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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3. 이순신의 반역, 유광남, 스타북스, 2014.

햇살처럼-이명우 2025. 4. 6. 16:05

683. 이순신의 반역, 유광남, 스타북스, 2014.

차례
1.이순신의 심중일기 2.사가야의 난중일기 3.일본정벌 4.어느 봄날의 저주 5.역사의 갈림길 6.신비한 미소녀 7.1591년 봄 8.왕과 신하 9.한산도의 봄 10.오랑캐 공주 11.분노의 새벽 12.의병장 곽재우 13.삼경의 바람 14.꿈 속의 여인 15.영웅을 그리며 16.불행한 사랑, 행복한 사랑 17.국청의 희망 18.역모(逆謨) 19.장계의 비밀 20.실종된 단서 21.추악한 음모 22.갈등 23.이순신의 장계 24.드러나는 진실 25.이순신의 꿈 26.왕세자 광해군 27.교토 정벌 28.안국동 풍운 29.불타는 교토 30. 왕의 봄날 31.이순신의 반역 32.마지막 승부 33.이순신이 꿈꾸는 나라 34.이순신과 김충선


  이순신의 心中日記

  이순신은 그를 베고자 했다. 그의 목을 뎅강 절단하여 조선의 임금을 능멸하고 나 이순신을 모욕한 대가를 치르게 하고 말리라, 다짐하며 손아귀에 힘을 실었다. 그런데 그가 고개를 쳐들었다. 울고 있었다. 자신의 조국을 당당히 배신하고 칼과 총을 귀신처럼 다루며 포화전장을 누비던 전사가 지금 눈물을 떨어뜨리고 있다. 통곡(痛哭)이라 불려지는 울음이었다.
  이순신이 알고있는 사야가 김충선(金忠善, 일본명 사야가 沙也可)은 비장하고 담대한 사무라이였다. 그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포기를 몰랐으며 군인의 명예를 알고 있는 무장이었다. 전장에서 그의 손 아래 희생당한 적병의 숫자가 수천명은 헤아릴 수 있을 정도로 피의 전선을 넘나들던 용사였다. 그러한 그가 울고 있었다. 그의 눈물은 기이한 전율이 되어 이순신의 가슴을 파고 들고, 심장을 할퀴었다.

  "  ••••••장군은 어찌 왕을 장군의 왕으로만 섬기려 하시옵니까? 왕은 신의 왕이요, 만백성의 왕이십니다. 왕은 누구에게나 왕이신 겁니다. 하지만, 지금의 왕은, 본인, 자신만의 왕이십니다. 장군을 위한, 백성을 위한 왕이 아니시란 말입니다."

  "지난 해 이몽학의 난을 기억하십니까? 반란은 개가 일으켰는데 죽기는 호랑이가 죽었습니다. 개를 때려잡는다는 핑계로 호랑이를 잡아 죽인 겁니다."
  "그래서 부모에게 왕을 져버리고 나라를 배신하라고 충동하는 것이냐? 내 일신의 안위가 두려워서? 난 무섭지 않다. 그 누구의 모함따위는 겁나지 않다. 내가 무서운 것은 바다에 가득 떠 있는 적들일 뿐이다. 그들을 물리치지 못함이 무서움이다!"
  김충선의 충혈된 눈빛은 여전히 사무쳐왔다.
  "아버님, 틀렸사옵니다. 진정 두려운 것은 백성이옵니다. 진정 무서워야 할 것은 조선의 인심이옵니다. 아버님은 지금 제가 두려울 것입니다. 왜냐하면 저도 조선의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조정에서는 일본의 무모한 도발은 없을 것으로 결론내렸었네." 유성룡이 말했다.
  "그건 무능한 왕의 선택이었지요. 인정하고 싶지 않은 도피는 소인배들이 항상 원하는 선택이니까요." 김충선이 대답했다.

  이 사내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조선인 보다 더 조선인 다운 김충선의 이순신 평가는 놀라울 정도로 거침이 없었다. 그랬다. 이순신은 만사에 신중했고 치밀했으며 그 누구보다도 깊은 충효지심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사색(思索)하면서도 행동했고, 행동하면서도 사색하는 문무를 겸비한 지장(智將)이었다. 그런 믿음이 있었기에 이순신을 나라에 중용하도록 천거하였고 단계를 무시한 파격적 임용을 강행했었다.
  "자네는 이순신을 신처럼 섬기고 있군."
  김충선은 부인하지 않았다. 그의 몸과 마음은 남해의 수호신으로 자리잡은 이순신에게 사로잡혀 있었다. 그것은 벌써 5년전이던 임진년부터 비롯되었다. 자신의 조국 일본을 배신하고 투항했을 때 그는 이순신을 만나고 감화하였다. 그 때 이순신은 김충선을 깊이 안아주었다. '너의 모든 것을 버렸으니 얼마나 아프냐?' 그 말에 김충선은 울었다. '내 둘째 아들 울과 동갑이니 날 아비라 불러라!' 그 말에 김충선은 울며 웃었다.

  유성룡은 대답하지 못했다. 조선의 임금 선조는 이순신을 제거하고자 한다. 또한 왕은 스스로의 손에 피를 묻히고자 원하지 않는다. 왕은 언제나 당쟁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권력을 유지해온 영악하고 치밀한 두뇌의 소유자였다. 따라서 직접 통제사를 견제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해답은 이미 나와 있는 것이다. 서인의 대표적 인물인 좌의정 육두성이 적임자다.

  전원의 이목이 누르하치의 딸 일패공주 아율미에게 쏘아졌다.
  "허울좋고 명분에 빠지지 않은 유일한 조선인이라는 것! 이순신을 통해 망해가는 조선을 일으켜 세우고, 새로운 하늘을 열려고 하는 진정한 조선인이라는 것! 그래서 저도 그의 대업을 위해 솔직한 신분을 밝히고, 동참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왔다. 나의 영혼(靈魂)과 육신(肉身)을 난도질 하려고 서슬 퍼렇게 몰려들었다. 가소롭기 그지 없으나 그저 울분을 삼키었다. 무능한 왕 선조화 부정부패의 신하들, 이들은 병마(病魔)이며 내 절망적 고통의 시작과 끝이다. 그들을 모조리 달 밝은 한산도 앞바다로 끌어내 목을 베고 싶다. 아마도 그들의 피는 붉지 않을 것이다. 오염(汚染)된 그 피를 거북도 외면하리라. 이순신의 심중일기. 1597년 정유년 3월 7일 정유.

  기축옥사라 불려지던 이 사건은 무려 1천명의 관련자들이 희생당하거나 옥고를 치룬 것으로 특히 동인들의 피해가 엄청났다. '천하의 일정한 주인이 따로 없다'는 하사비군론(何事非君論)을 주장하여 왕권체제를 뒤흔들었던 기인 정여립 역시 역적의 누명을 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또한 선조의 작품으로 당권이 강화된 동인을 누르고자 자행한 음모였다.

  김충선은 차마 원하던 말을 꺼내지 못했다.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그들은 특권을 누리고 있는 지배계층이었다. 약자의 서러움을 머리로만 이해하고 있으며, 절대 몸으로 느껴보지 못한 양반들이었따. 그들은 언제나 조선시대의 강자였다. 몰락해본 적이 없는 사대부는 새로운 나라를 꿈꾸지 않는다.

  변수가 발생했다. 이순신의 나라는 그냥 꿈이 되는가. 조선의 변화를 그들이 원하지 않는 것은 아니나 때가 아니라 한다. 시기는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만들어야 함을 그들은 모른다. 어째서 조선의 그들은 그리 무지(無智)하며 답답한가? 왕답지 않은 왕에게 어찌그리 무모한 충성을 하는가? 이순신의 강한 나라를 그들은 왜 외면하는가?
  - 사야가 김충선의 난중일기, 1597년 3월 16일 병오 -

  이항복은 씨익 미소를 지었다. 마치 눈치없는 며느리의 시집살이처럼 막무가내로 투정을 부렸다.
  "내 마흔하고도 한 해를 더 살았어도 내 마음을 모르고 있소이다. 임금을 가까이 모신 것은 동부승지가 된 이후이니 채 십년도 아니되었고, 사십년의 내 마음도 모르면서 어찌 십년의 상감을 안다고 할 수 있겠소이까? 그렇게 말씀하시는 영감께옵선 영감의 마음을 알고 계시오? 어심을 읽고 계시오?

2023. 11. 12. 일요일, 김동용 위원님 둘째 딸 결혼식에 가기 전에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