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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6. 티티새, 요시모토 바나나, 민음사, 2007.

햇살처럼-이명우 2020. 7. 20. 16:44

606. 티티새, 요시모토 바나나, 민음사, 2007

 

  *티티새는 죽음의 저편에서만 세상을 바라보던 주인공 '츠구미(이름의 뜻을 풀면 티티새가 됩니다. 개똥쥐빠귀라고 하면 더 친숙할까요)가 첫사랑을 가슴에 안으면서 그 힘으로 죽음의 이편에서 세상을 보듬게 되는 이야기.

 

  그것은 반짝반짝 아름답고, 그러나 가슴 아픈 일이었다. 거의 파도와 비슷했다. 피할 수 없지만 결코 불행하지 않은 자연스런 이별, 이런 일을 하다가  문득 손길을 멈추면, 가슴 속으로 쉼 없이 밀려오는 아픔보다, 한결 애틋하고 설레는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꽃들이 어둠 속에 하얗게 떠있는 것처럼 보였다. 바람에 몸을 맡기고 일제히 흔들릴 때마다, 마치 꿈 속처럼 하얀 잔상이 남는다. 그 옆으로 강물이 졸졸졸 흐르고 저 먼 앞쪽에서는 달빛을 받아 한 줄기 길처럼 밤바다가 반짝반짝 찬란하게, 한 없이 검은 몸을 꿈틀거리는 것처럼 보였다.

 

  '여관집 딸' 그녀들은 서로 타입은 달라도, 어떤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어디까지나 분위기를 말하는 것이지만, 인간관계에 냉정하게 대처하는 방법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어렸을 때부터 수 많은 사람들이 자기 집에 잠시 살다가, 떠나가는 것을 곁눈으로 보고 자란 탓일까. 모두들 이별에 익숙하고, 이별에 얽혀있는 다양한 감정들을 가볍게 흘려보내, 자기 안에 있다는 것조차 모르는 척하는데 능숙한 것일까. 나는 여관집 아이는 아니지만, 거의 그런 셈이라서, 내게도 그런 부분이 있는 듯한 느낌이다. 대수롭지 않은 감정에서 오는 아픔을 용케 잘 피한다고 생각한다.

 

  네 엄마하고 너하고 떨어져 지낸 오랜 시간과 그 동안의 외로움을 생각하면, 가족이 얼마나 소중한 건지 알 수 있지. 물론 언젠가는 생각이 바뀌어서, 너나 네 엄마한테 못살게 구는 일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 또한 인생이야. 만약 우리의 마음이 서로 맞지 않아서, 그런 때가 오더라도, 그런 때를 위해서 더더욱, 좋은 추억은 많은 편이 좋은 거다!!

 

  하루하루, 이렇다 할만한 일은 없었다. 이 조그만 어촌에서, 자고 일어나고, 밥을 먹고 살았다. 때로는 상태가 나쁘기도 하고 좋기도 하고, 텔레비전도 보고 사랑도 하고, 학교에서 수업을 받고, 그리고 반드시 이 집으로 돌아왔다. 그 평범한 반복을 되새겨보면, 거기에는 늘 따스하고 깨끗한 모래같은 무언가가 남아있다.

 

"기근?......너무 비약이 심한 거 아니니? 감이 안온다."

"야. 좀, 가만히 듣고 있을 수 없니. 그래서 먹을 것이 정말 하나도 없어졌을 때, 난 태연하게 포치를 잡아먹을 수 있는 그런 인간이 되고 싶어. 물론 나중에 훌쩍훌쩍 울고, 모두를 위해 희생해 줘서 고맙다. 미안하다면서 무덤을 만들어주고, 뼛조각을 팬던트로 만들어 내내 걸고 다니는, 그렇게 어중한하게는 말고, 가능하면 후회도 양심의 가책도 없이, 정말 태연하게 '포치, 너 정말 맛있더라! 라고 웃으면서 말할 수 있는 인간이 되고 싶어. 뭐, 어디까지나 만약이지만."

 

  "츠구미, 너, 요즘 들어 너무 사람답게 얘기하는 거 아니니?"

  "죽을 때가 다 됐나?" 츠구미는 웃었다.

아니다. 밤 때문이다.

그렇게 공기가 밝은 밤이면, 사람은 자기 속내를 얘기하고 만다. 자기도 모르게 마음을 열고, 곁에 있는 사람에게, 멀리서 빛나는 별에게 말을 걸듯, 내 머릿속 '여름 밤' 폴더에는 이런 밤에 대한 파일이 몇 개나 저장되어 있다.

 

"개는 절대 배신하지 않잖아."

 

"......그렇다고 할 수도 있지만, 인간은 결국 새로운 것을 만나면서, 조금씩 변해가잖아. 많은 것을 잊어보리기도 하고, 내 버리기도 하고,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되잖아. 할 일이 많아서겠지만."

 

  정면에서 비치는 눈부신 햇빛에 가늘게 눈을 뜨고 내 옆을 걷는 그녀의 조그만 키가, 걸음을 내디딜 때 마다 어깨에서 물결치는 머리칼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사무쳤다. 버스 정류장으로 가는 뒷길, 해묵은 여관촌, 여기저기 피어있는 메꽃의 시들한 색, 바닷가 마을 특유의 이 메마른 낮에, 내 기억을 유폐한다.

 

2018.12.16. 일요일.

 

요시모토 바나나(1964.7.24 일본)

키친, 도마뱀, 하치의 마지막 연인, 허니문, 암리타, 하드보일드 하드럭, 티티새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