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본디 길 잃은 인간으로 태어났다. 그래서 ‘살 이유’는 찾기 힘들다. 그래도 괜찮다. 그런 이유를 찾지 못한 채 사는 사람 많거든.
하지만 ‘죽어서는 안 될 이유’는 꼭 찾아라. 인간에게 단 하나의 의무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사는 것이다.
살아 보니, 이 세상에서 사는 것보다 아름다운 것은 없더라.
“공부도 못하고 운동도 못하고 사교성도 없고,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나아요.” 수업 시간에 툭 던진 너의 말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마땅히 할 말이 없었다. 그래도 주섬주섬 몇 마디 말을 보탰지. 하지만 그냥 그렇게 지나치기에는, 너의 그 말이 너무 무거웠다.
어떻게 생각해 보면, 네 말이 맞아. 공부 잘하는 친구에 비해서 너는 공부도 처지고, 운동 잘하는 친구에 비해선 운동도 못한다. 붙임성이 있는 친구에 비해서 너는 확실히 사교성도 떨어진다. 비교하지 말란 말은 않겠다. 샘도 너만 할 때에, ‘나만 왜 이러지’ 하면서 가슴을 쥐어뜯은 적이 있으니까.
그러다, 샘은 결국 거의 주검이 되어 집으로 돌아갔어. 그런데 거기서 어머니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그것은 신음이었다. ……‘살아야 할 이유’는 찾지 못했지만, ‘죽어서는 안 될 이유’를 거기서 찾았다. 그렇지 않아도 힘겨운 어머니의 삶에 또 하나의 ‘빼낼 수 없는 대못’을 박을 수 없다는, 그 이유를.
우리 시대 어느 어머니가 그러지 않으셨겠느냐만, 우리 어머니도 참 짠한 삶을 사셨다. 꽃샘추위가 매서워야 봄꽃이 아름답다지만, 그분 인생은 꽃다운 꽃이 머금을 새도 없어 보였다. 꽃샘추위 가더니 잎샘추위 오는 삶의 연속이었다. 그런 삶에 꽃샘잎샘추위를 더할 수는 없다는 생각을, 그때 했다.
네게도 그런 분이 계신다. 만약 네가 가 버리면, 사는 것이 사는 것 같지 않게 되실 분. 밥을 먹어도 먹은 것 같지가 않고, 걸음을 걸어도 허방을 딛는 것같이 되실 분. 잠을 자도 잔 것 같지가 않게 되실 그분. 신은 누구에게나 그런 분을 한 분씩 보내 주셨다. 그러니 그분을 꼭 만나기 바란다.
오래 전 일이다. 우리 아파트 옥상에서 여학생이 몸을 던졌다. 참새처럼 웅크리고 있던 모습이 아팠다. 하지만 그보다 가슴 아픈 건 유서였다. “엄마, 내 몸에 손끝 하나 대지 마세요.” 그런데 아무도 다가가지 못할 때, 아이를 껴안고 울던 분은 그 ‘엄마’였다. 그걸 모른 채 아이는 훌쩍 가 버렸다.
내가 문학 샘이라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비극을 비극으로 보는 것은 과학이지만 비극을 비극으로만 보지 않는 것이 문학이다.
수업 시간에 배웠지 않느냐. 문학적 상상력을 동원하여 네 삶을 돌아보라. 학교에서는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예술이다.
(박용성-여수고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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