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2. 달과 6펜스, 서머셋 몸, 도서출판 성한, 1984.
1918년에 출간, 제목의 「달 」은 인간을 어떤 의미에서 광기로 이끄는 예술적인 창조에 대한 정열을 가리키는 것이고, 「6펜스 」는 스트리클랜드가 헌신짝처럼 벗어 던진 하찮은 세속적인 인연, 즉 「굴레 」를 가리킨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들의 인간 그 자체보다는 그들이 차지하고 있는 지위에 따르는 위대함에 지나지 않는다. 한번 사정이 뒤집히는 날이면 순식간에 아주 보잘것 없는 것이 되고 만다.
다아크 스트르우브는
「美란 세상에서도 귀한거야. 마치 바닷가의 조약돌처럼 지나가다가도 함부로 주울 수 있게끔 그렇게 흔해빠진건 아니란 말이야. 미란 멋지고 불가사의 한 거야. 예술가가 제 영혼의 고뇌를 거쳐 이 세상의 혼돈 속에서 만들어 내는거란 말야. 하지만 미가 그렇게 창조되었다고 해서 아무나 그것을 알 수 있는 건 또 아니거든. 미를 인식하기 위해서는 예술가의 경험을 각자가 스스로 되풀이하지 않으면 안돼. 가령 예술가가 하나의 멜로디를 노래해서 들려준다. 그것을 다시 한번 우리가 마음 속으로 음미하길 원한다면, 우리에게 지식과 감수성, 그리고 상상력이 갖추어져야 하는거야.」
나는 이 불행한 네덜란드인의 이야기를 여러모로 곰곰 생각해 보았다. 브란슈 스트르우브의 행동을 이해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요컨대 그것은 육체적 매력의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 싶었기 때문이다. 이제까지도 그녀가 남편을 진심으로 사랑했다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가 없다. 얼핏 애정처럼 보였던 것도 실은 애무와 보살핌에 대하여 여성이 나타내는 일종의 반응에 불과한 것이었고, 다만 그런 반응이 대개의 여자들 가슴 속에서 제법 무슨 애정이나 되는 것처럼 통용되어 왔었던 것에 지나지 않는다. 마치 포도나무가 어떠한 원목에도 접목이 가능하듯 어떠한 대상에 대해서도 일어날 수 있는 단순한 수동적 감정에 불과한 것이다.
사람들의 지혜는 이런 감정이 얼마나 강한 작용을 하는가를 꿰뚫어보고 있기 때문에 젊은 계집애에게는 누구든지 구애하는 감자가 있으면 결혼하거라, 애정 같은 것은 나중에 충분히 생겨나는 법이니까 하고 권한다. 말하자면 그것은 지위의 안전도에서 오는 만족함과 소유했다는 자랑스러움, 그리고 상대편이 나를 소망하고 있다는 행복감과 가정의 기쁨 등등이 한 덩이가 되어 만들어진 감정인 것이며, 그런 것을 무슨 정신적인 가치라도 있는 것처럼 착각한다는 것은 필경 어처구니 없는 허영심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러한 감정이 정열 앞에서 맥을 못추고 굴복한다는 것은 당연하다.
사람들은 너무나도 경솔하여 아름다움(美)에 대하여 말한다는 사실이다. 더군다나 언어에 대해 무감각해서 아름다움이란 말을 함부로 남용하고, 그 결과 도리어 말이 힘을 잃고 만다. 덕분에 그것을 나타내는 실체마저 숱한 하찮은 사물과 그 이름을 나누어 갖게 되고, 헛되이 위엄을 잃고 만다는 사실이었다.
가령, 사람은 옷이나 개나설교 따위를 아름답다고 부르는데, 정작 참다운 미(美)에 직면했을 때는 가엷게도 알아보지 못한다. 자신의 하찮은 사상을 돋보이게 하고자 섣불리 부린 허세가 도리어 그들의 감수성을 둔화 시킨다. 사실 이런 것은 아주 이따금씩 밖에 경험하지 못하는 영적인 경험을 함부로 과장하여 떠들어대는 사기꾼 교주와도 같은 것으로, 남용에 의해 도리어 효과를 약화시키고 있다. 그것에 비하면 스트로우브란 사내는 과연 어쩔 수 없는 어릿광대이긴 하다. 그러나 아름다움에 대해서만은 그 자신의 영혼이 그러하듯 성실했으며, 한결같은 애정과 이해를 지니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믿는자가 신을 대하는 태도로서, 그에게 있어서 아름다움을 목도한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었다.
작품은 항상 인간을 드러낸다.
2018.11.24.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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