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기

643. 황야의 이리, 헤르만 헤세, (주)민음사, 1997.

햇살처럼-이명우 2021. 12. 27. 16:18

643. 황야의 이리, 헤르만 헤세, (주)민음사,  1997.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 의 저자 김누리 교수님 번역서

 

차례

편집자 서문

하리 할러의 수기

 

「그는 왜 여기서 좋은 냄새가 난다고 말했대요? 」 내가 물었다. 그러자 눈치빠른 아주머니가 말했다. 「내가 잘 알지. 우리집에선 청결과 질서, 그리고 화목하고 예의바른 삶의 냄새가 나지. 그게 그의 마음에 든거야. 그는 이런 생활에 익숙하지 않고, 이런 생활을 해본적도 없는 것 같더라」

 

  아주 예쁜 가방은 느낌이 좋았고, 크고 평퍼짐한 여행가방은 그가 지금까지 거쳐온 긴 여정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거기에는 여러나라의 , 그것도 바다 건너 나라들의 호텔이며 운수회사의 빛바랜 상표들이 붙어있었던 것이다. 

 

  내가 황야의 이리의 삶에 대해 아는 바라곤 보잘것 없지만 여러모로 보아 내가 짐작할 수 있는 건 그가 자애롭지만 매우 엄격하고 신앙심이 깊은 부모와 교사들에게 교육을 받았고, 이 교육의 원칙은 <의지의 파괴>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개성의 부정과 의지의 파괴는 이 학생에게는 성공을 거두지 못했는데, 그도 그럴것이 그는 너무나 강인하고 굴하지 않는 성격을 지녔고, 너무 자긍심이 강하고 정신적인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부모와 교사들은 그의 개성을 죽이지는 못하고, 다만 자신을 증오하도록 가르치는데에만 성공한 셈이었다. 그는 평생에 걸쳐 자신의 천재적인 상상력과 강인한 사고력 모두를 이 순수하고 순결한 대상, 즉 자기 자신을 증오하는데 바쳤던 것이다. 그는 모든 풍자, 비판, 악의 , 그리고 가능한 모든 증오를 무엇보다고 우선적으로 자기 자신을 향해 겨누었던 것인데 이 점에서 그는 뭐니뭐니해도 철두철미 기독교인이었으며 순교자였다.

 

  인간의 삶이 정말로 고통으로, 지옥으로 변하는 건 두 시대, 두 문화 두 종교가 서로 교차할 때 뿐입니다.(......) 지금은 한 세대 전체가 두 시대 사이에, 두 개의 생활양식 사이에 끼여, 어떠한 자명한 이치도, 도덕도 어떠한 안정감이나 순수합도 상샐해 버린 시대입니다. 물론 너나 할 것 없이 이것을 똑같은 강도로 느끼는 건 아니겠지요. 가령 니체 같은 사람은 오늘 날의 고뇌를 한 세대 이상이나 앞서 체험해야 했지요. 그는 아무에게도 이해받지 못한 채 이 고뇌를 고독하게 곱씹어야 했지만, 오늘 날엔 수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체험하고 있는 겁니다.

 

  이 좁은 마루청은 인간의 손으로는 더 이상 닦을 수 없을 정도로 깨끗하게 손질되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것은 질서의 작은 신전이다. 발을 디디기가 미안할 만큼 깨끗한 널마루 바닥에는 예쁜 받침대가 두 개 있는데, 그 위에는 커다란 화분이 하나씩 놓여있다. 하나는 철쭉이고, 다른 하나는 아주 늠름하게 자란 남양삼나무다. 이 남양삼나무는 아주 완벽하다는 느낌을 주는 건강하고 줄기가 굻은 어린 나무인데, 가지에 달린 침엽 하나하나 까지도 깨끗이 닦여 신선한 윤기를 발하고 있다.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을 때면 나는 종종 이 장소를 신전으로 이용한다. 남양삼마무 건너편 층계참에 앉아 잠깐 쉬면서 기도하듯이 손을 모으고, 이 작은 질서의 정원을 내려다보는 것인데, 그러면 이 정원의 감동적인 모습과 조금은 우스꽝스러운 고독이 묘하게 나의 영혼을 사로잡는다. 나는 마루청 뒤에서 남양삼나무의 신성한 그늘에 잠긴 채, 번쩍번쩍 윤이 나는 마호가니 세간이 가득찬 방과 아침에 일찍 일어나 의무를 다하고, 적당히 쾌활한 가족 축제를 즐기고, 일요일이면 교회에 가고, 일찍 잠자리에 드는 절제와 건강이 가득찬 삶을 상상해본다.

 

  고독은 자유다. 나는 그것을 원했고 수년이 지나서야 그것을 얻었다. 고독은 싸늘했다. 정말이지 고독은 조용하고, 놀랍도록 조용하고, 별이 돌고 있는 저 싸늘하고 고요한 공간만큼이나 넓었다. 

 

  내 방은 나에겐 작언 고향과 같은 곳이다. 거기선 흔들의자와 난로, 잉크병과 물감통, 노발리스와 도스토예프스키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다른 사람들이 고향에 가면 어머니나 부인, 아이들, 하녀, 개와 고양이가 기다리는 것처럼.

 

  자기 내부에 이리를 갖고 있지 않는 사람도 그것 때문에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리고 아무리 불행한 삶도 나름의 행복한 시간이 있는 법이다. 모래와 자갈 사이에도 작은 행복의 꽃은 핀다. 

 

  하리와 비슷한 사람들이 무척 많다. 굳이 예를 들자면 예술가들이 대부분 이런 부류에 속한다. 이 사람들의 내면에도 신적인 면과 악마적인 면, 모성적인 피와 부성적인 피, 행복의 능력과 고통의 능력이 서로 맞서 있거나 뒤섞여 있다. 몹시 불안한 삶을 살아가는 이 사람들은 드물게 찾아오는 행복의 순간에 이따금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강렬한 아륾다움을 체험하고, 스 순간적인 행복의 물거품이 때로 고통의 바다를 넘어 눈부시게 뻗어올라 불꽃처럼 짧게 타오르면서 찬란한 빛을 발하여, 다른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매료시킨다. 그리하여 모든 예술작품은 고통의 바다 위를 떠도는 소중하고 허무한 행복의 거품이 된다. 고통받는 개개 인간은 예술작품을 통해 자신의 운명을 넘어 고양되어서, 행복은 별처럼 빛나고,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이 행복을 어떤 영원한 것으로, 그들 자신의 행복의 꿈으로 느끼게 된다. 이 사람들의 행위와 작품이 무어라 불리든 간에 , 이들에게는 본래 삶이란 것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이들의 삶은 존재도 아니고 형태도 없다. 오히려 이들의 삶은 파도가 해안에 부딫히듯이 영원하고 덧없는 운동이어서 불행하고 고통스럽게 분열되어 있다. 그래서 사람들이 이러한 삶의 카오스 위에서 빛나는 저 희귀한 체험과 행위와 사상과 작품에서 그 의미를 찾으려고 하지 않는 한, 이들의 삶은 끔찍스럽고 무의미하다. 인간의 삶이란 모두 태초의 어머니의 엄청난 착각이요, 실패한 유산(流産)의 결과이며 완전히 잘못 그린 자연의 서투른 습작품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위험하고 무시무시한 생각도 이런 부류의 사람들에게서 나온 것이다. 

 

  <시민적인 것>은 언제나 존재하는 인간적인 상태로서 균형을 이루려는 시도이고, 인간 행동의 수많은 극단과 대립쌍 사이에서 중용을 구하려는 노력에 다름이 아니다. 이러한 대립쌍 중 하나, 이를테면 성자와 탕아의 대립쌍을 예로들어보면, 이 비유가 금방 이해될 것이다. 인간은 정신적인 것이나 신에 접근하려는 노력이나 거룩한 이상에 완전히 자신을 바칠 수 있다. 또한 인간은 거꾸로 본능적인 생활이나 감각의 요구에 온몸을 바쳐 순간적인 쾌락을 얻는데 온갖 노력을 기울일 수도 있다. 한쪽 길은 정신의 순교자인 성자에게로, 신에 대한 헌신으로 통하고, 다른 쪽 길은 본능의 순교자인 탕아에게로, 퇴폐로의 탐닉으로 통한다. 시민은 이 양자의 중간 쯤에 적당히 살아가고자 한다. 쾌락이건 금욕이건 그는 결코 어디에도 몸을 던지는 일이 없고, 결코 순교자가 되는 일도, 자신을 파괴하는데 동의하는 일도 없다.

 

  <아, 내 가슴 속에는 두 개의 영혼이 살고 있다!> 라고 파우스트가 말할 때, 그는 자기 가슴 속에 있는 메피스토와 수많은 다른 영혼들은 잊고 있는 것이다.  가슴, 즉 육신은 언제나 하나지만, 거기 살고 있는 영혼은 둘도 다섯도 아니다. 영혼은 무수하다. 인간은 수백개의 껍질로 된 양파이고, 수 많은 실로 짜인 천이다.

 

  인간을 정신 쪽으로, 신 쪽으로 몰아대는 것은 내면의 명령이며, 그를 자연쪽으로 어머니 쪽으로 돌아가도록 잡아끄는 것은 절실한 동경이다. 이 둘 사이에서 두려움에 떨며 동요하는 것이 인간의 삶이다. 사람들이 <인간>이라는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은 언제나 시민적 합의에 불과하다. 거친 충동은 이러한 관습에 의거 거부되고, 금지되며 얼마간의 의식과 예절과 교화가 요구된다. ㅇ정신은 아주 조금만 허용되고 요구될 뿐이다. 

 

  우리들의 문화의 세계는 하나의 공동묘지 이다. 거기서는 예수도 소크라테스도, 모짜르트도, 하이든도 단테도 녹슬어 가는 양철 묘표위에 씌어진 희미한 이름에 지나지 않는다.  

 

  존래 사람들은 서로서로 상대를 위한 거울이어서, 서로 답을 주고 받고 서로 조응하는 거지요.

  

<작품해설>

  헤세가 살았던 19세기 말에서 20세기 ㅣ중반까지의 기간은 세계사적 격변기였다. 이 격변기의 시대상이 그의 작품 곳곳에 투사되어 나타난다. 빌헬름 제국, 제1차 세계대전, 제2차 세계대전이 그것이다. 이 중에서도 제1차 세계대전이 헤세 문학의 분수령을 이룬데는 중유한 이유가 있다. 인류 역사상 초유의 이 세계적 차원의 전쟁은 계몽주의 이후 유럽의 정신사를 지배해 온 낙관적 세계관 전체의 거대한 붕괴를 의미했다. 위기의 징후는 이미 반세기 전부터 싹트기 시작했다. 경제학에서 아담 스미스에 의해 주창된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자본주의 시장의 자율조정이라는 신화는 역사를 계급투쟁으로 보는 마르크스의 사적 유물론에 의해 크게 동요되었고, 헤겔로 대표되는 독일 관념론의 목적론적, 직선적 역사발전론은 니체의 염세론적 순환적 역사관에 의해 의문시 되었으며, 계몽주의 이래 지속된 이성에 대한 절대적 신뢰는 베르그송의 생철학과 무엇보다도 프로이트에 의한 무의식의 <발견>-나아가 융의 집잔 무의식의 강조-에 의해 뿌리째 흔들리게 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실존주의의 쌀이 움트는 가운데 니체의 르네상스가 도래하고, 정신병리학과 심리학이 인문학의 중심으로 육박해온 것이 이러한 배경 때문이다. 1918년 슈팽글러가 역사 염세주의적 시각에서 <서양의 몰락>을 예언한 것은 이 시대의 징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황야의 이리 」에는 염세적 역사관, 비극적 인생관, 허무주의적 문명비판, 이성 보다는 직관을 우위에 두는 태도 등 당시를 풍미하던 정신적 경향들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헤세 (1877~1962)

 

2020.12.30. 수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