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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3. 나, 소시오패스, M.E 토머스, 푸른 숲, 2014.

햇살처럼-이명우 2020. 7. 17. 15:46

603. 나, 소시오패스, M.E 토머스, 푸른 숲, 2014.

 

  차가운 심장과 치밀한 수완으로 세상을 지배한다.

소시오패스의 소시오(socio)는 사회적(social) 혹은 사회(society)라는 뜻이고, 패스(path)는 병적인 고통이나 증상이라는 의미다. 결국 소시오패스란 사회적인 분별력에 장애가 있음을 의미한다.

 

  현대적 사이코패스 개념의 대부 허비 클렉클리는 1941년에 출판한 획기적인 저서 《온전한 정신의 가면 》에서 이른바 사이코패스라는 인격의 프로파일을 제공했다. 그런데 그가 묘사한 사이코패스는 지금 우리가 흔히 소시오패스라고 부르는 인격과 유사하다. 클렉쿨리는 사이코패스는 사회인의 역할에 충실할 뿐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온전한 능력을 갖춰 평범한 사람, 심지어 대단히 성공한 사람으로 보이는 까닭에 진단하기가 몹시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의 생각을 더 들어보자.

  사이코패스는 합리적이고 현실적으로 생각할 뿐 아니라 정상적인 감정을 드러내는 것 처럼 보인다. 그가 품은 야망도 건전한 열정으로 비춰지고 의심많은 관찰자 조차 그의 신념을 단호하고 결연한 의지로 여긴다. 그는 타인의 관심에도 적절한 감정으로 대응하는 듯 보인다. 그가 자기 아내나 아이들, 부모님에 대해 말할 때면 모두가 그를 헌신적이고 성실하며 인간미가 넘치는 사람으로 인정한다.

  클렉클리는 사이코패스를 겉으로는 다른 사람처럼 느끼고 소망하며 기대하고 사랑하는 듯 보이지만 실은 탁월한 능력을 갖춘 반사회적인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사실상 사회에서 그들을 분간하기는 어렵다. 사이코패스는 여러 면에서 다른 사람이 하지 못하는 일에 탁월하다. 클렉클리가 말하는 사이코패스는 비범하리만큼 매력적이고 위트가 있다. 또한 차분하면서도 말이 유창하고 절박한 상황에서도 냉정함을 잃지 않는다.

  물론 이처럼 '온전한 정신의 가면' 뒤에는 거짓말쟁이, 교활한 조종자, 책임감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이 자신의 의무를 저버리는 사람이 숨어있다. 충동적이고 변덕스러워 잘 흥분하고 똑 같은 실수를 여러번 반복하는 사람, 자아도취에 빠져 감정적으로 진정한 유대감을 형성하지 못하고 문란한 성생활을 하는 사람이 느끼는 감정은 대개 자연스러운 감정을 조악하게 모방한 것이다. 클렉클리는 이 독특한 인격적 특징의 조합은 사이코패스 뿐 아니라 기업이다 범죄의 세계에서 악명높은 사람들의 특징과도 일치한다고 인정했다.

 

  클렉클리가 추려낸 사이코패스의 특징 16가지

  - 외관상의 매력과 뛰어난 재능

  - 망상이나 비이성적인 생각을 한다는 징후 없음

  - 과민하거나 신경증 적이라는 징후 없음

  - 신뢰성 없음

  - 진실성이 없고 불성실함

  - 양심의 가책과 수치심이 부족함

  - 반 사회적 행동에 대해 부적절하게 동기부여 됨

  - 판단력이 부족하고 경험을 통해 배우지 못함

  - 병적으로 자기중심적이고 타인을 사랑하지 못함

  - 전반적으로 주요 정서적 반응을 하지 못함

  - 특정한 통찰력 결여

  - 일반적 대인관계에 반응이 없음

  - 술에 취했을 때 혹은 술을 먹지 않았을 때도 간혹 엉뚱하고 불쾌한 행동을 함.

  - 드물게 자살행위를 시도함

  - 섹스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상대를 비인간적으로 대하며 그와 소통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음

  - 인생계획을 실행하지 못함

 

  카리스마가 있고 세련되면서도 들키지 않고 사람들 틈에 섞여 사는 포식자, 즉 중세의 뱀파이어에게는 소시오패스의 기질이 역력하다. 뱀파이어 신화는 '육체와 영혼은 별개'라는 중세시대 슬라브 민족의 정신세계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부정한 한 영혼이 극도로 잔혹한 불변의 존재, 뱀파이어를 낳은 것이다.

  소시오패스는 등장한 지 꽤 오래되었지만 변방에 머물러 있었다. 사실 우리는 모든 문화 안에 존재한다. 1976년 인류학자 제인 머피의 연구에 따르면, 아프리카의 요루바족은 냉정한 영혼을 '아란칸'이라 부른다고 한다. 이는 '타인을 전혀 배려하지 않고 제멋대로 행동하거나 비협조적이고 악의로 가득하며 고집이 센 사람'을 뜻한다. 유피크어를 쓰는 이누이트 족은 반사회적인 부족민을 '쿤란게타'라고 부른다. 의미인 즉, '해야 할 일을 알고 있으면서도 하지 않은 사람'을 뜻한다. 상습적으로 거짓말과 속임수를 일삼과 물건을 훔치며 여러 여자를 농락하는 사람, 징계나 질책도 신경쓰지 않는 사람, 늘 부족의 장로에게 처벌을 받는 사람'도 여기에 속한다. 사회 규범을 이해할 만한 능력은 있지만 이를 준수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개념은 오늘 날 소시오패스의 임상학적 진단의 핵심이기도 하다.

 

  하버드 의대 교수이자 <당신 옆의 소시오패스>를 쓴 마사 스타우트 같은 의료전문가도 소시오패스를 '진단'이 아닌 '식별'한다고 말한다. 이 말의 요점은 명학하다. 그들에게 소시오패스적인 기질이 있는게 아니라, 그들은 그냥 '소시오패스'라는 얘기다.

  진단은 치료법이 있는 사람들을 위해 내리는 것이다. 그런데 소시오패스에게는 효과가 있다고 알려진 치료법이 없으므로 진단이 아니라 '소시오패스라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의 질문으로 접근해야 한다. <블레이드 러너>에서 사회는 자기들이 만들어 낸 공감능력이 없는 피조물에게 파멸이라는 최종적인 결정을 내렸다.

 

  사이코패스와 소시오패스의 상태를 진단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지에 대해서는 학계와 의료계의 입장 차가 크다. 관찰한 행동 패턴에 근거해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정신병으로 인정하는 개정판을 내자는 전문가들의 운동에도 불구하고, 미국 정신의학협의회 훌륭한 회원들은 DSMMD에서 사이코패스와 소시오패스를 배제하기로 했다. 세계보건기구의 질병 및 관련 건강문제이 국제적 통계분류에 '비사회성 인격장애'라는 유사한 진단이 있지만, 여기에도 소시오패스는 포함되지 않았다.

 

2018. 11. 25. 일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