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역사의 심판

햇살처럼-이명우 2020. 2. 18. 06:42

자연과학과는 달리, 역사는 실험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그러나 역사는 매우 강력해서 중장기적으로 대부분을 실현하여 결국 악당들을 땅 속에 묻어버린다.

시장에는 나쁜 거래를 하면 대가를 치른다는 말이 있다. 확률을 연구하는 수학자들은 이를 우아하게 '에르고딕성 ergodicity' 이라고 표현한다. 표본경로가 아주 길어지면 결국 서로 닮게 된다는 뜻이다. 매우 긴 표본경로의 속성은 짧은 표본경로의 몬테카를로 속성과 비슷할 것이다. 로또에 당첨된 경비원은 1,000년을 더 산다고 해도 로또에 다시 당첨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능력이 있는데도 인생에서 불운을 맞이한 사람들은 결국 다시 일어서게 될 것이다.

운 좋은 바보는 인생에서 운의 덕을 보더라도, 장기적으로는 점차 불운한 바보들과 비슷한 상태가 될 것이다. 모두가 자신의 장기속성으로 돌아간다.

 

조직에서도 마찬가지다. 정치성향이 강한 조직일수록 능력있는 사람은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 된다. 그가 아무런 행위를 하지 않아도 상대에게는 그의 존재 자체가 불편하다. 심지어는 타도의 대상으로 만들어 희생시킨다. 조직에서 내가 그 희생재물이 되었다해도,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신세한탄만 하고 있지 말라. 더구나 장렬히 전사하는 극단적인 선택은 피하라. 대신 수학이 증명하는 확률의 장기속성에 의지해 후일을 도모하라. 이런 역사의 사례는 고전에 너무 흔하다. 궁형의 치욕에도 장렬히 전사하지 않고 사마천은 '사기'를 썼다. 작은 세력으로 토요토미 히데요시를 능가할 수 없었지만 확률의 장기속성이 토요토미를 땅속에 묻어줄 것이라는 수학적 사실을 믿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마침내 센고쿠시대를 종식시키고 일본천하를 통일하고 영웅이 되었다. 사마천과 이에야스의 사례는 역사에서 허다하다. 나라의 이름과 주인공의 이름만 다를 뿐과 결국은 능력이 있는데도 인생에서 불운한 시기를 맞은 사람들은 결국 다시 일어선다는 이야기다.

기다림이란 확률의 장기속성을 믿는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울지않는 두견새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울 때까지 기다려라."

 

20200218 아침에(0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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