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8. 자유로부터의 도피, 에리히 프롬, 삼성출판사, 1989.
해제-이규호
프로이트는 인간관계를 항상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고찰한다. 그러나 프로이트가 말하는 타인이란 자기의 목적을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프롬은 프로이트의 심리학적 입장을 분석하여 프로이트와는 다른 입장에 서서 개인과 사회에 관한 이론을 전개해 나가고 있다. 개인과 사회와의 관계가 한쪽에는 자연적인 충동을 지니는 개인이 존재하고, 또 한쪽에는 개인과 전혀 다른 사회가 존재하여 사회가 개인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고 상호연관적이라는 것을 주장한다.
루터의 교리는 독일에 대하여 막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이에 비하여 캘빈의 신학은 앵글로 색슨의 여러 나라에 대하여 매우 큰 영향을 끼쳤다. 캘빈 신학의 중심 사상은 자아의 부정과 인간적인 긍지의 파괴였다. 캘빈도 루터와 마찬가지로 교회의 권위와 교리를 맹목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반대했으며, 종교란 사람의 고독함과 무력함에서 기인한다고 보고있다. 그는 자기 부정이 바로 신의 권능에 의존하는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캘빈은 중세의 예정설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구원인가 아니면 천벌인가의 문제는 사람의 공적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출생 이전에 신에 의해 예정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물론 캘빈이 주장하고자 한 내용은 신의 정의와 사랑이었으나 실은 정의와 사랑이라기 보다는 가혹하기 짝이 없는 전제 군주의 특성이 내포되어 있었다. 예정설이 내포하는 것은, 캘빈주의자들은 택함을 받고, 다른 사람들은 택함을 받지 못한다는 생각인데, 이런 생각은 후에 나치즘의 이념 속에 뚜렷이 부각되고 있다.
프롬은 근대인이 이기심과 자기중심주의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고 말한다. 이것은 어떤 특정한 대상에 대한 사랑은 참다운 의미의 사랑이 아니라 새도-매저키즘적인 집착을 뜻한다. 이기심과 자기중심주의는 어디까지나 특정한 대상에 대한 집착이다. 개인은 자기에게 안정감을 부여해주던 원초적 유대가 단절될 경우, 두 가지 선택의 갈림길에 서게 된다. 첫째는 적극적인 자유로 나아가는 길이며, 둘째는 자유를 포기하는 것이다. 첫째의 경우에 사람은 자발성을 최대한으로 발휘하여 독립성과 자아의 전체성을 유지한 채 다시금 새로이 자연과 일치할 수 있다. 이에 반하여, 둘째의 경우에 사람은 참을 수 없는 상태로부터 끊임없이 연속적으로 도피하려고 한다. 이와같이 도피는 권위주의에 복종하는 형식을 취하기도 하고, 파괴성으로 나타나기도 하며, 자동 순응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프로이트의 심리학은 결핍의 심리학임에 비하여, 프롬의 심리학은 자유롭고 동시에 자발적인 행위를 주장하는 풍요의 심리학이다. 쾌락을 고통스러운 긴장이 제기된 결과로 인하여 발생하는 만족이라고 보는 프로이트의 심리학에 있어서는 사랑이나 자비심과 같은 풍요의 현상이 존재하지 않는다 .
프롬은 이념과 문화의 인간적인 기반을 이해하기 위해서 이 책 <자유로부터의 도피>에서 적용된 설명의 원리를 위해서 프롬과 견해를 달리하는 몇 가지 경향을 예로 들고 있다. 첫째, 프로이트의 심리학적 접근방법, 이 원리에 따르면, 문화적인 현상은 본능적인 충동으로부터 생기는 심리적인 요소를 기초로 하고 있으며, 그러한 심리학적 요소는 어느 정도의 억압에 의해서만 영향을 받는다. 둘째, 마르크스적인 역사관에서 볼 수 있는 경제적 접근방법, 이 견해를 따르면 물질적인 하부구조, 즉 경제적인 이해관계가 정신적인 상부구조, 즉 종교나 정치와 같은 문화적인 현상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트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의 분석에서 볼 수 있는 이상주의적인 입장이다. 이에 따르면 새로운 종교적인 사상은 새로운 형태의 문화적인 행위와 새로운 문화정신을 결정하는 유일한 원인은 아니더라도 그러한 행위와 정신을 발달시키는데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입장에 비해 프롬은, 이념이나 문화는 사회적 성격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사회적 성격 자체는 특정한 사회의 존재양식에 의해 이루어지고, 이에 반하여 지배적인 성격의 특성이 사회과정을 형성하는 생산적인 힘이 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차례
머리말
1장. 자유-자유는 하나의 심리학적 문제인가
2장. 개인의 출현과 자유의 다양성
3장. 종교개혁 시대의 자유
4장. 근대인에게 있어서의 자유의 두 측면
5장. 도피의 매커니즘
6장. 나치즘의 심리
7장. 자유와 민주주의
이 책의 주제는 다음과 같다. 개인에게 안정을 주며 동시에 그를 제한했던 전 개인적(前個人的) 사회의 구속으로부터 도피한 근대인은, 자신의 개인적 자아의 실현이라는, 즉 자신의 지적, 정서적, 감각적 표현이라는, 적극적인 의미에 있어서도 자유를 얻지 못했다는 것이다. 자유는 근대인에게 독립과 함리성을 가져다 주기는 했어도 그를 고립시킴으로써 불안하고 나약하게 만들었다. 이와같은 고립은 참을 수 없는 것이므로, 근대인은 자유라는 무거운 짐을 벗어나 새로운 의존과 굴종으로 도피할 것인가, 아니면 사람의 독자성과 개성에 근거한 적극적인 자유를 충분히 실현하기 위하여 전진할 것인가 하는 양자택일에 직면하게 된다. 물론 이 책은 하나의 예언이라기 보다는 하나의 진단 - 해결이기 보다는 오히려 분석 - 이긴 하지만, 우리의 행위가 나아갈 방향을 가르쳐 준다. 왜냐하면, 자유를 버리고 전체주의에로 도피하는 이유를 이해하는 것은, 전체주의를 이겨내고자 하는 모든 행위를 위한 하나의 전제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가진 가장 아름다운 기질은 가장 추악한 기질과 마찬가지로 고정되고, 동시에 생물학적으로 주어진 인간본성의 한 부분이 아니라 사람을 만드는 사회과정에서 나타나는 결과이다. 다시말하면 사회는 억압하는 기능만 가진 것이 아니라 - 사회는 역시 그러한 기능을 가지긴 했지만 - 또한 창조적인 기능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의 본성과 정열과 불안은 문화적인 산물이다. 사실, 사람이야말로 그 자체는, 부단히 노력한 인간의 가장 중요한 창조이며 업적으로서, 우리는 그에 대한 기록을 역사라고 부른다.
인간의 본성은 역사적 진화의 산물이기는 하나 특정한 본래적인 메커니즘과 법칙(Mechanism and Laws)을 가지고 있다. 그것들을 발견하는 것이 심리학의 과제이다.
독립과 개체화 방향의 모든 단계가 그에 상응하는 자아의 성장에 의해 일치된다면, 어린 아이의 발달은 조화를 이룰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일은 생기지 않는다. 개성화 과정이 자동적으로 발생하는 반면에, 자아의 성장은 많은 개인적 및 사회적 이유들로 인하여 방해받는다. 이러한 두 가지 경향이 지체되는 것은 참을 수 없는 고립과 무력함의 감정에서 기인하는데, 고립과 무력함의 감정은 심리적 메커니즘(Psychic mechanism)이 된다. 심리적 메커니즘은 뒤에 '도피의 메커니즘(mechanism of escape)'으로 기술되고 있다.
신화는 최초의 자유행위가 가져온 다른 결과들을 말하고 있다. 사람과 자연 사이의 본래적인 조화는 붕괴되었다. 신은 남자와 여자, 그리고 자연과 사람 사이의 전쟁을 선언하였다. 사람은 자연으로부터 분리되었으며 그는 '개인(individual)'이 됨으로써 인간이 되기 위한 첫걸음을 내디뎠다. 그는 자유의 첫 행위를 범하였다. 신화는 이러한 행위로부터 일어나는 고통을 강조하고 있다. 자연을 초월하고, 자연과 다른 인간 존재로부터 분리되어 사람은 벌거벗고 자신을 발견하고 부끄러워 하였다. 그는 홀로 자유로웠으나 힘없고 두려웠다. 새로이 얻어낸 자유는 저주를 나타낸다. 그는 낙원의 달콤한 속박으로 '부터'는 자유로웠으나, 자신을 지배하고, 자신의 개체성을 실현하기 '에는' 자유롭지 못했다.
'......으로부터의 자유(freedom from)'는 '......에로의 자유(freedom to)'인 적극적인 자유와 동일하지 않다. 자연으로부터의 인간의 탈피는 오랜 기간을 거치는 과정이다. 그는 그가 탈피한 세계에 여전히 연결된 채로 있다.
이와같은 발전의 시기에 '루터주의'와 '캘빈주의'가 나타나게 되었다. 새로운 종교들은 재산있는 상류계급의 종교도 아니었고, 도시의 중산계급과 가난한 사람들, 그리고 농민들의 종교였다. 새로운 종교들은 이러한 집단의 사람들에게 호소력을 가지고 있었다. 왜냐하면 새로운 종교들은 자유와 독립이라는 새로운 감정을 표현했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집단의 사람들이 물들어 있던 무력감과 불안감도 아울러 표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새로운 종교적 교리는 경제질서의 변화에 의해서 생긴 감정들을 정확히 표현하는 이상의 일을 하였다. 그 교리는 그러한 감정들을 증가시켰으며 동시에 개인으로 하여금 다른 방법으로는 견디어 낼 수 없는 불안정을 극복할 수 있도록 해결책을 제공하여 주었다.
루터의 체계는(......) 그는 교회로부터 권위를 빼앗아 그것을 개인에게 주었다. 그의 신앙 및 구원의 개념은 주관적인 개인적 체험 가운데 하나로써, 그 안에서 모든 책임은 그가 스스로 구할 수 없는 것을 그에게 줄 수 있는 권위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에 의해 좌우된다. 이러한 루터와 캘빈의 교리를 칭찬할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근대사외에 있어서 정치적, 정신적인 자유가 발전한 한 근원이기 때문이다. 즉, 그 발전은 특히 앵글로 색슨 국가에 있어서 청교주의(puritanism) 사상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
근대적인 자유의 또다른 출발점인 것이다. 회의를 제거하고자 하는 욕구는 근대철학 및 과학에 가장 중요한 자극이 되었다.
'양심'은 사람이 자기 스스로 끌어들인 하나의 노예감독이다. 양심은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 자신의 것으로 '믿고 있는' 소원과 목적에 따라 행동하게끔 하나, 사실 그것들은 외부적인 사회적 요구의 내면화인 것이다. 양심은 사람을 무정하고 잔인하게 몰아대어 쾌락과 행복을 금하며, 그의 전 삶으로 하여금 어떤 신비적 죄악에 대해 속죄하도록 한다. 양심은 초기 캘빈주의와 후기 청교주의의 특징인 '내적인 세속적 금욕주의'의 기반이기도 하다.
자본주의에 있어서 경제적 활동과 성공, 물질적인 수확은 그 자체가 목적이 되었다. 자기 자신의 행복이나 구원을 목적으로 하지않고, 그 자체 목적으로서의 경제적 체제의 성장과 자본의 축적에 기여하는 것이 사람의 운명이 되었다.
우리는 이타심을 강조하는 프로테스탄티즘의 정신과 근대의 이기주의를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을까? 마키아벨리의 공식에 따르면, 이기주의는 인간의 행동이 가지는 가장 강한 원동력이며, 개인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욕망은 어떤 도덕적 고찰보다도 강력하며, 사람은 자기 재산을 잃기보다는 오히려 자기 아버지가 죽는 것을 보려고 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프로이트의 심리학은 결핍의 심리학이다. 그는 쾌락을 고통스러운 긴장의 제거로부터 생기는 만족으로 정의하고 있다. 그의 체계에 있어서 풍요의 현상은 사랑이나 자비심과 마찬가지로 사실상 아무런 역할도 하지않고 있다. 그는 그와같은 현상을 보지못했을 뿐만 아니라, 또한 그가 그토록 많은 주의를 기울인 현상인 성(性)에 대하여 제한된 이해를 가지고 있었다. 자신의 쾌락에 대한 전체적인 정의에 따라서 프로이트는 성 가운데서 다만 심리적인 강제요소만을 보았으며, 또한 성적인 만족 속에서는 고통스러운 긴장으로부터의 완화만을 보았다. 풍요의 현상으로서의 성적 충동과 자발적인 기쁨으로서의 성적쾌락은 - 그것의 본질은 긴장으로부터의 소극적인 해방이 아니다 - 그의 심리학 속에 아무런 위치도 차지하지 못했다.
2022.8.21.일요일( 돋보기 안경을 새로 만들어와서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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