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8. 장자와 노자(도에 딴지걸기), 강신주, 김영사, 2006
길을 찾으려고 하지마라.
길은 우리가 걸어가야만 완성되는 것이다.
명경지수(明鏡止水) - 밝은 거울, 고요한 물
여기서 거울은 지금 자신이 비추는 상을 절대적인 상으로 여기는 마음을 비유한다. 거울은 양귀비 같은 아름다운 여자와 만나면 미녀의 상을 갖게 되고, 못생긴 여자와 만나면 추녀의 상을 갖게 된다. 그렇지만 거울은 추녀를 만났다고 해서 그녀를 외면하지 않는다. 이와 마찬가지로 완성된 사람도 미녀와 만나면 미녀와 어울리는 의식을 구성하고, 추녀와 만나면 미녀와 어울렸던 의식을 비우고 추녀와 어을리는 새로운 의식을 구성한다.
반면에 보통사람이나 사변적 지식인은 미녀와 만나서 생긴 의식을 보편적인 기준으로 삼아 추녀와 만날 때도 적용한다. 그래서 이들은 추녀를 아름답지 않다며 외면한다. 이것이 바로 그들의 고착된 자의식이 작동하는 방식이다.
결국 그들은 현재에 살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과거에 살고 있는 것이다. 이와 달리 완성된 사람에게는 자기가 만난 타자의 타자성에 근거해서 역동적이고 임시적으로 자신의 자의식을 구성할 수 있는 역량이 있다. 이 점에서 그의 자의식은 고착된 것이 아니라 임시적이며 유동적이다. 왜냐하면 미래에 다른 타자와 만난다면, 그는 그 타자에 따라 자신의 자의식을 다시 새롭게 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말해 완성된 사람(至人)은 삶이나 사유 모두에서 항상 현재를 살아간다.
부득이(不得已)는 '~할 수 없다'는 不得과 '멈추다'라는 뜻의 '이(已)'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멈추려고해도 멈출 수 없다는 의미이다. 예를들어 얼음판에서 미끄러질 때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해도 미끄러질 수 밖에 없는 사태가 '부득이'한 사태라고 할 수 있다.
아찔한 현기증은 바로 우리 자신의 자아 동일성이 무너질 때의 강렬한 느낌이다. 상인이면서 동시에 상인이 아닐때 오는 분열감, 이것이 바로 차이를 경험했기 때문에 느끼는 현기증이다. 인간의 사유는 동일성의 논리를 무기로 차이를 부정하려 하지만 결국 이러한 차이는 삶의 세계에서 유령처럼 돌아다니다 우리에게 달려든다.
'차이와 타자'
이 개념은 서양에서 흘러 들어온 것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차이의 인정과 배려'라는 논리는 세계 패권을 차지한 서양에서 나타났다는 사실처럼, 강자의 처지를 전제로 한다는 사실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지배층이 피지배증에 대해서, 남성이 여성에 대해서, 서양이 제3세계에 대해서, 기독교가 이슬람에 대해서 '차이의 인정과 배려'라는 담론을 이야기 할 수 있을 뿐, 그 반대의 경우는 결코 아니다. 왜냐하면 이미 약자인 여성, 제3세계, 이슬람, 피지배층은 어쩔 수 없이 '차이를 인정하고 타자를 배려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타자와 차이가 인정과 배려의 대상이 되는 순간, 사실 그 타자와 차이는 진정한 의미에서 타자와 차이라고 볼 수 없게 된다. 우리는 타자와 차이라는 개념이 인정과 배려의 대상과 같은 온정적인 개념이 아님을 잊지 말아야 한다. 진정한 의미의 타자와 차이는 기본적으로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 삶에서 우연히 만날 수 밖에 없는 그 무엇이다.
길을 가다가 압도적인 힘을 내세워 자신을 겁탈하려고 달려드는 남성과 마주친 여성에게, 이러저러한 구실을 달아 압도적인 무력으로 침략해오는 강대국과 직면한 약소국에게 '타자에 대한 배려와 차이의 인정'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몸을 쉽게 겁탈할 수 있도록 타자를 도와주어야 할까? 그저 손쉽게 침략할 수 있도록 국경을 열어주어야 할까?
타자와의 차이는 기본적으로 자신의 '동일성'을 무너뜨리는 어떤 힘이라고 이해해야 한다.
진정한 의미의 타자와의 차이는 자신의 동일성을 파괴하는 그 무엇을 통해서만 경험할 수 있다. 우리는 타자가 지닌 타자성은 내가 다른 주체로 생성될 수 있게 하는 강제적이고 폭력적인 힘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비록 포정(19년 동안 소를 잡음)의 경우처럼 오랜 시간을 공들여 자기 인격을 닦고 깨우친다고 하더라도, 어느 날 우연히 폭력적이고 이해불가능한 대상과 마주치면 그 동안의 노력이 모두 물거품이 될 수 있다. 따라서 항상 두려워하고, 긴장하면서 타자를 이해하고 대응하려는 노력을 멈춰서는 안될 것이다.
2011. 11. 12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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