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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3. 집으로 가는 길 A LONG WAY GONE, 이스마엘 베아, 북스코프, 2008

햇살처럼-이명우 2012. 1. 18. 21:43

273. 집으로 가는 길 A LONG WAY GONE, Memories of a boy soldier by Ismael Beah, 이스마엘 베아, 북스코프, 2008

아프리카 시에라리온 내전 동안 소년병으로 참여했던 이스마엘 베아의 여정을 통해 전쟁이 인간을 특히 어린아이들에게 얼마나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는지 실감할 수 있다.
시에라리온은 기니와 라이베리아 사이에 있는 나라이다.

"모름지기 달처럼 살도록 힘써야 하느니라"
할머니는 사람들에게 항상 착하게 살고 남에게도 선하게 대하라고 일깨우는 격언이라고 말씀하셨다. 사람들은 해가 너무 쨍쨍해서 더워 못 견디겠다거나, 비가 너무 많이 온다거나, 날이 춥다고 불평을 한다. 하지만 달빛이 비친다고 불평하는 사람은 없다. 달이 뜨면 다들 행복해하고 자기들 나름대로 달에게 고마워한다. 아이들은 자기들 그림자를 구경하고, 달빛속에서 논다. 사람들은 공터에 모여앉아 얘기꽃을 피우고 밤새 춤을 춘다. 달이뜨면 온갖 행복한 일들이 생긴다. 그래서 우리가 달처럼 살도록 힘써야 한다는 것이다.

  엿새만에 사람들을 만나 반가우면서도 전쟁이 사람들을 만나는 즐거움까지 다 앗아가 버렸다는 것이 실망스러웠다. 이제는 열 두살짜리 꼬마조차 믿을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 아버지는 이런 말씀을 하시곤 했다. "살아있는 한, 더 나은 날이 오고 좋은 일이 생길거라는 희망이 있단다. 더 이상 좋은 일이 생길거란 희망을 잃게 되면, 그 때 죽는거야" 나는 여행내내 아버지의 말을 생각했다. 내가 어디로 가고 잇는지 모를 때 조차도 그 말을 생각하며 힘을 얻어 계속 나아갔다. 그 말은 내가 포기하지 않고 계속 살아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었다.

 

  우리는 밤이면 발전기나 차량용 배터리의 힘을 빌려 <람보1,2><코만도> 등의 전쟁영화를 보았다. 우리는 모두 람보처럼 되고 싶었다. 다들 람보의 싸움기술을 따라해보고 싶어 좀이 쑤셨다.

 

  우리는 몇 시간을 내리걷고 잠시 쉬면서 정어리와 콘비프를 가리와 함께 먹고, 코카인을 흡입하고, 햐얀 캡슐을 몇개 삼켰다. 이렇게 약을 섞어 먹으면 힘이 용솟음치고 야수처럼 사나워졌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따위는 아예 떠오르지도 않았고, 사람을 죽이는 일이 물 한 잔 마시는 것처럼 쉬웠다. 첫번째 살인을 하면서 내 마음은 찰칵하고 문이 닫히듯 잠겨버렸다. 양심을 괴롭힐만한 기억도 머리속에 남기지 않게 되었다.

 

  우리는 사람을 죽이도록 세뇌된 위험천만한 아이들이었다. 이는 재활과정의 첫 단계를 이제 막 시작한 구호단체들이 맨 처음 배워야할 교훈 중 하나였다.

 

  나는 손이 걷잡을 수 없이 떨리기 시작했고, 편두통이 다시 찾아왔다. 마치 대장장이가 내 머릿속에서 모루를 두들기는 것 같았다. 머릿속에서 누군가 쇠망치를 두들기는 둣 했고, 이 견딜 수 없이 날카로운 쇳소리에 온몸의 혈관들과 근육들이 다 시큰거렸다.

 

  그날 밤, 베란다에서 아이들이 배구경기를 놓고 떠드는 소리를 들으면서 어린 시절의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그러나 처음으로 사람의 목을 베었던 때가 자꾸 떠올랐다. 그 장면은 비내리는 어두운 밤에 번개가 내려치듯 자꾸만 내 기억의 표면으로 떠올랐다. 기억이 떠오를 때마다 머릿속에 날카로운 비명이 울리면서 척추가 쿡쿡 쑤시듯 아팠다.

 

  할아버지는 여러 이야기를 들려 주셨다.

"어떤 사냥꾼이 있었는데, 원숭이를 잡으로 숲으로 갔단다. 사냥꾼은 이윽고 나뭇가지에 앉은 원숭이를 발견했지. 그런데 이놈의 원숭이가 사냥꾼이 다가오면서 마른 낙엽을 밟아 발자국 소리가 들리는데도 도망갈 생각을 안하는거야. 그래서 사냥꾼은 원숭이가 잘 보이는 나무 뒤까지 바짝 다가가 총을 겨누었지. 사냥꾼이 막 방아쇠를 당기려는데, 아 글쎄 원숭이가 이런 소리를 하지 않겠냐. '네가 나를 쏘면, 네 어머니가 죽게 될거야. 쏘지 않으면 아버지가 죽을것이고'  자, 너희들이 사냥꾼이라면 어쩔테냐?

 

  내가 만약 사냥꾼이라면, 나는 그 원숭이를 쏘겠다고 결론 내렸다. 그래야 다른 사냥꾼들이 다시는 똑같은 곤경에 처하는 일이 없을 테니까.

 

20008. 8.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