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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8. 정신분석학 개요. 지그문트 프로이트, 도서출판 열린책들, 2003

햇살처럼-이명우 2014. 2. 24. 13:49

428. 정신분석학 개요. 지그문트 프로이트, 도서출판 열린책들, 2003

정신분석학은 심리학적 기술에 의해 특정형태의 신경질환(신경증)을 치료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의료방법이다.

의학적인 연구는 꿈이 아무런 의미나 의의가 없는 단순히 신체적인 현상이라고 설명하며, 부분적으로 잠을 깨우는 신체적인 자극에 대한 수면 상태에 빠져 있는 정신 기관의 반작용으로 간주한다. 정신분석학은 꿈의 지위를 의미와 목적을 지니며, 주체의 정신 생활에서 하나의 장소를 갖는 정신적인 활동의 지위로 까지 격상시킨다.

정신분석학은 정신의학이 지닌 문제들의 거의 절반의 해결을 위해 심리학을 향한다.

 

꿈의 언어는 무의식적인 정신활동이 그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으로서 간주될 수도 있다.

 

브로이어의 <카타르시스 요법>을 정신분석학의 예비단계로 취급하고, 내가 최면술을 버리고 자유연상법을 도입하면서 정신분석학 자체가 시작된 것으로 제시했어야만 했다는 것이다.

 

내게 깊은 존경심을 불러 일으켰던 견해를 가진 세 사람은 브로이어, 샤르코, 크로박이었다.

 

쇼펜하우어 <의지와 표상으로의 세계>

 

프로이트-융- 아들러

 

치료받는 중에 <카타르시스>는 의식으로의 통로가 열리고 정상적으로 감정이 해방될 때 나타났다. 이 이론의 본질적인 부분은 <무의식적인> 정신과정의 존재를 가정하는 것이었다.

 

메피스토의 경고

주위의 이 학문 저 학문을 배회하는 것은 헛된 일

누구든 그가 배울 수 있는 것만을 배울 뿐이다. 

 

정신분석 이론의 이정표

무의식적인 정신과정이 있다는 가정, 저항과 억압의 이론에 대한 인정, 성욕과 오이디푸스 콤플랙스의 중요성에 대한 평가 등이 정신분석학의 주요내용을 이루며 그 이론의 기초를 구성한다. 이러한 사항들을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은 정신분석학자라고 불러서는 안된다.

 

일반적으로 본능은 살아있는 것의 일종의 탄력성으로, 한 때 존재했으나 어떤 외부의 방해에 의해 제거된 어떤 상황을 북구하려는 충동으로 간주된다. 이처럼 본질적으로 보수적인 본능의 성격은 <반복강박>현상에 의해 예증된다. 에로스와 죽음본능의 협력과 대립적 작용으로 인해 우리의 삶의 그림이 생긴다.

 

신경증의 원인에 대한 간단한 공식.

<자아는 부적절한 방식으로> 이드의 특정한 부분들을 억압하려고 시도하였고, 이러한 시도는 실패해서 이드는 복수를 하게 되었다고 말입니다. 따라서 신경증은 자아가 일으킨 자아와 이드 사이의 충돌의 결과입니다.

 

이러한 종류의 자아의 유약함은 우리 모두의 유아기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유아기 최초의 몇 년의 경험이 이후의 삶에서 그토록 중요해지는 이유입니다.

 

신경증은 가령 전염병과 같은 고유한 발병원인을 가지고 있지 않다. 만약 신경증에서 병원체를 찾으려 한다면 이는 한가한 시도일 것이다. 신경증은 유동적인 이해과정을 통해 소위 규범과 결부되어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신경증적 특징을 갖는 암시가 입증되지 않으므로 정상적이라 인정되는 상태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신경증 환자의 결함과 고통에 책임이 있는 것은 양적 <부조화>이다. 모든 형태의 인간 정신활동의 원인은 바로 타고난 기질과 우연적 체험의 상호작용에서 찾을 수 있다.

 

여자아이가 <남자아이>가 되려는 최초의 소원에 머물러 있게 되면, 극단적인 경우 이 아이는 끝내 명백한 동성애자가 되거나 아니면 나중의 그녀의 생활방식에서 뚜렷하게 남성적 특징을 드러내거나 남성적인 직업을 택하거나 한다.

 

자아에 대한 변화의 상(像)은 원래 초기 유아기의 마지막 (대략 5세)에 이르기까지 자아에 대해서만 적절하다. 외부 세계의 일부가 대상으로 최소한 부분적으로 포기되고, 대신에 (동일화를 통해) 자아 속으로 수용되어 내부세계의 구성부분이 된다. 이 새로운 정신기관은 외부 세계의 저 인격들이 행했던 기능을 계속한다. 즉 이 기관은 그가 대신한 부모와 같이 자아를 관찰하고 자아에게 명령하며 자아의 방향을 지정해주고 자아에게 벌로 위협한다. 우리는 이 기관을 초자아라고 부르며, 그것이 갖는 재판관의 기능 때문에 우리의 <양심>으로 느낀다.

 

에로스와 파괴본능. 의식, 무의식

 

2011. 9.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