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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8. 로마인 이야기 10, 시오노 나나미, 한길사, 2002

햇살처럼-이명우 2011. 1. 25. 11:31

218. 로마인 이야기 10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시오노 나나미, 한길사, 2002

 

기원전 3세기는 우연히도 지구의 동쪽과 서쪽에서 대규모 토목사업이 시작된 시기이다.

- 동쪽에는 만리장성 : 기원전 3세기 경 진시황시대에 건설된 것만 아니라 16세기 명나라시대에 건설된 것까지 합하면, 총길이는 무려 5,000km에 이른다.

- 서쪽에는 로마가도 : 기원전 3세기 부터 서기 2세기까지 500년 동안 로마인이 건설한 도로의 총 길이는 간선도로만 해도 80,000km, 지선도로까지 합하면 무려 150,000km에 이러렀다.

로마인은 인프라에 대해서는 채산성을 무시했다. 로마인은 인프라를 '사람다운 생활을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로마인은 패배했을 때는 절대 강화를 맺지 않고, 승리한 뒤에야 비로소 패자와 강화를 맺는 것이 로마의 전통인데 이는 아피우스의 일화가 그 전통의 '이정표'가 되었다. 대국 카르타고와 사투를 벌인 포에니 전쟁 때도 로마는 한번도 한니발이 제의한 강화를 이를 악물고 거부했다.

 

로마인은 테베레 강 기슭의 작은 도시에 불과할 때부터 '안에 틀어박히기'보다 '밖으로 뻗어 나가는' 성향을 강하게 가지고 있었다.

 

도로는 1. 공도  2. 군도(軍道)  3. 지선  4. 사도(私道)

 

시스템이란 남보다 뛰어난 능력을 타고난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보통 사람의 능력에 맞추어 그 사람들의 필요까지 충족시켜주는 것이어야 한다. 로마제국은 카이사르가 청사진을 그리고, 아우구스투스가 그 청사진을 충실하게 구축하고, 제2대 황제인 티베리우스가 정착시켰다고 나는 생각한다.

 

현명한 사람은 역사에서 배우고, 어리석은 자는 경험에서 배운다. 는 격언이 있지만 나는 역사와 경험 양쪽에서 배우지 않으면 정말로 배우는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역사는 지식이지만, 그것을 피가 통하는 산 지식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경험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만약 아스리파가 '오른팔'구실을 해주지 않았다면 아우구스투스는 부루투스와 싸운 필리피 회전에서도 안토니우스와 싸운 악티움 해전에서도 이기지 못했을 것이다.

......

  전투가 끝났어도 아우구스투스는 아그리파를 버리지 않고 이 동지가 활약할 새 장을 마련해 주었는데 그것이 바로 인프라 건설이다. '내용을 충실히 다지는' 역할을 아그리파에게 맡긴 것이다. 이리하여 전쟁터를 활동무대로 삼았던 아그리파는 평화를 기치로 내건 시대에 접어든 뒤에도 여전히 아우구스투스의 '오른팔'이 되었다.

 

  뛰어난 장수는 뛰어난 조직자이기도 하다. 공공사업을 일임받은 아그리파는 240명으로 구성된 기술자 집단을 조직했다.조직원은 모두 노예였다.

 

'의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히포크라테스를 낳았으면서도 상하수도에 무관했던 그리스인, 의학도 의료도 그리스인에게 맡겨 놓았지만 상하수도를 정비하는데 열심이었고, 게다가 공중 목욕장까지 만들어 신체의 청결을 유지하는데 집착한 로마인. 이 두 민족의 차이는 참으로 흥미롭다.

 

  인프라는, 그것을 유지하려는 확고한 의지와 힘을 가진 국가가 기능을 발휘하지 않는 한, 아무리 좋은 것을 만들어도 사라질 수 밖에 없다.

 

  아스클레피오스 - 의료 담당 신

 

  갈레노스 : 해부학의 아버지. 소아시아 페르가몬 태생.

  당시 기초의학의 최고 연구기관(학부)였던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의 '무세이온'에서 수학한 뒤 검투사 조련소에서 의사로 일하다 황제에게 발탁, 황제의 시의가 되었다.

 

  아카데미아 : 고대 아테네, 플라톤, 인문과학의 메카

  무세이온 :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자연과학의 메카

 

 

2007. 5. 18 금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