과 태양빛이 만들어내는 조화가 그냥 한폭의 산수화다. 그 옆에는 졸졸졸 강물이 시원하게 흘러가고 맞은편 논에서 벼는 씩씩하게 수확의 계절 가을로 달려가고 있다.
산의 높이를 가늠할 수가 없다. 하늘과 닿은 듯 아련한데, 안개가 이불로 감싼듯 산 허리에 걸쳐있다. 태양마저 운무에 가려 빛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뿌옇게 형체만 보이는 것이 몽환적인 분위기다. 시간이 조금만 더 지나면 태양의 열기에 안개들도 모두 공중으로 흩어지겠지. 그렇지만 지금 현재 자연이 내게 보여주고 있는 이 그림은 그야말로 환상적이다. 그래서 쇼펜하우어는 내가 인식하므로 비로소 세계가 존재한다고 말했나보다.
나는 그 옆에 난 길 위를 걸어가고 있다.






25코스 종점상회에서 금악교까지는 4.4km로 수입천 하천을 따라 자전거길이 조성되어 있어 걷기에 아주 좋았다.
금악교 상부에는 인부들이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도로 위에 라바콘 두 개를 설치하고 신호수는 없었다. 인부는 자기 일에 완전히 몰입한 상태다. 자동차가 가까이 오더라도 보지 못할텐데, 자동차 운전자가 잠시만 전방주시를 소홀히 한다면 사고로 이어질것 같은 위험한 상황이다. 더구나 반대 차선에서 차라도 온다면 위험은 더 커보인다. 안전관리는 작업하는 인부와 자동차 운전자의 상호작용에 따라 안전과 사고의 결과로 이어진다. 적어도 50미터 전방에 '작업 중 표지판'을 설치하고, 유도자를 배치하여 운전자에게 미리 경고하면 사고의 확률은 완전히 줄어들텐데. 그러나 유도자도, 표지판도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은 모두 그렇게 각자의 세상을 살아간다.
자전거길을 따라 천천히 계속해서 걸어간다. 길을 따라 심어놓은 가로수들이 아직 어린 나무들이라, 해가 나오니 아직은 덥다.



2.6km를 더 걸어서 양구 백자박물관에 도착했다. 유투브에서 추천이 있어 박물관 안에 있는 카페에서 쉬어가려고 했는데, 문을 열지 않았다. 11시부터 영업을 시작한다고 직원이 알려주었다. 꿩대신 닭으로 길옆 벤치에 앉아서 잠시 쉬어간다. 옆으로 보이는 직연폭포를 보면서 에너지바 '자유시간'을 하나 꺼내어 간식으로 먹는다. 쉴 때마다 조금씩 먹어주니 에너지 보충에 참 좋구나.

10시가 가까워지니 다시 태양의 열기가 느껴진다. 생태계교란종 가시박 덩쿨이 엄청나게 많은 구간을 점령하여 길옆을 차지하고 있다. 화천에도 이들의 확산이 심각했는데 이곳 양구도 별반 다르지 않다. 오이 등의 종자개량을 위해서 외국에서 들여왔다가 사람들의 관심밖으로 밀려나면서 버려진 이런 식물들이 이제는 토종식물들을 위협하는 지경까지 퍼져 버렸구나. 나하나쯤 괜찮겠지하는 안전불감증이 결국 불안전한 상태와 불안전한 행동으로 온 현장을 전염시키는 것과 꼭 닮아있다. 그 이후의 결과에는 누구하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고, 희생되는 사람과 식물만 서럽다.
음식점 주차장에 세워둔 군용차량의 안전조치와는 묘한 대비가 된다. 이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걸까? 아마도 내 생각에는 지속적인 관심과 실행이 아닐까 싶다. 불안전한 상태와 행동은 무관심을 먹고 자란다. 생태계교란종의 확산도 이와 같다. 처음부터 제대로 안전교육을 하고, 비용이 들더라도, 불편하고 시간이 부족하더라도 계속해서 실행해야 한다. 마치 콩나물시루에 물주는 것과 같이 물주기를 멈추면 안된다. 물을 한번 주었다고 콩나물이 자라지 않는다. 그렇다고 물주기를 포기하면 우리는 콩나물을 먹을 수 없다. 이렇게 계속 물을 주면 시루 가득 콩나물이 자란다는 확신을 갖고 지속하는 사람만 맛난 콩나물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은 언제 들어도 진리.


송현1리 GS25 편의점에 쉬어간다. (샌드위치등 구매 13,700원) 점심을 먹기에는 이른 시간이라 샌드위치와 군계란등은 점심 시간에 먹으려고 배낭에 넣었다. 아이스커피와 이온음료를 한 통 먹으면서 쉬는데 어제 오미리숙소 관리인이 편의점에 오셨다. 반갑게 인사하고 벤치에 함께 앉아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제 막국수집에서 저녁을 먹을 때, 옆에서 저녁을 먹던 동네사람들 이야기를 했더니 그 관리인이 이야기를 해주었다. 오늘 아침에 농사를 짓는 어떤 분은 오이를 한박스에 2만원씩 200박스를 낸 농부도 있다고 했다. 그런데 자기는 올해 무를 심었는데 한박스에 6천원 밖에 안준다고 해, 인건비도 안나온다면서 밭을 갈아 엎었다고 했다.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고 시골에서 농사짓는 나람들의 이야기가 다 그런것 아니겠느냐고 이야기 하셨다. 그러면서 왜 힘들게 사서 고생하며 걷고 있느냐고 나에게 물었다. 여기 살면서 걸어가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는데 왜 걷는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이야기 하였다. 나는 정년퇴직을 맞이해서 6개월 공로연수 기간을 부여받았는데 어떤 변화의 계기를 마련하고자 출발했다고 말했고, 기왕하는 것 안전캠페인을 겸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걷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길에서 많은 사람을 만나고, 걸으면서 겸손함도 배우고 좋은 시간이라고 말해주었다. 나의 이야기가 잘 이해 안되는 표정이었지만 고개는 끄덕여 주었다. 그분의 올해 남은 농사가 잘 되기를 기원하며 인사하고 악수하며 헤어졌다.

11:48분 두타연갤러리 평화쉼터에 도착했다. 인생에서 순조로운 계획은 없는 것 같다. C.S 루이스가 쓴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는 경험 많고 노회한 고참 악마 스크루테이프가 자신의 조카이자 풋내기 악마인 웜우드에게 인간을 유혹하는 방법에 대해 충고하는 서른한 통의 편지이다. 인간의 본성과 유혹의 본질에 관한 탁월한 통찰이 가득한 이 책에 보면 풋내기 악마 웜우드가 계획을 하는 인간을 보고 벽 모퉁이 뒤에서 인간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너희(인간)들이 감히 계획을 해"
또 실행의 중요성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여하튼 행동으로 옮기는 것만 아니라면 무슨 짓이라도 하게 두어라. 상상과 감정이 아무리 경건해도 의지와 연결되지 않는 한 해로울게 없다. 어떤 인간이 말했듯이, 적극적인 습관은 반복할수록 강화되지만, 수동적습관은 반복할수록 약화되는 법이거든. 느끼기만하고 행동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질수록, 점점 더 행동할 수 없게 될 뿐 아니라 결국에는 느낄 수도 없게 되지."
두타연 갤러리 쉼터에서 차 한잔 하면서 쉬고 있는데 장모님 전화가 왔다. 어제 막내 이모부가 갑자기 돌아가셨다고, 바빠도 조문하러 내려와야지 않겠느냐고 하셨다. 원통까지 가는 것이 이번 여정에 내 계획이었는데 웜우드의 장난인지 순조로운 계획은 없고, 언제나 변수는 있구나. 오늘은 해안까지 걷고 다음에 오는 것으로 계획을 변경해야겠다. 해안면 피의 능선 전적비까지 12km 정도 되니 거기까지 가서 26-1코스 마무리하고 양구로 나가서 동서울 가는 버스를 타야겠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일정의 변수도 있지만 다른 변수도 항상 복병처럼 도사리고 있다. 신발 속에 작은 돌맹이 하나만 들어가도 걷기에 힘들다. 그 돌맹이를 제거하지 않으면 급기야 발가락 또는 발바닥에 물집을 만든다. 작은 물집은 결국 도보 여행자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작은 돌맹이 하나의 변수도 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걷는데 작은 돌맹이들이 신발 속으로 들어와 자주 멈추어서서 신발을 벗어 털어야 했다. 다음에 올 때는 발토시를 반드시 준비해서 와야겠다.
송현2리 마을회관을 지나 평화로를 따라 이동한다. 양구 15km 남았다는 이정표가 나왔다. 오르막길이 나오자 길옆에서 잠시 쉬면서 점심으로 준비한 샌드위치를 먹으며 한참을 쉬어간다. 힘이 불끈 난다. 계속 걸어서 옛길로 나있는 도고터널을 지난다. 왕복 2차로 터널인데 배수로 위로 걸으니 덮개가 파손된 구간이 있어 불편했다. 차가 없어 차도로 내려와서 걷다가 차가 오면 배수로 위로 올라가기를 반복해서 터널을 통과했다.



해안면으로 가는 도로 위를 갓길로 이동한다. 자동차들은 무엇이 그렇게 급한지 제한속도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굉음을 내면서 지나간다. 급한 일이 있어서 가는 사람들일까, 아니면 습관에 따라 차 없는 도로라 그냥 속도를 내는 것일까 알수 없지만 도로 위를 도보여행하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일이긴 하다. 그렇다고 인도가 없는 이 길을 걷지 않을 수는 없고 난감하다. 나도 이런 한적한 길을 운전하면 저렇게 운전하겠지. 그런데 내가 직접 걸어보니 한적한 길이라도 속도를 늦추어서 다녀겠다는 생각을 하며, 또한번 겸손을 배운다.


동면에 도착해서 CU편의점에 들어가서 아이스커피와 이온음료를 하나 샀다(4,100원). 갈증을 해소하는데는 이만한 것이 없다. 임당리에서 월운리까지 강변의 자전거길을 따라 걷는다. 지루하지만 지루함은 어느덧 나의 친구가 되었다. 드디어 임당리 월운저수지 앞에 있는 26-1코스 종점 피의 능선전적비에 도착했다. 피의 능선 전전적비 노래가 검은 색 돌비에 흰색 웅장한 글씨로 새겨져 있다.
피의 능선 전적비가(김택진 작사)
장하도다 우리는 대한의 용사
무엇이 두려우랴 드높은 기세
철벽의 적지도 우리는 뚫고
태극기 휘날린 피의 능선
(후렴)
아- 정의와 자유에 흘린 핏방울
천추만대 길이 빛날 승리의 공훈
받들고 나가자 삼십육연대
장하도다 우리는 나라의 방패
붉은떼 남길소냐 드높은 함성
철통의 적진도 치고 무찔러
육탄으로 쟁취한 피의 능선



다음에 찾아오기 쉽도록 버스정류장과 시간표를 사진으로 찍었다. 조금 더 내려와 임당2리 정류장에서 양구가는 버스를 기다려 탔다. 교통카드 체크기에 불이 들어오지 않아서 기사님에게 고장났다고 말씀드렸더니 양구 외곽으로 도는 순환버스는 요금이 무료라고 했다. 감사하다. 월운저수지 옆이 26-1코스 종점이다. 다음에 올 때 월운리에 내려야지. 3시15분에 임당2리 정류장에서 탔는데 양구 읍내까지는 30분 정도 걸리는 모양이다.


양구시외터미널에 도착해서 동서울행 버스표를 샀다(20,000원). 시간이 좀 여유가 있어 커피를 한병 샀다( 2,300원). 배낭은 버스 아래 짐칸에 실었다. 동서울까지 1시간50분 걸린다고 하니 사창리 때와 비슷하구나. 다만 금요일이라 시간이 조금 더 소요될 거라고 기사님이 말했다.
집에 도착해서 샤워하고 아내와 치맥하러 갔는데 자리가 없어서 막회에 소맥 먹고 왔다.
새로 산 신발이 도착했네. 오늘까지 신었던 에코로바 신발은 이제 보내주어야겠다. 바닥이 많이 닳아서 더이상 함께 하기는 어렵겠다. 그동안 무거운 나를 싣고 다니느라 정말 많이 수고했고 함께해주어서 고맙다.
지난 수요일에 레저타임 트레킹화를 하나 주문했었는데 오늘 도착했다. 바닥도 짱짱하구나. 이제부터는 너에게 나를 맡기마. DMZ평화의 길 마지막 여정까지 잘 부탁한다.
일찍 잔다.



금일 소요비용 : 43,000원 (아침 13,700원 + 버스비 20,000원+간식 9,300원)
누계 소요비용 : 1,082,75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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