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2. 남한산성, 김훈, 학고재, 2007
하는 말
......밖으로 싸우기 보다 안에서 싸우기가 더욱 모질어서 글 읽는 자들은 갇힌 성 안에서 싸우고 또 싸웠고, 말들이 창궐해서 주린 성에 넘쳤다.
눈보라
문장으로 발신(發身)한 대신들의 말은 기름진 뱀과 같았고, 흐린날의 산맥과 같았다. 말로써 말을 건드리면 말은 대가리부터 꼬리까지 빠르게 꿈틀거리며 새로운 대열을 갖추었고, 똬리 틈새로 대가리를 치켜들어 혀를 내밀었다. 혀들은 맹렬한 불꽃으로 편전의 밤을 밝혔다. 묘당에 쌓인 말들은 대가리와 꼬리를 서로 엇물면서 떼뱀으로 묘당(廟堂)에 뒤엉켰고, 보이지 않는 산맥으로 치솟아 시야를 가로막고 출렁거렸다.
영의정 김류, 이조판서 최명길, 예조판서 김상헌
반드시 죽을 무기를 쥔 군사들은 반드시 죽을 싸움에 나아가 적의 말발굽 아래에서 죽고, 신하는 임금의 몸을 막아서서 죽고, 임금은 종묘의 위패를 끌어안고 죽어도, 들에 살아남은 백성들이 농장기를 들고 일어서서 아비는 아들을 죽인 적을 베고, 아들은 누이를 간음한 적을 찢어서 마침내 사직을 회복하리라는 말은 크고 높았다.
여진의 족장 누르하치는 만주를 아우르고 국호를 후금이라 내걸고 칸(汗)의 자리에 올랐다. 누르하치가 죽고 여덟째 아들 홍타이지는 형제들을 죽이고 황제의 자리에 올라 국호를 청(淸)이라 내걸었다. 명령을 칙(勅)이라 하였으며, 가르침을 조(詔)라 하였고, 스스로 짐(朕)을 칭하였는데 그들 백성들은 종족의 말 그대로 칸이라 불렀다.
그날 어가행렬은 강화를 단념하고 남한산성으로 향했다. 행렬이 방향을 바꾸자 백성들이 수근거렸다. 어린 아이들도 강화가 아니라 남한산성으로 간다는 것을 알았다. 창잘간에 행선지가 바뀌자 기휘들이 흩어졌다. 말 편자를 갈아박는 기휘들이 깃발을 팽개치고 초저녁 어둠속으로 달아났다. 사내는 달아나는 자들을 쏘지 않았고, 달아나는 자들을 잡으러 쫒아갔던 군사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세자가 젖은 버선을 갈아신는 사이에 견마잡이가 달아났고, 뒤쪽으로 쳐져서 눈위에 오줌을 누던 궁녀들은 행렬로 돌아오지 않았다. 피난믄들이 의장과 사대에 뒤섞였고, 백성들이 끌고나온 마소가 어가에 부딪쳤다. 행렬을 따라가서 살려는 자들과 행렬에서 달아나서 살려는 자들이 길에서 뒤엉켜 넘어지고 밟혔다.
정명수는 평안도 은산(殷山) 관아의 세습 노비였다. 부모님과 누이는 매맞아 죽었고, 여진말과 몽고말을 익혔다. 조선유민들로 구성된 청나라 보병부대에서 용골대의 눈에 발탁되어 통역이 된다.
사물은 몸에 깃들고, 마음은 일에 깃든다. 마음은 몸의 터전이고 몸은 마음의 집이니, 일과 몸과 마음은 더불어 사귀며 다투지 않는다.
나는 아모쪽도 아니오. 나는 다만 다가오는 적을 잡는 초병이오.
냉이는 본래 그러하듯 저절로 돋아났는데, 백성들은 냉이가 다시 겨울을 견디어 냈다고 말했다.
최명길이 임금을 달랬다.
- 군신이 함께 삼전도로 가더라도 전하의 길이 있고, 저 두사람의 길이 따로 있는 것이 되옵니다. 그리고 전하, 먼 후일에 그 두 길이 합쳐질 것이옵니다.
2007. 7. 16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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