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앤드류 그로브의 위대한 수업
앤드류 그로브, 한국경제신문, 2004
공병호선생의 ‘10년 후 한국’이라는 책에서 인용하였기에 그 내용이 어떤지 알아보려고 책을 읽었는데 결론은 역시 ‘사람은 모두 평범한데서 출발 하는구나’. 천재적인 사람도 그렇지 않은 사람도 환경이 사람을 만들고, 부모님의 영향을 크게 받았고, 한 곳에 몰두하는 집중력이 있고, 배우려는 열정도 있고....
유년기 시절의 모습은 ‘쉰들러 리스트’ 영화를 한 편 보는 듯 어려운 시기였다. 성홍열 때문에 죽다가 살아난 일, 그로 인해 귀가 어두워서 남들보다 잘 들을 수 없는 것은 학교생활의 어려움으로 작용했지만 남다른 열정으로 잘 넘긴다. 전쟁이 나자 아버지와 주위 사람들이 징집되고, 생사조차 모르는 상태에서 하루하루 숨죽인 생활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간다. 독일군의 점령 하에서 유대인 학살 프로젝트가 시행되어 많은 사람들이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끌려가고 앤드류 그로브의 고모두 등도 끌려가 죽음을 당하고 만다. 소련군이 진주해서도 생활은 나아지지 않았고, 전쟁이 끝나서야 조금은 자유로워진다. 공산주의 체제하에서의 계획경제의 불합리성, 비능률성 등에 대해 많은 부분의 설명을 보여준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부모님의 원유로 피아노와 영어를 배우고 고모로부터 사진기술을 배웠으며, 수영, 글쓰기, 펜싱, 춤, 카약, 성악교습 등 하고 싶다고 생각하면 바로 교습을 시작하고 또 열심히 일정수준에 오를 때까지 배워서 내 것으로 만드는 열정은 정말이지 대단했다.
초등학교 3학년 겨울, 눈싸움은 빼놓을 수 없는 놀이였다. 한 번은 눈뭉치 하나가 빗나가는 바람에 시내전차의 열린 문으로 날아들어 기관사의 얼굴을 때리고 말았다. 기관사가 전차를 멈춰 세우고 나와 우리를 뒤 쫒아 왔다. 그에게 내가 붙잡혔다. 그는 내 머리통을 움켜쥐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는 내가 쓴 모자를 들고 전차로 돌아가서 다시 시동을 걸어 떠나버렸다. 나는 그 모자 하나밖에 없었다. 나는 추위에 덜덜 떨며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온 나는 쭈뼛거리며 아까 있던 일을 얘기했다. 특히, 눈뭉치를 던진 건 내가 아니라는 말을 강조했다. 아버지는 딱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씀하셨다. 「모자를 돌려받을 수 있는지 알아보자꾸나」.아버지와 나는 혹시 기관사가 밖으로 던져버렸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눈 속을 터벅터벅 되짚어 갔다. 종점까지는 먼 길이었고 시시각각 어두워지고 추워졌다. 이윽고 종점에 다다른 아버지가 배차원에게 모자를 가져온 사람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기적처럼 배차원이 내 모자를 내밀었다. 아버지와 나는 다시 터벅터벅 걸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반쯤 걸어오다가 문득 내가 아버지의 손을 잡았다. 아버지가 함께있어 기뻤다.
1946년 봄. 아버지는 내가 영어를 배우는 것이 좋겠다고 결론을 내렸다. 아버지가 헝가리 속담을 하나 인용하셨다. 「할 줄 아는 언어가 많을수록 그 사람의 가치는 높아진다.」
모나치 김나지움의 물리선생님 볼렌스키는 1학년 가을 학부모 면담시간에 「인생은 큰 호수와 같습니다. 모든 아이들이 나중에는 호수 속으로 들어가 수영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 아이들 모두가 호수를 끝까지 건너가지는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 중 한사람은 분명히 끈까지 건너갈 것입니다. 바로 그로브입니다.」라고 말한다. 특히, 성악교습은 부다페스트대학 화학과에 진학하여 오페라에 흥미를 가지면서 절정에 달한다. 모차르트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돈조반니」, 슈만의 「두 사람의 척탄병」
공산혁명, 헝가리의 탈출, 미국도착, 렌케 당고모부 만남, 열심히 공부하는 태도, 생활비를 충당하기위해 학교에서 아르바이트, 자립심 등 태생적인 독립심 같은 것은 정말 본받을 만하고 우리아이들에게도 한번 읽게 해주고 싶다. 이해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적극적으로 접근하고, 문제의 핵심에 부딪치며 하나하나 해결해 나가는 용기와 추진력 멋지다.
2004.1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