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1. 사자같이 젊은 놈들, 구본형, 김영사, 2002.
젊은이들 10명 중 3명은 '자유로운 전문가'의 길을 걷고 싶어한다. 그들은 조직에 묶여 죽어라 일만 하는 대신, 돈도 벌고 여가를 즐기며 소중한 사람과 넉넉한 시간을 가질 수 있기를 원한다. 또한 전문성을 통해 사회에 기여하길 바란다. 고용당하는 대신 스스로를 고용함으로써 자유로와지고 싶어한다.
그러나 그 길은 반드시 준비가 필요하다.
땀과 정성만 필요할 뿐 요령이 있을 수 없는 수련의 길 - 이것이 기술과 테크닉을 익힐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다른 길을 찾지마라. 없다.
그러나 땀을 흘린 모든 사람이 다 자유로운 전문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은 날개를 달고 하늘로 오르고, 어떤 이는 평생 일에 매여 노력하며 살 뿐이다. 어떤 이는 대가(大家)가 되고, 어떤 이는 그런 기능인에 그치고 만다.
내 친구 중 하나가 이런 비유를 들었다. 사진을 찍을 때, 피사체의 조도와 각도, 혹은 기계와 장비의 사용법 등을 익히는 것은 기술과 테크닉의 영역이다. 이 일을 아주 잘 하면 훌륭한 사진기사라고 불릴 수 있다.
그러나 무엇을 담을 것인가? 이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예술가다. 사진을 통해 자신을 세상에 표현하는 사람을 우리는 훌륭한 사진작가라 부른다.
우리는 자신만의 행동 유형을 가지고 모든 일을 해낸다. 그저 행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존재를 나타내는 바로 그것들을 알아내야 한다.
우리 내면에는 무궁무진한 재료와 힘이 있다. 마치 눈부신 빛과 같다. 이것을 찾아내 직업화할 수 있다면, 만약 지금 하는 일이 존재의 핵심을 이루는 가장 나다운 일이라면, 세상은 살만한 것이 되고, 기쁨에 가득찬 나날을 보내게 될 것이다.
나는 그렇게 살고 싶은 젊은이들을 위해 이 책을 썼다.
2022년 5월 구본형
차례
책을 펴내며
젊은 그들 : 프로필, 그리고 어떤 공감
점집에서
제1화 민경이의 편지
신(神)도 들킬때가 있다. 신이 감추어 둔 것을 찾아라.
자신의 내면에서 빛과 힘을 찾아내라.
신은 그 능력을 이미 우리들의 가슴 속에 숨겨두었다. 그것을 찾아라.
제2화 나의 이야기
시(詩)처럼 살고 싶다. 꿈을 현실 속에 침투시켜라.
꿈을 현실 속으로 침투할 수 있도록 하라. 현실만이 현실이 아니다.
견고한 현실의 틈을 깨고 그 사이에 아름다운 꿈 하나 자라게 하라.
제3화 승환이의 이야기
아침에 일어나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 그 사람은 행복하다네.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현실을 쫓지마라.
꿈이 이루어질 수 있는 곳, 자신을 위해 일할 수 있는 곳, 그 미래의 땅으로 가라.
제4화 지윤이의 이야기
가장 단단한 곳에 기둥을 박아라. 기둥이 쓰러지지 않으면 집도 쓰러지지 않는다.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활용하라. 강점 위에 모든 것을 건설하라.
그것이 튼튼한 삶을 만들어내는 방법이다.
제5화 정태의 이야기
여행, 가장 즐거운 학습, 인류로부터 배우는 법.
세계의 사람들이 일상 속에서 사물을 보는 다양한 시각을 이해하라.
사람사는 다양성을 배움으로써 자신의 벽을 넘어서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여행이다.
제6화 화정의 이야기
한 솥에 넣고 푹 삶아라. 내 맛과 네 맛이 서로 어울리도록
다른 사람들이 나를 돕게 하라. 그들이 나를 도울 수 있도록 그들을 도와라.
좋은 동료는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오랫동안 정성을 다하라.
제7화 은수의 이야기
닭을 해부하지 마라. 대신 닭 한마리를 만들어라.
자신을 팔아라. 재능과 기질과 취향과 지식을 팔아라. 자신을 팔 수 없으면 세속적인 성공을 이룰 수 없다. 그러나 절대 영혼은 팔지 말아라.
관매도 모임 이 후
10년 후, 아름다운 그들
책을 끝내고
시간은 가혹하다. 그것이 가혹한 것임을 알게 될 때는 이미 돌이킬 수 없게 된 다음이다. 그래서 더욱 가혹하다.
우리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고 싶어 한다. 그 일이 무엇인지 아직 알지 못할 때조차 그렇게 살고 싶어한다. 그러나 설사 알고있다 하더라도 우리는 지금 당장 해야 할 급하고 요긴한 것 - 먹고 사는 것 - 부터 하지않을 수 없다. 생활이란 그런 것이다. 훗날 다시 되돌아와 느긋하게 하고 싶은 그 일에 흠뻑빠져 남은 인생을 사람답게 보내게 될 것을 기약한다. 그러나 그렇게 된 사람은 아주 드물다.
민경이는 대학을 다니다가 얼마 전 영국으로 1년 동안 어학연수를 떠났다. 수능점수가 더 좋았다면 인문학부 대신 다른 실용적인 학부를 선택했을 것이다. 인문학이 좋아서 인문학부에 들어온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머리를 싸매고 다시 공부하여 들어가고 싶은 학부가 있는 것도 아니다. 고3을 벗어나 자유로운 공기를 쐴 수 있다면 그것으로 이미 구원받은 것이었다. 첫학기는 그렇게 지났다. 둘째학기도 그렇게 지났다. 그리고 민경이는 지금 영국에 있다. 민경이는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곤 한다.
"1년 쯤 영어를 배워 한국으로 돌아가면 기본적인 의사소통은 하게될 지 모른다. 영어를 잘 할 수 있다는 것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데 도움이 될까?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조차 알 수 없는데 어떻게 이런 것들이 미래의 나를 만들어 가는데 도움이 될까? 도대체 하고싶은 일을 하며 살기 위해서는 대학을 다니는 동안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걸까?"
나는 작년에 대학을 졸업했다. 졸업 후 초등학교 교사로 발령받아, 학교 선생님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였다. 아이들과 생활하는 것이 나쁘지는 않다. 그러나 어쩐지 그것이 내 인생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내가 교대에 들어갔던 이유는 교직이 확실하고 안정적인 직업이라는 점. 비교적 긴장이 적은 직무라는 점. 그리고 방학때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 일이 정말 내 인생의 핵심을 차지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이렇게 질문했다.
"내가 정말 이루고 싶은 꿈은 무엇일까? 지금 내가 바라고 있는 내 마음속의 바람들이 정말 나의 꿈일까? 알 수 없는 곳에서 날아와 내 꿈인양 하는 이 꿈의 편린들이 정말 내 마음 속에서 솟아난 나의 외침일까?"
승환이는 지방대 경영학과 4학년이다. 고등학교 다닐 때 누구나 그렇듯이 그도 방황했다. 다른 아이들의 방황이 잠시였다면 그의 방황은 오래 걸렸다는 것이 다를 뿐이었다. 그러나 긴 방황은 그에게 책임을 물었다. 그는 좋은 대학에 들어가지 못했다. 대학생활의 2년이 그냥 흘러갔다. 무기력한 시간이었다. 3학년이 되어 그는 아주 열심히 공부했다. 무서우리만큼.
그는 자기가 가야할 분야를 찾아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능력을 증명할 사회적 증거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훌륭한 학벌도 학점도 그 흔한 자격증도 없다. 그가 가지고 있는 것은 능력과 열정이라는 커다란 자산이지만 다른 사람들, 특히 대기업 채용자들에게 그것을 증명해 보일 수가 없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그들은 그에게 그런 기회조차 주지 않을 것이다. 그는 자신에게 이렇게 다짐하고 있다.
"그들이 나를 채용하지 않겠다면 나는 고용당하지 않을 것이다. 대신 나 스스로를 고용할 것이다. 앞으로 다가오는 미래 사회의 모습은 어떨까? 그 속에서 나는 어떤 기회를 발견할 수 있을까?"
지윤이는 직장을 다닌지 3년이 지났다. 대기업의 계열회사였지만 답답한 시간이었다. 지금 있는 부서에서 하는 일은 별 매력이 없다. 그녀의 개성을 요구하지도 않고 재능을 원하지도 않는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어쩌면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일인지도 모른다. 10년을 한다해도 더 전문화 될 수 있는 영역도 아니다. 신입사원 한 명이 들어왔지만, 몇 개월이면 지윤이가 할 수 있는 일을 다 배우게 될 것이다.
지윤이는 10년 선배가 지금 하고있는 일을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일과 비교해 보았다. 별로 다르지 않다. 비전도 기회도 없다. 열정도 몰입도 없다. 여자에 대한 성적차별만 있다. 사실 남자들이라고 별반 다른 상황은 아니지만, 그나마 여자들은 정서적 모멸까지 종종 느껴야 한다. 지윤이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
"이 일은 내 일이 아니다. 내가 하고싶은 그 일이 아니다. 적당한 때에 좋은 남자 만나 결혼하여 아이를 낳고 평범하게 살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내 인생의 전부라고 여기지 않는다. 내가 잘 하는 일을 하면서, 나를 세상에 표현하고 싶다."
정태는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에 진학하지 않았다. 공부하는 것이 싫었다. 바닷가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늘 바다너머 존재하는 세계를 동경했다. 다른 사람들, 다른 문화, 다른 생활, 다른 생각들이 지배하는 다른 세상들을 돌아보고 싶었다. 한때 그도 대학을 가지 않은 것이 두려웠다. 많은 기회로부터 소외될 것 같았다. 그러나 그는 대학을 나온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하루라도 빨리 자신의 길을 가기로 결심했다. 그가 보기에 대학을 나온 직장인들의 대부분이 '자신이 하고싶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지시받은 일을 수행할 뿐이며, 그 대가로 전혀 만족할 수 없는 보상을 받는 사람들'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도 사회적으로 인정된 안전한 길을 선택할 수 밖에 없는 대다수의 사람들을 이해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가고 싶은 길을 향해 갔다. 그리고 생각했다.
"내게는 사회가 인정한 아무것도 없다. 나는 대학조차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하고싶은 구체적인 일이 있다. 그 일을 아주 잘한다면 내게 성공의 기회가 올 것이다. 내게는 나를 위해 투자할 거의 무진장한 시간이 있다. 그러나 홀로 무엇을 시작해야 하는 것일까?"
화정이는 29살이다. 3년 전 결혼하여 지금은 한 아이의 엄마이고 주부다. 한참 아이에게 손이 많이 갈때라 같이 놀아주느라고 정신이 없다. 아이는 하나만 낳을 것이다. 몇 년이 지나 아이가 유아원에 가기 시작하면 시간이 많다. 그 시간을 주체하지 못하면 속절없이 30대를 보내게 될 것이고 자신을 위해 아무일도 할 수 없을지 모른다. 결혼 전 젊은 시절 자신에 대해, 또 삶에 대해 많은 가능성이 있었음에도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늘 마음이 편치 않았다. 앞으로 몇 년 후에도 자신을 바칠 곳을 찾지못해 방황하기는 싫었다.
그녀는 그 때를 위해 조금씩 준비해보고 싶었다. 남편은 그녀의 고민을 알고 있고 도와주려고 한다. 그녀는 자신의 장점을 잘 알고 있다. 그녀는 친화력이 높고 수평적 사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갓 대학에 입학한 민경이 같은 써클 후배들조차 화정이에게 아무런 거리감을 느끼지 않았다. 특히 아이를 낳고 키우는 동안 사람사이의 관계, 사물의 융화에 자연스러운 깨우침이 많았다.
"나는 평범한 주부다. 그러나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안다. 나는 내조적 역할과 생활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는 사람이다. 아이와 남편에 대한 사랑말고도 나 자신에 대한 강력한 충성심이 있다. 나는 나 자신에게도 책임이 있다. 아주 먼 훗날 아이에게도 '자신의 인생을 가진 엄마'가 되고 싶다. 이렇게 마냥 앉아있을 수만은 없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욕망은 때를 만나지 못하면 사그라지는 것이므로."
은수는 본과 1학년 의대생이다. 이제부터 막 고되기 시작했다. 예상했던 일이다. 그녀는 정해진 전문가의 길을 걸으면 된다. 진로에 대한 고민은 없다. 늘 잠이 모자랄만큼 힘들지만 주어진 과정을 충실히 따라가면 전문가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경제적으로 윤택해지고 사회적으로 대우를 받을 것이다. 노력하고 땀흘려 대한민국 1% 안에 들어 잘 살것이다.
고되고 바쁘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그녀의 미래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보인다. 문제는 바로 고되고 바쁘다는 것이다. 그녀가 알고 있는 선배들도 모두 바빴다. 그녀는 자신의 인생을 포트폴리오 삶으로 만들고 싶었다. 일하는 시간, 여유, 가족들과 함께하는 시간, 그리고 홀로 공부하고 연구하는 시간 사이의 균형을 만들어 내고 싶었다. 돈을 버느라 시간을 다 써버렸기 때문에 돈을 잘 쓸수 있는 가장 나쁜 방법인 '사치'외에는 다른 방법을 알지 못하는 부유층을 많이 봐왔다. 일 자체의 보람과 의미를 찾아내지 못하면서, 고된 일을 평생 해야한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그래서 생각해 보았다.
"나는 전문가의 길을 걸을 것이다. 전문성을 통해 경제적으로 그리고 시간적으로 자유로움을 얻고싶다. 나는 일과 보람 사이의 균형을 이루고 싶다. 또 일과 여가와 가정, 그리고 나와 공동체 사이의 조화를 만들어내고 싶다. 어떤 자세와 기준이 필요할까? 전문가의 직업 윤리는 무엇일까?"
오늘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무작정 미래에서 성공의 꿈을 빌려오지 마라. 거짓 희망은 우리를 속인다. 판도라 상자 속에 담겨있던 모든 불행들과 섞여있던 것이 바로 '희망'이었음을 기억하는가!
단지 시간이 지나면 좋아질 것이라고 믿지 마라. 그것은 미래로부터 너무나 많은 것을 차용해오는 것이다. 그런 사람은 미래가 와도 그 미래 역시 텅 비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미래는 이미 와 있고, 지금 만들어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오늘에 걸려 넘어진 사람은 반드시 오늘을 딛고 일어서야 한다.
내가 그것을 원한다는 것은 내 안에 있는 나의 어떤 부분이 그것을 절실히 원하기 때문이지요. 내 속에 들어있는 내게 속한 '무엇'을 알아내는 것. 그리고 그것을 세상에 표현하는 것이 바로 인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답니다.
'백년의 키스'
처칠이 결혼한 것은 1899년 12월 31일이었어요. 20세기가 막 시작되려는 순간이기도 했고요. 결혼한 신랑, 신부는 사랑의 키스를 했는데 이 키스는 19세기 말_1899.12.31.부터 시작해서 20세기 초_1900.1.1.까지 계속되었으니 백년의 키스가 된 셈이지요. 처칠은 바로 그 해 1900년 보수당 하원 의원이 되는 행운을 가졌단 말입니다. 정치가로 입문한 셈이지요.
너무 감미로워서 액면 그대로 믿을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처칠은 부인인 클레멘타인을 깊이 사랑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클레멘타인은 어느 비오는 화요일, 아름다운 호수에서 청혼을 받고 곧 처칠과 결혼식을 올렸죠.
"나는 달걀은 낳아보지 않았습니다만 좋은 달걀인지 좋지않은 달걀인지는 알지요. 그리고 한번도 빵을 구워보지 않았지만 맛있는 빵인지도 압니다. 나 같는 엉터리 화가가 보더라도 대번에 뽑힐 수 있는 그림을 그리세요." - 윈스턴 처칠
"꿈은 가상으로 끝나는 허무한 희망이 아니다. 꿈은 현실 세계로 침투하고 마는 강력한 힘이다. 결국 꿈이 현실을 만들어 낸다."
"미래란 과거와 현재와 이어지는 다음 시간이 아니라, 이미 와서 우리 곁에 있지만 감지되지 않거나 오해받고 있는 시간이다."
즉, 미래란 어느 시대건 '적절한 때가 아닌 것'으로 존재하는 시간이라는 거야. 자기는 '너무 일찍 와서' 이해받지 못하는 사람이었다고 말했어. 그래서 그는 '시대의 아들' 되지 못하고, 시대에 적응한 모든 사람들에 의해 '광인'으로 이해될 수 밖에 없었다고 말이야.
나는 낮에 꾸는 꿈은 위험한 것이라고 생각해. 낮에 꿈을 꾸는 사람들은 반드시 그것을 이루고 마니까. 그들은 꿈과 현실을 서로 침투하여 하나의 삶을 만들어내고 말거든. 그것이 바로 성공의 역사였어.
"여러분은 경기가 나아지면 취업이 쉬워지리라고 믿을 겁니다. 어느 정도는 그럴겁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좋은 일자리는 경기와 독립적으로 만들어진다는 점을 이해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일자리를 얻는 것이 매우 어렵고, 그나마 얻은 일자리가 매우 불안정할 뿐 아니라, 일의 성격도 단조롭고 수입도 신통치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많은 일들이 밀려들게 될 것입니다. 직장의 안정성과 소득은 양극화 될 것입니다. 앞으로 사회적 빈부의 차이는 더욱 커지게 될 것입니다. "
"우리는 어제의 구조 속에서 오늘의 방법으로 미래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더우기 이에 책임있는 사람들은 그저께의 문화속에서 어제의 구조를 만들었으며, 이 사회에서 내일과 모레를 더 이상 보내지 않을 사람들이다."
나는 목이 죄어드는 것 같았습니다. 왜 더이상 미래에 속하지 않는 과거의 사람들이 우리의 미래를 재단하도록 맡겨야 하는지 알 수 없었어요.
"우리는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 그 이유를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 동안 우리는 1956년 당시 <<포천>>지 편집인이었던 윌리엄 화이트(William H. Whyte.Jr)가 묘사한 '조직인간(The Organization Man)'의 속성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우리의 부모와 선배들은 거대 조직에 봉사하느라고 자신의 정체성과 개인적 목표를 가슴 깊숙한 곳에 덮어버렸습니다. 그런 자기부정의 댓가로 정기급여를 받았고, 안정된 일자를 보장받았고, 세상 속에 고정된 자기자리를 확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조직은 이 세상의 기댈곳이었고 세속의 윤리였습니다. 소속감이 독립적 개성보다 중요하고, 개인적 의사보다 집단과의 조화가 우선시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조직에 충성을 서약하고 조직 또한 그들에게 충실한 울타리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생계유지 보다 중요한 것으로 명예로운 일로 비쳤지요. 나의 직함을 나타내는 명함은 내가 이 조직의 일원이라는 것을 사회에 알리는 자랑스러운 표상이었습니다. 조직의 순교자들에게 영웅이란 칭호가 붙게 되었고, 그들은 신화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1990년 이후 노동의 세계와 윤리는 바뀌어가고 있습니다. 상시 구조조정과 시도때도 없는 감원은 직원을 가족의 일원으로 여기던 가부장적 지배구조를 뿌리채 흔들었죠. 우리의 경우 IMF 구제금융을 얻게 된 1997년 이후 이런 현상이 가속화 됩니다. 기업이 '평생직장'을 보장하지 못하게 되자 개인의 수직적 충성도 사라졌습니다.
어떤 경영자들은 이것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충성심이 사라졌다고 개탄합니다. 그리하여 흩어진 충성심을 다시 모으려고 합니다. 이런 노력은 깨진 항아리의 물을 다시 모으려는 노력과 같습니다. 우리는 다른 세계, 다른 원칙이 준용되는 세계에 와 있습니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식한다는 것은 새로운 기회를 모색하고 선점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바탕이 됩니다.
이제 조직인간을 대체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바로 1인 기업가 혹은 프리에이전트라고 불리는 자유 직업인들입니다. 또 하나는 조직의 브랜드를 등에 업고 자신의 브랜드를 만들어가는 개인화된 정규직 직원들입니다. 이들은 기업의 정규직원으로 근무하지만 이미 1인 기업가의 속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예를들어 프로젝트에서 프로젝트로 옮겨다니는 직원, 2년에 한 번씩 직장을 바꾸는 사람들, 혹은 자신이 고용되었다기 보다는 파트너로서 경영활동에 참여하고 있다고 여기는 사람들은 모두 본질적으로 자유로운 사람들입니다.
마케팅 전문가인 잭 트라우스와 알리스는 정규직 근로자의 세속적인 성공의 법칙을 경마의 비유를 들어 설명합니다. 승리는 말과 기수의 기량에 달려있다는 것이죠. 성장력이 강한 브랜드 명성이 뛰어난 기업은 '좋은 말'과 같습니다. 또 당신에게 관심이 있는 유능한 상사 역시 '좋은 말'과 같습니다. 또 당신을 헌신적으로 도와주는 동료 역시 '좋은 말'에 해당합니다. 이기려면 우선 좋은 말을 가려 골라 탈 줄 알아야 합니다. '좋은 말'이란 그러므로 전략적 개념입니다. 그러니까 브랜드가 신통치 않은 회사에서 냉정하고 무능한 상사와 함께, 적대적인 동료에 휩싸여 일하게 된다면, 당신이 아무리 유능해도 성공하기 어렵다는 뜻입니다. 마치 절름발이 말에 올라탄 기수같다고 말할 수 있어요. 이기기 어렵지요.
반면, 말만 좋다고 다 이기는 것은 아닙니다. 영리하고, 가볍고, 대범한 기수가 없이는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잘 달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좋은 기수가 된다는 것은 자신의 잠재력을 개발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기 개발은 자기 내부에 있는 힘과 빛을 끌어올려 꿈의 형태로 구체화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꿈을 향해 매일 실천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위해 일한다는 것은 '꿈을 향해 매일 걷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대기업의 인력구조는 앞으로 대략 세 가지 부분으로 이루어질 것으로 전망됩니다.
하나는 핵심인력입니다. 핵심역량(core competancy)을 보유한 전문가 집단이 바로 그들입니다. 이들은 정규직으로 가변적인 보상을 받으며 부유한 직장인으로 남아있을 겁니다. 경영자들은 인력을 반으로 줄이고, 남은 사람들이 2배 이상 생산적으로 일하면, 기업의 수익은 3배가 되는 모델을 선호하기 때무입니다.
그리고 또 한 부분은 협력업체일 것입니다. 말하자면 어떤 기업의 핵심부분이 아닌 경영활동을, 계약에 의해 다른 비즈니스 파트너들에게 아웃소싱하는 체계이지요. 예를들어 나이키는 개념을 팝니다. 세계 최대의 신발 제조업체지만 실제로 신발을 만드는 공장도, 기계도, 부동산도 가지고 있질 않습니다. 모두 협력업체에서 조달하지요. 마찬가지로 컴팩도 자체에서 컴퓨터을 만들지 않습니다. 산타나에 있는 잉글램이라는 무명의 기업에서 만들고 있습니다. 잉글램은 컴팩 뿐 아니라 IBM이나 다른 컴퓨터 회사에도 납품을 하지요.
그리고 나머지 한 부분인 세번째는 바로 비상근 인력들입니다. 이들은 단순한 업무를 처리하는 임시직일 수도 있고 전문적인 조언을 해주는 전문가일 수도 있습니다.
이런 추세 속에서 기업은 당연히 전문성을 갖춘 핵심 인력만 뽑아서 유지하려는 인사정책을 쓰게 됩니다. 그러므로 정규직 사원이라는 일자리는 점점 줄어들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제 기업과 개인의 관계는 직장의 안정을 얻은 대가로 충성심을 제공하는 거래가 아닙니다. 수직적 충성심 대신 동료, 팀, 고객, 공동체 등에 대한 수평적 충성심이 중요한 사회로 이행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톰 피터스는 '회사 로고에 대한 충성심은 없어졌으나, 개인이 모은 명함철에 대한 충성심은 고도의 수준인 사회'로 가고 있다고 말합니다.
실리콘 밸리에 있는 사람들은 한 직장에 2년 이상 있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다. 6개월이 보통이지요. 그러나 그들은 의뢰인에 대해서는 '늘 한결같다'는 말을 듣고 싶어합니다. 왜냐하면 한 프로젝트가 곧 다음 프로젝트를 낳기 때문입니다. 단기 계약에 따른 프로젝트이기 때문에 서로의 관계가 깊지 못하리라 생각하지만, 프로젝트와 서비스 자체가 곧 자신의 이름이기 때문에 최선을 다하게 됩니다.
잊지말아야 할 것은 어떤 사회적 현상도 분홍빛 낙관일 수만은 없다는 점입니다. 환상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 '프리에이전트는 기회와 교환하는 조건으로 상품화된 재능을 제공한다'는 고용계약의 정수를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여기서 '기회'란 새로운 기술을 습득할 기회이기도 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 인간관계를 확장하는 것이기도 하고, 재미를 만끽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고, 물론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재능이란 사람을 파는 것이 아니라 능력을 빌려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고 계발하여 스스로를 자본화 하지 못한다면 어떤 프리에이전트도 지금 임시직들이 겪고 있는 불안정, 무관심, 저임금, 무혜택의 어둠을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자기를 위해 일할 수 있다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인류 역사상 자신을 위해 일할 수 있는 시기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노예는 하루 종일 일했지만 평생 거친 음식과 험한 잠자리에서 잠을 잘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조직인간이라는 '복종의 시대'로부터 개인적 성취의 절정에 이르는 '성공의 시대'로 진입했습니다. 이것이 핵심입니다. 이것이 결론입니다.
150년 전 <<뉴욕 트리뷴>>지의 편집장 호레이스 그릴리(Horace Greeley)는 이렇게 말했더군요. "가장 좋은 일은 아버지의 농장이나 직장에서 찾을 수 있다. 아버지의 농장도 없고, 도와줄 사람도 없다면, 그리고 전망도 좋지 않다면 시선을 서부로 돌려라. 그곳에서 집과 부를 찾아라."
이 말은 내게 이렇게 들리더군요.
"졸업하고 좋은 직장에 들어갈 수 있으면 들어가라. 들어가서 그 속에서 성장하라. 그러나 그대를 아무도 고용해주지 않으면 그대 스스로를 고용하라. 혼자하든 친구들과 함께 하든 스스로의 기업을 하나 만들어라. 그 속에서 부와 명예를 일궈내라. 힘들면 이렇게 말하라. 나는 나를 위해 일한다. 스스로를 위해 일할 수 있다는 사실보다 좋은 것은 없다.
날개에 아름다운 만월을 지고, 천리를 날고 만리를 가는 커다란 새처럼 나도 내 꿈을 이룰 수 있는 곳으로 가기 위해 때가 되면 지체없이, 미련없이, 단호하게 하늘로 뛰어들 거예요. 뻘 속에 남은 몇마리 벌레 때문에 차가운 겨울이 닥쳐오기를 기다리지 않을 겁니다. 나는 봄을 찾아 떠날 거예요.
한 개인이 대기업의 보호를 거부하고 자유로운 개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외롭고 두려운 일이고요. 그러나 보호받지 못하기 때문에 더 빨리 성장할 수 있다고 봐요. 나는 조직의 구성원이 아니라 나를 대표하는 독립된 인격으로 살아갈 거예요. 나는 내가 아닌 생활을 거부함으로써 이 일을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외로움입니다. 소속감의 상실이고요. 그러나 내가 아닌 것을 버림으로써, 나는 나를 재료로 좀 더 유익하고 아름다운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믿어요.
나를 위해,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재능과 시간을 투자한다는 것, 그 작업이 얼마나 가슴 뛰는 일인지 모르겠어요.
인디언들의 다양한 들소 사냥법
몰아서 잡는 방법 중 특이한 방법, 들소의 특성을 이용하지. 우리는 눈이 둘 다 앞쪽을 보고 있기 때문에 달려가면서 앞이 잘 보이게 되어있어. 그러나 들소는 소처럼 눈이 옆에 달려있어. 그래서 앞으로 달려갈 때도 앞을 보고 간다기보다는 옆을 보고 달리는 셈이 되지. 그리고 또 하나의 특성은 흥분하면 머리를 숙이고 달린다는 거야. 그러니까 들소들은 떼로 움직이는 것이 편하지. 달릴 때 머리를 숙이고 앞에 가는 놈 궁둥이를 보며 따라 달려가면 되는거야.
인디언들은 이런 특성을 절대 놓치지 않아. 그래서 그들은 들소 사냥을 할 때 들소들을 절벽으로 몰아붙이지. 절벽 끝에 도착하면 제일 앞에 섰던 들소가 뒤에 오는 놈들에게 절벽이라고 신호를 보내며 정지하라고 울부짖게 되지. 그러나 이미 때는 늦어. 앞에서 달려가던 들소들은 정지할 틈도 없이 뒤에서 달려오는 들소 떼에 밀려서 절벽 밑으로 떨어지게 되지. 바로 그 뒤에 따라오던 놈은 절벽을 보지 못해 제 발로 떨어지게 되고 말아. 앞줄은 밀려서 떨어지고, 그 뒷줄은 제발로 떨어지는 국면이 되는거야. 뒤에서 쫓아오던 들소 떼가 완전히 멈추어야 겨우 국면은 진정된단 말이야. 인디언들은 절벽 밑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아래로 떨어져 죽은 소들을 주워가지고 돌아와. 사냥은 이렇게 끝나게 되지.
우리는 무리 속에 있을 때 위안을 받아. 특히 내가 무엇을 해야하는지 잘 모를 때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을 따라하게 돼. 그러면 내가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알게되지. 그렇게 해서 개인은 집단이 될 수 있는거야. 집단이 되면 더 이상 개인적 일탈은 허용되지 않아. 우리는 들소 떼가 되는거지.
그 들소 떼가 몰려가는 곳이 젖과 꿀이 흐르는 낙원이라면 나도 섞여가면 되는거야. 즐거운 여행이니까. 그러나 만약 대세와 주류가 몰려가는 곳이 바로 절벽끝이라면 어떻게 해야할까? 불확실한 때에, 아무도 우리가 달려가는 곳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을 때, 어떻게 나는 내가 속한 무리가 달려가는 그 곳에 성공과 번영이 있을 것이라고 믿을 수 있을까? 그저 다수 속에 섞여 있다는 데 안심해야 하는 것일까?
내가 무리와 구별되지 않을 때, 나와 너희가 다르지 않을 때 나는 소속감을 느끼고 안심하게 되지만, 어떤 때 '나는 어디 있나?' 하는 막연한 생각이 들어. 내가 다른 사람과 섞여 아무런 차이도 만들어내지 못할 때, 나는 무리속의 하나에 불과해. 나는 없고 무리만 남는거지.
그런데 문제는 내가 어떤 빛깔, 즉 어떤 기질과 재능을 가지고 태어났는지 알 수가 없다는거야. 나를 나답게 만들어주는 기질과 재능은 무엇일까? 어떻게 그것을 찾아낼 수 있을까? 그리고 어떻게 그것을 계발해갈 수 있을까? 나는 이것이야말로 내 숙제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
나의 목적은 나의 기질과 재능을 가지고 나만이 할 수 있는 틈새 영역을 만들어내는 거야. 나의 강점을 세상 속에 알림으로써 유일한 전문영역을 개척해 내고 싶어. 유일하면 곧 최고가 되는 것이지. 나의 브랜드를 만들어 내는 일이 중요해. '어떤 영역' 하면 사람들의 머리 속에 바로 내 이름이 떠오른다면 나는 나 자신의 브랜드를 가지게 되는 셈이지.
나의 질문은 이것이야. '너는 무엇으로 유명해지고 싶니?'
여러가지 가능성 중에서 자신을 하나의 구체적 영역으로 규정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야. 자신을 너무 좁에 규정하면 시장이 좁아 위험해. 그렇다고 너무 넓게 규정하면 전문성이 떨어지는 약점이 생겨나지. 그래서 넓고 깊게 스스로를 규정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단 말이야.
'변화경영 전문가'
그는 자신의 영역을 아주 넓게 그러나 깊게 규정한 좋은 예라고 생각해. 변화라는 것은 아주 넓은 개념이야. 인류의 역사가 곧 변화의 역사라고 할 만큼 아주 광범위한 영역을 가지고 있지.
그런데 변화를 따로 떼어내어 하나의 주제로 다루고 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아. 그 '변화'라는 주제를 세로로 관통시켜, 문학과 역사, 철학 등에서 변화의 이야기만 뽑아오지. 그러니까 그는 시도 읽고, 소설도 읽고, 철학책도 보고, 역사책도 보는거야. 그리고 그 모든 영역으로부터 '변화'의 개념을 추출해오지.
그 다음에 이것을 경영에 연결시켜 그는 경영이 결국 인간의 문제, 즉 열정, 성취감, 보람, 영혼, 여가, 기회, 성장, 몰입, 즐거움, 재미, 갈등, 시기, 분노, 평등, 팀워크, 신뢰, 활력같은 다분히 인간적인 주제를 다루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알아냈어. 그것도 정서와 감정을 고려한 인간적인 방법으로 말이야. 왜냐하면 이제 기업의 경쟁력은 사람이기 때문이야. 사람이 가장 중요한 기업의 자산이 되었어. 인간을 문제로 다루는 것은 결국 인문학의 관심사이고 인문학의 영역이야. 인문학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영자는 결국 삼류라는 사실을 알아낸거지.
여기서 그는 강력한 경쟁력이 발생하는 지점을 알아내게 되었어. 문학, 역사학, 철학이라는 이른바 문·사·철로 대표되는 인문학이 갑자기 경영학과 연결되면서 그는 자신의 틈새를 발견한 것 같아. 말하자면 연결되지 않은 영역을 서로 연결시킴으로써 새로운 용도를 발견하게 된거야. 그게 그의 창의력이고 경쟁력인 셈이지.
여기서 그는 자신의 재능을 더했어. 바로 독서와 글쓰기라는 자신의 강점을 더하게 되었지. 독서와 글쓰기, 그 자체로는 아무런 돈이 될법하지 않은 재능이야.
그러나 이 재능이 그의 직업 영역과 합쳐지면서 강력한 힘을 발휘하게 되는 거지. 그는 경영학이 경영자와 직장인을 위해 실용적인 학문인데도 불구하고 막상 그들이 읽기에 딱딱하고 어렵다는 것을 알아냈지. 그는 경영학이 반드시 다루지 않으면 안될 영역으로 새롭게 부상하는, 즉 '인간과 경영'이라는 요소를 시장이 원하는 언어로 표현할 수 있었던거야. 이 국면에 이르면 그와 경쟁할 수 있는 사람들의 수는 극히 적어지지.
독서는 독서 그 자체로 돈 버는데 아무런 도움도 주지못해. 글쓰기도 그 자체로는 먹고살기 어려운 일이야. 그런데 그가 '무엇'을 쓰려고 하는가를 결정하게 되자 강력한 무기가 되어 주었지. 그가 시나 소설을 쓰려고 했다면 삼류가 되었을거야. 그건 그의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지. 그러나 '변화'라는 주제를 시와 소설의 언어로 경영학 속에 도입하자 그는 자기 자리를 찾아가게 된거야.
그는 경영학 전반을 다루지 않아. 변화의 경영 영역만 다루지. 조직과 개인의 변화가 그의 전문영역이야. 넓게 인문학과 경영학을 관통하는 변화 전체를 다루면서, 좁고 깊게 조직과 개인의 변화 경영만을 자신의 언어로 다루는 전문가로 스스로를 규정한거야. 넓고 포괄적인 지식은 관련된 특정 주제 속으로 깊게 들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지. 넓이와 깊이는 결코 상반되는 개념이 아니야.
성공의 정의는 물론 내가 내리는 것이지만 말이야.
여행은 다른 사람이 덮던 이불을 덮고 자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먹던 식기와 숟가락으로 밥을 먹는 것이다. 온갖 사람들이 다녀간 낡은 여관방의 벽지 앞에서 옷을 갈아입는 것이다. 그리고 그 낡은 벽지가 기억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 자신의 이야기를 더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자신을 다른 사람에게 보내고, 다른 사람을 자신 속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여행은 햇빛을 쏘이며 바닷가를 걷는 것이다. 다른 사람 속으로 파도처럼 들어갈 수도 있다. 아아, 파도처럼 하나의 물결에 다시 또 하나의 물결이 되어, 그렇게 다른 사람들의 마음으로 들어갈 수 있다.
인생은 축제와 같은 것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사람은 경기하기 위해 이 세상에 왔지요. 오직 이기는 것만이 목적이에요. 또 어떤 사람은 구경꾼들에게 떡을 팔고 마실 것을 팔기 위해 이 축제에 왔습니다. 돈을 버는 것이 목적이지요. 돈은 쌓여가겠지만 인생의 시간은 줄어들 뿐이지요. 또 어떤 사람은 구경꾼으로 이 축제에 참석했지요. 스스로 순수하게 즐기기 위해 이곳에 온 사람들이에요. 마음이 기뻐하는대로 가면 인간은 타락하지 않습니다. 돈 몇 푼에 자신을 팔지도 않을 것이고, 약한 사람을 내버려 두지도 않을 것이고, 스스로를 감옥에 가두어 두고 학대하지도 않을 테니까요. 행복한 사람들만이 행복을 만들어내고 사회를 밝게 할 수 있다는 말은 진실입니다.
현실적으로 깨어있는 시간의 2/3 내외는 일에 쓰게 되어있는 것 같아요. 일이 지겹거나 의미와 보람을 찾기 어려우면 깨어있는 인생의 2/3가 날아가고 마는 셈이지요.
일을 즐기면 인생의 대부분을 즐기는 셈이라고 봅니다. 거기에 여가를 즐길 수 있고, 가족과 보내는 시간까지 즐길 수 있다면 인생은 황홀할 것입니다. 세상에는 '부유한 노예'와 '성공한 실패자'들이 많아요. 일에 놀이처럼 빠진 사람들에게 제발로 찾아오는 것이 바로 돈입니다. 물론 하고싶은 일을 하는 사람 모두가 부자는 아니죠. 그러나 하고싶은 일에 몰입하는 사람들 중에서 못먹어 굶는 사람들은 보기 못했습니다.
여행은 마음으로 하여금 공간과 시간을 넘어 물처럼 바람처럼 흐르게 하는 것입니다. 정신을 풀어놓고 마음을 열어놓는 것이지요. 세상과 조금 거리를 두는 것이고 무리와 대세로부터 한 걸음 옆으로 떨어져 나오는 겁니다. 그리고 그들을 보고 또 나를 보는 것이지요. 이 객관성을 구경꾼의 마음이라 부를지 모릅니다. 돈 때문에 울고 웃는 참담한 집착과 교활한 모습을 발견하고 경계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다시 그 세상으로 들어가 하루하루를 살 준비를 하는 것이 바로 여행의 떠나옴이라고 생각합니다.
여행은 그래서 도피가 아닙니다. 우리는 돌아오기 위해 떠나는 거죠. 버리기 위해 떠나는 것이고 버린 후에 되돌아오는 것이지요. 매일 걸어야 하는 사람에게는 베낭 하나도 무거운 짐입니다. 무엇을 더 담아올 수 있겠어요? 여행을 하다보면 가난의 의미를 알게되요. 가난은 무능력이 아님을 알게된단 말이에요. 소유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욕심을 보리고, 지고갈 수 없는 것들을 버리는 일이 삶의 무게에 깔리지 않는 방법임을 가르쳐 주지요.
"현명한 늙은 부엉이가 떡갈나무에 살았습니다.
부엉이는 보는 게 많아질수록 말이 줄었습니다.
말이 줄어들수록 듣는 게 많아졌습니다.
우리 모두는 그 현명한 늙은 새처럼 되면 안될까요?"
'돈의 심리학' 중에서 -존 D. 록펠러-
무리 속에 남아있으면서 나를 잃지 않는 길은 없을까" 수평적 충성. 바로 나로 남아있기 때문에 오히려 무리를 빛내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이론적으로 그렇게 되기는 쉬워. 오케스트라의 경우 각자는 자신의 소리를 내지만 그게 합해져서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루게 되지. 개인과 집단의 조화를 훌륭하게 상징하는 비유라고 생각해.
자공이 물었다. "마을의 모든 사람이 좋아하는 사람은 좋은 사람입니까?"
공자가 말했다. "선한 사람이 좋아하고, 악한 사람이 미워하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다."
다양성이란 것은 그 자체로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야. 가치중립적인 것들이 태반이지. 그런데 실제로는 선악의 범주로 판별되는 사례가 아주 빈번해.
우리가 '다르다'고 말할 때 그 속에서 선악의 구별이 없어. 옳고 그름도 없어. 예를들어 개는 원숭이와 다르고 사람과도 달라. 그것은 옳고 그름도 아니고 선악의 문제도 아니야. 그냥 다르다는 것이지. 그런데 우리는 '다르다'는 말을 '틀리다'는 말과 혼용해서 쓰고 있지. "나는 너와 틀려" 이런 식으로 말야. 나는 이런 혼용이 다름을 틀림이라는 선악의 잣대, 옳고 그름의 잣대로 사용하고 있는, 무의식을 가장한 잠재된 의도라고 생각해. 나와 다르다는 것을 틀렸다고 인식하는 사회 속에서 다양성이란 것은 존재할 수가 없어. 흑백만이 존재하지.
맑은 날 세상이 아름다운 것은, 세상을 구성하고 있는 모든 빛깔들이 자신들의 색으로 빛나기 때문이지. 바다는 바다 색으로, 산은 산 색으로, 하늘은 하늘 색으로 공존하기 때문에 눈이 부시게 찬란한 세상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이야. 원래 타고난 빛깔을 덮고 있는 지저분한 오물을 닦아내면 자신의 고유한 색과 빛이 더욱 고와지지.
나는 이것을 자기수련의 진수라고 생각해. '다르다'는 것을 '틀리다'로 이해하지 않는 정신적 자유가 없다면, 우리가 다르기 때문에 바로 서로에게 의미있는 존재이며 서로를 보완한다는 것을 믿지 못한다면, 우리는 오케스트라를 이해할 수 없게돼.
나는 자신의 빛깔로 빛나지 않으면 자기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뿐만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그들만의 빛깔로 아름다워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진정한 수평적 관계의 초석이라고 믿어. 즉,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 이것이 바로 서로에 대한 수평적 충성의 가장 중요한 첫번째 원칙이라고 생각해.
두번째 원칙. '다른 사람의 장점을 읽어내는 자세나 태도'
세번째 원칙. '스스로를 매력적인 사람으로 만들어 가는 것'
매력은 사람을 끌어당기는 자석이야. 스스로 자신을 매력적인 사람으로 만드는 것. 이것이 관계의 또 한가지 핵심이지.
인생은 공평하지 않아. 어떤 사람은 미국에서 태어나고, 어떤 사람은 아프가니스탄에서 태어났어. 누구는 부유한 부모를 두었고, 누구는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누구는 외모가 멋지거나 아름답고, 누구는 날 때부터 불량품일지 몰라. 불공평하지만 인생은 그렇게 시작되는 거야. 그러나 누구나 매력적일 수는 있어. 이것은 인생이 공평하다는 뜻인지도 몰라. 못생겨도 매력적일 수 있음을 먼저 믿어야 돼.
서로에게 호감을 주는 자세나 방법
1. 있는 그대로 행동하면서 다른 사람을 기분좋게 해 줄 수 있는지, 이 때는 조금 모자라 보이면 다른 사람의 기분이 좋아진다는 점이야. 잘난척하는 애들은 별로거든. 약간 모자라 보이는 애들을 보면 마음이 편해져. 경계심도 사라지고, 최고의 무장해제법이지. 늘 어린아이의 마음을 간직하는 것이 좋아. 아는 척하지 말고 순진한 어린아이의 호기심으로 '왜'와 '어떻게'를 잘 활용하면 사람들이 이것저것 알려주지.
2. 다른 사람들 속에서 동질성을 찾는 것. 연결고리 '같은 경험', '같은 느낌'
3. 어떤 특징. 유머, 상냥함, 온화함, 나지막한 기분좋은 목소리, 빛나는 웃음, 웃을 때 콧등에 잡히는 두세줄의 주름, 산들바람을 안고 걷는듯한 걸음걸이, 힘있고 느긋한 걸음걸이, 하얗고 길어 우아한 목, 귀의 까만 점, 길고 하얀 손가락, 조붓한 어깨, 아주 냉철한 사고, 자신을 잃어버리는 몰입.
4. 다른 사람에게 관대하게 대하는 것. 관대함은 여러가지지만 가장 기본적인 시작은 대가를 바라지 않고 베푸는 것.
자신을 팔아라. 재능과 기질과 취향과 지식을 팔아라. 자신을 팔 수 없으면 세속적인 성공을 이룰 수 없다. 그러나 절대로 영혼은 팔지 말아라. 영혼을 잃게되면 인생도 잃게 된다. 죽은 닭과 산 닭의 차이다.
2023. 10. 28.
이준희 결혼식에 가기 전에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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