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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7. 장자의 철학, 강신주, 태학사, 2004

햇살처럼-이명우 2014. 4. 11. 15:42

437. 장자의 철학, 강신주, 태학사, 2004

제자백가(諸子百家)가 활동했던 전국시대(戰國時代)는 다양성과 차이를 상징하는 시대였다. 단지 통일된 공동체라는 이념과 시선 속에서만 이 시대는 혼란의 시대로 보일 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시기 동안 인간의 삶과 사상이 가장 자유로웠을 뿐만 아니라 생동하고 있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이것을 한비자(韓非子 : BC약 280~233)가 이런 자유로운 사람들을 통일된 공동체의 '좀벌레'라고 비판하는데(한비자, 오두서)서 간접적으로 확인된다. 특히, 그들 당시 지식인들은 '공동체'와 '공동체'사이에서 살았던 사람들이다. 가라타니 코오진(栖谷行人)의 말 (「탐구」)을 빌리자면, 이 시기 동안 모든 사람들에게는 '공동체'가 아닌 '사회'에 살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사회(society)'란 단일한 규칙을 공유하는 '공동체(community)'를 의미하기 보다는 타자와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세계'를 의미한다. '사회'에 살 수 밖에 없었던 이런 사정은 장자에게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더욱이 다른 제자 백가들과는 달리 그는 하나의 통일된 국가, 모든 것에 질서를 부여할 수 있는 자명한 중심, 동일성을 꿈꾸지 않았던사람이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오히려 그는 이런 경향들에 대해 비판적이었으며, 나아가 진정한 삶의 단위를 개체들과 그들로 부터 기원하는 소통에 두었던 사람이다. 장자가 2,000여년전 송(宋)이라는 작은 나라 속에서 '사회'를 살았던 것처럼, 우리도 지금 한국이라는 작은 나라 속에서 '사회'를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사회' 속에 살아야만 하는 우리가 장자에게 지혜를 얻으려는 이유도 바로 그가 우리 보다 앞서 이런 '사회'속에서 살려고 시도했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주체의 자기 변형(self-transformation)'

 

노자와 장자가 최초로 함께 묶인 시기가 언제인지를 우리는 잊어서는 안된다. 최초로 그들을 도가에 귀속시킨 「사기 」와 「회남자 」는 모두 황로사상과 유가사상, 지방 분권적 세력(혹은 공신 기득권 세력)과 중앙집권적 세력이 생사를 걸고 싸우던 시대에 쓰여졌던 저술들이다. 결국 이런 시대적 압력으로 인해 사마천은 노자를 중심으로 하는 사상적 경향과 공자를 중심으로 하는 사상적 경향으로 이분화해서 선진 사상사를 이해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처럼 「한비자 」에는 <해노>편과 <유노>편이 노자를 인용했기에 한비자는 노자와 같은 사상에 속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장자」의 <외,잡편>도 노자를 인용하고 있기에 장자도 노자와 같은 사상에 속하는 것으로 분류된 것이다. '유가에 속하는가 아니면 도가[=황로사상]에 속하는가'라는 거친 이분법적 도식은 「한서 」에 가서야 부분적으로 수정이 가해진다. 이것도 후한(後漢)의 정치적 상황의 반영이다. 여기서 부분적이라는 말은 단지 노자, 장자, 한비자, 신불해(申不害 : BCdir385~337))로 함께 묶이던 것이 이제는 노자와 장자는 도가로 한비자와 신불해는 법가(法家)로 재편되었지만, 여전히 노자와 장자는 황로사상화 관련된 사상가로 이해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장주의 집은 가난해서, 그는 감하후에게 곡식을 빌리려고 갔다. 그 제후가 말했다.

  "좋다. 나는 곧 내 땅에서 나오는 세금을 얻게 되는데, 너에게 삼백금을 빌려 주겠다. 그래도 되겠는가?"  

  그러자 장주는 화를 내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제가 어제 이곳으로 올 때, 길 중간에서 소리치는 무엇인가가 있었습니다. 제가 마차바퀴 자국을 돌아다보니, 거기에는 잉어가 있었습니다. 저는 그 잉어에게 '잉어 아닌가! 너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잉어는 '저는 동해의 왕국에서 파도를 담당하는 신하인데, 당신을 한 국자의 물로 나를 살릴 수 없겠습니까?'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말했습니다. '좋다. 나는 지금 남쪽으로 오나라와 월나라의 왕에게 유세하러 가는 중이니, 서강(西江)의 물길을 네가 있는 곳으로 향하도록 하겠다. 그래도 되겠는가?' 그러자 그 잉어는 화를 내면서 말했습니다. '저는 없으면 살 수 없는 그런 것을 잃었습니다. 제게는 지금 살 수 있는 곳이 없습니다. 제가 필요로 하는 것은 나를 살릴 수 있는 한 국자의 물입니다. 만일 그것이 당신이 말할 수 있는 전부라면, 당신은 건어물 진열대에서 저를 찾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통용되는 「장자 」의 판본은 곽상(郭象 : AD220~420)이 편집한 것. 곽상이 편집한 「장자」는  총 33편으로 <내편>7편, <외편>15편, <잡편>11편. 그러나 서기 1세기경 반고가 지은 「한서 」<예문지>편을 보면 장자는 전체 52편으로 되어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 사마천은 「사기 」<노자한비열전>에서 장자는 10만여언을 썼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오늘 날 통용되고 있는 곽상 판본에 따르면 「장자 」는 6만4,606자로 되어있다. 그렇다면 곽상이 편집한 것은 사마천과 반고가 본 「장자 」중 약 1/3정도가 유실된 판본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소통'을 강조하는 '술장파'

<전자방>편의 화공 이야기, <지북유>편의 버클만드는 사람, <산목>편의 빈배 이야기

 

포정 이야기

 

"사람은 누구나 흐르는 물을 거울로 삼지 않고, 고요한 물을 거울로 삼는다. 단지 고요한 것만이 고요해지려는 모든 것을 고요하게 할 수 있다. -공자-

 

<제물론>편 '길은 우리가 걸어가야 생긴다(道行之而成)

<인간세>편 '날개가 없는데도 난다(以無翼飛)

 

2011. 11.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