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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8. 사피엔스, 유발 하라리, 김영사, 2015.

햇살처럼-이명우 2020. 4. 29. 11:13

578. 사피엔스, 유발 하라리, 김영사, 2015.

    역사과정을 통해 죽음은 언제나 형이상학적 현상으로 인식되었다. 우리가 죽는 것은 신이, 우주가, 대자연이 그렇게 규정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죽음을 혹시라도 물리칠 수 있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 재림 같은 모종의 형이상학적 몸짓 뿐이라고 사람들은 믿게 되었다.
   하지만 최근 우리는 죽음이 기술적인 문제라고 재정의 하였다. 매우 복잡한 문제이긴 하지만, 기술적인 문제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과학은 모든 기술적 문제에 모종의 기술적 해결책이 있다고 믿는다. 이제 우리는 죽음을 극복하기 위해 예수나 부처를 기다릴 필요가 없다. 전통적으로 죽음은 사제와 신학자의 전공이었지만 오늘날 이 분야를 공학자들이 넘겨받았고, 실험실의 괴짜 연구자 두 명이 이를 해결해낼 수도 있다. 2년 전 구글은 '캘리코'라는 자회사를 설립했는데, 그 회사의 목표는 '죽음'이라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한국은 다른 어느 지역보다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딜레마를 더욱 압축해서 보여주는 곳이기 때문이다. 한 세기 안에서 파괴적인 전쟁과 식민지를 모두 겪었고, 매우 짧은 기간 안에 저개발 전통사회에서 선진 경제국가이자 세계에서 가장 앞선 기술력을 가진 나라 중 하나로 성장했다. 게다가 오늘날 정보기술과 바이오기술 분야의 혁명을 선도하는 중이다. 덕분에 한국인들은 첨단 기술의 전도유망함과 더불어 위험도 두 배로 많이 느끼고 있다.

  GDP와 생활수준이 극적으로 올라가는 동안 자살율도 치솟았다.그래서 오늘날 한국은 선진국 중 최고, 세계 전체로 보아도 가장 높은 수준에 육박하는 자살율을 보이고 있다. 한국은 행복도 조사에서도 멕시코, 콜롬비아, 태국 등 경제적으로 더 어려운 나라 보다고 뒤처져있다. 이는 가장 널리 통용되는 역사법칙의 어두운 단면을 보여준다. 말하자면 인간은 권력을 획득하는데는 매우 능하지만 권력을 행복으로 전환하는데는 그리 능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한국이 가르쳐주는 것이 하나 더 있다. 기술은 이야기의 절반에 불과하고, 마침내 사람들이 기술로 무엇을 할 것인지에 따라 모든 것이 결정된다는 사실이다. 지난 1945년 한반도 남쪽과 북쪽의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었던 기술은 똑같았다. 하지만 오늘날 남북한의 기술격차는 세계에서 가장 크다. 동일한 역사와 언어와 전통을 지닌 동일한 민족의 사람들이 거의 비슷한 기술을 사용해서 완전히 다른 사회를 건설한 것이다.

  2015년, 전 세계 모든 지역의 사람들은 놀라운 신기술에 접근할 수단을 가지려 고군분투하고 있다. 하지만 이 기술은 우리들에게 그것으로 무엇을 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유전공학, 인공지능 그리고 나도기술을 이용해 천국을 건설할 수도 있고, 지옥을 만들수도 있다. 현명한 선택을 한다면 그 혜택은 무한할 것이지만 어리석은 선택을 한다면 인류의 멸종이라는 비용을 치르게 될 수도 있다. 현명한 선택을 할지의 여부는 우리 모두의 손에 달려있다. 2015년11월 유발 노아 하라리 


차례

제1부. 인지혁명

  1. 별로 중요치 않은 동물

  2. 지식의 나무

  3. 아담과 이브가 보낸 어느 날

  4. 대홍수

제2부. 농업혁명

  5. 역사상 최대의 사기

  6. 피라미드 건설하기

  7. 메모리 과부하

  8. 역사에 정의란 없다

제3부.

  9. 역사의 화살

  10. 돈의 향기

  11. 제국의 비전

  12. 종교의 법칙

  13. 성공의 비결

제4부.

  14. 무지의 발견

  15. 과학과 제국의 결혼

  16. 자본주의의 교리

  17. 산업의 바퀴

  18. 끝없는 혁명

  19. 그리고 그들은 행복하게 살았다.

  20. 호모 사피엔스의 종말

후기. 신이된 동물

옮긴이의 말


 

제1부. 인지혁명


  역사의 진로를 형성한 것은 세 개의 혁명이었다. 인지혁명, 농업혁명, 과학혁명. 약 7만년 전에 일어난 인지혁명은 역사의 시작을 알렸다. 약 1만2천년 전에 발생한 농업혁명은 역사의 전진속도를 빠르게 했다. 과학혁명이 시작된 것은 불과 5백년 전이다. 이 혁명은 역사의 종말을 불러올지도 모르고 뭔가 완전히 다른 것을 새로이 시작할지도 모른다. 이들 세 혁명은 인간과 그 이웃 생명체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이것이 이 책의 주제다.


  나는 호모 사피엔스 종의 일원을 지칭하는 표현으로 '사피엔스'라는 용어를 주로 사용하겠고, '인류(human)'란 표현은 '호모 속에 속하는 현존하는 모든 종'을 지칭하는 의미로 쓰겠다.

  인류는 약 250만년 전 동부 아프리카의 '오스트랄로 피테쿠스'에서 진화했다. 오스트랄로 피테쿠스는 우리보다 더 오래된 유인원의 한 속으로 '남쪽의 유인원'이란 뜻의 라틴어 이름이다.

 

  유럽과 서부 아시아의 인류는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네안데르 골짜기에서 온 사람-네안데르탈인)'으로 진화했다.~ 아시아 동쪽에는 호모 에렉투스가 살았다. 이들 '똑바로 선 사람'은 그 지역에서 2백만년 가까이 살아남아, 가장 오랜 지속된 종이 되었다.

  '호모 사피엔스(슬기로운 사람)' 우리는 뻔뻔스럽게도 스스로에게 이름 붙였다.   


  사실, 2백만년 전부터 약 1만년 전까지 지구에는 다양한 인간 종이 동시에 살았다. 왜 안그랬겠는가? 오늘날에도 여우, 곰, 돼지 등 수 많은 종이 동시대를 살지 않는가. 몇만년 전의 지구에는 적어도 여섯 종으 인간이 살고 있었다. 여기서 이상한 점은 옛날에 여러 종이 살았다는 사실이 아니라 오히려 지금 딱 한 종만 있다는 사실이다. 더구나 이 사실은 우리 종의 범죄를 암시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일부 학자는 익혀먹는 화식(火食)의 등장으로 인간의 창자가 짧아진 것, 뇌가 커진 것 사이에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고 생각한다. 기다란 창자와 커다란 되를 함께 유지하기는 어렵다. 둘 다 에너지를 무척 많이 소모하기 때문이다. 화식은 창자를 짧게 만들어서 에너지 소비를 줄일 수 있게 해주었고, 의도치 않은 이런 변화 덕분에 네안데르탈렌스스와 사피엔스는 커다란 뇌를 가질 수 있었다.  


  호모 사피엔스는 무엇보다 사회적 동물이다. 사회적 협력은 우리의 생존과 번식에 핵심적 역할을 한다. 개별 남성이나 여성이 사자와 들소의 위치를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그 보다는 무리 내이 누가 누구를 미워하는지, 누가 누구와 잠자리를 같이 하는지, 누가 정직하고 누가 속이는지를 아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40~50명 정도의 사람들 사이에서 수시로 변해가는 관계를 저장하고 추적하는데 필요한 정보의 양은 어마어마하다.(50명으로 구성된 무리에는 1,225개의 일대일 관계가 있으며, 이보다 복잡한 사회적 조합이 무수히 많이 존재한다.)


  하지만 허구 덕분에 우리는 단순한 상상을 넘어서 집단적으로 상상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성경의 창세기, 호주 원주민의 드림타임 신화, 현대 국가의 민족주의 신화와 같은 공통의 신화를 짜낼 수 있다. 그런 신화들 덕분에 사피엔스는 많은 숫자가 모여 유연하게 협력하는 유래 없는 능력을 가질 수 있었다. (전설, 신화, 신, 종교는 인지혁명과 함께 처음 등장했다. 이전의 많은 동물과 인간 종이 "조심해! 사자야"라고 말할 수 있었다면, 인지혁명 덕분에 호모사피엔스는 이렇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사자는 우리 종족의 수호령이다." 허구를 말할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사피엔스가 사용하는 언어의 가장 독특한 측면이다.)


  개미는 우리가 남긴 것이나 먹고, 침팬지는 동물원이나 실험실에 갇혀 있는데 비해 사피엔스가 세상을 지배하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오늘날 수천명의 프랑스 신부들이 일요일마다 교구 성당에서 여전히 성체(예수의 몸, 빵의 형상을 띤다)를 창조해 내는 것과 매우 유사하다. 그 모두가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그리고 그 이야기를 믿게 만드는 것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활동들이다. 프랑스 신부의 경우에는 카톨릭 교회에서 말하는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핵심이다. 신성한 복장을 한 카톨릭 신부가 적절한 순간에 엄숙하게 말을 하면, 평범한 빵과 포도주가 신의 살과 피로 바뀐다. 신부가 라틴어로 "Hoc est corpus meum(이 것은 내 몸이다.)" 이라고 야릇한 주문을 외우면, 빵은 그리스도의 살로 전환된다. 신부가 모든 절차를 준수하는 것을 본 프랑스의 경건한 카톨릭 신자 수백만 명은 축성을 받은 빵과 포도주에 정말 하느님이 임한 것처럼 행동한다.


  대부분 인권운동가들은 인권이 존재한다고 진지하게 믿는다. 2011년 유엔이 리비아 정부에 시민의 인권을 존중하라고 요구했을 때 거짓말을 안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설령 유엔도 리비아도 인권도 우리의 풍부한 상상력이 만들어낸 허구일지라도 말이다. 인지혁명 이후, 사피엔스는 이중의 실재 속에 살게 되었다. 한 쪽에는 강, 사자, 나무라는 객관적 실재가 있다. 다른 한 쪽에는 신, 국가, 법인이라는 가상의 실재가 존재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가상의 실재는 점점 더 강력해졌고, 오늘날에 이러러서는 강과 나무와 사자의 생존이 미국이나 구글 같은 가상의 실재들의 자비에 좌우될 지경이다.


  일대일, 십대십으로 보면 우리는 당황스러울 정도로 침팬지와 비슷하다. 심각한 차이가 나는 것은 개체수 150명이라는 임계치를 초과할 때 부터다. 숫자가 1천~2천명이 되면, 차이는 엄청나게 벌어진다. 만일 수천마리의 침팬지를 텐안먼 광장이나 월스트리트, 바티칸, 국회의사당에 몰아 넣으려 한다면 그 결과는 아수라장일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그런 장소에 정기적으로 수천명씩 모인다. 인간은 교역망이나 대중적 축하 행사, 정치제도 등의 질서 있는 패턴을 함께 창조한다. 혼자서는 결코 만들 수 없었던 것들을 말이다.  우리와 침팬지의 진정한 차이는 수많은 개인과 가족과 집단을 결속하는 가공의 접착제에 있다. 이 접착제는 인간을 창조의 대가(大家)로 만들었다.


  일부일처제와 핵가족의 형성은 인간행태의 핵심


  농업혁명을 밀의 관점에서 생각해보자. 1만년 전 밀은 수 많은 잡초 중 하나일 뿐으로서 중동의 일부지역에서만 살고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불과 몇 천년 지나지 않아 세계 모든 곳에서 자라게 되었다. 생존과 번식이라는 진화의 기준에 따르면 밀은 지구 역사상 가장 성공한 식물이 되었다. 북미의 대초원 지역 같은 곳에는 1만년 전 밀이 한 포기도 없었지만 지금은 수 백만 킬로미터를 걷고 또 걸어도 밀 이외의 다른 식물을 볼 수가 없다. 세계적으로 밀이 경작되는 지역은 225만 제곱킬로미터쯤 되는데 이는 브리튼 섬(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포함)의 열 배에 이른다.


  농사의 스트레스는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것은 대규모 정치 사회 체제의 토대였다. 슬프게도 부지런한 농부들은 그렇게 힘 들여 일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원하던 경제적으로 안정된 미래를 슬프게도 얻지 못했다. 모든 곳에서 지배자와 엘리트가 출현했다. 이들은 농부가 생산한 잉여식량으로 먹고 살면서 농부에게는 겨우 연명할 것 밖에 남겨주지 않았다.

  이렇게 빼앗은 잉여 식량은 정치, 전쟁, 예술, 철학의 원동력이 되었다. 그들은 왕궁과 성채, 기념물과 사원을 지었다. 근대 후기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90%는 아침마다 일어나 구슬같은 땀을 흘리며, 땅을 가는 농부였다. 그들의 잉여생산이 소수의 엘리트를 먹여 살렸다. 왕, 정부관료, 병사, 사제, 예술가, 사색가......역사책에 기록된 것은 이들 엘리트의 이야기다. 역사란 다른 모든 사람이 땅을 갈고 물을 운반하는 동안 극소수의 사람이 해온 무엇이다.


  오늘날 종교는 흔히 차별과 의견충돌과 분열의 근원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실상 종교는 돈과 제국 다음으로 강력하게 인류를 통일시키는 매개체다. 모든 사회질서와 위계는 상상의 산물이기 때문에 모두 취약하게 마련이다. 사회가 크면 클 수록 더욱 그렇다. 종교가 역사에서 맡은 핵심적 역할은 늘 이처럼 취약한 구조에 초월적 정당성을 부여하는데 있었다. 종교는 우리의 법은 인간의 변덕의 결과가 아니라 절대적인 최고 권위자가 정해 놓은 것이라고 단언한다. 이러면 최소한 몇몇 근본적인 법 만큼은 도전받지 않을 수 있었으므로, 사회의 안정을 확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따라서 종교는 "초인적인 질서에 대한 믿음을 기반으로 하는 인간의 규범과 가치 체계"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종교는 보편적이고 선교적이다. 그래야 한다.


  성경이나 코란, 베다, 유교의 경전에는 방정식, 그래프, 계산이 거의 없다. 전통적 신화와 서적이 보편 법칙을 서술할 때는 수식이 아니라 이야기 형태로 제시했다.


  워털루 전투(1815년)가 끝난 다음 날 아침 야전병원 근처에선 톱질로 잘려나간 팔다리가 무더기로 쌓여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 시절 군에 징집된 목수와 백정은 흔히 의무대로 보내졌다. 수술에는 칼과 톱을 다루는 기술 외에는 더 필요한 것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과학과 제국과 자본 사이의 되먹임 고리는 논쟁의 여지는 있을지언정 아마 지난 5백년간 역사의 가장 중요한 엔진이었을 것이다. 


현대 과학과 자본주의


  19세기와 20세기에는 기술이 가장 중요한 요인이었지만, 근대 초기에는 기술의 중요성에 한계가 있었다. 핵심요인은 식물을 찾는 식물학자와 식민지를 찾는 해군장교가 비슷한 사고방식을 가졌다는 데 있었다. 과학자와 정복자는 둘 다 무지를 인정하는데서 출발했다. 이들은 "저 밖에 무엇이 있는지 나는 모른다."고 말했다. 이들은 둘 다 밖으로 나가서 새로운 발견을 해야겠다는 강박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얻은 새로운 지식이 자신을 세계의 주인으로 만들어주기를 둘 다 희망했다.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은 과학 혁명의 기초가 되는 사건이었다. 그것은 유럽인에게 과거의 전통보다 지금의 관찰 결과를 더 선호하라고 가르쳐 주었다.


  네덜란드에서 가장 유명한 주식회사는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로, 1602년(선조 32년 임진왜란 후) 설립 인가를 받았다.당시는 네덜란드가 스페인의 지배를 떨쳐버리는 투쟁을 하던 시기로, 스페인이 발사한 대포 소리가 암스테르담의 성벽 멀지 않은 곳에서 들리던 시절이었다.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는 주식을 팔아서 마련한 돈으로 선박을 건조했고, 그 배를 아시아로 보내서 중국, 인도, 인도네시아의 재화를 실어왔다.


2016.9.17. 토, 추석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