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 동조 : 애빌린 패러독스
솔로몬 애쉬 교수의 실험은 개인이 집단 동조에 빠지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였다면, 애빌린 패러독스는 조직이 집단 동조에 빠질 때의 사례를 잘 보여준다. 제리 하비는 그의 저서 <생각대로 일하지 않는 사람들(The Abilene Paradox), 엘도라도, 20114>에서 조직이 집단동조에 빠지는 현상을 애빌린 패러독스를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1974년 7월 오후, 텍사스 주 콜맨(Coleman의 여름은 온도가 섭씨 40도에 육박할 정도로 무더웠다. 게다가 서부 텍사스 특유의 흙 먼지가 날리고 바람도 거세게 불었다. 오랜만에 처가를 방문한 나는 가족들과 함께 선풍기 앞에 모여앉아 시원한 레모네이드를 마시며 도미노 게임(dominoes game, 28개의 패를 갖고 하는 점수 맞추기 놀이) 즐기고 있었다. 가볍게 몸을 움직이면서 "잘 섞어요”라고 중얼거리며 느긋하게 패를 제자리에 놓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어느 모로 보나 그날 오후는 콜맨에서 보낼 수 있는 최고의 일요일이었다. 장인어른이 갑자기 “우리 애빌린에 가서 외식이나 하고 오지”라고 제안하시기 전까지는 말이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뭐? 애빌린? 이 더위 속에 먼지바람을 뒤집어쓰며 85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는 애빌린에 가자고? 그것도 에어컨도 없는 58년형 뷰익을 타고?' 그런데 아내가 "좋아요. 가서 저녁이나 먹고 오죠. 제리, 당신 생각은 어때?" 하며 맞장구를 치는 게 아닌가. 그래서 나도 마지못해 “그러지 뭐. 장모님도 함께 가실 거죠?"라고 말했다. 그러자 장모님도 기다렸다는 듯 대답하셨다. “물론이지, 나도 함께 가야지 애빌린에 가본 지도 꽤 오래 된 것 같네." 이렇게 해서 결국 우리는 고물 자동차를 타고 애빌린까지 갔다. 그리고 나의 우려는 그대로 적중했다.
애빌린에 도착했을 무렵 우리는 살을 태울듯한 뜨거운 열기 때문에 땀과 먼지로 범벅이 돼 있었고, 카페테리아의 음식은 소화제 광고 소품으로나 쓰면 제격일 정도로 형편없었다. 그렇게 왕복 170킬로미터를 달려 4시간쯤 지난 뒤 우리는 더위에 지칠 대로 지친 상대로 다시 콜맨에 도착했다. 그리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모두 선풍기 앞으로 달려가 한참을 앉아 있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뒤 나는 썰렁한 분위기를 깨기 위해 예의상 이렇게 말했다. "오늘 외식, 그런대로 괜찮았죠?" 하지만 아무도 대꾸를 하지 않았다. 잠시 후 장모님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입을 여셨다.
"솔직히 말해서 난 하나도 안 좋았네. 집에 그냥 있을 걸 그랬어. 나는 이 양반하고 너희들이 애빌린에 가고 싶다기에 따라 갔을 뿐이지, 모두가 가고 싶어 하지만 않았어도 안 갔을 거야." 나는 기가막혔다. "모두라니, 무슨 말씀이 세요? 저는 그 모두에서 빼주세요. 저야말로 가고 싶지 않았어요. 장인장모님과 이 사람이 가고 싶어 하니까 할 수 없이 따라간 거라고요.”
그러자 아내가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왜 날 탓해요? 당신하고 아빠 엄마가 가고 싶어 한 거잖아요. 나는 그냥 분위기 깨기 싫어서 같이 간 것뿐이에요. 혼자였다면 내가 미쳤지, 설마 이런 더위에 거기까지 갔겠어요?"
"이런 젠장.” 마침내 장인어른도 입을 떼셨다. 이쯤 되면 이 분이 무슨 말씀을 하실지는 안들어도 뻔했다. “이것 봐, 나라고 애빌린에 가고 싶었겠어? 그냥 모두 따분해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 뿐이야. 딸 내외가 모처럼 내 집에 왔는데 난 그저 즐겁게 해주고 싶었을 뿐이라고. 나야말로 도미노 게임이나 하고 냉장고에서 음료수나꺼내 먹으면서 편하게 쉬고 싶었단 말이야.” 이렇게 한참 서로를 탓한 후에야 우리는 겨우 조용해질 수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난 하나도 안 좋았네. 집에 그냥 있을 걸 그랬어. 나는 이 양반하고 너희들이 애빌린에 가고 싶다기에 따라 갔을 뿐이지, 모두가 가고 싶어 하지만 않았어도 안 갔을 거야." 나는 기가막혔다. "모두라니, 무슨 말씀이 세요? 저는 그 모두에서 빼주세요. 저야말로 가고 싶지 않았어요. 장인장모님과 이 사람이 가고 싶어 하니까 할 수 없이 따라간 거라고요.”
그러자 아내가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왜 날 탓해요? 당신하고 아빠 엄마가 가고 싶어 한 거잖아요. 나는 그냥 분위기 깨기 싫어서 같이 간 것뿐이에요. 혼자였다면 내가 미쳤지, 설마 이런 더위에 거기까지 갔겠어요?"
"이런 젠장.” 마침내 장인어른도 입을 떼셨다. 이쯤 되면 이 분이 무슨 말씀을 하실지는 안들어도 뻔했다. “이것 봐, 나라고 애빌린에 가고 싶었겠어? 그냥 모두 따분해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 뿐이야. 딸 내외가 모처럼 내 집에 왔는데 난 그저 즐겁게 해주고 싶었을 뿐이라고. 나야말로 도미노 게임이나 하고 냉장고에서 음료수나꺼내 먹으면서 편하게 쉬고 싶었단 말이야.” 이렇게 한참 서로를 탓한 후에야 우리는 겨우 조용해질 수 있었다.
우리 네 사람, 분별력 있는 성인인 우리 네 사람이 결국 누구도 가고 싶지 않았던 애빌린에 다녀왔던 것이다. 그것도 용광로 같은 열기를 뚫고 먼지바람을 뒤집어쓴 채 왕복 170킬로미터의 사막을 달려 쥐구멍 같은 식당에서 맛없는 음식을 먹으려고 움직인 것이다. 도무지 이런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당시에는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콜맨에서의 그 일이 있은 후 나는 같은 상황에 처한 조직을 목격할 수 있었고 그 조직을 컨설팅 했으며 함께 일하기도 했다. 수많은 조직들이 실제로 댈러스나 휴스턴, 도쿄에 가고 싶어 하면서도 애빌린으로 가는 길을 선택했다. 그렇게 본인의 익사와는 달리 잘못된 행선지를 선택했을때, 조직의 구성원들이 겪어야 하는 고통과 경제적 손실은 우리 네 식구가 애빌린에서 외식을 했던 것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컸다.
나는 조직의 구성원들이 아무도 원치 않는 여행을 하는 그러한 성향을 '애빌린 패러독스'라고 부른다. 어느 조직이 애빌린 패러독스에 빠지게 되면 그 조직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과는 반대되는 행동을 취하게 되며, 결과적으로 원하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게 된다. 대개의 경영 이론 전문가들은 갈등관리가 조직이 직면한 가장 큰 난제 중 하나라고 지적한다. 하지만 애빌린 패러독스의 논리에 따르면 합의관리를 하지 못함으로써 조직이 기능장애에 빠지는 게 더 큰 문제다.
왜 아무도 NO라고 말하지 않는가? 자신이 속한 조직에서 스스로 느끼고 생각하는 대로 행동할 수 있는가? 만일 아무런 거리낌 없이 조직 내에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면서 살고 있다면 당신은 그 조직의 슈퍼스타이거나 이미 조직을 떠난 사람일 것이다. 대부분의 조직 구성원들은 자신들이 알고 있는 조직의 문제와는 상반되는 행동을 취한다. 아니, 이것에 대해 별다른 표현을 하지 않는다. 전혀 합리적인 행동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한다. 왜냐하면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또 그것에 따르는 것은 스스로를 불안하게 만들고 위험에 빠뜨리기 때문이다. 어떤 불안이냐고 묻는다면 당신은 조직 생활을 해보지 않았거나 조직의 생리에 대해 아주 무지한 사람이다. 애빌린 패러독스는 낯선 현상이 아니다. 조직을 경험해야 하는 우리 모두의 숙명이다. 애빌린 패러독스에 빠진다는 것은 구성원들이 조직의 압력 때문에 자신들이 진정 원하는 것과 반대되는 행동을 취하는 것이다. 조직 속에서 이런 일이 쉽게 일어나는 1차적 이유는 사람들이 진정으로 자신의 생각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조직 속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자신의 생각이나 판단을 분명히 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며, 시키면 시키는 대로 그냥 그렇게 하면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거나 또는 조직이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굴러간다고 생각하는 경우 이런 상황은 아주 쉽게 일어난다.
애빌린 패러독스가 일어나는 상황은 일상적 업무나 조직의 사활이 걸린 큰 프로젝트의 경우나 동일하다. 물론 자신이 스스로 그런 역설적인 행동을 한다는 것을 조직원들은 알지 못한다. 위에서 시키는 것을 그냥 따라야 하는 사람들의 경우 자신에게는 거부할 권리가 없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흔히 말하는 "다른 대안이 없다"라는 말은 애빌린 패러독스에 빠졌다는 것을 기장 쉽게 판단할 수 있는 증거다. 저자는 애빌린 패러독스를 합의관리의 실패 현상으로 지적한다.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그냥 합의를 해주는 상황 말이다. 실패의 상황에서 사람들은 대부분 처음부터 그것에 동의하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모두 애빌린에 가는 데 동의 했으면서도 정작 돌아와서는 아무도 그곳에 가기를 원하지 않았다고 말하며 상대방을 서로 비난하는 것과 같은 현상이다.
애빌린 패러독스가 일어나는 상황은 일상적 업무나 조직의 사활이 걸린 큰 프로젝트의 경우나 동일하다. 물론 자신이 스스로 그런 역설적인 행동을 한다는 것을 조직원들은 알지 못한다. 위에서 시키는 것을 그냥 따라야 하는 사람들의 경우 자신에게는 거부할 권리가 없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흔히 말하는 "다른 대안이 없다"라는 말은 애빌린 패러독스에 빠졌다는 것을 기장 쉽게 판단할 수 있는 증거다. 저자는 애빌린 패러독스를 합의관리의 실패 현상으로 지적한다.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그냥 합의를 해주는 상황 말이다. 실패의 상황에서 사람들은 대부분 처음부터 그것에 동의하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모두 애빌린에 가는 데 동의 했으면서도 정작 돌아와서는 아무도 그곳에 가기를 원하지 않았다고 말하며 상대방을 서로 비난하는 것과 같은 현상이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기본적인 이유를 사람들은 조직의 힘 또는 집단의 압력에서 찾는다. 합의가 있었기에, 정확히 말하면 집단 동조였기에 나와는 상관없는 결과라고 강변한다. 하지만 집단 동조는 이런 일을 일으키는 원인이나 이유가 될 수 없다. 현상은 집단 동조나 집단 압력인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이유는 다른 곳에 있다. 가장 큰 이유는 문제를 파악하거나 인식하는 과정에서 또는 문제를 해결하려는 과정에서 개개인이 자신들의 생각이나 의견을 분명하게 표현하지 않기 때문이며 또는 표현 못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어떤 조직 혹은 팀의 결론이나 합의가 분명할수록 또 당연한 결론이 무엇이라고 쉽게 추측할 수 있을수록 그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익숙한 과제뿐만 아니라 새롭고 낯선 문제의 경우에도 그러하다. 이는 과제의 성격과는 관계 없다.
애빌린 패러독스는 자신이 문제를 직면하고 그것을 해결하려고 노력해야 하는 책임에서 벗어나기 위한 변명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상상으로 만들어진 조직의 압력을 이용하는 현상인 것이다.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하는 많은 행동들은 사실은 개인이 집단에 대해 가지는 불안의 표현이다. 아니, 자신이 조직의 폭압에 따르지 않으면 어떻게 될 것이리고 상상한 부정적 결과다. 이런 모순은 조직의 관행, 관습이 너무나 명백하고 또 누구나 알고 있거나 또는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조직의 경우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 이처럼 관료화된 조직은 애빌린 패러독스의 주된 생산처다.
어떤 과제를 수행할 때마다 항상 선례를 찾고 더 많은 자료와 정보로 꾸며진 계획서나 보고서가 중요하게 요구되는 조직이라면 항상 애빌린 패러독스를 초래하게 된다. 조직의 구성원들은 자신의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이 반갑지 않는 손님을 묵묵히 참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스스로 절망과 낙담을 안고 침몰해 가는 배에서 뛰어내려야 하기 때문이다. 위험스럽고 급격하게 변화하는 환경이라도 어떻게든 문제가 잘 해결되고 성공적인 프로젝트 수행이 이뤄질 것이라고 기대할 뿐이다. 이 모든 과정이 진실을 왜곡하는 것일지라도 왜곡된 의사소통이 합의 과정을 만들어내기에 그냥 버틸 수 있다.
어떤 과제를 수행할 때마다 항상 선례를 찾고 더 많은 자료와 정보로 꾸며진 계획서나 보고서가 중요하게 요구되는 조직이라면 항상 애빌린 패러독스를 초래하게 된다. 조직의 구성원들은 자신의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이 반갑지 않는 손님을 묵묵히 참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스스로 절망과 낙담을 안고 침몰해 가는 배에서 뛰어내려야 하기 때문이다. 위험스럽고 급격하게 변화하는 환경이라도 어떻게든 문제가 잘 해결되고 성공적인 프로젝트 수행이 이뤄질 것이라고 기대할 뿐이다. 이 모든 과정이 진실을 왜곡하는 것일지라도 왜곡된 의사소통이 합의 과정을 만들어내기에 그냥 버틸 수 있다.
저자는 애빌린 패러독스가 발생하는 가장 큰 이유를 구성원들이 스스로 상상하는 조직의 강제적 압력에 관한 착각이라고 지적한다. 자신이 동의하지 않는 합의가 마치 집단의 폭력적 압력이 행사되기 때문에 이뤄진다고 상상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조직 내에서의 합의관리의 문제는 바로 조직 속의 개인이 잘못된 현실인식을 하기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다. 또한 저자는 애빌린 패러독스를 이해할 수 있다면, 아니 조직 속에서 스스로 애빌린 행의 자동차를 타고 있는지 의문을 던질 수 있다면 조직에서 수행하는 프로젝트나 문제에 대한 창의적인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을 제시한다.
저자는 애빌린 패러독스에서 벗어나는 방법의 하나로 나치에 대응한 덴마크인 이야기를 사례로 든다.
나치가 덴마크 유대인을 강제 이송하는 음모에 덴마크인들을 끌어들이려고 했을 때, 덴마크인들은 강하게 저항했다. 그 저항을 직접 경험한 독일인들은 생각을 바꾸었고, 원칙에 근거한 저항을 만나면서 진정한 용기를 보여주는 작은 시작이 가능해졌다. 덴마크인들의 저항으로 덴마크에서 유대인을 추방하려는 나치의 시도는 좌절됐다. 역설적으로 덴마크인의 저항은 유대인뿐만 아니라 나치에 대한 확고한 사랑의 표현이기도 했다. 그것이 사랑의 표현인 까닭은, 유대인 뿐만 아니라 제2의 희생자가 될 수도 있었던 덴마크인과 나치 모두에게 생존할 가능성을 높여 주었기 때문이다. 유대인을 이송하려는 음모에 가담하지 않음으로써 덴마크인들은 가장 광범위한 의미의 사랑을 실천한 것이다.
그처럼 어려운 상황에서도 사랑을 표현한 덴마크인들처럼 모든 조직에서도 '덴마크인의 사랑'이 가능하다고 확신한다. 그런 사랑을 하는 사람들은 부족한 물적 자원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서로에 대한 깊은 애정을 표현할 능력과 의지를 갖고 있다. 그런 관심과 애정을 표현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조직이 생존해 번창할 가능성을 높여주는 방식으로 표현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구체적인 방법이 궁금해질 수 밖에 없다. 특히 다른 사람들을 해고시켜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해서는 덴마크인들이 어떻게 그렇게 했는지 잘은 모르겠다. 그러나 서로의 관계가 원수가 아니라 사랑의 관계가 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확실히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것은 바로 조직에서 '아돌프 아이히만'을 내쫓고 그 자리에 '덴마크인'을 앉히는 것이다.
항상 '경영'의 핵심은 사람이라고 한다. 하지만 정작 조직에서는 '성과관리', '팀빌딩', '변화관리' 등의 단어로 사람은 관리와 변화의 대상이 되고 만다. 사육되지 않고, 함께 성장하고 싶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리더십과 팔로워십 능력의 핵심이 '요령'과 '눈치'라고 하면 드러내지는 않더라도 공감할 것이다. 조직에서 벌어지는 리더십교육을 통해서 우리는 리더십의 역설을 체험한다. 개인적으로 영웅적이고 훌륭한 리더십을 본받고 싶은데, 실제로 그런 리더십을 발휘하는 사람은 내 주위에 없다는 사실이다. 어떻게 하면 나도 그렇게 될 수 있을까 하는 한숨만 쉬게 된다. 나와 너무 다른 영웅적인 사물과 나의 간격을 확인하는 시간이 된다.
조직 속에서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이 스스로 리더의 역할을 하기는 커녕 자신이 속한 팀이나 조직은 자신이 바라는 것과는 다르게 굴러간다고 느끼기 쉽다. 제대로 될 것 같지 않은 일이 아무도 책임지지 않은 채 진행되기도 한다. 모두들 안 될 것을 알면서도 그냥 한다.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다는 무기력한 상황을 경험하기도 하지만 직접 밖으로 내기는 쉽지 않다. 용감하게 나서서 "그렇게 하면 안 된다"라고 하고 싶지만 그것은 바로 죽음의 키스라는 것을 안다. 마음 속에 꼭꼭 담아 두었다가 술자리에서나 '그 바보 같은 프로젝트'를 하려는 사장, 임원, 팀장을 안주 삼아 푸념이나 하는 것이 현명한 일임을 안다.
제리 하비가 1988년에 쓴 책을 2018년에 지금 읽고 공감한다. 애빌린 패러독스(The Abilene Paradox)를 이해하고, 원칙에 근거한 진정한 용기를 내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래서 월요일이 오기를 간절히 바라는 사람들로 가득 찬 우리들의 조직이 되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생각대로 일하지 않는 사람들(The Abilene Paradox), 제리 하비, 엘도라도,2014
*제리 하비가 1988년에 쓴 책을 2018년 지금 읽고 공감한다.
'책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글쓰기] 현장에 답이 있다. (0) | 2018.10.20 |
---|---|
534. 보이지 않는 고릴라, 크리스토프 차브리스, 다니엘 사이먼스, 김영사, 2011 (0) | 2018.10.01 |
[글쓰기]작은 성공 경험 (0) | 2018.09.30 |
[글쓰기]산티아고 대성당의 '영광의 문' 조각상 (0) | 2018.09.30 |
[글쓰기]힘든, 많은, 꾸준한 (0) | 2018.09.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