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5. 악령 上,下, 도스토예프스키, 범우사, 1991.
"기만이 죽음을 당할 것입니다. 누구든 최고의 자유를 원하는 사람은 반드시 자살할만 한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자살할 용기를 가진 사람은 기만의 비밀을 파악한 사람입니다. 그 이상의 자유는 없습니다. 그 속에 모든 것이 있습니다. 그 이상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자살할 용기가 있는 사람은 이제 신이 된 겁니다. 신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현재 상태에서는 누구나 할 수 있지요. 그러나 아직까지는 아무도 한 사람이 없습니다."
"공포를 죽이기 위하여 자살한 사람만이 비로소 신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란 자기의 고결한 마음 하나 때문에 정말 죽을 수 있는 것일까요? ...... 만일 그렇지 못하다면, 입을 다물라. 소망 잃은 심장이여" (꾸꼴리니크의 <회의(懷疑)>란 시의 일절>
"완전한 한 사람의 인간이 행복을 얻었을 경우, 이미 시간이란 개념은 없어지고 마는 법입니다.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대단히 심오한 사상입니다."
"그럼, 도대체 어디로 숨어버리는지요?"
"아무데로나 숨어버리진 않습니다. 시간이란 물건이 아니라, 관념이니까요. 마음 속에서 꺼져버리는 거지요."
" (......)그 분은 계시다. 그러나 아무도 본 사람이 없다. 어딘가 몸을 숨기고 있다. 이렇게 생각하게끔 해줘야 합니다. 그러나 십만 중에 한 사람한테는 보여줘도 무방합니다. 그러면 그 친구는 러시아를 사방팔방 돌면서 '보았다, 보았다'고 외치고 다닐 겁니다. 싸바오프의 神, 이반 필립뽀비치 조차도 마차를 타고 승천하는 걸 군중이 '지금 이 눈으로' 직접 보았다고 하지 않습니까~"
내가 이 때까지의 생활에서 경험한 바로는, 예사롭지 않은 치욕에 가득 찬 비굴하고, 더럽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스꽝스러운 처지에 놓이게 되면, 무한한 본노와 더불어 그야말로 비길데 없는 쾌감이 샘솟는 것이 보통이었다. 범죄의 순간에도, 생명에 위험을 느끼는 순간에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만일에 무엇을 훔치는 일이 있었다면, 나도 절도행위를 함에 있어서 나의 누추함을 의식함과 동시에 취할듯 한 쾌감을 맛보았을 것임에 틀림없다. 내가 사랑한 것은, 누추 그 자체가 아니다.(그런 경우 내 이성은 완전히 움직였다) 다만 내가 비열함을 의식하는 번뇌 속에서 어떤 취경의 즐거움을 맛보는 것이다. 또 이것과도 마찬가지로 내가 결투장의 경계선에 서서 적의 발사를 기다리는 순간에도 똑 같은 굴욕에 가득차고 더우기 광포한 감촉을 경험했다. 한 번은 그 감촉이 너무나 격렬했다. 솔직하게 고백하지만, 나는 점점 이것을 끈기있게 뒤쫒아 가면서 구했다. 왜냐하면 이것이야말로 나에게는 이런 종류의 감촉 가운데서 가장 강렬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따귀를 얻어 맞았을 때-지금까지 두 번 있었다. 치가 떨리는 분노에도 불구하고, 역시 이 감각을 맛보았다. 만일 이 분노를 억제한다면, 쾌감은 온갖 상상을 초월하는 데가 있다.
"여러분, 20년 전, 유럽의 태반을 적으로 하는 전쟁이 전야에, 러시아는 모든 고급 관료들의 눈에는 그야말로 이상적인 국가로 보였던 것입니다. 문학은 검열당국의 종살이를 했고, 대학에서는 제식훈련을 가르쳤고, 군태는 무용단으로 화하고, 국민은 농노제의 채직 밑에서 인두세를 바치며 침묵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애국주의란 살아있는 사람이나 죽은 사람 할 것 없이 모든 백성들에게 뇌물을 받는 것을 자칭하게끔 되었고, 뇌물을 받지 않는 자는 오히려 반역자로 지목되었습니다. 자작나무 숲은 질서유지라는 명목하에 벌채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유럽은 전율을 느꼈던 것입니다~"
"가령 여러분이 농민들에게 뭔가 해달라고 청해보라. 혹시 그들이 할 수 있고, 또 하고 싶은 마음만 내킨다면, 그들은 열심히 그리고 친절히 당신들의 시중을 들 것이다. 그러나 그들한테 보드카를 사달라고 부탁하면, 보통 때의 친절과 침착한 태도는 급변해서 뭔가 조급하고 즐거운 친절로 바꿔지는 법이다. 마치 친척되는 가까운 사람에 대한 배려라 할까. 보드까를 사러가는 당사자는, 그것을 마시는 사람이 자기가 아니고 부탁한 사람이라는 걸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역시 부탁한 사람의 앞으로의 쾌감을 어느 정도 자기로서도 느끼는 것 같았다."
작품론, 이철, 외대 교수
스따브로긴은 이 때 자기의 불모의 사상을 좆아서 점점 현실로부터 유리되어 황막한 논리와 사상의 벌판으로 들어가, 마침내는 인생의 경계도, 자의식의 경계도 뛰어 넘어 無의 세계에 자리를 잡았을 것이다. 사실, 영성의 감정이 뒤따르지 않고, 따라서 열매도 맺지 못하는 추상적인 사색이나 논리 속에서는 어떠한 '유(有)'도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스따브로신이, 신을 부정한 인간이 스스로 신이 되기 위해 자살을 하고, 거기서 죽음의 공포를 이겨내고, 새로운 자유를 세상에 표시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주장한 끼릴로프와 대면했을 때 스따브로긴의 인물은 이 극단적으로 상반된 두 가지 성격의 대조로 해서 한결같이 더 뚜렷하게 부각되었다. 한 쪽은 개인주의로부터 출발하여 인간의 절대자유, 행복, 해방을 몽상하고, 종교하고는 정반대의 방향을 걸어가면서, 마침내 自家의 종교에 가지 달한 불꽃 같은 성격이고, 다른 한 쪽은 예전에 자기가 조립한 사상을 끼릴로프가 감격어린 말로 피력하는 것을 직접 들으면서 양 미간을 찌푸린 채 묵묵히 아무 감동의 그림자도 나타내지 않고 있다.
2017.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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