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8. 몽테뉴 수상록 2, 몽테뉴/손우성 옮김, 동서문화사, 2016.
차례
제2권
13. 타인의 죽음 판단하기
14. 우리의 정신이 어떻게 스스로를 방해하는가
15. 우리의 욕망은 어려움에 바닥치면 커진다
16. 영예에 대하여
17. 교만에 대하여
18. 반증에 대하여
19. 신앙의 자유에 대하여
20. 우리는 순수한 것이라곤 아무것도 맛보지 못한다.
21. 무위도식에 대하여
22. 역마에 대하여
23. 나쁜 수단을 좋은 목적에 사용함에 대하여
24. 로마의 위대성에 대하여
25. 병자를 흉내내지 말것에 대하여
26. 엄지 손가락에 대하여
27. 비겁은 잔인의 어머니
28. 모든 일에는 저마다 때가 있다.
29. 도덕에 대하여
30. 한 기형아에 대하여
31. 분노에 대하여
32. 세네카와 플루타르크의 변호
33. 스푸리나의 이야기
34. 줄리우스 카이사르의 전쟁하는 방법에 대하여
35. 세 현숙한 부인에 대하여
36. 가장 탁월한 인물들에 대하여
37. 자손들이 조상을 닮음에 대하여
제3권
1. 유용성과 정직성에 대하여
2. 후회에 대하여
3. 세 가지 사귐에 대하여
4. 기분전환에 대하여
5. 베르길리우스의 시구에 붙여
6. 역마차에 대하여
7. 고귀한 신분의 불편함에 대하여
8. 논변의 기술에 대하여
9. 허영에 대하여
10. 자기 의지의 아낌에 대하여
11. 절름발이에 대하여
12. 인상에 대하여
13. 경험에 대하여
몽테뉴의 생애와 사상(1533~1592, 59세 사망)
몽테뉴 연보
인명 찾아보기
로마의 무술도장에는 로마사람은 하나도 없고, 프랑스 사람들로 가득하다. 저 위대한 카토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자기 아내가 자기것인 동안은 싫어하더니, 그녀가 다른 사람에게 넘어간 다음에는 그 여자를 욕심내었다.
나는 내 종마장에서 늙은 말 한 필을 쫒아냈다. 이놈은 암컷 냄새만으로는 붙여볼 도리가 없었다. 제 암컷들과는 일이 쉬우니까 바로 물려버렸다. 그러나 다른 집 암컷들은 어느 것이 목장 부근을 지나가기만 해도 귀찮게 이힝힝 거리며 흥분하는 꼴이었다.
우리의 욕망은 내 손에 있는 것은 경멸하며 넘겨버린다. 그리고 자기가 갖지 않은 것을 차지하려고 애쓴다.
로마에서 결혼이 그렇게 오랫동안 명예롭고 안정되게 한 것은, 아무때건 원하면 서로 헤어질 수 있는 자유에 있었다. 그들은 아내를 빼앗길지도 모르니 그만큼 더 아내를 사랑하였다. 그리고 아무때나 이혼할 수 있는 자유를 가지고 그들은 4백년 이상 아무도 그것을 쓰지않고 보냈다.
"잠가둔 문은 절도를 유인한다. 강도범은 열려진 집을 놓아두고 지나간다." (세네카)
나는 내게 말다툼을 걸 수 있는 자들과 "내가 먼저 흥분한 것이 느껴지거든, 옳건 그르건 그대로 두시오. 나도 내 차례로 당할 때 그렇게 하리라." 하며 흥정한다. 폭풍우는 서로 맞부딪치기 때문에 잘 일어나는 분노의 경쟁에서 밖에 생겨나지 않는다. 그건 한쪽에서만 나오지는 않는다. 분노는 각기 따로 터지게 놓아두자. 그러면 우리는 언제나 평화롭게 지낸다. 유익한 처방이다. 그러나 실천하기는 힘이 든다.
가장 탁월한 인물은 에파미논다스 이다. 그리스인들은 아무런 반대없이 그를 그들 중 제일인자리고 부르는 영광을 주고 있다.
누가 라케데모니아 인에게 어떻게 해서 그렇게 오래 살게 되었느냐고 물어보자. "의약을 몰라서"라고 대답했다.
의사들만은 마음놓고 거짓말을 할 수 있다는 플라톤의 말은 옳다. 우리들 생명의 안전이 그들이 약속하는 허황된 거짓 수작에 달려있으니 말이다.
책과의 교제 - 세 가지 교재
책과의 교제는 훨씬 더 확실하며 더 한층 우리의 차지이다. 노년기에, 그렇게 외롭고 쓸쓸함 속에서 나를 위로해준다. 그것은 내가 한가로울 때 권태의 무게를 덜어준다. 그리고 어느 시간에라도 내게서 귀찮은 동무들을 떼어준다. 또 번민이 극도로 심하지 않을 때에는 고통을 덜어준다. 불쾌한 생각을 덜어보려면 책의 도움을 청하기만 하면 된다. 책은 쉽사리 그런 생각을 흩어주며 빼앗아 간다. 그렇지만 서적들은 그보다 실제적이고 생생한 자연의 쾌락인 이런 다른 편익을 얻지 못하는 때에만 그들을 찾는 것을 보고도 불평을 하지않고 늘 같은 얼굴로 나를 맞이해준다.
세월은 달음질쳐 간다. 그렇다고 그 동안에 마음이 상할 것도 없다. 왜냐하면 책이 내 옆에 있으며, 내가 읽고 싶은 시간에 언제든지 쾌락을 줄 것이라는 생각에 얼마나 내 마음이 안심하여 가벼워지며, 얼마나 이 책들이 내게 도움을 주는가를 이루 다 인정하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내가 인생행로에 갖추고 있는 최상의 장비다. 그리고 이해력 있는 사람으로 이런 준비가 없는 자들을 지극히 가련하게 생각한다.
병자는 그 치유방법을 손에 쥐고 있는 경우, 가련하게 생각해줄 필요가 없다. 내가 서적들에서 끌어내는 모든 성과는 이런 어구의 실천과 적용으로 되어있다. 사실 나는 책을 모르는 자들 만큼이나 책을 들여다보지 않는다. 나는 구두쇠들이 보물을 가지고 즐기듯, 책을 가지고 즐긴다. 왜냐하면 내가 하고 싶을 때에 언제든지 그것을 즐길 수 있음을 알고있기 때문이다. 내 마음은 이것을 소유하는 권리에 포만하도록 만족을 느낀다.
"큰 재산이란 큰 노예생활이다." - 세네카
우리는 늘 딴 일을 생각하고 있다. 더 나은 인생을 가져보리라는 희망이거나 우리 자손들이 훌륭한 인물이 되리라는 희망이거나, 우리의 명성이 갖다 줄 미래의 영광이거나, 또는 이 인생의 불행에서 도피할 생각이거나, 또는 우리의 죽음을 가져올 자를 위협하는 복수심 따위가 우리를 이끌어 살아가게 부축해주고 있다.
나는 오랫동안 언짢은 평판을 받아오다가, 이런 일에는 아무런 꾀도 쓰지 않고 그댈 두면서 다만 꾸준히 지조만을 지켜오면서 다시 모든 남자들의 칭찬을 받게 된 여자를 보았다. 모두가 자신이 믿어오던 바를 뉘우치며, 지기 잘못을 깨달았다. 좀 수상하게 보이던 여자가 명예롭고 점잖은, 부인들의 제일 윗 줄에 서게 된다. 누가 플라톤에게 "모드들 그대를 나쁘게 말합디다. "라고 하자, 플라톤은 "그대로 두오. 그들이 말버릇을 고치도록 내가 살아가겠소."라고 대답하였다.
말(言)은 가시없는 무른 웅변이 아니고, 힘줄이 박히고 단단하며 사람을 즐겁게 해 주기보다는 채워서 활홀하게 하며, 가장 강력한 정신들을 감복시킨다. 이러한 훌륭한 문체가 그렇게 생기있고 심각하게 표현하는 것을 보면, 나는 그것을 말이 잘됐다고 생각하지 않고 생각이 잘됐다고 말한다. 그 생각하는 바의 발랄함이 말을 쳐들어 부풀어 올리는 것이다. "웅변을 만드는 것은 흉금이다." (퀸틸리아누스)
우리네는 속이 찬 개념들을 판단력이니 언어니 하름다운 문장이니 하고 부른다.
철학은 사람이 절도를 지켜주기만 하면 그 타고난 탐락을 배격하는 것이 아니다. 절도를 설교함이지 탐락을 피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철학이 가르치는 저항의 노력은 외부에서 들여온 혼잡한 탐락에 대항하는 것이다. 철학은 육체의 욕망을 정신으로 촉진시켜서는 안된다고 말하며, 그 포만에 의해서 우리들의 갈증을 일깨우려 하지말 일이며, 배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쑤셔넣는 짓은 하지 말 일이고, 우리게게 결핍을 느끼게 하는 모든 향락과, 기갈증을 일으키게 하는 모든 음식은 피하라고 가르친다. 사람의 봉사에서는 다만 육체의 욕구를 충당하고 심령을 격동시키지 않는 대상을 잡을 것이며, 심령은 그것을 자체의 일거리로 삼지말고 단순히 육체를 좆아서 도와주기만 하라고 명령한다.
우리가 이 지상의 감옥에 갇혀 있는 동안은 순전히 육체적인 것도 순전히 정신적인 것도 없으며, 살아있는 사람을 이 두 가지로 쪼개놓는 것은 부당한 일이다.
나는 숨가쁘게 내 자신을 사로잡고 있는 어떠한 다른 정열도 없다. 다른 사람들이면 나처럼 일정한 직업이 없을 경우, 탐욕, 야심, 싸움, 소송사건 같은 일에 마음이 잘 매여 지내지만, 나로서는 사랑에 매여 지내는 편이 더 기분 좋은 일이다. 사랑은 다시금 내게 주의력과 소박성과 우아미와, 내 인품에 대한 생각을 가꾸게 하고, 이 늙음의 얼굴찌푸림이 , 이 측은할만큼 비뚤어진 찌푸림이 나의 용모를 타락시키지 않게 보장해주고, 나에게 다시 건전하고 현명한 공부를 시작하게 하고, 그래서 내 정신이 자신과 자신의 쓸모에 관해서 절망하는 심정을 없애고, 자신에게 다시 정이 붙게하여 더 사랑받고 존경받을 수 있게 해줄 것이고, 할 일은 없고 건강상태는 나빠지기 쉬운 이런 나이의 수천가지 불쾌한 생각과 우울한 번뇌를 흩어준다. 또 적어도 공상으로라도 대자연에 버림받기 시작하는 이 피에 다시 따스함을 넣어주며, 이제 마지막 파멸을 향해 줄달음치는 가련한 인간에게 턱을 괴어주고, 근육과 심령의 정력과 쾌활성을 조금은 연장시켜 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것이 여간해서는 회복하기가 쉽지않은 것임을 너무나 잘 알고있다. 몸은 허약해지고, 오랜 경험으로 우리 취미는 한층 더 연약하고 꾀 까다로와져서, 내놓는 것도 별로 없이 요구만 많아지며, 용납될만한 가치가 아주 없는터에 가장 좋은 상대만 고르려고 한다. 우리는 이런 사정을 알고 있기 때문에 젊었을 적만큼 과감하지도 못하며, 사람을 더 믿어주지도 못한다. 우리 조건과 여자들의 조건을 알고 있는 만큼 우리는 아무것도 사람받을 자신을 가질 수 없다. 나는 저 피끓은 새파란 청춘들 사이에 끼여 있기가 부끄럽다.
자기가 쾌락을 주지 못하며 남의 쾌락을 받는 자는 조금도 떳떳한 것이 못된다. 모든 일에 남의 덕만 보려고 하며, 상대편에게 부담이 되게 교제하고, 남의 신세만 지기를 좋아하는 자는 마음이 비굴한 자이다.
우리 인생의 지배력을 사랑에게 짧게 줄수록 우리는 그 만큼 더 가치가 생긴다. 사랑의 자태를 보라. 그것은 젖내나는 모습이다. 사랑의 학파에서는 모든 처사가 질서에 역행하는 것을 누가 모르는가? 공부나 훈련이나, 행동습관이 무능력으로 향하는 방도로 된다. 거기서는 풋내기들이 스승이다.
사랑이 얼마나 비틀거리며 부딪치고 촐랑대고 가는가를 보라. 그것을 현명하게 기술적으로 지도한다는 것은 칼을 씌우는 일이다. 사랑을 더부룩하고 덕적덕적한 손에 맡긴다는 것은 그의 신성한 자유를 속박하는 일이다.
좋은 수확을 거두려면 종자를 뿌려야 한다. 포대를 쏟지마라.
왕으로부터 지나친 하사를 받는 신하들은 요구도 지나치게 된다. 그들은 이치에 따라서 자기를 평가하지 않고, 남에게 해준 예에 따라서 한다. 이런 체면없는 생각에 우리는 얼굴이 붉어지는 일이 많다. 받는 보수가 우리가 해준 수고와 비슷할 때에는, 정의를 따르면 우리는 너무 많이 받는다.
받아버린 것은 이미 계산에 들어가지 않는다. 사람은 앞으로 후대받을 것 밖에는 좋아하지 않는다. 그 때문에 왕은 남에게 주다가 줄것이 없어질수록 그 만큼 심복을 잃는다.
채워줄수록 커가는 욕심을 어떻게 만족시킨단 말인가? 가질 생각을 가진 자는 이미 가진 것은 생각하지 않는다. 탐욕은 배은망덕하기에 꼭 알맞은 소질이다.
우리는 멀리 내다보지도 못하며, 뒤를 조금도 돌아보지 못한다. 우리 지식은 포용하는 것이 얼마되지 않고, 얼마 계속하지도 못한다. 그것은 시간의 폭으로나 내용의 폭으로나 마찬가지로 짧을 것이다.
6. 역마차에 대하여
두 쪽에 스페인 정복자(프란시스코 피사로)의 페루 이야기, 아타우 알파, 잉카제국 황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하드리아누스 황제가 어떤 문자의 해석을 가지고 철학자 파브리누스와 토론하던 때에, 파브리누스는 바로 승리를 황제에게 양보했다. 그의 친구들이 그를 비난하자 그는 대답하기를, "그런말 마시오. 그래 30군단을 지휘하는 그가 나보다 박학하지 못하단 말이오?"라고 했다. 아우구스투스가 아시니우스 폴리오를 공격하는 시를 썼다. 그러자 폴리오는 말했다. "나는 입을 다물겠소. 나를 추방할 수 있는 자에게 대항해서 글을 쓴다는 것은 현명한 짓이 아니오." 그의 말이 옳았다. 왜냐하면 디오니시우스는 시로써는 필로크세노스를, 산문으로는 플라톤을 당해내지 못하자, 하나는 채석광으로 중노동형을, 하나는 노예로 팔아 아이기나 섬으로 쫒아냈다.
우리의 정신은 힘차고 조절된 정신과의 의사소통에서 강화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병적인 저속한 정신들과 끊임없이 교섭하고 자주 상종함으로써 얼마나 타락하며 손해를 보는 것인지는 이루다 말할 수 없다. 이 보다 더 잘 전염하여 퍼지는 것은 없다.
누구에게나 자기 방귀는 구수하다. - 에라스무스 -
누리 눈은 뒤의 것은 보지 못한다. 우리는 하루에 백번은 이웃 사람들의 문제로 자신을 비웃으며, 우리 속에서 더 분명히 보이는 결함을 다른 사람들 속에서 보며 미워한다. 그리고 뻔뻔스럽고 부끄럼이 없는 그들의 일에 놀란다.
나는 행동할 생각을 가질 때에는 먼저 일을 대강 살펴보고, 그 첫 모양을 가볍게 고찰해본다. 그 일의 가장 어렵고 중요한 부분은 하늘에 맡겨두는 것이 내 버릇이다. 나머지 일은 하늘에 맡겨라. -호라티우스-
타키투스, 나는 이 작가만큼 공적사건의 기록에 개인적 행동습관과 경향에 관한 고찰을 섞어넣는 예를 알지 못한다. 그래서 많은 행적들 뿐 아니라, 특히 신하들에 대한 잔인한 처사까지, 그 모든 종류의 형태가 극단적으로 잡다하던 제왕들의 생애를 좇아보게 되었다. 그는 온 세상의 전쟁과 동란에 관한 것보다도 이런 면을 고찰하고 진술하기에 더 강력하고 흥미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형태의 역사는 한층 더 유익한 것이다. 공사(公事)의 움직임은 운의 지도에 더 매여있고, 개인적인 일은 우리들의 지도에 달려있다. 이것은 역사의 서술이라기 보다도 차라리 하나의 판결이다. 여기는 이야기보다 교훈이 더 많다. 이것은 읽을 책이 아니라 연구하고, 배워 갈 책이다. 옳은 일에 대한 교훈으로 가득하다. 이 작품은 세계를 다루는 지위를 잡은 인물들의 준비와 장식을 위한 윤리적이며 정치적인 고찰의 기초이다. 몽테뉴의 극찬
그가 말하는 바, 베스파시우스는 세라피스 신의 은혜를 받아 알렉산드리아에서 한 여자 장님의 눈에 침을 발라 눈을 뜨게 해 주었다느니 하는 무엇인지 모르는 다른 기적들을 말하는 것은, 그가 선량한 역사가들의 예와 의무로 하는 일이다. 그들은 중요한 사건들의 기록을 맡아보고 있다. 국민들의 소문이나 의견들도 역시 공적 사건들 축에 든다. 일반을 믿는 것을 정리하는 것이 아니고, 그대로 기록하는 것이 그들의 역할이다. 이 정리하는 면은 양심을 지도하는 신학자들과 철학자들이 하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그에 비길 정도로 위대한 그의 동료는 "사실 나는 내가 믿는 것 보다 더 많이 기록한다. 왜냐하면 나는 의심하는 바를 확인해 볼 길도 없고, 그렇다고 전설이 내게 전해준 바를 삭제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지극히 잘한 말이다. 그들은 마땅히 생각하는 것보다도 전해받은 것에 따라서 역사를 전해줄 일이다. 나는 내가 취급하는 일에는 내가 왕이며, 아무에게도 매여 지낸 것이 없으니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늘 내 정신이 트집을 잡는 수가 있기 때문에, 이 점을 경계한다. 그리고 언어상의 농간에 속을까봐 내 귀도 경계한다. 그러나 나는 이런 일은 아무렇게나 되는대로 둔다.
인간 사회는 무슨 희생을 치르고서라도 서로 매이고 얽혀서 살아가는 것을 본다. 마치 잘 결합되지 않은 물체들을 질서없이 자루에 쑤셔 넣으면 그들끼리 서로 자기들 속에 얽매이는 방식을 찾아가며, 때로는 기술적으로 정리해 넣은 것보다 더 잘 자리잡는 식으로 사람들은 어느 장소에 갖다놓아도 움직이며 서로 덮치다가 서로 쌓이며 정돈되어 간다.
그렇게 높이 곤두박질쳐 떨어지려면, 견고하고 힘차고 여유있게 풍족한 친구의 팔에 떨어져야 할 일인데, 그런 친구란 있다고 해도 드물다. 마침내 나는 내가 곤궁할 때에 나를 맡길 가장 안전한 곳은 나 자신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운의 은혜에서 냉대받는 경우를 당한다면 가장 간절하게 나를 자신의 은혜에 당부하고 내게 애착하며 나를 더 가까이서 주시해 보아야 할 것임을 알았다.
모든 철학자들의 인생은 죽음에 관한 명상이다. (키케로)
우리는 죽음의 근심으로 삶을 방해하고, 삶에 대한 걱정으로 죽음을 방해한다. 하나는 우리에게 고난을 주고, 또 하나는 우리에게 공포를 준다. 우리는 죽음에 대해서 준비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너무나 순간적인 일이다. 결과가 없고 해(害)가 없는 15분 동안의 수고는 특별한 교훈을 받을 가치가 없다. 사실을 말하면 우리는 죽음의 준비를 준비한다.
우리는 자기를 솔직하게 비판하는 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강인한 귀'를 가질 필요가 있다. 그리고 속이 쓰리다고 느끼지 않고 남의 비판을 참고 듣는 자는 드문 까닭에, 우리에게 감히 비평을 시도하는 자는 특별한 우정의 표시를 보여주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사람을 좋게 해 주려고 그의 감정을 상하게 하고 모욕을 주는 일을 한다는 것은 건전하게 사랑해주는 일이기 때문이다. 플라톤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알아보려고 하는 자에게 지식과 호의와 과감성이라는 세 가지 소질을 가지라고 명령한다.
어떻든 내가 여기 끄적거려 놓은 이 모든 부스러기는, 내 인생의 경험을 기록하는 것에 지나지 않으며, 마음의 건강을 위해서는 이 교훈을 거꾸로 해석해도 족할만한 본보기이다.
의술은 역시 경험을 항상 치료법의 시금석으로 삼는다는 것을 표명하고 있다. 그러므로 플라톤이 "진실한 의사가 되려면, 고치고 싶은 모든 병들을 겪어보고, 그가 판단하려는 사정과 사건들을 모두 거쳐보고 난 다음에 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 것은 지당하다.
마마를 고치려면 마마를 앓아보아야 한다. 그런 사람이라면 나는 믿겠다. 왜냐하면 다른 자들은 대개 자기 집 탁자에 앉아서 마치 바다와 암초와 항구 등을 그려놓고, 아주 안전한 자리에서 배의 모형을 끌고 다니는 식으로 사람을 지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에게 실제로 당하게 하라. 그는 어떻게 해야할 지를 모른다. 그들은 사람의 병을 말하는 꼴은 마치 성읍(城邑)의 나팔수가 잃어버린 말이나 개의 모양을 설명하며, 털빛이 어떻고 키는 어떻고 귀가 어떻게 생겼다고 소리치는 식이다. 진짜 실물을 가져다 보여보라. 그렇게 해도 그는 알아보지 못한다.
정말이지 의술은 언제고 네게 눈에 보이도록 좋은 효과를 주게 된다면, 나는 얼마나 진심으로, 마침내 나는 결과로 설명되는 학문에 항복한다.(호라티우스)
나는 경험으로 참을성이 없으면 손해가 되는 것을 배웠다. 재난에는 그들의 생명과 한계와 병폐와 건강이 있다.
나는 몸에 어떤 변화를 느껴도 거의 진찰을 받지 않는다. 왜냐하면 어런 작자들은 몸을 맡기는 자들을 제 마음대로 지배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진단으로 우리를 귀가 따갑도록 책망한다. 그리고 전에는 내 몸이 힘으로 허약했던 꼬투리를 잡고, 때로는 내가 굉장히 고생할 것이라느니 또는 죽을 것이라느니 하고 위협하며, 위풍있는 얼굴로 그들의 학설을 휘두르며 말이 아니게 나를 학대했다. 나는 그렇다고 의기소침해 하거나 정신을 잃거나 하지않고, 반대로 속이 상해서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 때문에 판단력이 변하거나 동요된 것은 아니더라도, 다소의 장애를 받았다. 그것은 언제나 동요이며 싸움이다. (2020.11.15.)
그 많은 탕약이나 불로지지기, 주사, 땀내기, 꿰매기, 절식 등 너무 귀찮고 혹독해서 자칫하면 그것을 견디어 내지 못하여 죽음을 초래하는 많은 치료법은 어찌 볼 것인가? 그 까닭에 나는 병의 발작이 오면, 이것을 약으로 여긴다. 그리고 아픔이 가시면 그것을 꾸준하고 온전한 해방으로 삼는다.
여기 또 내 병의 특수한 혜택이 하나 있다. 그건 이 병이 제멋대로 놀고 나는 나대로 그대로 두며, 그것을 하고 안함은 나의 용기 나름이다. 나는 증세가 가장 심할 때 열시간 동안이나 말을 타고 버티어냈다. 참기만 하라. 다른 섭생법은 쓸 필요가 없다. 놀아라. 먹어라. 달음질 쳐라. 할 수 있거든 이것이나 저것이나 무엇이든 하라. 방자한 행동은 여기에 이익은 되어도 해가 되지 않는다.
내가 오줌과 맥박을 검진해보고 귀찮게 조심을 하며 그것으로부터 무언가 좋지않은 예상을 끌어내리라 기대하지 마라. 나는 어리석게 공포로 고통을 늘려가지는 않아도 내 고통을 느낄 여유가 충분하다. 고통받을 것을 두려워하는 자는 두려워하는 것으로 벌써 고통을 받는다.
쾌락은 추구해서도 피해서도 안된다. 쾌락은 받아야 한다. 쾌락을 좀 걸쭉하고 고맙게 받아들이며, 기꺼이 본성의 경향을 향해 이끌려 간다. 쾌락의 헛됨을 과장해 보아도 소용없다. 그것은 충분히 느껴지며 충분히 드러나 보인다.
그릇이 불결하면 무엇을 담아도 쉬어버린다. (호라티우스)
본성이 자기를 나타내고 계발하기 위해서는 운수 따위는 상대할 거리도 안된다. 본성은 모든 층계에서 똑 같이, 마치 장막이 없는 것처럼 그 뒷면까지도 나타내 보인다. 계략을 꾸밀 것이 아니라, 행동 습관을 꾸미는 것이 우리가 할 업무이다. 전쟁에 승리하여 영토를 얻는 것이 아니라, 우리 행실에 질서와 안정을 얻는 것이 우리의 일이다. 우리의 영광스럽고 위대한 걸작은 우리가 적당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지배한다, 재물을 모은다, 건설한다는 따위의 모든 일들은 기껏했자, 부수적이며 부차적인데 지나지 않는다.
소크라테스, 그는 27년 동안 한결같은 모습으로 굶주림과 추위와 말안듣는 어린 아이들의 보챔과 아내의 바가지 등살에 시달렸고, 마침내는 고발과 포학과 투옥과 쇠사슬과 독배형(毒杯刑)을 받고 말았다. 그러나 이 인물은 교제의 의무로 술마시기 내기에 초청되면, 군대 중에서도 역시 승자로 남게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어린아이들과 공기놀이와 목마타기를 거절하지 않았으며, 그런 일에도 우아한 품이 있었다. 왜냐하면 철학에 말하기를, 현자에게는 모든 행동이 똑 같이 적합하며, 똑같이 영광을 준다고 하기 때문이다.
자기의 존재를 충실하게 아는 것은 절대적인 완벽이며, 신성함과 같은 일이다. 우리는 자신의 용도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다른 조건들을 찾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기 때문에 자기 자신에게서 벗어난다. 그 때문에 우리가 아무리 죽마(竹馬)를 타고 높이 올라보아도 소용없다. 왜냐하면 죽마 위에서도 우리는 다리로 걸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높은 왕좌 위에서도 역시 우리 궁둥이는 자리에 앉는 것에 지나기 않는다.
가장 아름다운 인생은, 내 생각으로는 터무니없는 기적없이 보통 인간의 본보기로 질서있게 처신하는 인생이다.
몽테뉴(1533-1592) 59세, 9.13.
2020.11.15. 일요일. 달리기 하고 저녁을 치맥으로 먹으며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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