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 313년.
고구려의 대군이 낙랑성에 들자 아직 도망하지 못한 낙랑과 진의 장졸들은 저항할 엄두를 내지 못한 채 병장기를 버리고 항복했다. 을불(미천왕)은 낙랑성 안의 일반 백성은 물론 투항한 군사들을 함부로 해치지 못하도록 하고 일체의 약탈을 막았다.
"모든 황하족은 앞으로 열흘 안에 낙랑을 떠나도록 하라."
이로서 고구려는 마침내 사백년 간이나 조선땅을 지배해 온 낙랑을 완전히 축출했다. 을불은 낙랑의 모든 한족을 추방한 후 조선 유민들을 고구려 백성으로 편입시키고 고구려 각지의 백성을 낙랑으로 이주하도록 하는 조칙을 발표한 후 날을 잡아 순국 장졸을 위한 위령제를 거행했다.
- 고구려의 위대한 용사들아!
이제 우리만 살아남아 젊디젊은 그대들을 떠나 보내자니 눈물조차 나오지 않는구나. 지난 십여년 세월, 그대들은 오로지 낙랑수복을 위해 밤잠을 아끼고 새벽길을 밟았으니, 몸에서 흘린 땀은 내가 되고 강이 되어 흐르지 않았더냐! 이제 그대들이 흘린 피로 고구려는 한의 유철이 짓밟은 이 땅을 사백년 만에 되찾았으나 기쁨 보다는 슬픔이, 웃음 보다는 눈물이 나는구나. 이 장엄한 순간을 그대들과 함께 하지 못하는 까닭이다. 그대들의 죽음이 너무나 슬프다. 하지만 그럴수록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더욱 알 것만 같구나. 나는 이제 다시는 저 중원의 것들이 이 땅을 밟지 못하도록, 다시는 요하의 후손이 한 조각 업신여김도 당하지 않도록 이 한 몸을 바칠 것이다. 고구려는 그대들의 가족과 후손을 일일이 살필 것이니 비록 저승에서라도 편히 쉬기 바란다.
저가 어르신이여! 나의 벗 양우여! 고노자 대장군이여! 나는 당신들이 자진해 택한 희생을 이어받아 백성들 보다 한 발 앞서 몸을 던지고, 한 발 앞서 화살을 맞는 태왕이 될 것이오.
부디 멀리서나마 나를 채찍질하고 이끌어 주시오!
<고구려3, 낙랑축출, 김진명, 새움, 2016 중에서>
'책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개마대산의 전설_20240912 (2) | 2024.09.12 |
---|---|
단풍 색의 의미_20240829 (4) | 2024.08.29 |
672. 슬픈 중국 2 (19641976), 송재윤, 까치, 2022. (4) | 2024.02.04 |
671. 집에서 혼자 죽기를 권하다. 우에노 지즈코, 동양북스, 2022. (0) | 2024.01.20 |
670. 인듀어런스(어니스트 섀클턴의 위대한 실패), 글 캐롤라인 알렉산더, 사진 프랭크 헐리, 뜨인돌, 2022. (3) | 2024.01.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