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9. 항우와 유방.1(전3권), 시바료타로, 달궁, 2002
항우(B.C 232~B.C 202) 30세
유방(B.C 247~B.C 195) 58세
우미인(~B.C 202) 우희, 항우의 연인, 죽은자리 꽃, 우미인초(개양귀비 꽃)
범증(B.C 278~ B.C 204) 항우의 모사
여태후(B.C 241~B.C 180) 유방의처, 중국 역사상 3대 여성 권력자. 전한 여태후, 당 측천무후(625~705), 청 서태후(1871~1908)
持而盈之 不如其已(지이영지 불여기이) 넘치도록 가득 채우는 것보다, 적당할 때 멈추는 것이 좋다.
揣而銳之 不可長保(췌이예지 불가장보) 갈아서 이를 날카롭게 함은 오래 보존하기 어렵다.
金玉滿堂 莫之能守(금옥만당 막지능수) 금과 옥이 집에 가득하면, 이를 지키지 못한다.
富貴而驕 自遺其咎(부귀이교 자유기구) 부귀하면서 교만해지는 것은, 스스로 허물을 남기니
功遂身退 天之道 (공수신퇴 천지도) 공이 이루어지면 몸은 물러나는 것이 하늘의 도리이다.
「노자老子」제9장 「운이運夷」
진의 시황제 정, 황제가 되어 10년도 살지 못했다.
성은 영, 이름은 정, 영정, 황제의 창시자.
방술方術에 능한 사람을 방사方士라 했는데, 그 방사 중 '노생盧生'이라는 인물을 신뢰했다. 그는 불로불사의 영약을 바칠 것이라고 자신했다.(시황제의 욕심-노생의 사기-조고의 농간) 그러나 신선은 시황제 않에 나타나려고 하지 않았다. 입장이 난처해진 노생은, 그것은 폐하의 생활방식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변명했다. 신선은 사람들을 싫어하므로, 폐하를 만나고 싶어도 신하들이 너무 들락거리니 내려올 수 없다는 것을 정연한 논리로 설명했다. 합리주의자인 시황제는 과연 그럴것이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 후로 시황제는 사람들을 물리쳤다. 함양의 궁전에는 건물이 270동이나 되었다. 그 넓은 궁전 어디에 시황제가 머물고 있는지 아무도 몰랐다. 단지 환관 조고趙高만은 예외였다. 그런 예외를 두지 않고서는 황제의 업무를 수행할 수 없었다. 조고가 경청에서 정치에 관련된 서류를 들고 결재를 받으러 시황제의 방으로 갔다. 결재가 끝나면 그 서류를 다시 경청으로 다시 가지고 갔다. 그러나 경청을 주재하는 것은 승상丞相이다. 고명한 이사李斯가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시황제가 대륙을 통일하기까지 이사가 공헌한 바가 너무도 컸다. 진 제국이 성립한 이후로 이 공신은 아들들을 모두 시황제의 딸과 결혼시키고, 자신의 딸은 모두 황족의 가문에 시집을 보냈다. 시황제의 대 토목사업이나 문자와 도량형의 통일, 또는 변경 수비와 정복사업도 모두 이사에 의해 입안되고 실시되었다. 그런 일등공신 조차 시황제가 궁정宮廷의 어디에 머물고 있는지 몰랐다.
조고가 이사에게 "몽염이 당신처럼 학문을 한 문인이 아니라고 해서 승상의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하십니까? 사람이란 자기가 놓인 위치에 따라 행동하는 법입니다. 몽염도 승상이 되면 당신 정도의 역량은 발휘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당신은 설령 3군이 주어진다해도 몽염처럼 공을 세울 수는 없을 것입니다. 과연 당신은 몽염보다 군사전략적인 면에서 더 뛰어나다고 자신할 수 있습니까? 또한 천하의 백성이 누구를 더 신망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더욱 중요한 것은 부소 공자가 황제가 되었을 때 누구를 더 신뢰하겠느냐는 것입니다."
온량거 속, 시황제의 시신. 아무리 이 지상에서 유일한 권력자라 해도 죽으면 썩는 냄새를 풍길 뿐이라는 진실을 알려주는 것 같았다.
장강(長江: 양자강, 양쯔강)
항우는 나이 스물에 키가 8척이다 되는 거한이 되었다. 진나라 도량형에 1척尺은 23cm, 8척 184cm
진 제국의 운명의 기본사상은 형명주의刑名主義로서, 이를테면 윤리를 부정하고 법을 만능으로 여겼다. 법치주의나 형명주의는 국가의 힘에 의해 유지되는 것으로, 국가의 힘이 쇠약해지면 법 자체가 효능을 발휘하지 못한다. 아무도 그 법을 지키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B.C 247년 출생한 고조 유방은 패현의 풍읍 중양리 사람이다. 성은 유씨, 자는 계季, 아버지는 태공太公, 어머니는 유오劉媪라 한다.
(해석하면, 성은 유씨, 자는 막내, 아버지 이름은 유 할아범, 어머니 이름은 유 할멈이라한다. )
요컨데 패현의 거리에서 이름을 날리는 건달의 얼굴은 용안이었다. 그가 생각지도 않은 무수한 많은 행운 덕분에 대륙의 황제가 된 탓에, 후세 사람들도 황제의 얼굴을 '용안龍顔'이라 불렀다.
전국 말기 귀족 출신의 명 보좌관, 전국 말기 4군, 제齊의 맹상군, 초의 춘신군, 조의 평원군과 신릉군(유방이 존경한 인물)
유방은 허공이다. 그 허공의 그릇이 크면 클수록 좋았다. 더 많은 유능한 사람들이 그 자리를 채울 수 있기 때문이다. 소하가 보기에는 유방의 천성적인 어리석음은 이끌기에 따라서는 큰 허공이 될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다.
천지개벽 이래로 이 대륙 최고의 전설적인 제왕인 황제黃帝를 모시고, 이어서 전투에서 행운이 있기를 비는 마음에 군신 치우蚩尤를 모시고, 희생동물을 죽여서 그 피로 북의 가죽을 붉게 물들였다.
관중, '금성천리金城千里', 함양
서쪽은 산관, 남쪽은 무관, 동쪽은 중원을 향해서 함곡관, 관중을 가로지르는 위수渭水
법가의 제국이란 인간의 조작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인간이 만든 법의 그물로 몇 천만의 인간을 작은 새처럼 가두어 두는 것이라고 저주했다. "그 것만 쳐부순다면 나의 사명은 끝나는 거야" 그 것을 쳐 부순다음 어떤 나라를 만들지 그것은 범증이 알바 아니었다. 어부는 호수로 돌아가야하고, 농부는 밭을 갈아야 하고, 상인은 시장에 있어야 하며, 관리는 형구를 창고에 넣고 백성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전국시대 조나라 수도 '한단' '한단지몽'의 유래.
"신안사건" 항우에게 패한 장한이 포로(군사) 20만명을 계속해서 먹일 수가 없어 신안이라는 절벽으로 몰아넣고 흙으로 덮어버린 대 학살, 생매장. 경포의 군대.
2012. 8. 1 수 하계휴가 1일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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