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의 즉문즉설 내용에 나오는 이야기다.
질문자의 사연은 이랬다. "얼마전 14살의 아들이 뇌종앙으로 투병 중 뇌압상승으로 뇌사판정을 받아 연명치료를 중지하고 하늘의 별로 보냈습니다. 지금와서 다시 생각하니 잔인한 부모라는 생각에 고통스럽고, 이런 선택이 과연 옳은 것어었는지 궁금합니다. 저 또한 아이가 투병중에 유방암4기 환자가 되어 자식도 잃고 건강도 잃었습니다. 우리가족은 어떻게 살아야 하나요? 곧 아들의 생일이 다가와 더 그립고 보고 싶어 집니다."
스님의 말씀 "부모가 죽으면 땅에 묻지만 자식이 죽으면 부모의 가슴에 묻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 아픔을 누가 대신할 수도 없고, 참 힘드실 것 같아요. 먼저 위로를 드립니다."
"이미 일어난 일이고, 이미 지나간 일입니다. 지금 운다고 아들이 다시 살아올 수도 없고, 하느님께 빈다고 아들이 다시 살아올 수도 없고, 돈을 많이 준다고 아들이 살아올 수도 없습니다. 이미 지나가버린 일입니다. 돌이킬 수 없는 이미 지나가버린 일인데, 이걸 갖고 계속 슬피 울면 첫째, 나한테 큰 고통입니다. 둘째, 남편,부모,다른 자식들을 비롯해 나를 보는 가족들에게도 큰 고통을 안겨줍니다.
부처님 말씀 중에 '제1의 화살은 맞을지언정, 제2의 화살은 맞지 마라' 이런 말씀이 있어요. 아들이 병사한 것이 제1의 화살이라면, 그로 인해서 질문자와 가족들이 또 제2의 화살을 맞고 있습니다. 제1의 화살은 어쩔 수 없이 맞았지만, 제2의 화살은 현명한 사람이라면 맞을 필요가 없습니다. 내가 슬퍼한다고 살아오거나, 괴로워한다고 살아오거나, 보고 싶다고 살아온다면, 그렇게 해도 좋아요. 그러나 어떻게 해도 이 일은 돌이킬 수가 없는 일이라면, 지금부터 나라도 잘 살아야 됩니다. 나라도 잘 살아야, 남편이나 부모, 다른 자식들이 슬퍼지는 2차 피해를 막을 수 있습니다.
물론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제 말이 맞는데, 지금 질문자는 슬픔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제 말이 귀에 안 들어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 번 생각해보세요. 지금 같은 슬픔이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고 3년이 지나도 계속 유지될까요? 그래도 시간이 흐르면 조금 나아질까요?"
"시간이 지나면 좀 나아지겠죠."
"그럼 아들이 살아와서 나아졌어요? 그대로인데 나아졌어요?
"그대로인데 나아졌어요."
"그대로인데 3년 후에는 나아진다면, 3년 슬퍼하다가 나아지는게 좋아요? 지금 나아지는게 좋아요?
"지금요."
"그래요. 바로 그것을 자각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현명한 사람이라면 굳이 3년을 슬퍼한 뒤에 나아지는 것보다 지금 바로 나아지는 것을 선택해야 합니다."
"아들이 뇌사한 상태에서 산소호흡기를 뗀 것이 엄마의 잘못된 선택이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생명존중'이란 생명을 원리대로 살도록 하는 거예요. 살아있는 생명을 죽이거나, 죽어가는 생명을 억지로 살리는 것은 생명의 원리에 어긋납니다. 뇌사를 했거나 이미 늙어서 죽었는데 산소호흡기를 사용해서 억지로 살리는 연명치료는 생명의 원리에 어긋납니다. 그러니 질문자는 잘하신 거예요. 연명치료는 육신을 붙들고 있는 것에 불과합니다. 아무리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죽었으면 땅에 묻어야지, 내가 아직 정이 남아있다고 해서 한 달이고 일 년이고 방안에 놔두면 안되잖아요. 그런데도 아까고 사랑하는 사람은 땅에 묻으면 안되고 방에 놓아두어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면 냄새나는 것 밖에 더 있겠어요. 아무리 사랑해도 이미 죽은 사람은 장례를 치러야 됩니다."
"그리고 질문자는 자신도 암이라고 했잖아요. 보통은 건강한 사람이라해도 자식이 먼저 죽으면 같이 죽고 싶죠?"
"네"
"그렇다면 질문자는 안그래도 같이 죽고 싶었는데 잘 됐잖아요. 죽고 싶다고 억지로 죽으려고 해봐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질문자는 죽으려고 노력을 안해도 가만히 있으면 죽게 돼요.
자살을 하지 말라고 하는 이유는 인생은 자살할만한 가치도 없기 때문입니다. 자살하려면 일이 많잖아요. 약 사 와야지, 먹어야지,괴로워 해야지, 또 천장에 목을 매달려면 밧줄 사 와야지 걸어야지 일이 많아요. 살아 있는 것은 살게 해주는 것이 쉽지, 죽으려면 힘이 들어요. 반대로 죽을 때가 되었는데 살리려는 것도 힘이 듭니다. 그 때는 죽는 것이 쉬워요.
자연스러움이라는 것은 살아있을 때는 살게 하는 것이고, 줄을 때는 죽에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암에 걸린 것도 걱정하지 마세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죽은 뒤에 생길까요? 살아있을 때 생길까요?
"살아있을 때요."
"두려움이 생긴다는 것은 질문자가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앞으로 1년을 살 지 10년을 살 지 모르지만, 암이 심하다면 자연수명에 비해서 좀 빨리 죽을 것 같아요? 오래 살 것 같아요?
"좀 빨리 죽을 것 같아요."
"다른 사람보다 짧게 살게 되겠죠. 그러면 그 짧은 인생을 이렇게 괴로워하면서 살다 죽는 것이 나아요? 아니면 웃다가 죽는 것이 나아요? 다른 사람들은 인생이 기니까 괜찮지만, 나는 인생이 짧으니까 더 웃으면서 살아야되지 않을까요?
지금부터 웃어요. 질문자는 남보다 빨리 죽을 사람이니까요. 다른 사람이 '너는 암에 걸렸다면서 왜 그렇게 웃냐?' 라고 묻거든 이렇게 대답하세요. '아무래도 내가 너부다 좀 짧게 살 거 같아서 그런다. 너는 성실 낼 시간도 있고, 울 시간도 있지만, 나는 지금 웃다가 죽어도 시간이 모자란다. 그러니 나는 웃을 수 밖에 없다.'
인생이 짧을수록 웃어야 돼요. 내일 죽는다면 오늘은 하루 종일 웃어야 돼요. 울고 성질 낼 시간이 없어요. 웃을 시간도 부족하니까요. 1년을 살더라도 늘 행복하게 살아야 돼요. 울 시간이 없어요.
종교적으로 생각하면 질문자가 1년 후에 죽는 것이 나쁜 일이 아니잖아요. 아들을 빨리 만날 수 있으니 좋은 일입니다. 그렇다고 일부러 죽을 일도 아니에요. 오래 살면 오래 산 대로 현재 있는 가족과 같이 보내서 좋고, 때가 돼서 하늘나라로 가면 아들을 만나게 되어서 좋다. 이렇게 생각하면 아무 문제도 아니에요.
다만 살아있는 동안에는 지금처럼 바보같이 울면서 살지 말고 웃으면서 사시라는 겁니다. 이렇게 관점을 한 번 바꿔보세요."
이성적으로는 이해가 되면서도 섣불리 이런 조언을 아무에게나 해줄 수 없다. 보통사람이 질문자에게 이런 뉘앙스의 조언을 했다면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잔인해?" "네 자식이 아니라서 그렇게 말하는거지?"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어?" 등등 되돌아 오는 말들은 대부분 이런 식일 것이다.
속세의 얽힘이 많은 중생들의 세상살이는 쉽지 않다. 이성이 지배하는 선명한 삶을 잘 살아내고 하늘의 부름을 받아 초연하게 떠나는 나의 뒷모습을 그려보는 것은 욕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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