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기

502.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라이너 마리아 릴케, 고려대학교 출판부, 2012

햇살처럼-이명우 2016. 2. 23. 16:41

502.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라이너 마리아 릴케, 고려대학교 출판부, 2012

이 편지는 1903~1908까지 만 5년 동안 릴케에게 인생과 문학에 관련하여 자신의 고민을 물어온 프란츠 크사버 카푸스(1883~1966)라는 문학 지망생에게 보낸 총 10통의 편지로서 릴케가 세상을 뜬 뒤인 1929년에 카푸스에 의해 한 권의 책으로 출간되었다. 당시 프란츠 카푸스는 릴케의 청년기 처럼 사관학교 생도이면서도 기질 상 그것이 맞지 않아 문학에 대한 동경을 가지고 있던 젊은이였다. 젊은 카푸스의 예술을 향한 열망과 현실적 삶 사이의 방랑의 과정은 그로 하여금 젊은 시절 자신과 비슷한 삶의 역정을 걸었다고 생각된 릴케에게서 위안과 조언을 찾을 수 밖에 없게 만들었다. 그래서 릴케는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내가 당신한테 또 한 가지 말씀드려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다음과 같은 것입니다. 당신을 이렇게 위로하려 애쓰는 이 사람이 당신에게 가끔 위안이 되는 소박하고 조용한 말이나 하면서 아무런 어려움 없이 살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마십시오. 나의 인생 역시 많은 어려움과 슬픔을 지니고 있으며 당신의 인생보다 훨씬 뒤처져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이 사람이 그러한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이 편지를 처음 썼을 때 릴케이 나이 28살이었다. 젊은이가 빠질 수 있는 고민의 세계를, 그 해결책으로 깊은 고독에의 침잠을 통해 피상적인 외부세계로부터 눈을 돌려 자신의 내면의 세계를 응시하고 거기서 참된 것을 찾아내라는 권유로 그 첫머리를 장식한다.
당신에게는 한 가지 길 밖에는 없습니다. 당신의 마음 깊은 곳으로 들어가십시오. 가서 당신에게 글을 쓰도록 명하는 그 근거를 캐보십시오. 그 근거가 당신의 심장의 가장 깊은 곳까지 뿌리를 뻗고 있는지 확인해 보십시오. 글을 쓸 수 없게 되면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오. 이것을 무엇보다 당신이 맞이하는 밤 중 가장 조용한 시간에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오. "나는 글을 꼭 써야 하는가?" 깊은 곳에서 나오는 답을 얻으려면 당신의 가슴 깊은 곳으로 파고 들어가십시오. 만약 이에 대한 답이 긍정적으로 나오면, 즉 더 없이 진지한 질문에 대해 당신이 "나는 써야만 해"라는 강력하고도 짤막한 말로 답할 수 있으면, 당신의 삶을 이 필연성에 의거하여 만들어 가십시오. 당신의 삶은 당신의 정말 무심하고 하찮은 시간까지도 이 같은 열망에 대한 표시요 증거가 되어야만 합니다.
그런 다음 자연으로 다가가십시오. 그리고 당신이 보고 체험하고 사랑하고, 잃은 것에 대해서 마치 이 세상의 맨 처음 사람처럼 말해 보십시오. 사랑 시는 쓰지 마십시오. 이 처럼 우리에게 너무 흔하고 평범한 것들은 우선은 피하도록 하십시오. 그것들은 다루기가 아주 힘듭니다. 왜냐하면 옛날부터 전해 내려온 훌륭하고 탁월한 작품들이 무진장한 곳에서 당신의 개성을 보여주려면 크고도 완전히 성숙한 힘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일반적인 주제는 피하고 당신의 일상생활이 제공하는 주제들을 구하십시오. 당신의 슬픔과 소망, 스쳐 지나가는 생각의 편린들과 아름다움에 대한 당신 나름의 믿음 따위를 묘사 하십시오. 그리고 당신의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당신 주변에 있는 사물들이나 당신의 꿈 속에 나타나는 영상들과 당신의 기억 속의 대상들을 이용하십시오.
당신의 일상이 너무 보잘 것 없어 보인다고 당신의 일상을 탓하지는 마십시오. 오히려 당신 스스로를 질책하십시오. 당신의 일상의 풍요로움을 말로써 불러낼 만큼 아직 당신이 충분한 시인이 되지 못했다고 스스로에게 말 하십시오. 왜냐하면 진정한 창조자에게는 이 세상의 그 무엇도 보잘것 없어 보이지 않으며 감흥을 주지 않는 장소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심지어 사방이 벽으로 둘러싸여 당신의 귀에 세상으로부터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 감방에 당신이 갇혀있다 할지라도, 당신은 당신의 어린 시절을 왕이나 가질 수 있는 그 소중한 재산을, 그 기억의 보물창고를 갖고 있지 않습니까? 그 곳으로 당신의 관심을 돌리십시오. 까마득히 머나먼 옛날의 가라앉아버린 감동들을 건져올리려고 애써 보십시오. 그러면 당신의 개성은 더욱 확고해질 것이고, 당신의 고독은 더욱 넓어질 것이며, 당신의 고독은 세상 사람들의 목소리가 멀리 비껴가는, 어둠에 잠기기 시작한 집과 같이 될 것입니다.

당신의 내면으로 파고 들어가 당신의 삶의 샘물이 솟아나는 그 깊은 곳을 살펴보라는 것입이다. 그 원천에 도달하여 당신은 당신이 꼭 창작을 해야 하는지의 물음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에 대한 답이 나오면 더 이상 그것을 캐묻지 말고 거기서 들려오는대로 그대로 받아들이십시오......혹시 바깥 세계로부터 무슨 보상이 올까 하는 물음은 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창조자는 자체가 하나의 세계가 되어야 하며, 모든 것을 자신의 내면에서 그리고 자신과 한 몸이 된 자연에서 구해야 하니까요.


  당신은 참으로 젊습니다. 당신은 모든 시각을 앞에 두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한 당신에게 이런 부탁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당신이 가슴 곳에 풀리지 않은 채로 있는 문제들에 대해서 인내심을 갖고 대하라는 것과 그 문제들 자체를 굳게 닫힌 방이나 지극히 낯선 말로 적힌 책처럼 사랑하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당장 해답을 구하려 들지 마십시오. 아무리 노력해도 당신은 그 해답을 구하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아직 그 해답을 직접 체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을 직접 몸으로 살아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제부터 당신은 궁금한 문제들을 직접 몸으로 살아보십시오. 그러면 먼 어느 날 자신도 모르게 자신이 해답 속에 들어와 살고 있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소네트를 꺼내서 읽는 것이 즐겁습니다.


슬픔이란 무언가 새로운 것, 무언가 미지의 것이 우리 가슴 속으로 들어오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그 순간 우리들의 감정은 어쩔 줄 모르는 당혹감 속에서 입을 다물고, 우리의 내면의 모든 것은 뒤로 물러서고, 적막이 생겨납니다.


당신은 환자처럼 인내심이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회복기에 있는 사람처럼 확신도 가져야 합니다. 


2012. 11.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