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율, 버리는게 기본이다
부르보네 지방에서 나는 어느 사랑스러운 노처녀를 알게 되었다. 그녀는 엄청나게 많은 묵은 약들을 장 속에 간직하고 있었다. 그래서 장 속에는 더 이상 아무것도 넣을 자리가 없었다. 그런데 그녀는 이제 아무런 건강상의 문제가 없는 상태이기에, 나는 그녀에게 말해 보았다. 그렇게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것을 지니고 있는 것은 아무리 보아도 불필요한 일 같다고 말이다. 그러자 노처녀는 얼굴이 빨개졌다.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만 같았다.
그녀는 약병이며 통이며 튜브 따위를 하나하나 꺼내면서 말했다.
"이것 덕에 난 복통이 나았고 저것 덕에 인후염을 고쳤지요. 이 고약은 종기를 고쳐주었는데 혹시 그 종기가 재발할지도 모르잖아요. 그리고 이 알약은 변비가 생겼을 적에 먹으니 편안해지더군요. 또 이 기구로 말하자면, 흡입기가 분명한데 이제 완전히 쓸 수 없는 상태가 되었지 싶네요."
마침내 그녀는 이 모든 것을 옛날에 큰돈을 주고 산 것들이라고 털어놓았다. 그러자 나는 그녀가 그 약들을 버리지 못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바로 그 점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앙드레 지드의 《지상의 양식》에서 인용한 이야기다.
우리의 삶에는 끊임없이 새로운 일, 물건, 사람, 정보 등이 들어온다. 그런데 이렇게 들어온 것들을 버리지 않고 계속 쌓아두면 어떻게 될까? 한마디로 혼란 상태에 빠진다. 무슨 일을 하려고 해도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찾기가 어려워지니 능률이 오를 리 없고, 이미 가지고 있는 데도 불구하고 찾지 못해서 새로 구입하는 일까지 벌어진다.
그래서 요즘 이런 문제로 고통을 받고 있는 가정을 찾아 대신 정리를 해주고 정리하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정리 컨설턴트'라는 신종 직업이 한창 인기를 누리고 있다. 한국에서는 정리 컨설턴트가 아직은 생소한 직업이지만 미국의 경우에는 '미래 유망직종 20'에 몇 차례나 선정될 만큼 이미 보편화된 직업이다. 우리 주변에 정리의 문제로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는 얘기다.
'정리가 잘 되어 있다'라고 하면 대개 순서대로 잘 꽂혀진 책, 재활용품을 이용한 통에 예쁘게 담아둔 문구류, 똑같은 크기로 접은 옷가지 등이 떠오를 것이다. 하지만 이런 모습은 사실 정리보다는 '수납'이라고 해야 옳다. 정리는 엄격히 정의하자면 '필요한 것과 불필요한 것을 구분해서 불필요한 것을 버리는 행위'를 말한다. '버리는 일', 이것이 바로 정리의 핵심이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정리가 개인이나 가정에만 문제가 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정리의 문제는 사실 개인이나 가정보다 기업이 더 심각하다. 더욱이 많은 기업이 이것이 문제라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더 큰 문제다.
정리를 습관화하라
이 회사는 아침 8시 30분이 출근 시간으로 정해져 있지만, 8시 20분 이전에 이미 모든 직원들이 회사에 도착해 있다. 청소와 정리정돈을 위해서다. 직원들은 각자 구역을 나누어 청소를 하고 정리정돈을 하는데, 사무실과 화장실은 물론 현장의 바닥과 벽, 설비까지 포함된다. 그리고 각각의 물품을 확인하며 정해진 자리에 위치시킨다. 이 시간은 직급에 관계없이 모든 직원들이 참여한다. 사장도 예외가 없다. 매일 같이 반복되는 일상이며, 이런 ‘정리정돈’의 철학은 회사 곳곳에 깃들어 있다.
2000년 초, 퇴직금 3,700만 원으로 5평짜리 사무실에서 시작하여 6년 만에 업계 매출 1위를 달성했을 뿐만 아니라, 10년 만에 1,000억 원대의 매출을 올리며 등산장비 및 캠핑 장비계의 네이버로 불리는 오케이아웃도어닷컴의 이야기다. 이 회사의 장성덕 대표는 저서 《오케이아웃도어닷컴에 OK는 없다》에서 "모든 일의 시작은 정리정돈"이라며 이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렇다면 장 대표는 왜 이처럼 정리정돈을 강조하는 것일까? 그것은 정리정돈이 기업의 효율과 직결된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정리정돈이 안된 혼란한 현장에서는 엄청난 낭비가 발생한다. 그리고 어떤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이를 알아차리기 어렵다. 뿐만 아니라 이는 직원들의 의식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는 결코 현장을 깨끗하게 하거나 눈으로 보기에 멋있어 보이도록 하는 일이 아니라는 얘기다.
이와 같은 활동은 단지 오케이아웃도어닷컴에서만 하고 있는 일이 아니다. 제조업 분야에서는 이미 많은 회사들이 '5S'라는 활동을 하고 있다. 5S는 정리, 정돈, 청소, 청결, 습관화를 뜻하며, 모든 직원이 참여하는 체계적, 지속적 현장 효율화 활동을 말한다. 이들은 이 활동을 '현장의 숨쉬기 운동'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사람이 숨을 쉬지 않으면 살 수 없듯이, 살아 있는 현장이 되기 위해서는 결코 멈춰서는 안 될 꼭 필요한 활동이라는 말이다.
혹시라도 아직 이런 활동을 하고 있지 않은 기업이 있다면 이제부터라도 꼭 실시하기를 바란다. 그러면 그 효과가 얼마나 놀라운지 얼마 지나지 않아 확인하게 될 것이다.
오래된 관습을 버려라
1990년, 세계 최대의 수프회사로 유명한 캠벨수프(Campbell’s Soup)에 새로운 CEO가 취임했다. 하락세가 뚜렷한 이 어려운 회사에 부임한 사람은 데이비드 존슨(David Johnson). 그의 고민은 하나였다. 서서히 가라앉는 이 전통 있는 회사를 어떻게 살려야 할까? 상황을 전반적으로 검토하던 존슨에게 한 가지 궁금증이 생겼다. 토마토수프 판매촉진을 위해 매년 여는 가을 판촉행사에 생각보다 많은 돈이 들어가고 있었다. 그는 담당 임원에게 물었다.
"이 행사는 왜 하는 겁니까?"
회사에서 가장 많은 매출을 올려주는 제품을 위해 매년 치러온 행사인데 이걸 왜 하느냐? 신임 사장의 '우문'에 '현답'이 돌아왔다. 모든 캠벨수프 임직원이 다 아는 현답이었다.
"왜라니요? 제가 입사하기 전부터 해오던 건데요."
어떻게 그런 질문을 할 수 있느냐는 되물음이었다. 존슨이 다시 물었다.
"그러면 이 행사는 언제부터, 왜 시작된 겁니까?"
'그것도 모르느냐' 하던 직원들이 이번에는 조용히 눈만 깜박거렸다. 아무도 몰랐다. 나중에 자료를 뒤적여서야 이 행사가 1910년대에 시작된 유서 깊은 행사임을 알 수 있었다. 당시 캠벨수프는 토마토 수확철인 가을 8주 동안 모든 생산력을 토마토주스와 수프를 생산하는 데 투입하기로 하면서 그때까지 남아 있던 전년도 재고품을 다 털어버리고자 했고, 이 방침에 따라 대대적인 가을 판촉행사를 시작했던 것이다. 이 판촉행사가 성공을 거두면서 다음해에도, 그 다음해에도 열리게 됐고 규모는 계속 커져갔다. 기술이 변하고 시장이 변하고 세상이 변해서 굳이 가을 판촉행사를 하지 않아도 됐지만, 누구도 기원을 모를 만큼 오래된 전통인지라 당연히 해야 하는 줄로 알고 8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지속되어온 것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이는'수로내기'로 설명할 수 있다. 사람은 한 번 어떤 방식으로 성공하면 그 방식을 언제까지나 고집하는 심리적 경향이 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수로내기라고 한다. 동기와 동기를 만족하는 수단이 경험상으로 한 번 연결되면 저절로 수로가 파이는 것처럼 재삼재사 연결이 가능해진다는 메커니즘이다. 사람이 수로내기에 빠지면 고정된 발상의 틀에 갇혀 좀처럼 다른 발상을 하지 못한다.
이와 같은 수로내기는 기업에서도 똑같이 적용된다. 크게 성공을 거둔 기업들은 대부분 그러한 성공을 가능하게 했던 방식을 신앙처럼 맹목적으로 믿게 된다. 그리고 여기서 더 나아가 성공을 가능하게 했던 방식만 고수하면서 변화를 거부한다. 이것이 바로 기업에서의 수로내기다. 일찍이 IBM이 위기에 빠진 것도, 코닥이 파산을 한 것도 바로 이 수로내기 때문이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양면성을 갖는다. 전통도 마찬가지다. 전통이 깊다는 건 뭔가를 함부로 바꾸기 어렵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존슨은 이 전통이라는 명목 하에 '당연히 해왔던 것들'을 털어내기 시작했고 덕분에 회사는 서서히 일어날 수 있었다.
혹시 나의 삶, 우리 조직에도 '으레' 그리고 '당연히' 하고 있는 '가을 판촉행사'는 없는지, 새로운 계획을 세울 때 지금까지 늘 해왔고 당연히 해야 한다고 생각해왔던 것들 가운데 하지 않아도 되거나 달리 해야 할 것은 없는지 잘 살펴볼 일이다.
'뭘 할까?'보다 '뭘 그만둘까?'를 고민하라
역사상 가장 강력했던 몽골제국의 세조 쿠빌라이의 뛰어난 정치고문가였던 야율초재(耶律楚材)는 역사상 최고의 정치가로 손꼽힌다. 그는 연경이 몽고군의 손에 들어갔을 때 포로가 되었으나 그의 명성을 들어왔던 칭기즈칸이 간곡히 불러 등용한 사람이다. 그는 천성이 총명하고 충직하여 직언을 서슴치 않았고, 권세와 이익에 굴하지 않았다.
야율초재는 칭기즈칸과 오고타이칸 2대에 걸쳐 재상으로 봉직했는데, 아버지의 뒤를 이어 제위에 오른 오고타이칸이 야율초재에게 물었다
"나는 아버지가 이룩한 대제국을 개혁하려 한다. 좋은 방법이 있으면 말해보라."
이에 야율초재가 대답했다.
"한 가지 이로운 일을 시작하는 것은 한 가지 해로운 일을 없애는 것만 못하고, 한 가지 일을 만들어내는 것은 한 가지 일을 줄이는 것만 못합니다.(興一利不若除一害, 生一事不若滅一事)"
경영의 요체는 선택이다. 그리고 선택의 본질은 '트레이드 오프(Trade-off)', 즉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것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많은 리더들이 버려야 함에도 불구하고 버리지 않고 계속 더 하려고 한다. 버리기가 아까운 것이다. 경영상의 문제는 대부분 여기에서 발생한다.
그렇다면 왜 버리지 못할까? 그 이유로 '손실혐오(loss aversion)'와 '매몰비용 오류(sunk cost fallacy)'를 들 수 있다. 손실혐오란 똑같은 액수라도 얻은 것의 가치보다 잃은 것의 가치를 훨씬 크게 느끼는 심리적 현상을 말한다. 예컨대 10만원을 주웠을 때의 기쁨보다 수중의 10만원을 잃어버렸을 때의 고통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는 것이다. 매몰비용 오류란 이미 사용된 비용 때문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심리 상태를 말한다. 한마디로 그동안 투자한 것이 아까워 포기하지 못하는 것이다.
기존의 것을 버리지 않고 더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문제는 기업의 자원은 한계가 있다는 것. 따라서 리더는 어떤 곳에 자원을 투입하는 것이 효율적인지 판단하고 이에 집중해야 한다. 그럼에도 버리는 것이 아까워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겠다는 것은, 이것도 저것도 제대로 하지 않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이래서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 이에 대해 세계적인 경영학자 짐 콜린스(Jim Collins)는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자신이 해야 ‘할 일’ 리스트를 갖고 있는가? 또 '그만둘 일' 리스트는 있는가? 우리는 대부분 바쁘긴 하지만 규율이 없는 삶을 살아간다. 우리는 계속 늘어나는 해야 '할 일' 리스트를 가지고서, 하고, 하고, 하고, 또 더 하면서 도약의 계기를 만들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그게 성공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러나 좋은 회사를 위대한 회사로 도약시킨 사람들은 '할 일' 리스트만큼이나 '그만둘 일' 리스트도 많이 활용했다. 그들은 탁월한 규율을 보이며 관계없는 온갖 종류의 허섭쓰레기들을 정리했다."
'뭘 할까?'보다 '뭘 그만둘까?'를 고민하는 리더가 진정 훌륭한 리더라는 얘기다.
* 이 글은 월간 <공구 사랑> 2016년 4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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