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인 이야기.15 , 시오노 나나미, 한길사, 2007
아르카디우스는 동로마제국의 제위 13년 동안, 호노리우스는 서로마제국의 제위에 무려 28년 동안이나 앉아있었다. 현세의 최고 권력자는 신이 원했기 때문에 그 지위를 차지할 수 있다는 기독교의 '왕권신수설'이 지배자에게 얼마나 유리했는지 알 수 있다.
'시(poem)' 라고 말하면 현대에는 글쓴이 자신의 감동이나 정서를 주관적으로 묘사한 운문조의 문학작품, 즉 서정시를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따라서, '시인(poeta)'은 운문 서정시를 쓰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시'는 원래 서정시와 서사시와 극시롤 이루어지는 문학형식이고, 서정시만 '시'는 아니다. 고대에는 극장에서 공연되는 비극과 희극도 전통적인 '시'의 한 분야로 여겨졌다.
공공심이나 전투의욕은 개개인의 차이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불확정 요소다. 하지만 이 불확정 요소까지도 충분히 활용하고 싶으면, 봉급이나 퇴직금을 보장하거나 시민사회에 복귀할 때 혜택을 주는 등 확정요소를 반드시 배려해야 한다. 인간은 대부분 안심할 수 있어야만 의욕이 생기는 법이다.
인간에게는 절대 양보할 수는 없는 선이 있다. 그것은 사람에 따라 다양하기 때문에 객관성이 없다. 따라서 법률로 다룰 수도 없고, 종교로 가르칠 수도 없다. 개개인이 자기한테 좋다고 생각하는 생활방식일 뿐, 만인 공통의 진리를 탐구하는 철학은 아니다. 이것은 라틴어로는 '스틸루스(stilus)', 이탈리아어로는 '스틸레' 영어로는 '스타일'이다. 다른 사람이 보면 중요하지 않아도 자기한테는 그 스타일이 다른 무엇보다도 중요한 이유는 거기에 손을 대면 자기가 아니게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율리우스 카이사르도 운명의 3월15일이 오기 한달 전부터 이미 자기를 죽이려는 음모가 꾸며지고 있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소집하여 3월15일에 열린 원로원 회의에 출석할 때,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대책은 전혀 취하지 않았다. 원로원 의원들은 단검도 차지 않고 회의에 출석하는 것이 로마의 오랜 전통이었다.
하지만 부루투스 일당인 원로원의원 14명은 그 날 하루만은 원로원의원임을 나타내는 붉은 테두리를 두른 하얀 토가 속에 단검을 감추고 있었다. 이 14명의 칼이 로마 원로원의 전통을 지켜 무방비 상태로 등원한 카이사르를 습격했다. 제 칼로 제 손을 베었을 만큼 흥분한 14명이 카이사르에게 준 상처는 23곳으로 되어 있었지만, 치명상은 그 중 하나 뿐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카이사르는 무인인 만큼, 그것이 치명상이라는 것을 당장 깨달았다. 쓰러지기 전에 그가 한 일은 단 하나, 토가자락에 몸을 휘감는 것이었다. 쓰러졌을 때 몸이 노츨되는 것을 꺼렸기 때문이다.
이 카이사르가 후계자로 지명한 사람이 로마제국의 초대 황제가 된 아우구스투스다. 이 사람의 치세는 카이사르의 10배이니까 원로원 회의에 출석한 횟수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았을 것이다.하지만 혼자서는 한번도 등원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비밀경찰'을 데리고 다닌것도 아니다. 회의장에 들어가는 의원들의 신체검사를 시킨것도 아니다. 아우구스투스도 로마원로원의 전통을 존중했다. 다만 그는 자기한테서 절대적인 충성을 바치고 몸집도 좋은 건장한 몇 명의 원로원의원들에게 둘러싸이지 않으면 절대로 등원하지 않았다.
카이사르는 수 많은 인재들 중에서 아우구스투스를 후계자로 선택했으니까, 아직 젊고 실적도 없는 이 젊은이한테서 남에게는 없는 자질을 발견했을 것이다. 아우구스투스는 카이사르의 후계자로 이보다 나은 사람은 없다는 것을 실증함으로써 이 발탁에 멋지게 보답한다. 로마제국은 이 두사람이 창설했다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하지만 자질이 대등한 이 두 사람도 '스타일'에는 차이가 있었다. 어쩌면 인간의 차이는 자질보다 스타일 즉, '자세'에 있는게 아닐까하는 생각마저 든다. 바로 그렇게 때문에 '자세'야 말로 그 사람의 매력이 되는게 아닐까. 알렉산드로스대왕의 매력이 짧지만 충일했던 그의 생활 방식에 있었던 것처럼.
서기 408년 8월 23일 스틸리코도 카이사르처럼 칼을 벗고 23세의 호노리우스 황제에게로 갔지만 기다리는 것은 올림피우스였다. 그리고 그는 무참히 살해되었다. 스틸리코는 그렇게 생애를 끝냈다. 시신의 행방도 알 수 없다. 그래서 무덤도 없다. 무려 28년에 이른 호노리우스 황제의 긴 치세에서 황제 스스로가 내린 결정은 오직 스틸리코의 처형 뿐이었다고.
성 아우구스티누스 - 북아프리카 태생, 「교회의 아버진」 '교부(敎父) 354년 출생, 저서 「고백록 」, 「신의 나라 」-410년
서로마 제국의 마지막 황제의 이름은 로물루스 아우구스투스였다.
로마는 기원전 753년 부터 헤아리면 1,229년 뒤에 로마는 멸망했다. 그것은 622년 전인 기원전 146년에 일어난 카르타고의 멸망에 비해 얼마나 어이없는 종말인가?
로마는 기원전 753년부터 서기 476년에 멸망했다.
「한니발 전쟁」이라고 제목을 붙인 제2권은 카르타고를 멸망시킨 로마의 총사령관 스키피오 아이밀리우스를 서술한 역사가 폴리비우스의 글로 끝난다. 그것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보고 싶다.
<스키피오 아이밀리우스는 눈 아래 펼쳐진 카르타고 시에서 오랫동안 눈을 떼지 않았다. 건국한지 700년, 그 오랜 세월 동안 번영을 누린 도시가 잿더미로 변해가는 것을 그는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700년이나 되는 긴 세월 동안, 카르타고는 넓은 땅과 수 많은 섬과 바라들 지배해 왔다. 그에 따라 카르타고는 지금까지 인류가 만들어낸 어떤 강대국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방대한 양의 무기와 군선과 코끼리와 부를 소유할 수 있게 되었다.
카르타고는 과거의 어떤 제국보다도 용기와 기개가 뛰어났다. 로마의 요구에 불복하여 모든 무기와 모든 군선을 공출했으면서도, 3년동안이나 로마군의 공격을 견뎌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그 도시가 함락되고, 완전히 파괴되어 지상에서 모습을 감추려하고 있었다.
스키피오 아이밀리아누스는 적국의 이런 운명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그는 비록 승자였지만, 인간만이 아니라 도시와 국가 그리고 제국도 언젠가는 멸망할 운명을 짊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트로이, 아시리아, 페르시아, 그리고 20년 전의 마케도니아 왕국에서, 번성하는 자는 반드시 쇠퇴한다는 것을 역사는 인간에게 보여주었다.
의식적인지 무의식적인지는 모르나 승리한 로마 장군은 호메로스의 서사시에 나오는 트로이군 총사령관 헥토르의 말을 입에 올렸다. "언젠가는 트로이도, 프리아모스왕과 그를 따르는 모든 전사들과 함께 멸망할 것이다."
뒤에 서 있던 폴리비오스가 왜 하필이면 지금 그 말을 하느냐고 물었다. 스키피오 아이밀리아누스는 플리비오스를 바라보며, 그리스인이지만 친구이기도 한 그의 손을 잡고 대답했다. " 폴리비오스, 우리는 지금 과거에 영화를 자랑했던 제국의 멸망이라는 위대한 순간을 목격하고 있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내 가슴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승리의 기쁨이 아니라, 언젠가는 우리 로마도 이와 똑같은 순간을 맞이할 거라는 비애감이라네......>
로마는 카르타고 보다 두 배나 긴 세월 동안, 카르타고와는 비교도 안될 만큼 광범위하게, 그리고 거기에 살았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에게 깊고 큰 영향을 주었지만, '위대한 순간'은 갖지 못했다.
불타기는 했다. 하지만 화염으로 불탄 것은 아니었다. 멸망하기는 했다. 하지만 아비규환과 함께 멸망하지는 않았다. 아무도 알아채지 못하는 사이에 쓰러져 갔다.
제국 이후
전제군주 국가의 군주는 결정은 내리되 책임은 지지 않는다.
신하는 결정권은 없지만 책임은 져야한다.
서기 613년 아라비아반도에서는 예언자 무하마드가 포교활동을 시작한다. 이슬람이 세력을 넓혀간다.
'시오노 나나미 선생이 15년에 걸쳐 쓰신 로마인 이야기를 나는 07. 1. 3 ~07. 9. 2까지 8개월 만에 읽었다(물론 도서관 사정으로)
한 번 더 봐야지. 아이들에게도 꼭 읽어보라해야지.
2007. 9. 2
'책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432. 1Q84 - 3권. 무라카미 하루키, 문학동네, 2010 (0) | 2011.07.07 |
---|---|
230. 傾聽 , 조신영,박현찬, 위즈덤하우스, 2007 (0) | 2011.05.13 |
228. 아부의 기술, 리처드 스텐걸, 참솔, 2006 (0) | 2011.05.06 |
227. 무지개 원리, 차동엽, 동이, 2007 (0) | 2011.05.05 |
226. 미래의 물결, 자크 아탈리, 위즈덤하우스,2007 (0) | 2011.03.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