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0. 개밥바라기 별, 황석영, 문학동네, 2008
시키는데로 하기 싫어할 뿐이지 나도 노력하고 있어.
노력은 무슨......아무렇게나 사는 것지.
그게 나쁘냐? 나는 말야. 세월이 좀 지체되겠지만 확실하게 내 인생을 살아보고 싶은거다.
학업을 때려치우면 나중에 해먹고 살 일이 뭐가 있겠어?
어쨌든 먹고 살 일이 목표겠구나. 헌데 어른이나 애들이나 왜들 그렇게 먹고 사는 일을 무서워하는 거야. 나는 궤도에서 이탈한 소행성이야. 흘러가면서 내 길을 만들거야.
......
아주 좋은 것들은 숨기거나 슬쩍 거리를 둬야하는 거야. 너희는 언제나 시에 코를 박고 있었다구. 별은 보지 않고 별이라고 글씨만 쓰고.
봄비
그러나 감자밭을 적시기엔
아직 적다.
포플러가 우리말로 미루나무인 것처럼 시골 사람들은 플라타너스를 방울나무라고 부르더라.
자퇴를 하고 나서 맥놓고 걸어가던 하교길이 생각난다. 막상 일을 저질러 놓고 나니 이제부터 내 앞에 놓인 길은 어디나 뒷길이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나는 이제 의사나 법관이나 관료나 학자나 사업가나 존경받을 장래의 모든 가능성으로부터 스스로 잘려나온 것이다.
살아있음이란 그 자체로 생생한 기쁨이다. 대위는 늘 말했다.사람은 씨팔......누구든지 오늘을 사는 거야.
거기에 씨팔은 왜 붙여요?
내가 물으면 그는 한 바탕 웃으며 말했다.
신나니까......그냥 말하면 맨숭맨숭하잖아.
고해 같은 세상살이도 오롯이 자기의 것이며 남에게 줄 수 없다는 것이다. 나는 저도 모르게 뛰는 가슴을 억누르며 표내지 않고 그엑 물었다.
뭘하러 흐리멍텅하게 살것냐? 죽지 못해 일하고 입에 간신히 풀칠이나 하며 살 바엔, 고생도 신나게 해야 사는 보람이 있잖아.
어라, 저놈 나왔네.
대위가 중얼거리자 나는 두리번거렸다. 그가 손가락으로 저물어버린 서쪽하늘을 가리켰다.
저기......개밥바라기 보이지?
비어 있는 서쪽하늘에 지고있는 초승달 옆에 밝은 별하나다 떠 있었다. 그가 덧붙였다.
잘 나갈 때는 샛별, 저렇게 우리처럼 쏠리고 몰릴 때면
개밥바라기.
나는 어쩐지 쓸쓸하고 예쁜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작가의 말
나는 이 소설에서 서춘기때부터 스물한 살 무렵까지의 길고 긴 방황에 대하여 썼다. '너희들 하고 싶은데로 하라'고 끊임없이 속삭이면서, 다만 자기가 작정해 둔 귀한 가치들을 끝까지 놓쳐서는 안된다는 전제를 잊지 않았다. 그리고 너의 모든 것을 긍정하라고 말해 줄 것이다. 물론 삶에는 실망과 환멸이 더 많을수도 있지만, 하고픈 일을 신나게 해내는 것이야 말로 우리가 태어난 이유이기도 하다. 하고싶지 않는 일을 때려치운다고 해서 너를 비난하는 어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다. 그들은 네가 다른 어떤 일을 더 잘하게 될지 아직 모르기 때문이다.
금성이 새벽에 동쪽에 나타날 적에는 '샛별'이라고 부르지만 저녁에 나타날 때에는 '개밥바라기'라 부른다고 한다. 즉, 식구들이 저녁밥을 다 먹고 개가 밥을 줬으면 바랄 즈음에 서쪽하늘에 나타난다고 해서 그렇게 이름 붙여진 것이다.
2008. 9.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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