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 철학의 위안, 알랭드 보통, 청미래, 2012
불안한 존재들을 위하여
목차
1. 인기없는 존재들을 위하여
2. 가난한 존재들을 위하여
3. 좌절한 존재들을 위하여
4. 부적절한 존재들을 위하여
5. 상심한 존재들을 위하여
6. 어려움에 처한 존재들을 위하여
소크라테스는 B.C 469년에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소프로니스코는 조각가로 짐작되며, 어머니 파이나레테는 산파였다.
소크라테스는 70세가 되던 해에 인생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아테네 시민 세 사람 (시인 멜라토스, 정치인 아니토스, 웅변가 리콘)은 소크라테스가 괴상하고, 사악한 인간이라고 낙인을 찍었다. 그들은 소크라테스가
1. 아테네의 신들을 숭배하지 않았고,
2. 아테네의 사회적 기틀을 깨뜨렸으며,
3. 젊은이들이 아버지에게 대들도록 만들었다고 비난했다.
아테네에서는 옳고 그른 것을 판단하는 절차가 확고했다. 광장 남쪽에 자리잡은 큰 법정의 한 쪽 끝에는 배심원을 위한 나무벤치가, 다른 한 쪽 끝에는 기소가와 피고인이 설 연단이 각각 놓여 있었다. 재판은 기소자의 연설로 시작되었으며 곧 피고인의 연설이 뒤따랐다. 그러면 200명에서 2,500명 사이인 배심원단의 투표나 거수로 어느 쪽이 진실한지를 가렸다. 이 처럼 한 가지 제안을 놓고 그것을 지지하는 사람의 수를 헤아려서 옳고 그름을 결정하는 방식은 아테네의 정치와 사법분야에 두루 통용되었다. 한 달에 두 세번, 약 3만명에 이르는 남성들이 거수로 중요한 국가의 문제를 결정하기 위하여 남서쪽의 프닉스 언덕에 모였다. 아테네 입장에서 보면 과반수의 의견은 곧 진리였다.
소크라테스의 재판이 열리던 날, 시민 500명이 배심원이 되었다. 재판은 기소자가 배심원들에게 그들 앞에 서 있는 철학자가 불성실한 존재인지를 판단해 줄 것을 요청하는 식으로 시작되었다. 기소 내용에 대하여 소크라테스는 일일이 하나하나 해명하려고 노력했다. 그는 그 때까지 기소 내용인 천상에 관해서 어떤 이론(異論)도 품은 적이 없으며, 지하의 것들을 연구하려고 하지도 않았노라고 해명했다. 그리고 자신은 이교도도 아닐 뿐더러 종교적인 활동을 굳게 믿고 있으며, 결코 아테네 젊은이들을 타락시킨 적도 없다고 항변했다.
드디어 500명의 배심원들이 판결을 내릴 차례가 되었다. 잠시 숙고한 뒤에 배심원 220명은 소크라테스의 무죄를, 280명은 유죄를 결정 했다. 헬리아스테스의 법정에 앉아 있던 배심원들은 전혀 전문가들이 아니었다. 그들 가운데는 노인과 상이군인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었다. 그들은 손쉽게 부수입을 올릴 수 있는 수단으로 배심원 자리를 노리던 사람들이었다. 급여는 하루에 3오볼(obol : 옛 그리스 은화)로 육체 노동자 보다는 적었지만, 나이가 예순 셋이거나 집에 있는 것이 피곤한 사람이라면 상당히 도움이 될 만한 액수였다. 유일한 자격은 시민권과 건강한 마음, 그리고 빚이 없으면 되었다. 비록 마음의 건강을 소크라테스의 기준으로 판단하지는 않았더라도, 일직선으로 걸을 능력이 있고, 요구받을 때마다 즉각 자신의 이름을 댈 수 있으면 건강이 좋다는 평가를 받았다. 배심원들은 재판 도중 잠에 곯아떨어지기도 했으며, 비슷한 재판이나 관련법에 경험이 있는 사람도 재판과정에 대해서 그들에게 설명을 해주지 않았다.
소크라테스의 재판에 배심원으로 참여한 사람들은 무서운 편견을 가진 채 법정에 들어섰다. 그들은 아리스토파네스가 소크라테스를 풍자적으로 그린 연극에 영향을 받은터라 한 때 막강했던 도시에 들이닥친 세기말적 재앙에 그 철학자가 어떤 역할을 했다고 막연히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참패로 끝났고, 스파르타-페르시아 동맹에 아테네는 무릎을 꿇게되어 봉쇄당했으며, 아테네 함대는 파괴되고 제국은 분할되었다. 가난한 도시 근교에는 전염병이 창궐했고, 민주주의는 시민 1,000여명을 처형한 독재정권에 억압당했다. 소크라테스의 적들의 입장에서 보면, 많은 독재자들이 한 때 그 철학자와 함께 시간을 보낸 적이 있다는 사실은 우연 이상이었다. 고귀했던 아테네의 몰락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불결한 외투를 걸치고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질문을 던지며 거리를 떠돌던 소크라테스는 이미 잘 준비된 결점투성이의 제물이었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에게 더 이상 기회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심지어 그에게는 자신을 변호할 시간조차 부족했다. 피고인들에게는 배심원들 앞에서 연설할 시간이 몇 분 밖에 주어지지 않았다. 법정시간으로는 이 항아리에 담긴 물이 저 항아리로 다 흐를 때까지 뿐이었다. 물론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철학을 부정하고 목숨을 구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거부했다. 판사가 두 번째이자 마지막 평결을 주문하자 배심원들 중 360명이 소크라테스에게 사형판결을 내렸다.
사형이 집행되던 날 감옥에서 사형 집행인이 으깬 독미나리 잔을 들고 왔고, 소크라테스는 한 점 떨림이나 낯빛의 변화, 자세의 흐트러짐 없이 그 잔을 받아 마셨다. 그리고는 벌떡 일어서서 독약이 전신으로 퍼지도록 감옥 안을 돌아다녔다. 사형집행인의 말대로 두 다리가 뻐근해오자 소크라테스는 똑바로 누웠고 천천히 의식을 잃어갔다.
부적절한 존재들을 위하여. 몽테뉴 「수상록」
「수상록」에는 죽은 친구에 비견할만한 영혼의 소요자를 갈망하는 표현이 여러군데 나타난다. 라 보에티에가 죽고 18년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몽테뉴는 수시로 비탄에 빠졌다.
몽테뉴는 지식을 두 개의 범주로 구분했다(1533~1592)
학문(learning) 과 지혜(wisdom) - 논리학, 어원학, 문법, 라틴어, 그리스어
"나는 기꺼이 교육의 부주리라는 주제로 돌아 가겠다. 우리의 교육목적은 우리를 행복하고 현명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머리에 무언가를 집어넣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목적이라면 성공한 셈이다. 교육은 우리에게 미덕을 추구하고 지혜를 포옹하도록 가르치지 않았다. 그것은 단어의 기원이나 어원같은 것들을 우리의 뇌에 각인시켰다....「수상록」Ⅱ
선뜻 우리는 이렇게 묻는다.
"그 사람은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아는가?"
"그 사람은 시와 산문을 쓸 수 있는가?"
그렇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다.
"그 사람은 더 선해지고 현명해졌는가?"
우리는 가장 많이 이해하는 사람이 아니라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을 찾아내야 한다. 우리는 이해와 옳고 그름에 대한 분별은 공허하게 비워놓은 재 오직 기억을 채우기 위해 분투한다. 「수상록」Ⅰ
"내 명생에 대학교 총장보다 더 현명하고 행복한 기능공과 농부를 수 백명이나 보았다."「수상록」Ⅰ
"소개의 글과 정의, 문장 구분과 어원 설명이 그의 저작물 대부분을 차지한다......그의 책을 한 시간 정도(나에게는 꽤 많은 시간이다.) 읽은 뒤 그에게는 어떤 진수와 실체를 얻었는지 돌이켜보면, 거의 언제나 허황된 소리 밖에 남는 것이 없다. 「수상록」Ⅱ
상심한 존재들을 위하여. 쇼펜하우어(1788~1860)
"우리는 각자 삶을, 무(無)의 지복한 휴식 가운데 쓸데없이 돌발한 하나의 에피소드로 보아도 무방하다. 인간이란 존재는 일종의 오류임에 틀림없다."
사랑이란 것은......성적 관게는 별도로 하더라도, 혐오스럽고 경멸할 정도이고 심지어 상극으로까지 보이는 사람에게도 자신을 맡기게 한다. 그러나 종(種)의 의지가 개인의 의지보다 훨씬 더 강하기 때문에 그 연인은 자신의 특질과 상반되는 모든 특질들에 눈을 감아버리고 모든 것을 간과하고 모든 것을 그릇되게 판단하고 자신의 열정의 대상이 된 인물과 자신을 영원히 함께 묶어 버린다. 그런 환상에 빠진 사람은 제 정신을 못차리게 되는데, 그 환상은 종의 의지가 다 충족되고 나면 금방 사라지고 이젠 평생을 혐오하면서 살아야 할 파트너만 남게 된다. 바로 여기서, 매우 이성적이고 심지어 탁월하기까지 한 남자들이 종종 잔소리가 심하고 악마같기도 한 여자들과 사는 이유, 그리고 그렇게 살면서도 왜 자신들이 그런 선택을 하게 되었는지를 인식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한 설명이 가능해 진다......사랑에 빠진 남자는 자기 신부에게서 자신에게 비참한 삶을 약속하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성격적인 혹은 기질적인 결함을 확실히 파악하고 쓰라림을 느낄지 모르지만, 그 문제 때문에 놀라 달아나지는 않는데..... 그 이유는 그 남자가 종국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그 자신의 이익이 아니라 아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제3자의 이익이기 때문이다. 비록 그 남자 본인은 자신이 추구하는 것이 마치 자신의 이익인 것 같은 환상에 빠져 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의지와 표상으로의 세계」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 괴테
그 자신의 삶의 여정에서, 그리고 삶의 불행에서 그는 이제 자신의 개인적인 운명보다는 전체로써 인류의 운명을 더 돌아볼 것이다. 따라서 그는 고통받는 존재로써보다는 세상을 아는 존재로써 행동해야 할 것이다. 「의지와 표상으로의 세계」
와인이 나를 '유쾌하게 만들 것'이라고 믿기 위해서는 먼저 내가 기독교인이 되어야만 했을 것이다. 말하자면 그것은 터무니 없는 것을 믿는 꼴이니까. 「이 사람을 보라」
외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 알랭드 보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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