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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 색의 의미_20240829

햇살처럼-이명우 2024. 8. 29. 09:59

  사내는 창조리를 따라 단풍나무로 눈길을 돌리더니 의미심장하게 한 마디 던졌다. 

  "단풍은 고구려 사람을 자극하지요."

  "고구려 사람이요? 왜 하필 단풍이 고구려 사람을 자극하는지요?"

  "국상, 저 단풍에는 유래가 있소. 혹시 아시오?"

  창조리는 말없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 단풍잎이 빨간 색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 같소?"

  "나는 우둔하여 문예에 취미를 갖지 못하였소."

  "하하, 국상같은 천하의 재목이 웬 겸손이란 말이오? 아무튼 저 단풍은 피를 머금고 있어요."

  "피요? 사람의 피를 말하는 것인가요?"

  "누구의 피인지 알아맞춰 보겠소?"

  "귀하는 느닷없이 나타나서 나를 골탕먹이는군요. 내게 묻지말고 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다 얘기해 보시오."

  "저 단풍에 물든 피는 바로 치우의 피요."

  "치우? 치우천왕을 말하는 건가요?"

  "그렇소. 선도(仙道)에서는 치우의 피가 튀어 단풍잎이 붉게 되었다는 얘기가 전하고 있소."

  "낭만이 있는 전설이군요."

  "하지만 그 분의 죽음은 전설이 아니오."

  "예부터 내래오는 치우천왕의 얘기가 전설이 아니란 말인가요?"

  "국상은 유주의 탁록이란 곳을 가본적이 없소?"

  "유주는 노상 다녔지만 탁록이란 곳은 가본 적이 없소."

  "다음에 유주에 가거든 탁록에 꼭 가보시오. 탁록벌에 서면 흘러간 먼 옛날이 눈에 스며들지요."

  "저 단풍을 왜 치우의 피라는지 정녕 궁금하구려."

  "본시 중원의 황하족은 스스로를 염황지손이라 하지요. 즉 염제와 황제의 자손이란 뜻으로, 그들은 황하에서 자신들의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믿고 있어요."

  창조리는 황하족이 누런색을 숭상하는 게 황하에 뿌리를 두었음을 자랑으로 여기기 때문임을 알고 있었다. 이들은 요하를 기반으로 하는 동이족을 은근히 멸시하고 있었는데, 그 이유는 황하야말로 모든 강의 으뜸이라 믿기 때문이다. 

  "요하를 뿌리로 하는 동이와 황하를 뿌리로 하는 황하족은 이미 오랜 옛날부터 대립했소. 그러나 드디어 탁록에서 맞붙은거요. 그게 바로 동이족의 조상 치우와 황하족의 조상 손헌원 간에 벌어진 탁록전쟁이오."

  "호오, 전설상의 그 전쟁이 사실인가요?"

  "이미 삼천년 전의 얘기지만 사방에 유적이 널렸으니 어찌 안믿겠소?"

  "탁록에 가면 그 유적이 있소?"

  "그러니 가보라는 게 아니오. 하여간 두 종족은 크게 붙었소. 거의 100회에 이르는 전투를 벌였으니 얼마나 치열했겠소."

  "어느 쪽이 이긴거지요?"

  "사마천의 사기(史記)를 보면 그 전투에서 공손헌원은 수십차례의 전투에서 모두 패했으나 마지막 싸움에서 이겨 치우를 죽이고 그 시체를 여덟동강 내어 여덟군데에 파묻었다고 하지요."

  "아, 그럼 그 때 치우의 피가 튀어 단풍이 되었다는 얘기군요."

  "그렇소. 하지만 황하인들은 예전부터 치우를 전쟁의 신으로 알고 있소. 그러니 사마천의 사기에서 황제 공손헌원이 이겼다고 하는 것은 의심할 필요가 있소. 그는 아니 한무제는 당시 흉노를 상대로 격전을 벌이고 있었기에 황하족이 요하족 동이에게 졌다고 하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고 볼수 있지 않겠소?"

  "흐음, 사마천이 광포한 한무제의 눈치를 보지않을 수 없었겠구려."

  "특히, 사마천이 이전에 바른 말을 간하다가 궁형(宮刑), 즉 남근을 잘리는 형벌을 받았기었에 더욱 더 무제가 가장 민감해 하는 부분에 신경이 쓰였겠지요. 수십 번을 이긴 치우가 마지막에 한 번 져서 죽임을 당했다고 하는 것은 어딘지 조작의 냄새가 물씬 나는 것 아니오?"

  "그렇게 볼 수 밖에 없겠습니다."

  "그런데 치우와 황제의 싸움을 치우치지 않고 볼 수 있는 증거가 하나 있소."

  "뭐지요?"

  "싸움에서 이겼다는 황제의 무덤은 산 위 거친 곳에 있고, 졌다는 치우의 무덤은 기름진 평야에 있단 말이오. 이긴 자가 산으로 도망가고, 진 자가 평야를 장악했다는 우스운 꼴이 나오니 사마천의 사기는 분명 조작된거요."

 

(......) 나는 무휴라 하오.

고구려2(김진명, 새움, 2021)  중에서

 

  지하철역사에서 독도 조형물을 철거했다는 뉴스나 노동부 장관 후보자가 했다는 '일제 강점기때 우리의 국적은 일본이었다'는 주장에 대하여 논쟁하는 것도 필요하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국민 개인 스스로는 더 뚜렷한 역사관을 가질 수 있도록 학습해야 한다.

  왜곡된 기록도 시간이 지나면 역사가 된다. 하물며 유물로 밝혀진 사실조차 왜곡하고자 하는 현실 속에서,  휘둘리지 않으려면 더 깊이 학습하고 사색해야 한다. 그것이 고구려를 10회 정독해야하는 이유미며, 단풍색이 빨간 것의 의미를 새기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