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진晉나라 원수 선진의 사리분별

햇살처럼-이명우 2013. 1. 4. 16:05

춘추시대 진晉양공 때의 일이다.
진晉군은 진秦나라와의 효산 전투에서 이겨 맹명, 백을병, 서걸술 등 장수를 포로로 잡아왔다. 이때 진秦나라의 왕은 진秦목공이었다.
진晉양공의 어머니는 문영이었는데 문영은 진秦목공의 딸이었다. 문영은 친정나라 장수가 잡혀왔다는 것을 알고 풀어줄 요량으로 진양공에게 설득했다.
처음에는 진양공은 어머니의 말을 듣지 않다가 마침내 세 장수를 석방하고 말았다.
진晉나라 군대의 원수였던 선진은 이 말을 듣고 격분하여 진양공에게로 달려가 묻는다.
" 진秦나라 죄수들을 어느 곳에다 가두어뒀습니까?"
진양공이 대답한다.
" 모부인(문영)이 하도 청하시기에 그 말씀을 좇아 그들을 이미 석방했소."
순간 선진은 진양공의 얼굴에 침을 탁 뱉었다.
"일을 이렇게 모르다니 참 어리석은 사람이로다! 장수들이 천신만고 끝에 겨우 잡아온 죄수를 그래 한 부인의 말만 듣고 놓아줄 수 있는가? 범을 놓아 산으로 돌려보냈으니 다음날 후회한들 무슨 소용 있으리오."
신하가 아무리 격분했을지라도 임금 얼굴에 침을 뱉는 일은 전무후무한 사건이었다. 곁에 있던 신하들은 너무나 해괴한 사건을 목격하고 놀랐다. 그러나 진양공은 선진의 말에 비로소 깊이 깨달은 바가 있었다. 진양공은 소매를 들어 얼굴에 묻은 침을 조용히 닦으며,
"과인의 잘못이로다. 즉시 가서 진秦나라 장수들을 잡아오라."
그러나 진秦나라 장수들은 국경을 넘어 도망가버렸다.

몇 년 뒤, 진晉나라가 책나라를 치려할 때 선진이 군사를 맡아 대곡이라는 곳에서 싸워 책나라 임금 백부호를 사살하고 크게 이겼다.
선진은 붓을 들어 진양공에게 보내는 표장表章을 써서 책상 위에 놓았다. 그리고 밖으로 나가서,
"나의 장막 안으로 아무도 들여보내지 말아라." 하고 병거를 타고서 혼자 적진으로 달려갔다.
한편, 백부호의 동생 백돈은 아직 형이 죽은 사실을 몰랐다. 그는 혼자 군사를 거느리고 형을 후원하려고 가던 참이었다. 백돈는 적장 하나가 혼자 병거를 몰며 달려오는 것을 보고서 자기를 유인하려고 오는 진나라 장수인 줄말 알았다. 백돈은 급히 칼을 뽑아들고서 그 장수를 맞이하여 싸우려고 달려갔다. 그 진나라 장수는 다름 아닌 원수 선진이었다. 선진은 마치 신神처럼 분연히 책군속을 왕래하며 장수 세사람과 병사 20명을 죽였다. 그러고도 선진은 조금도 다친데가 없었다. 책나라 궁수들은 선진의 신용神勇에 기가 질리고 손이 떨려서 쏘는 화살에 박력이 없었다. 더구나 선진은 무거운 갑옷과 투구를 입고 있었다. 그러니 약한 화살로 어찌 선진을 해칠 수 있으리오.
선진이 스스로 탄식한다.
"적을 죽이지 않으면 나의 용맹을 알릴 수 없음이라. 이제 나의 용맹을 적에게 알렸은즉 더 많이 죽여서 무엇하리오. 내 이곳에서 죽으리."
선진은 투구를 벗고 갑옷을 벗어 던졌다. 적의 화살이 빗발치듯 선진에게로 집중했다. 무수한 화살을 맞고 선진은 죽었다. 그러나 선진의 시체를 쓰러지지 않고 꼿꼿이 서 있었다. 백돈은 선진의 목을 끊으려고 가까이 갔다. 선진의 찢어진 두 눈은 노기를 띠고 번쩍였고 수염은 모조리 치솟아 있었다. 살아있을 때와 조금도 다름이 없었다. 백돈은 무서워서 더 가까이 가지 못했다.
군사 한 사람이 그제야 선진을 알아보고 백돈에게 고한다.
"이 분은 바로 진나라 중군 원수 선진이십니다."
백돈은 즉시 모든 군사를 정돈했다. 연후에 그는 모든 군사를 거느리고 선진 앞에 가서 절했다.
"장군은 참으로 신인神人이십니다." "신인이시여, 제가 모시고 책나라에 가서 길이 제사와 공양을 바치고자 하나이다. 만일 제 소원을 허락해주신다면 서 계시지 마시고 병거 안에 누우소서."
그러나 시체는 쓰러지지 않았다. 백돈이 다시 축원한다.
"신인이시여, 그럼 진晉나라로 돌아가고자 하시나이까? 제가 마땅히 보내드리리다."
그제야 시체는 타고 섰던 병거 안에 쓰러졌다.

진晉나라 군영에서는 선진이 혼자 병거를 타고 나갔다고, 다만 영채의 문을 굳게 지키라고 했다는 병사의 보고를 받고 부장 선차거(선진의 아들)는 영채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책상 위에 표장 한 장이 놓여 있을 뿐이었다. 그 표장에 말하였으되,

"신 중군 대부 선진은 삼가 아뢰나이다.
전날 신은 상감께 무례한 결례를 저질렀으나 상감께서 신을 죽이지 않고 다시 중임을 맡기셨습니다.
이번 싸움에 다행히 이겼으니 장차 상감께선 신에게 상을 내리실 것입니다.
신이 이번에 돌아가서 상을 안 받는다면 이는 공훈이 있어도 상이 없는 결과가 될 것이며, 만일 상을 받는다면 이는 무례한 짓을 해도 상을 받을 수 있다는 결과가 됩니다.
공이 있는데도 상이 없다면 공훈을 세우라고 아랫사람에게 어떻게 권할 수 있으며, 무례한 짓을 해도 상을 받는다면 어떻게 아랫사람의 죄를 벌할 수 있겠습니까.
공과 죄의 분별이 분명하지 못하면 무엇으로써 국가를 다스릴 수 있습니까. 신은 지금 책나라 군사에게로 갑니다. 상감께서 신을 죽이지 않으시는지라 신은 책나라 군사의 손을 빌려 죽음을 당할 작정입니다. 신의 자식 차거는 장수로서의 지략이 있습니다. 족히 아비를 대신해서 상감께 충성을 다하리이다.

신 선진은 죽음을 앞에 두고 상감께 영결永訣을 고하나이다."

 

사리분별을 알고 몸으로 실천한 선진의 행동은 오늘날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열국지, 풍몽룡, 김구용옮김, 솔,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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