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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3. 백치(Idiot),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예프스키, 열린책들,2009

햇살처럼-이명우 2020. 6. 18. 12:22

583. 백치(Idiot),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예프스키, 열린책들,2009

 

  도스토예프스키의 옳고 그름은 객관적 의미에서 사실들에 의해 정의되지 않고 있다. 사람들은 어떤 사실이건간에 그들의 가슴이 옳다고 판단하면 옳다고 여긴다. 그리고 그들의 가슴이 거부할 때는 옳지 않다고 느낀다.

 

레프 니콜라예비치 미쉬낀은 20대 중반이 살짝 넘은 젊은 공작이다. 하지만 그는 재산도 없는 몰락한 귀족의 후예이며 간질이라는 지병을 가지고 있다. 그는 유럽에서 러시아의 상뜨 빼쩨르부르그로 오는 기차 안에 있다. 그의 맞은 편에 역시 같은 또래에 다부져보이는 빠르펜 로고진이 앉아 있다. 로고진은 소문난 노랑이 재산가인 아버지의 돈의 일부를 가지고 허락도 없이 절세 미녀 나스따시야 필리뽀브나 바라쉬꼬바에게 다이아몬드를 선물로 사준 죄로 먼 지방에 사는 친척에게 도망가 살다가 아버지가 죽는 바람에 그 재산을 상속받고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미쉬낀 공작은 가문의 유일한 혈육인 리자베따 쁘로꼬피예브나를 찾아가보려고 한다. 리자베따 쁘로꼬피예브나는 자수성가한 예빤친 장군의 부인이다. 이들 부부에게는 세 딸 아젤라이다, 알렉산드라, 아글라야가 있다. 예빤친 장군은 미쉬낀 공작을 처음 본 순간 그가 물질적 도움을 청하러 온 아내의 친척이라 생각하고 냉담하게 대하려 했으나 공작이 결코 그러한 사람이 아니란 사실을 알게 된다. 오피려 예빤친은 공작을 이용하면 자기가 빠진 어려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속셈을 한다. 예빤친 장군은 나스따시아를 유혹하기 위해 몰래 진주 목걸이를 선물했으나 그 사실이 아내 리자베따 쁘로꼬피예브나에게 들통나 위험한 상황에 처해있다. 공작은 이미 로고진을 통해 나스따시야에게 얽힌 이야기를 알고 있으며, 예빤친 장군의 비서인 가브릴라 이볼긴을 통해 그녀의 사진을 접하고 그녀의 미모에 놀란다.

  공작은 후견인의 도움을 받아 스위스의 어느 시골 마을에서 지병을 치료받으며, 마을 어린이들과 어른들로부터 따돌림을 받는 병약한 처녀 마리에게 깊은 동정을 보낸 얘기를 리자베따 쁘로꼬피예브나 부인과 그의 세 딸들에게 해준다. 공작의 행동은 어린아이처럼 순진무구하다. 그에게는 여느 어른들이 가진 속물 근성이 없다. 그런 이유에서 그에게 백치라는 별명이 붙여진다. 그의 지능은 정상인과 다를 바가 없다. 더욱이 그는 사물을 꿰뚫어 보고 미리 볼 줄 아는 통찰력과 예지력까지 어느 정도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를 알고 난 사람들은 그의 진실성에 진정으로 호감을 갖는다. 예빤친의 세 딸도 그러한 호기심을 공작에게 보이고 있으며, 특히 나스따시야와 버금갈 정도로 아름다운 아글라야는 나스따시야를 질투하듯이 공작에게 비상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나스따시야는 일곱살에 고아가 되었으나 사회의 유력인사이자 재산가인 또쯔기에 의해 어느 시골에서 양육되었다. 그녀는 뛰어난 미모의 소유자로서 16세가 되었을 때 또쯔끼의 주도면밀한 계획 아래 성적으로 농락당했다. 또쯔끼는 그녀를 무마하기 위해 그녀에게 사교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주고 물질적인 보상을 해준다. 그런 후에 또쯔끼는 지위 높은 어느 여성과 결혼을 하려 한다. 그러나 나스따시야는 또쯔끼의 행동에 대한 보복으로 그 결혼을 방해할 생각을 한다. 또쯔끼는 예빤친 장군과 함께 그러한 나스따시야의 행동을 사전에 저지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한다. 그들은 예빤친의 비서인 가브릴라 이볼긴에게 돈을 주는 조건으로 나스따시야와 결혼할 것을 제안하고, 가브릴라는 그 제안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나스따시야를 사랑해오던 로고진은 그 사실을 알고 또쯔끼가 가브릴라에게 제안한 돈 보다 더 많은 10만 루블을 나스따시야에게 줄 것을 약속하고 자신과 결혼해 달라고 요청한다.

  나스따시야는 또쯔끼가 원하는 데로 가브릴라와 결혼할 것인지 아닐지의 여부는 그녀의 생일파티에서 결정 될 것이라고 공언한다. 나스따시야와 관련된 모든 사람들은 그녀의 생일 파티장인 그녀의 집에 모이게 된다. 그 자리에서 로고진은 약속대로 10만 루블을 변통해서 전해준다. 나스따시야는 그 돈을 싼 보자기를 불타는 난로 속에 처넣고, 7만5천 루블에 그녀와의 결혼을 승낙한 가브릴라에게 그 돈을 가져가라고 한다. 가브릴라는 그러한 나스따시야의 태도에 심한 고통을 느끼다 결국 돈을 꺼내지 않는다. 그러면서 자존심에 커다란 상처를 입은 가브릴라는 그 자리에서 의식을 잃고 만다. 돈이라면 모든 것을 포기하는 레베제프는 무슨 짓이든 다 하겠다는 다짐으로 불타는 돈에서 1천 루블 만이라도 꺼내게 해달라고 사정한다. 그 때 미쉬낀 공작은 나스따시야가 누구와 결혼하든 그 결혼이 결국 그녀 자신을 비롯해 모든 이를 파멸시킨다는 것을 깨닫는다. 미쉬낀은 나스따시야를 보호하겠다는 생각에서 그녀에게 청혼한다. 이 때 공작은 그의 후견인이었던 빠블리쉬체프로 거액의 유산을 상속받는다는 것을 비공식적으로 알게되고, 이 사실은 고리대금업자인 쁘찌찐에 의해 모든 사람들에게 공표된다. 나스따시야는 로고진과 결혼할 것을 약속한다. 생일 파티를 끝낸 나스따시야는 그녀의 재산을 하인들에게 나누어주고 자신의 집을 떠난다. 그녀는 결국 로고진에게서도 멀리 도망간다.

 

  이 후 공작은 모스끄바로 떠나고 반년 이상의 시간이 흐른다. 나사따시야가 빼쩨르부르그에 나타났다는 소식과 함께 미쉬낀 공작은 빠블리쉬체프의 상속자가 되어 빼째르부르그에 나타나 예빤친의 여름 별장과 가까운 레베제프의 집에 머문다. 그는 다시 로고진과 만나게 된다. 수 례나 나스따시야을 찾아가 구타와 협박, 회유 등의 방법으로 그녀에게 결혼을 강요했던 로고진은 나스따시야의 모호한 행동에 대해 미쉬낀에게 강한 의심을 품는다. 공작은 그녀가 로고진과 결혼한다는 것은 그의 칼날 아래로 파고드는 것과 같다는 것을 예감하고 있다.

  나스따시야는 사회로부터 상처를 받고 거기에 대한 복수를 원하고 있다. 미쉬낀 역시 간질이라고 하는 상처를 안고 살고 있지만 거기에 대한 원망을 가지고 있지 않다. 반면 폐병환자로써 죽을 날을 기다리고 있는 18세 청년 이뽈리뜨는 자신의 상처에 대해 신을 원망하고, 신의 존재를 무시하고 있다. 그는 한 달 밖에 살 수 없고 더 이상 오래 살 수 없다는 뻔한 상황에서 자살을 결심한다. 그 것은 자연의 법칙에 대한 그의 반항이다.공작은 그러한 이뽈리뜨에게 동정을 보내고 있으나, 이뽈리뜨는 공작을 증오하고 있다. 공작이 사는 세상은 그의 연민과 동정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오히려 상황은 더욱 사악해지고 있다.

 

  공작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는 아글라야는 공작을 독점할 수 없음을 깨닫고 폴란드인과 결혼하여 국외에서 체류한다. 리자베따 쁘로꼬피예브나는 자신의 것을 찾지 못한 러시아인을 한탄하며, 외국 것은 환상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미쉬낀 공작은 원래 자기의 모습인 백치의 상태로 돌아간다. 요약, 김근식.

 

  아무리 낙오자와 악인이 들끓는 곳이라도 한 사람 정도의 선각자는 있게 마련 아닌가요? 거기에 나의 기쁨이 있지요. 세상에는 악의 덩어리가 있는 게 아니라 살아있는 구성원만 있을 뿐이라는 것을 확신합니다. 우리의 현재 모습이 바보스러워 보인다고 당황할 필요는 없지요. 그렇지 않은가요? 우리의 실체가 우스꽝스럽고 경솔하며, 때로는 쓸데없는 타성에 젖어 권태로워지기도 하고, 사물을 바로 볼 줄도, 판단할 줄도 모르고 있는게 사실 아닌가요? 우리 모두가 그러하지요.

  모든 것을 단번에 이해하고, 항상 완전함을 갖추고 일을 시작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완전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이해하지 못하는 많은 단계를 거쳐야만 합니다. 너무 빨리 모든 걸 알려고 들면, 제대로 이해도 못하고 지나쳐버릴 수 있어요.

  나는 나무 옆을 지나겨면서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요. 도대체 그런 사람들은 뭘 보고 다니는 거지요? 사랑하는 사람과 얘기를 나누면서도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는 게 말이나 됩니까!

 

  공작과 같은 사람이 백치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정상인이라면,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정상인들은 공작과 반대로 도덕적인 면에서 미숙아들이고, 따라서 이들은 도덕적 백치인 셈이다. 무쉬낀이 처한 사회의 문제점은 온갖 타락과 악덕에 면역되어 있는 도덕적 백치가 너무 많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타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능력을 상실했기 때문에 인간에 대한 진정한 사랑을 느낄 줄 모른다. 그래서 따뜻하고 선한 인간은 사랑을 모르는 대다수의 차가운 사람들의 한기 속에서 힘 없이 떨면서 고통받아야 하는 것이다. 장편 <백치>는 그러한 현실의 문제들을 이상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도스토예프스키의 예술적 대처방안이며, 미쉬낀은 바로 그 해결의 실마리를 쥐고 있는 중심인물이다.

 

  우리나라 작가 뿐만 아니라 모든 유럽 작가들이 긍정적으로 아름다운 인물을 창조하려고 시도해보았지만 실패를 거듭했을 따름이다. 왜냐하면 그와 같은 과제는 끝이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것은 이상(理想)이다. 그러나 우리의 이상이나 문명화된 유럽의 이상이 실현되기까지는 아직 요원하다. 도스토예프스키에게 있어서 유일하게 긍정적인, 아름다운 인물은 그리스도였다. 그러나 세계 문학 속에서 가장 아름다운 인물로 도스토예프스키는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를 꼽는다. 그 다음으로는 찰스 디킨스의 피크워크, 빅토르 위고의 장발장을 내세우고 있다.

 

2017.2.4.토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