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5. 소크라테스의 변명, 크리톤, 파이돈, 향연, 플라톤, 문예출판사, 1999.
홍익학당의 윤홍식 대표의 인문학 강의 시리즈를 시청하고 동양철학과 서양철학에 관심을 가진다. 서양철학과 조선의 선비사상에 조금 더 깊이 있게 알아보자.
소크라테스(B.C.469~399) 아테네 철학자. 70세에 독배를 마시고 죽다.
플라톤(B.C.427~347) 아테네 명문가 출생. 20세 소크라테스 제자로 들어가 철학에 전념. 28세에 소크라테스 사망. 정계진출 포기하고, 기원전 387년 아테네 서쪽에 아카데모스에 학원을 짓고 그 곳에서 여생을 연구와 저술에 전념하였다. 플라톤은 소크라테스 사상의 충실한 계승자였다. 동시에 그는 스승의 사상을 진전시켜서 체계화한 독창적인 사상가였다.
변명
소크라테스가 고발당해 아테네 법정에서 자신을 변론한 내용.
당시 아테네에서는 재판관을 30세 이상의 성년 남자들 중에서 추첨으로 선출했다. 임기는 1년 이었다. 소크라테스 재판 때는 그 수가 5백명이 되었다고 한다. 피고는 소크라테스, 고발인 원고는 멜레토스
공소장 요약.
'소크라테스는 악행을 하는 자이며 괴상한 사람ㅇ다. 그는 지하의 일이나 천상의 일을 탐구하고, 나쁜 일을 좋은 일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위와 같은 일들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가르친다 '
나가 악명을 듣게 된 이유
이러한 평판은 내가 어떤 종류의 지례를 갖고 있기 때문에 생긴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에 의해 획득될 수 있는 지혜이며, 인간에 의해 획득될 수 있다는 한도내에서만, 나는 내가 현명하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한편 내가 앞에서 말한 사람들은 초인간적인 지혜를 갖고 있습니다. 나는 이러한 지혜를 갖고있지 못하기 때문에 이 지혜를 설명하지 못합니다. 따라서 내가 이러한 지혜를 갖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거짓말을 하고 있으며, 나를 중상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의 친구 카이레폰(Chaerephon)은 델포이로 가서 신탁을 요구했습니다. 소크라테스 보다 더 현명한 사람이 있는가? 델포이의 무녀는 더 현명한 사람은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내가 이 신탁을 들었을 때, 신은 나에게 무슨 말을 하려고 한 것일까? 생각했습니다. 그는 신이고 따라서 거짓말을 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오랫동안 숙고한 끝에 이 문제를 푸는 방법을 생각해냈습니다. 만일 나 자신보다 더 현명한 사람을 찾아 내기만 한다면 나는 반증을 갖고 신에게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 나보다 더 현명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내가 가장 현명하다고 말했습니다."하고 나는 말할 것입니다. 그래서 현인이라는 세평을 듣고 있는 사람을 찾아가서 - 그는 정치가였습니다- 관찰했습니다.
나는 그와 대화를 시작하자마자 많은 사람들이 그를 현명하다고 생각하고, 자기도 매우 현명하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사실은 그는 현명하지 않다는 생각을 금할 수가 없었습니다. 따라서 나는 그 자신은 현명하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사실은 현명하지 않다는 것을 그에게 설명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 나는 그의 미움을 샀고, 그 자리에 동석해서 내 말을 듣고 있던 사람들도 나에게 적의를 갖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나는 그와 헤어져 돌아오면서 생각했습니다. 그 사람도 나도 아름다움이나 善을 사실상 모르고 있지만 나는 그보다 더 현명하다고. 왜냐하면 그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면서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알지도 못하고 또 안다고 생각하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알지 못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점에서 나는 그 보다 약간 우월한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 사람 보다 더 현명하다고 알려져 있는 다른 사람을 찾아갔으나 결론은 마찬가지 였습니다. 그렇게해서 나는 그와 그 이외의 많은 사람을 적으로 만들었습니다.
시닌, 비극시인, 주신(酒神) 찬양시인, 시인은 지혜가 있어서 시를 쓰는게 아니라 일종의 소질과 영감에 의해 시를 쓴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들은 훌륭한 말을 많이 하지만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예언자나 점쟁이와 같습니다. 더 나아가 그들은 시를 쓴다는 것을 믿고 다른 일에 대해서도, 사실은 그렇지 않건만, 가장 현명한 사람으로 자처하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마지막으로 나는 장인(匠人)을 찾아 갔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장인들은 많은 훌륭한 일을 알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내가 알지 못하고 있는 많은 일을 알고 있었고, 이 점에서는 귿르은 확실히나보다 현명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훌륭한 장인까지도 시인과 마찬가지의 잘못에 빠져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들은 훌륭한 기술자이므로 자신들이 모든 종류의 중대한 문제에 대해 알고 있다고 생각했으며, 이러한 결점이 그들의 지혜를 가리고 있었습니다. (중략) 이와같은 탐구로 말미암아 나는 최악의 , 그리고 가장 위험한 적을 만들었으며 또한 많은 비방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리고 나는 현인이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내 말을 들은 사람들은 언제나 내가 다른 사람에게서 찾고자 한 지혜를 나 자신은 갖고 있으리라고 상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 아테네인 여러분, 사실은 오직 신만이 현명합니다. 신은 신탁을 통해서 인간의 지혜는 보잘것 없거니와 전혀 가치없음을 보여주려고 했던 것입니다.
조금이라도 훌륭한 사람은 죽느냐 사느냐 하는 위험을 헤아려서는 안됩니다. 그는 어떤 일을 하면서 오직 올바른 행위를 하느냐, 곧 선량한 사람이 할 일을 하느냐 악한 사람이 할 일을 하느냐 하는 것만 고려해야 합니다.
죽음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지혜로움을 가장한 것이지 진정한 지혜로움은 아닙니다. 그것을 알지 못하는 것을 아는체 하는데 지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죽음이 최대의 선인지 아닌지를 아는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두려운 나머지 죽음을 최대의 악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러한 무지는 부끄러운 것 아닐까요? 그리고 이러한 점에서 나는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고 생각하며, 그들보다 더 현명하다고 주장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나는 명부(冥府)에 대해서는 거의 알지 못하므로 나는 알도 있는 체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익살스러운 말로 한다면, 신이 이 나라에 보낸 일종의 등에인 것입니다. 이 나라는 거대하고 기품있는 군마(軍馬)와 같아서 바로 거대하기 때문에 운동이 둔하며 따라서 각성이 필요한 것입니다. 나는 신이 이 나라에 부착해 놓은 등에이며, 따라서 하루 종일 어디서나 한결같이 여러분을 붙잡고 각성시키고 설득하고 비난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이몬, 내면의 목소리, 신, 양심, 양지
재판관의 의무는 정의를 선사하는 것이 아니라 판결을 내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재판관은 자신의 기분에 따라 재판하지 않고, 국법에 따라 재판할 것을 서약하였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여러분이 서약을 깨뜨리는 습관을 갖도록 해서는 안되며, 여러분도 이러한 습관을 키워서는 안됩니다. 이러한 습관에는 경건함은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중략)
나는 여러분이나 나를 위해서 최선의 것이 되도록 재판해 줄 것을 여러분과 신에게 맡깁니다.
* 기원전 404년 30인 과두정부가 들어서자 민주파 사람들은 망명했다가 다음 해에 과두정부가 쓰러지자 귀국했다.
* 당시 아테네에서는 재판관을 30세 아상의 성인 남자들 중에서 추첨으로 선출해다. 임기는 1년, 소크라테스 재판 때네는 그 수가 500명이나 되었다고 한다. 재판은 변론을 듣고 먼저 유죄 또는 무죄를 결정하는 투표가 실시된다. 흰돌과 검은 돌에 의한 투표결과 30표 차이로 유죄로 인정된다.
또 고발자가 전 투표수의 5분의 1을 획득하지 못하면 1천 드라크마의 벌금을 과하도록 법에 규정되어 있었다. 때로는 시민권을 박탈하는 경우도 있었다. 경솔한 소송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고발자 세 사람. 시인-멜레토스, 정치인- 아니토스, 웅변가-리콘
아테네 재판관습에 따라 유죄선고 후에 원고와 피고는 형량을 제안하는 것이 허용되었다. 이러한 범죄에 대해서는 법률에 명확한 규정이 없어서 법정이 형량을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멜레토스는 사형을 제안했다. 이에 대해 소크라테스는 아테네 시의 최고의 영예를 자기에게 주어야 마땅하다고 제안한다.
펠레폰네소스 전쟁(B.C.431~404) 페르시아의 원조를 받은 스파르타 동맹군이 아테네 동맹군을 패퇴시켰다.
"정직한", "정당한" 그대에게 '획득'이라는 단어 앞에 "정당한" 과 "정직한"이라는 형용사를 덧붙여도 아무런 차이가 없는가? <메논> <<철학의 위안, 알랭드 보통>>
아테네에서는 옳고 그른 것을 판단하는 절차가 확고했다. 광장 남쪽에 자리잡은 큰 법정의 한 쪽 끝에는 배심원을 위한 나무벤치가, 다른 한 쪽 끝에는 기소자와 피고인이 설 연단이 각각 놓여 있었다. 재판은 기소자의 연설로 시작되었으며, 곧 피고인의 연설이 뒤따랐다. 그러면 200명에서 2,500명 사이의 배심원단의 투표나 거수로 어느쪽이 진실한지를 가렸다. 이처럼 한 가지 제안을 놓고 그것을 지지하는 사람의 수를 헤아려서 옳고 그름을 결정하는 방식은 아테네의 정치와 사법분야에 두루 통용되었다. 한 달에 두 세번, 약 3만명에 이르는 남성들이 거수로 중요한 국가문제를 결정하기 위해서 광장 남서쪽의 프닉스 언덕에 모였다. 아테네의 입장에서 보면 과반수의 의견은 곧 진리였다.
소크라테스의 재판이 열린 날, 시민 500명이 배심원이 되었다. 그날 헬리아스테스 법정에 앉아 있던 배심원들은 전혀 전문가들이 아니었다. 그들 가운데는 노인과 상이군인이 상당 수 포함되어 있었다. 그들은 손쉽게 부수입을 올릴 수 있는 수단으로 배심원 자리를 노리던 사람들이었다. 급여는 하루에 3오볼(Obol : 옛 그리스 은화)로 육체노동자 보다는 적었지만, 나이가 예순 셋이거나 집에 있는 것이 피곤한 사람이라면 상당히 도움이 될만한 액수였다. 유일한 자격은 시민권과 건강한 마음, 그리고 빚이 없으면 되었다. 비록 마음의 건강을 소크라테스의 기준으로 판단하지는 않았더라도, 일직선으로 걸을 능력이 있고, 요구받을 때 마다 즉각 자신의 이름을 댈 수 있으면 마음의 건강이 좋다는 평가를 받았다. 배심원들은 재판 도중 곯아떨어지기도 했으며, 비슷한 재판이나 관련법에 경험이 있는 사람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런데도 그들이 평결을 내릴 때까지 그 누구도 재판과정에 대해서 그들에게 설명을 해주지 않았다.
소크라테스의 재판에 배심원으로 참여한 사람들은 무서운 편견을 가진 채 법정에 들어섰다. 그들은 아리스토파네스가 소크라테스를 풍자적으로 그린 연극에 영향을 받은터라 한 때 막강했던 도시에 들이닥친 세기말적 재앙에 그 철학자가 어떤 역할을 했다고 막연히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참패로 끝났고, 스파르타-페르시아 동맹에 아테네는 무릎을 꿇게 되어 봉쇄당했으며, 아테네 함대는 파괴되고 제국은 분할 되었다. 가난한 도시 근교에는 전염병이 창궐하였고, 민주주의는 시민 1,000명을 처형한 독재정권에 억압당했다. 소크라테스 적들의 입장에서 보면, 많은 독재자들이 한 때 그 철학자와 함께 시간을 보낸 적이 있다는 사실은 우연 이상의 것이었다. 크리티아스와 카르미데스는 소크라테스와 도덕적 문제를 논의했는데, 그 결과로 독재자들이 얻은 것은 살인에 대한 갈망뿐이었던 것 같다.
고귀했던 아테네의 극적인 몰락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었을까? 헬라스에서 가장 위대했던 도시, 불과 75년 전에 플라타이아 지상전에서, 그리고 마칼레의 해전에서 페르시아군을 패퇴시킨 이 도시가 치욕적인 굴욕을 감내해야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불결한 외투를 걸치고서 ,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질문을 던지며 거리를 떠돌던 소크라테스는 이미 잘 준비된 결점투성이의 제물이었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에게 더 이상 기회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심지어 그에게는 자신을 변호할 시간조차 부족했다. 피고인들에게는 배심원들 앞에서 연설할 시간이 몇 분 밖에 주어지지 않았다. 법정시간으로는 이 항아리에 담긴 물이 저 항아리로 다 흐를 때까지 뿐이었다.
아테네의 법정은 진실을 가리기 위해 노력하는 공개 토론장이 결코 아니었다. 그곳은 자신의 신념을 이성의 검증에 맡기지 않은 채 그저 이 항아리에서 저항아리로 물이 다 흘러가기만을 기다리는, 늙은이와 외다리 상이군인 집단의 만남이 신속하게 이루어지는 공간일 뿐이었다.
판사가 마지막 평결을 주문하자 배심원 중에서 360명이 소크라테스에게 사형 판결을 내렸다. 그 후 배심원들은 집으로 돌아갔고, 유죄선고를 받은 철학자는 감옥으로 끌려갔다.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을 진실과 동의어로 보는 것은, 인기가 없는 것을 오류와 동의어로 믿는 것 만큼이나 고지식한 짓일 것이다. 하나의 관념이나 행동이 유효하느냐 않느냐는 그것이 폭넓게 믿어지느냐 아니면 매도 당하느냐에 따라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고 논리의 법칙을 지키느냐의 여부로 결정되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우리에게 두 가지 강렬한 환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제시했다. 두 가지 환상이란 바로 대중의 여론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과, 절대로 귀를 기울여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예를 따라서, 늘 이성의 명령에 귀를 기울이려고 노력한다면 우리는 최고의 보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알랭드 보통-
나는 여러분의 방식에 따라 말함으로써 생명을 보존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나의 방식대로 말하고 죽는 것이 훨씬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또는 어떤 사람이든 전쟁에 있어서 또는 법률에 있어서 모든 책략을 동원하여 죽음을 회피하려고 해서는 안되기 때문입니다. 흔히 있는 일입니다만 분명히 싸움터에서는 무기를 버리고 추격자 앞에서 무릎을 꿇는다면 죽음을 피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위험에 직면했을 때에도 무슨 말이든 또 무슨 짓이든 다 하기만 한다면, 다른 방법으로 죽음을 피할 수 있습니다. 나의 친구여, 죽음의 회피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불의(不義)를 피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부정은 죽음보다도 빨리 달리기 때문입니다. (중략) 나는 지금 여러분들로부터 유죄판결을 받고 사형을 받기 위해 떠나지만, 그들도 진리에 의해 유죄판결을 받고 흉악과 부정에 대한 처벌을 받기 위해 떠나갑니다. 나는 나에게 내린 판결을 감수해야 하며, 그들은 그들에게 내린 판결을 감수해야 합니다.
이제 떠나야 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각기 자기의 길을 갑시다. 나는 죽기 위해, 여러분은 살기 위해서, 어느쪽이 더 좋은가 하는 것은 오직 신만이 알 뿐입니다.
<크리톤>
소크라테스여, 나를 믿고 다시한번 내 충고에 따라 달아나도록 하게. 자네가 죽으면 나는 두번 다시 만날 수 없는 친구를 잃을 뿐 아니라, 또 한가지 난점이 있네. 자네와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내가 돈을 쓰기만 했더라면 자네를 구할 수 있었을 텐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믿을걸세. 게다가 그 보다 더 나쁜 불명예가 있네. 내가 친구의 목숨보다 돈을 더 소중히 여겼다 하지 않겠는가? 많은 사람들은 내가 자네에게 도피하라고 했으나 자네가 거절했다는 말을 믿지 않을거야.
소크라테스 : 하지만 크리톤, 많은 사람들의 의견에 구애될 이유가 무엇인가? 선량한 사람들은 그런한 사람들만 고려할 가치가 있거니와, 이번 일을 사실 그대로 믿어줄걸세.
크리톤 : 그러나 소크라테스, 자네도 알다시피 다수의 의견은 존중하지 않으면 안되네. 자네에게 일어난 일만보더라도 그들은 비방의 대상이 된 사람에게 최대의 해를 끼칠 수 있다는 것이 분명하니까.
소크라테스 : 크리톤, 나는 그렇게 되기를 바랄 뿐이네. 사실 많은 사람들은 최대의 해를 끼칠수도 있을거야. 그렇다면 또한 그들은 최대의 선도 이룩할 수 있을게 아닌가. 그렇게 된다면 얼마나 좋은 일인가! 그러나 사실은 그들은 어느쪽도 하지 못하네. 그들은 사람들을 현인으로도 바보로도 만들지 못하기 때문이야. 그들이 무슨 일을 하든 그것은 우연히 일어난 일에 지나지 않아.
소크라테스 : 우리가 지금 검토하고 있는 문제인 정의와 부정, 미와 추, 선과 악의 문제에 있어서도 우리는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따르고 그 의견을 두려워해야 할까? 아니면 분별력이 있는 한 사람의 의견을 따르고 그 의견을 두려워해야 할까? 세상의 모든 사람들보다도 그를 두려워하고 존경해서는 안되는가? 그리고 우리가 그를 버린다면, 우리는 정의에 의해서는 향상되고, 부정에 의해서는 퇴폐된다고 생각되어 온 우리의 원칙을 파괴하고 손상시킬 것이 아닌가?
<파이돈> 죽는 날(독약을 마시던 날)
"영혼과 육체가 결합되어 있을 때, 영혼은 지배하고 다스리고, 육체는 복종하고 섬길 것을 자연이 명한다고 - 그런데 이 두 기능 중에서 어느 것이 신적(神的)인 것을 닮았는가? 신적인 것은 본성상 명령하는 것이며 죽어야 할 것은 지배받고 예속되는 것이라고 자네는 생각하지 않나?"
백조들은 죽음의 날이오면 다른 때 보다도 더 즐겁게 노래하고 기뻐하는거야. 그리고 나도 역시 아폴론 신에게 바쳐진 종이며, 백조의 동료임을 믿고, 또 나의 주인으로부터 백조에 뒤지지 않는 예언의 재능을 받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백조와 마찬가지로 즐거움 마음으로 세상을 떠나려고 하네.
소크라테스는 말했습니다. "그러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세. 그리고 자네는 질문에 대답할 때 내가 질문에 쓴 말을 사용하지 않도록 하게. 나는 처음에 내가 말한 오래되고 안전한 대답을 다시 듣고 싶지않네. 오히려 또 다른 안전한 대답, 곧 방금 말한 것으로주터 자네가 진리를 찾아낸 대답을 듣고 싶네. 다시 말하면 어떤 사람이 자네에게 '어떠한 성질이 신체내에 있기에 신체는 따뜻해지는가?' 라고 묻는다면 자네는 열이라고 대답하지 말고 (이것이 내가 안전하고 우둔한 답이라고 부를걸세), 불이라고 대답하게. 불이라는 대답은 우리가 내리고자 하는 훨씬 탁월한 대답일세. 또는 어떤 사람이 자네에게 '왜 신체는 병드는가?'라고 묻는다면, 병 때문에 그렇다고 대답하지 말고 열이 있어서 그렇다고 말하게. 그리고 홀수 자체가 홀수의 원인이라고 말하는 대신에, 단일이 그 원인이라고 말하게. 그리고 일반적으로 다른 일의 경우도 마찬가지지만 내가 더 이상 예를들지 않더라도 자네는 충분히 이해했을 줄 믿네."
소크라테스는 대답했습니다. "옳은 말이야. 심미야스. 좋은 말을 했네. 그리고 최초의 원리들이 확실한 것처럼 생각되더라도 조심스럽게 다시 검토해야 한다는 것을 덧붙여서 말하고 싶네. 그리고 최초의 원리들이 만족스러울만큼 확실할 때에는 인간의 이성이라면 어쩔 수 없는 망설임이 섞인 확신을 갖고 논의의 과정을 따라야한다고 나는 생각하네. 그래서 그것이 분명하고 명확하다면, 더 이상의 추구는 필요하지 않을거야." '영혼불멸'
소크라테스는 말했습니다. "그렇지만, 오. 나의 벗들이여. 영혼이 정말로 죽지 않는다면 생애라고 부르는 시기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영원을 위해서 영혼을 알뜰하게 돌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영혼을 소홀히 다룸으로써 생기는 위험은 참으로 엄청날거야. 죽음이 모든 것의 종말이기만 하다면 악인은 죽으면서 유리한 흥정을 할거야. 악인은 행복한 마음으로 육체와 작별할 뿐 아니라, 그의 영혼과 함께 그 자신의 죄악과도 영영 작별하게 될테니까. 그러나 영혼이 분명히 죽지 않는다면, 최고의 덕과 지혜에 도달하지 않고서는 악으로부터 해방되고 구원된다는 것은 불가능해. 왜냐하면 영혼은 명부로 갈 때 교양과 교육 외에는 아무것도 갖고가지 못하기 때문이야. 그리고 떠나는 자가 저 세상으로 가는 여행을 시작하면서부터 교양과 교육은 그에게 큰 도움이 되거나 심한 해를 끼친다고 말하더군. "
"크리톤, 나는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닭 한마리를 빚졌네. 기억해두었다가 꼭 갚아주겠나?"
Asclepius : 의학의 신, 세 가지 해석 ①의신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닭 한마리를 헌납하라는 것 ② Asclepius라는 실제 인물이 존재했다는 設 ③순전한 농담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향연> 미(美)
진정한 사랑(eros)은 무엇인가에 대한 이야기
<작품해설> 황문수 옮긴이
소크라테스는 지식을 호구의 방편으로 삼는 지식상(知識商)이 아니라 참된 슬기를 깨우치고 깨우쳐주며 밝은 인류의 양심을 바탕으로 인류를 행복으로 이끄는 실천적 지혜를 추구했다.
소크라테스가 따르겠다고 한 신은 자신의 양심이었다. 그는 젊었을 때부터 다이몬의 금지하는 소리를 듣고 이 말에 복종했다고 했으며, 이 다이몬의 소리는 끊임없이 그에게 해서는 안되는 일을 일깨워 주었다. 그것은 양심이었다.
그의 위대성은 공허한 이론가가 아니라 철저한 실천가였기 때문에 더 빛난다. 그가 몸소 보여준 실천이 인류의 불멸의 지혜로 숭앙되는 것은 인간이 자기가 사는 시대와 자기가 속한 사회에서 어떻게 사는 것이 가장 보람있는가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절대적 진리 내지는 가치에 대한 신념을 갖지 못한 소피스트는 성공을 위해서는 수단을 가리지 않는 무이상(無理想), 무정견(無定見)을 가르쳤고, 따라서 수사학의 목표인 '무력한 이론을 무력한 이론으로 만드는 것'도 진리든 진리가 아니든 이를 개의치않고, 오직 교묘한 말솜씨로 상대방을 굴복시키는 잔재주를 가르치는 것이었다. 소피스트들에게는 진리에 대한 신념도 진리발굴의 용기도 없었던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마셔야 했던 시대 상황적 배경은, 아테네의 정치의 몰락에서 찾아볼 수 있다. 페르시아 전쟁에 대승한 아테네는 흥융의 극에 달해 페라클레스 시대는 아테네의 황금시대가 되었으나,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참패한 후에는 하루아침에 그 위세가 꺾여 스파르타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전 그리스 지배의 야망이 좌절되고, 이에 30인 전제자의 공포정치에 시달리다가 다시 민주정치로 돌아와서 오직 복고(復古)만을 꿈구고 새로운 진취성을 무시했던 반동의 시대가 되었을 때, 많은 사이비 애국자, 특히 보수적인 애국자들은 이러한 불행과 몰락의 원인을 새로운 사상, 특히 그 무신앙(無信仰) 에서 구했다. 그들은 책임을 전가할 대상이 필요했다.
국가나 국민의 복지는 신들의 은총과 수호에 달려있다고, 민중은 믿고 있었으며, 그 동안의 볼행이 신을 믿지않음으로써 생긴 것이요, 신의 노여움의 발로라고 하는 것은, 가장 그럴듯한 이유가 되었다. 아낙사고라스나 대표적 소피스트인 프로타고라스 조차도 무신앙의 죄목으로 기소되어 아테네로부터 도피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보수적인 애국자들은 민중에 영합하는 일면도 무시하지 않으며 '위험사상'의 박멸에 나섰다. 침묵이 호신책(護身策)인 무지와 선동의 와중에서 소트라테스는 침묵의 미덕을 발휘하지 않고 오히려 비판의 칼날을 더욱 날카롭게 갈았다. 그 결과로 그는 무신론자, 청년을 타락시킨 자로서 고발된 것이다.
그의 죽음은 그의 삶의 가장 빛나는 순간이며 그의 사상의 정점이었다. 그라 죽음을 피했더라면 그의 사상은 오늘날 우리들에게 현실감을 주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는 정신의 위대성과 자유의 절대성을 보여주는 가장 좋은 기회를 가졌던 '행복한 지성인'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의 죽음은 자유롭고 용감하고 성실한 인간의 최대이 영광은 진리를 위한 죽음임을 증언하고 있다. 또한 이와 같은 죽음에의 용기를 갖지 못한 자는 역사와 인류에게 진리를 증언하는 참된 인간이 될 수 없음을 역력히 보여주고 있다.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아는 것을 행하는 것이 중요하고,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잘 사는 것이 중요하다.
용기는 주체적 결단과 그 실천을 위해 요구되는 것이다.
2021.1.30. 토요일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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