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8. 우리는 각자의 세계가 된다.(Live wired), 데이비드 이글먼, 알에이치코리아, 2023.
데이비드 이글먼(David Eagleman)
젊은 뇌과학자, 스탠퍼드 신경과학과 부교수, '뇌과학계의 칼 세이건'
차례
1장 섬세한 분홍색 지휘자
뇌가 반쪽인 아이/ 생명의 다른 비밀/ 도구가 없다면 만들어라/ 항상 변하는 시스템
2장 덧셈뿐인 세계
뇌를 훌륭하게 기르는 법/ 경험이 필요하다/ 자연의 대단한 도박
3장 내면은 외면의 거울
실버 스프링 원숭이의 사례/ 허레이쇼 넬슨 경의 오른팔/ 모든 것은 타이밍/ 식민화는 전력을 기울여야 하는 일/ 많을수록 좋다/ 보이지 않을 만큼 빠르다/ 꿈과 행성의 자전이 무슨 상관?/ 외면이 그러하면 내면도 그렇다
4장 입력자료 이용하기
생성을 장악한 포테이토 헤드 기술/ 감각 대체/ 재주가 하나 뿐/ 아이튠즈/ 훌륭한 진동/ 주변기기 증강/ 새로운 감각 중추 상상하기/ 새로운 색깔 상상하기/ 새로운 감각을 맞을 준비가 되었는가
5장 더 좋은 몸을 갖는 법
진짜 닥터 오크께서는 손을 들어 주시겠습니까?/ 표준 청사진은 없다/ 운동 옹알이/ 운동 피질, 마시멜로, 달/ 자아와 통제력/ 장난감은 우리 자신/ 하나의 뇌, 무한한 신체 형태
6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왜 중요한가
필먼의 운동 피질 vs 아시케나지의 운동피질/ 풍경 다듬기/ 성공의 비결/ 영역변화 허락/ 디지털 원주민의 뇌
7장 사람은 왜 이별의 순간에야 자신의 깊이를 깨닫는가
강에 빠진 말/ 보이지 않는 것을 예상할 수 있는 일로/ 일어날 것이라고 짐작했던 일과 실제 일어난 일의 차이/ 우리가 향하는 곳은 빛인가, 설탕인가, 테이터인가/ 뜻밖의 일을 예상할 수 있게 적응하기
8장 변화의 가장자리에서 균형잡기
아이티가 사라질 때/ 마약상을 고르게 분포시키는 법/ 뉴런이 자기들의 사회적 연결망을 확장하는 법/ 훌륭한 죽음의 이점/ 암은 뒤틀린 가소성이 빚어낸 현상인가/ 뇌의 숲 구하기
9장 나이 든 개에게 새로운 재주를 가르치기가 더 어려운 이유
여럿으로 태어나다/ 민감기/ 서로 다른 속도로 닫히는 문/ 세월이 이렇게 흘렀는데도 여전히 변화 중
10장 기억하나요
미래의 자신에게 말하기/ 기억의 적은 세월이 아니라 다른 기억이다/ 뇌의 일부가 다른 일부를 가르친다/ 시냅스 너머/ 속도가 다른 층층구조/ 여러 종류의 기억/ 역사에 의한 수정
11장 늑대와 화성탐사 로봇
12장 오래 전 잃어버린 외치의 사랑을 찾아서
우리는 변신족을 이미 만났다. 바로 우리다.
'모든 사람은 여럿으로 태어나 하나로 죽는다.' -마르틴 하이데거-
뇌가 반쪽인 아이
라스무센 뇌염. 희귀한 만성 염증성 질환, 치료법은 현재로는 반구절제술, 즉 뇌의 반구 하나를 수술로 완전히 제거하는 방법 밖에 없다는 사실, 그리고 매슈는 수술했다.
우리 시스템은 처음부터 완전히 프로그램된 채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상호작용을 주고받으며 스스로 형성해 나간다는 것. 자라는 동안 우리는 뇌의 회로를 끊임없이 바꿔가며 어려운 과제와 씨름하고, 기회를 이용하고, 사회구조를 이해한다.
인류가 지구의 구석구석을 성공적으로 접수한 것은, 어머니 자연이 발견한 요령이 우리에게 최고로 구현되어 있기 때문이다. 뇌의 설계도를 처음부터 다 만들지 않고, 기본적인 요소들만 준비해준 뒤 세상으로 내보내는 것이 바로 그 요령이다. 마구 울어대던 아기는 결국 울음을 그치고 주위를 둘러보며 세상을 흡수한다. 주변 환경에 맞춰 자신의 모습을 다듬는다. 주위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에서부터 더 넓은 의미의 문화와 국제정치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빨아들인다. 자신을 키워준 사람들의 신념과 편견을 품고 앞으로 나아간다. 모든 정겨운 기억, 모든 가르침, 모든 정보가 아기의 신경회로를 다듬고 결코, 미리 계획한 적 없는 어떤 것을 만들어 낸다. 거기에는 주위의 세상이 반영되어 있다.
인간의 뇌는 뉴런이라고 불리는 세포 860억개로 이루어져 있다. 뉴런은 이동하는 전압스파이크의 형태로 신속히 정보를 전달하며, 숲처럼 생긴 복잡한 네트워크를 통해 서로 빽빽하게 연결되어 있다. 우리 머리 속에 존재하는 뉴런들 사이의 연결점은 모두 합해 200조 개쯤 된다. 좀 더 쉽게 이해하려면, 피질 조직 1mm3 안에 있는 연결점 수가 지구상 전체 인구보다 스무배나 많다.
뇌는 역동적인 시스템이라서 주변 환경의 요구와 몸의 능력에 맞춰 항상 회로를 바꾼다. 두개골 안에서 살아 움직이는 우주를 확대해서 촬영할 수 있는 마법의 비디오 카메라가 있다면, 뉴런에서 뻗어나온 촉수 같은 것들이 주위를 더듬다가 서로 부딪히는 모습, 올바른 연결점을 찾아 헤매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교과서 속 사진에 나오지 않는 기묘한 사실은 뇌가 신비로운 계산기이며, 살아있는 3차원 천이라는 것이다. 이 천은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계속 변하고 반응하면서 스스로를 조정한다. 이 천 위에서 정교한 무늬를 그려내는 연결점들, 즉 신경회로에는 생기가 가득하다. 뉴런들 사이의 연결점이 끊임없이 끊임없이 꽃을 피웠다가 죽어서 다시 모습을 바꾸기 때문이다.
거대한 정글을 닮은 우리의 뇌는 조금 전과 살짝 다른 모습으로 스스로를 변화 시킨다. 이러한 변화들이 합쳐져서 기억이 된다. 기억은 사람의 삶과 사람이 빚어낸 결과다. 몇분, 몇달, 몇십년에 걸쳐 뇌에 축적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변화가 모두 합쳐져서 사람이 된다.
아니, 적어도 지금 이 순간의 모습은 그 모든 변화의 합이다. 어제의 그 사람은 오늘과 아주 조금 달랐다. 그리고 내일은 또 다른 사람이 될 것이다.
크릭과 왓슨이 1953년에 알아낸(인간의 DNA의 이중나선구조) 것은 비밀의 반쪽에 불과했다. 나머지 반쪽은 DNA 염기쌍에도 교과서에도 적혀있지 않다. 지금도, 앞으로도 영원히.
그 나머지 반쪽이 우리 주위 사방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는 모든 일, 손에 닿는 질감과 혀로 느끼는 맛, 어루만지는 손길과 사고, 언어와 사랑이야기.
이 점을 이해하기 위해, 내가 3만년 전에 태어났다고 상상해보자. 나의 DNA는 지금과 똑같을테지만, 내가 어머니의 자궁을 빠져나와 눈을 떳을 때 보이는 것은 다른 시대다. 그 때의 나는 어떤 사람일까? 하늘의 별들에 감탄하며 생가죽 옷을 입고 모닥불가에서 춤추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 나무꼭대기에서 소리를 질러 검치호랑이가 다가오고 있다고 미리 알려주는 사람? 하늘에 먹구름이 몰려오면 노숙을 걱정하는 사람?
어떤 모습을 상상하더라고 모조리 틀렸다. 질문 자체에 함정이 숨어있다. 그 때의 나는 내가 아니다. 아주 어렴풋하게라도 닮은 구석이 없다. 나와 똑 같은 DNA를 지닌 원시인이 나와 조금 비슷해 보일수는 있다. 게놈이 같으니까. 하지만 원시인의 사고방식은 나와 다를 것이다. 지금의 나처럼 전략을 짜거나, 상상을 하거나 사랑을 하거나, 과거와 미래를 시뮬레이션하지도 않을 것이다.
왜? 그의 경험과 내 경험이 다르기 때문이다. DNA가 인생이라는 이야기의 일부를 차지하기는 해도, 그것은 작은 일부분일 뿐이다.
내가 '나'라고 생각하는 존재는 경험을 담는 그릇이고, 여기에 시간과 공간의 작은 표본 하나가 떨어진다. 나는 감각기관을 통해 주위의 문화와 기술을 받아들인다. 몸속의 DNA 못지않게 주변 환경 또한 나의 사람됨에 영향을 미친다.
반쯤 만들다 만 뇌를 갖고 세상에 태어나는 것이 인류에게는 승리전략이었다. 이 전략으로 우리는 지구상의 모든 생물을 뒤로 제쳤다. 땅을 뒤덮는 일에서도, 바다를 정복하는 일에서도, 달을 향해 뛰어오르는 일에서도, 수명도 세배나 늘렸다. 교향곡도 짓고, 고층건물을 세우고, 뇌의 세세한 부분들을 점점 정밀하게 측정하는 일도 한다. 이 모든 일 중 어느 것도 유전자에 각인되어 있지 않다.
적어도 직접적으로 각인되어 있지 않다. 대신 우리 유전자는 간단한 원칙 하나를 세웠다. 융통성 없는 하드웨어를 만들지말고, 주변 환경에 적응하는 시스템을 구축할 것. 우리 DNA가 만들어내는 것은 주변화경에 반응해서 최적화하기 위해 끊임없이 회로를 바꾸는 역동적인 시스템이다.
축구전문가의 뇌는 축구에 특화된 신경회로를 이미 갖고 있어서, 그가 계속 움직일 때도 놀라울 정도로 잠잠한 편이다. 어떤 의미에서 전문가는 경기와 하나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반면 아마추어의 뇌는 불이라도 붙은 것처럼 정신없이 움직인다.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계속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마추어는 상황을 다양하게 해석하면서 어떤 해석이 옳은지, 옳은 해석이 있기는 한지 알아내려고 한다.
프로선수는 축구를 신경회로에 각인해둔 덕분에 빠르고 효율적으로 움직인다. 바깥 세상에서 자신에게 중요한 일에 맞춰 내부의 회로를 최적화 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평생 계속 움직이는 뭔가를 향해 나아가려고 애쓴다. 오래전에 쓴 일기를 우연히 발견하면 어떤 감정이 들까? 그 일기에는 지금의 나와는 조금 다른 나의 생각, 의견, 관점이 들어있다. 어떤 때는 과거의 나가 지금의 나와 크게 달라서 거의 알아보기 힘들 정도다. 이름도 같고, 어린 시절의 경험도 같지만, 세월이 흐르는 동안 내가 변했기 때문이다.
'가소성'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넓혀서 이처럼 계속적인 변화라는 개념에 적용하는 것이 가능하다. 나는 기존 문헌과는 연결성을 위해 이 단어를 종종 사용하겠다. 그러나 플라스틱처럼 모양이 잡히는 현상에 감탄하던 시절은 이미 우리에게 과거가 된 듯하다. 지금 우리 목표는 이 살아있는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해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나는 주제를 더 생생히 표현해주는 용어를 새로 만들었다. '생후배선(livewired)'이라는 용어다. 앞으로 보게 되겠지만, 뇌를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층으로 나누는 것은 점점 불가능해진다. 따라서 역동적이고, 적응력이 있고, 정보를 구하는 이 시스템을 파악하려면 '라이브웨어(liveware)'라는 개념이 필요할 것이다.
스스로 구성을 바꾸는 뇌의 능력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매슈의 이야기로 돌아자보자. 뇌의 반구 하나를 완전히 절개하는 수술을 받은 뒤, 매슈는 몸을 제어하지 못해서 걷지도, 말하지도 못했다. 부모가 두려워하던 최악의 상황이었다.
하지만 매일 물리치료와 언어치료를 받은 결과 매슈는 서서히 언어를 다시 익힐 수 있었다. 학습의 단계는 유아 때의 단계를 그대로 따라갔다. 처음에는 한 단어, 그 다음에는 두 단어, 그 다음에는 짧은 구를 익히는 식이었다.
석 달 뒤 매슈는 적절한 발달단계에 도달했다. 다시말해서, 원래 그의 나이에 맞는 발달단계로 돌아왔다는 뜻이다.
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 매슈는 오른손을 잘 쓰지 못하고, 걸을 때 다리를 약간 전다. 하지만 다른 면에서는 평범하게 살고 있다. 그가 그토록 엄청난 모험을 겪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기가 힘들 정도다. 장기적인 기억력도 훌륭하다. 대학도 3학기 동안 다녔지만 오른손으로 필기하기가 힘들어서 그만두고 식당에 취직했다. 그가 맡은 일은 전화응대, 고객서비스, 서빙 등 식당에서 필요한 거의 모든 일이다. 그를 처음보는 사람들은 그의 뇌에 반구가 하나 없다는 사실을 짐작도 하지 못한다. 매슈의 어머니 발레리는 이렇게 말했다.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은 알아차리지 못해요."
신경을 그렇게 대량으로 잘라냈는데 어떻게 눈에 띄는 흔적이 없을까?
답은 이것이다. 남아있는 매슈의 뇌가 역동적으로 회로를 재편해서 사라진 기능을 맡았다는 것. 그의 신경계가 스스로 청사진을 바꿔 반쪽짜리 기계로도 삶을 온전히 담당할 수 있게 했다. 스마트폰에서 전자장치를 절반이나 잘라내고서도 전화가 제대로 걸리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하드웨어는 연약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라이브웨어(liveware)는 견뎌낸다.
전통적인 공학에서는 중요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공들여 설계한다. 자동차회사는 차대를 개조할 때 거기에 맞는 엔진을 제작하는데 몇달을 쏟는다. 하지만 차체를 원하는데로 바꾼 뒤, 엔진이 거기에 맞제 스스로 변화한다면 어떨까. 앞으로 보게되겠지만, 생후배선(livewired)의 원칙을 이해하기만 하면 새로운 기계, 즉 입력되는 정보에 맞춰 스스로를 쵲ㄱ화하고 경험을 통해 학습하며 자신의 회로를 역동적으로 형성하는 장치를 제작하는 분야에서 어머니 자연의 천재성을 바짝 뒤쫒을 수 있을 것이다.
삶의 짜릿함은 우리가 지금 어떤 사람인가가 아니라 현재 어떤 사람이 되어가는 중인가에 있다.
뇌가 올바르게 발달하려면 좋은 환경이 필요하다. 인간 게놈프로젝트의 첫번째 초안이 1999년 말에서 2000년 초에 걸쳐 완성되었을 때 가장 놀라운 점 하나는 인간의 유전자가 고작해야 2만개 밖에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생물학자들도 이 숫자를 보고 놀랐다. 뇌와 몸이 얼마나 복잡한지 생각할 때, 수십만개의 유전자가 필요할 것이라고 가정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토록 얄팍한 설계도에서 860억개의 뉴런으로 이루어진 엄청나게 복잡한 뇌가 만들어지는걸까? 답변의 축은 게놈의 영리한 전략이다. 불안전하게 만든 뒤, 세상경험으로 다듬어지게 하라는 전략. 따라서 갓 태어난 인간의 뇌는 놀라울 정도로 미완성 상태이며, 반드시 세상과 상호작용을 해야만 완성될 수 있다.
수면주기를 생각해보자. 생체 시계는 대략 24시간 주기로 돌아간다. 하지만 지상의 낮과 밤을 전혀 알 수 없는 동굴에 들어가 며칠 지내다보면, 생체주기가 21~27시간으로 바뀐다. 이를 통해 우리는 뇌의 간단한 해결책을 알 수 있다. 부정확한 시계를 만든 다음, 태양의 주기에 맞춰 다듬는 방식이다. 이 우아한 요령 덕분에 유전자 암호로 완벽한 시계를 만들어낼 필요가 없어진다. 시계의 태엽은 세상이 감아줄 것이다.
뇌는 두개골 안의 완전한 어둠 속에 갇혀있지 않은가. 이 1.4kg짜리 조직은 몸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른다. 몸은 직접 볼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뇌가 접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신경이라고 부르는 굵은 케이블 다발을 내달리며 재잘거리는 전기펄스 흐름 밖에 없다. 뼈로 된 감옥에 갇힌 뇌는 팔다리가 어디와 연결되어 있는지, 어느 부위와 어느 부위가 서로 인접해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다. 그런데 그 어두운 공간 안에서 어떻게 신체의 구조를 그려냈을까?
뇌의 조직에서 신체 각부분을 담당하는 지도를 '작은 사람'이라는 뜻의 호문쿨루스라고 명명했다. 1951년 신경외과 의사 와일드 펜필드.
원숭이 실험을 통해, 뇌의 신체 지도가 미리 유전자에 프로그램되어 있을 가능성이 배제되었다. 그보다 훨씬 더 흥미로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 몸에서 활발하게 입력되는 자극에 따라 뇌의 신체 지도가 유연하게 바뀐다는 것. 몸이 변하면 호문쿨루스도 따라서 변한다.
'시각장애인, 박쥐, 레이더의 반향정위' echolocation. 1940년대부터 이 현상이 논의되었고, <사이언스>에 논문저자는 "많은 시각장애인이 자신이 만들어낸 소리에서 야기된 청각신호를 이용해 장애물을 피하는 상당한 능력을 시간이 흐를수록 갖게 된다."고 썼다.
만약 시력이 있는 사람이 실험실 환경에서 여러날 동안 눈을 가리고 지낸다면 어떻게 될지 실험해 보았다. 그 결과는 놀랍기 그지 없었다. 일시적으로 시각을 차단한 사람에게서도 신경재배치(시각장애인들에게서 발견되는 것과 같은 종류)가 나타난 것이다 그것도 아주 빠르게.
밤이라고 해도 대부분의 시간은 꿈없이 흘러간다. 하지만 렘(빠른 안구운동) 수면 중에 특별한 일이 일어난다. 맥박과 호흡이 빨라지고, 작은 근육들이 움찔거리고, 뇌파는 작고 빨라진다. 수면 중에 이 단계에서 꿈이 발생한다. 렘수면은 뇌간의 뇌교라는 곳에 있는 특정 뉴런들에 의해 촉발된다. 이 뉴런들의 활동증가는 두 가지 결과를 낳는다. 첫째, 주요 근육들이 마비된다. 꿈을 꾸는 동안 정교한 신경회로가 몸을 마비된 상태로 유지하는데, 이 회로가 정교하게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곧 꿈이 생물학적으로 중요한 요소라는 가설을 뒷받침한다. 꿈의 기능이 중요하지 않았다면, 이 회로가 발전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근육의 활동이 정지된 사이 뇌는 실제로 몸을 움직이지 않고도 직접 세상을 경험하는 듯한 흉내를 낼 수 있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두번째 결과다. 스파이크 파동이 뇌간에서 후두피질까지 전달되는 것. 스파이크가 도달하면, 뇌간의 활동은 시각적 경험이 된다. 눈으로 보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꿈이 개념적이거나 추상적이지 않고 그림이나 영화처럼 보이는 이유가 이것이다.
인공와우수술. 이 자그마한 장치는 망가진 내이를 우회해서 바로 그 너머의 정상적인 신경(데이터케이블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됨)과 직접 소통한다. 인공와우는 내이에 직접 이식된 미니컴퓨터로, 바깥의 소리를 수신한 뒤 자그마한 전극을 통해 그 정보를 청각신경에 전달한다. 이렇게 망가진 내이를 우회할 수 있게 되었다해도, 공짜로 청각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마이클은 청각시스템으로 전달되는 전기 신호를 해석하는 방법을 배워야 했다.
무게 1.4kg의 뇌는 소리를 직접 듣거나 눈앞의 광경을 직접 보지않는다. 뇌는 어둡과 조용한 지하묘지 같은 두개골 안에 갇혀있다. 뇌가 보는 것은 다양한 데이터케이블을 통해 계속 들어오는 전기화학 신호뿐이다. 뇌가 처리해야 하는 정보도 그것 뿐이다.
"뇌는 피부에서 들어오는 정보를 눈에서 들어온 정보처럼 사용할 수 있다."
브레인포트를 사용하면, 대략 0.025의 시력으로 사물을 분간할 수 있다. 사용자들은 처음에 혀의 자극을 식별할 수 없는 윤곽과 현태로 인식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자극을 더 깊이 인식하는 법을 터득해 거리, 형태, 움직임의 방향, 크기 등을 식별할 수 있게 된다.
우리는 보통 혀가 맛을 느끼는 기관이라고 생각하지만, 촉각수용기가 많이 분토하기 때문에(그래서 음식의 질감을 느낄 수 있다) 뇌와 기계를 이어주는 인터페이스로 훌륭하게 활용될 수 있다. 시각과 촉각을 이어주는 다른 장치들과 마찬가지로, 혀 전극판은 시각이 눈이 아니라 뇌에서 생성된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일깨워준다.
나는 미래가 단순히 가진 자와 못가진 자의 계층화 보다 훨씬 더 낯선 모습을 하게 될 것이라고 추측한다. '가지다'의 의미가 아주 다양해질 것이다. 스마트폰은 전세계에서 똑 같이 사용되지만, 미래에는 사람들이 저마다 다른 초감각을 갖게될지도 모른다. 나는 석유선물시장에 대한 감각을 갖고 있는 반면, 이웃은 우주정거장의 상태에 감각이 맞춰져 있고, 어머니는 자외선 인식능력을 이용해 정원을 가꾼다고 상상해보라. 혹시 한 종이 여러 종으로 갈라지는 종분화가 가까운 것은 아닐까? 누가 알겠는가? 특수한 능력을 지닌 수퍼 히어로들이 서로 아귀가 맞는 퍼즐처럼 팀을 이뤄 최고의 악당을 물리치는 할리우드 영화같은 현실이 펼쳐질지도 모른다.
앞에서 우리는 사람이 신체의 일부를 잃었을 때 뇌가 스스로 재편하는 것을 목격했다. 허레이쇼 넬슨의 팔이 총탄에 맞았을 때의 사례가 여기에 해당한다. 하지만 그것은 정보의 '입력' 측면만을 다룬 이야기였다. '출력'측면에서 몸을 움직이는 피질(운동지도)역시 스스로 적응한다. 예전에는 존재하던 신체부위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신경계가 알아내면, 피질에서 그 부위에 할당되었던 영역이 줄어든다. 새로운 신체형태에 맞게 뇌가 재편되기 때문이다.
로라라는 여성의 사례를 살펴보자. 그녀는 충격적인 사고로 한 손을 잃었다. 그러자 몇주에 걸처 그녀의 일차 운동피질이 변하기 시작했다. 손과 이웃한 팔 근유(예를들어 이두박근과 삼두박근)을 제어하는 뇌 부위들이 전에 손을 제어하던 영역을 서서히 병합한 것이다. 이것을 다르게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예전에 그녀의 손을 움직이던 뉴런들에 임무가 재할당되어, 이제는 위팔 근육팀에 합류하게 되었다. 로라의 머리에 약한 자기 펄스를 쏘아(경두개 자기자극법) 어떤 근육이 움찔거리는지 관찰하는 방식으로 운동지도를 측정한 결과, 과학자들은 그녀의 위팔 근육에 할당된 영역이 몇주만에 확장된 것을 볼 수 있었다.
생후배선이 이루어지는 뇌는 유전자의 작용으로 신체가 변하더라도 스스로 적응한다. 그래서 진화과정에서 동물들은 어떤 서식지에서든 거기에 잘 맞는 형태로 바뀔 수 있다. 발굽과 발가락, 지느러미와 팔, 코끼리의 코와 꼬리와 발톱 중에 어떤 것이 주어진 환경에 더 적합하든, 어머니 자연이 추가작업을 할 필요가 없다. 사실 다른 방식이 사용되었다면 진화가 이루어질 수 없었을 것이다. 신체의 변화가 쉽고 뇌가 그 뒤를 따라 쉽게 변하지 않았다면 진화가 빠르게 이루어지지 못했을 것이다.
바이올리니스트 이츠하크 펄먼에 대한 이야기가 하나 있다. 어느 날 콘써트가 끝난 뒤, 그를 좋아하는 관객 한 명이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저도 그렇게 연주할 수만 있다면 평생이라도 바칠 수 있어요." 그러자 펄먼은 이렇게 이야기 했다. "저는 그렇게 했습니다."
펄먼은 매일 아침 5시15분에 침대에서 힘들게 몸을 일으킨다. 샤워와 아침식사를 마치고 나면, 네 시간반 동안 오전연습, 점심을 먹은 뒤 운동, 그리고 또 네 시간반 동안 오후연습. 그는 콘써트가 있는 날만 빼고나면 1년내내 이런 생활을 한다. 콘써트 날에는 오전 연습만 있다.
뇌의 신경회로는 우리가 하는 일이 반영된다. 따라서 고도로 훈련된 음악가의 대뇌피질은 확연히 다른 모습으로 변한다. 전문지식이 없는 사람도 뇌촬영 영상에서 알아볼 수 있을 정도다. 운동피질에서 손의 움직임과 관련된 구역을 잘 살펴보면 놀라운 사실이 드러난다. 음악가가 아닌 사람과 달리 음악가의 뇌에서는 그리스문자 오메가와 비슷한 모양의 주름이 발견된다는 것. 수천시간의 연습이 음악가의 뇌를 물리적으로 바꿔놓는 것이다.
우리가 자꾸 반복하는 일이 이런식으로 뇌의 구조에 반영된다. 게다가 이런 변화가 운동피질에서만 일어나는 것도 아니다. 예를들어, 몇 달 동안 점자 읽은 법을 배우고 나면 집게 손가락의 촉각을 담당하는 부분이 커질 것이다. 어른이 된 뒤 저글링을 배운다면 뇌의 시각영역이 커진다. 뇌에는 그냥 바깥 세상 뿐만 아니라, 그 뇌의 주인이 경험하는 바깥세상이 더 구체적으로 반영된다.
어떤 일을 하는 솜씨가 좋아지는 현상의 저변에 바로 이런 사실이 있다. 세레나, 비너스 윌리엄스 같은 프로 테니스선수는 몇 년 동안 훈련을 거듭하기 때문에 경기가 한창 달아오른 순간에도 스텝, 회정, 백핸드, 돌진, 후퇴, 겨냥, 스메시 등 그때그때 딱 맞는 동작이 자동으로 이루어진다. 그들은 이런 동작들을 뇌의 무의식 회로에 새겨넣기 위해 수천시간을 연습에 쏟는다. 순전히 고도의 의식만으로 경기에 임한다면, 이길 가능성이 별로 없다. 승리는 뇌를 지나치게 훈련된 기계로 바꾸는데서 나온다.
아마 1만시간의 법칙이라는 말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서핑이든 동굴탐험이든 색소폰 연주든 어떤 일의 전문가가 되려면 그 만큼 많은 시간을 연습에 쏟을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비록 정확히 몇시간을 쏟아야 하는지 알아내기는 불가능하지만, 이 법칙의 기본 개념은 옳다. 뇌에 지도를 그려넣으려면 엄청난 횟수의 반복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트록슬러 효과라고 불리는 이 환상은 주변부 시야에서 전혀 변화하지 않는 자극은 곧 증발하듯 사라진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왜 이런 현상이 생길까? 우리의 시각시스템이 항상 움직임과 변화를 찾으려 하기 때문이다. 고정된 것은 곧 보이지 않게 된다. 좋은 정보는 업데이트해야 하지만, 변하지 않는 정보는 시스템이 무시해버린다.
이런 역동적인 회로재편은 뇌중풍으로 인한 뇌손상이 발생했을 때 최고의 희망이 된다. 좌반구의 죽은 조직이 치유되어서가 아니라, 언어기능이 우반구로 옮겨간 덕분이다.
'리타 레비몬탈치니'라는 젊은 이탈리아 여성이 닭의 태아에서 다리가 발달하는 과정을 밤낮없이 연구한 결과 신경성 인자를 발견해 1986년 노벨 생리학상을 수상했다. 그녀가 발견한 것은 생명을 보존해주는 화학물질의 통칭인 뉴로트로핀(신경성 인자의 일종) 중 최초의 물질이었다. 뉴런의 겨냥 대상이 분비하는 단백질은 뉴로트로핀은 뉴런과 시냅스가 경쟁을 통해 얻으려고 하는 현금과 같다. 이를 얻기 위해 그들은 안정적인 연결을 이룬다. 생명을 보존해주는 이 화학물질을 성공적으로 손에 넣은 뉴런은 번성하고, 그렇지 못한 뉴런은 다른 곳에 가지를 뻗어 다시 시도한다. 그러다가 어디서든 성공을 거두지 못하면 결국 죽고만다.
뉴런은 뉴로트로핀이라는 보상을 구할 뿐만 아니라, 위험한 유독성 인자도 피하려 한다. 예를들어, 시냅토톡신은 기존의 시냅스를 없애버리는 물질인데, 축삭돌기는 이 이하로 떨어지자마자 제거당하기 때문이다.
인력과 척력을 발휘하는 다양한 분자가 이런식으로 피드백을 제공해주면, 뉴런은 지금의 자리를 지키며 꽂을 피우다가 쪼그라들어 다른 곳으로 살금살금 도망칠지 아니면 공동의 이익을 위해 스스로 사라질지를 결정할 수 있다.
세포의 죽음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영양분이 충분히 들어오지 않을 때(예를들어 동맥이 막히면 조직은 피에 굶주리게 된다) 세포는 조금 너절한 죽음을 맞는다. 염증을 일으키는 화학물질들이 새어나가 인근에 손상을 입히기 때문이다. 이것을 괴사라고 부른다. 세포의 죽음 두번째 방법은 아폽토시스, 즉 깔끔한 자살이다. 세포는 단호히 일을 접고 볼일을 마친 뒤 스스로를 소모한다. 이 죽음은 나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신경계를 조각하는데 쓰이는 엔진이다. 물갈퀴가 있던 태아의 손은 세포를 깎아내는 과정을 통해 손가락이 또렷이 구분되는 손으로 발전한다. 세포가 추가되는 것이 아니다. 뇌를 조각할 때도 같은 원칙이 적용된다. 발달과정에서 필요한 것보다 50퍼센트 많은 뉴런이 만들어진다. 따라서 대량의 죽음은 표준운영절차다.
열대우림의 복잡한 모습을 보고 나는 뇌의 숲에 존재하는 복잡성을 생각한다. 우리는 860억개의 뉴런을 서로 사이좋게 지내는 나무와 덤불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사실 뉴런들이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경쟁하는 숲의 구성원들과 비슷하다면 어떨까? 나무와 덤불은 키를 키우거나 몸을 불리기 위해, 경쟁을 이기기 위해 무한히 많은 전략들을 끊임없이 시도한다. 그들이 애쓰는 것은 햇빛을 받기 위해서다. 빛이 없으면 그들은 죽는다. 우리가 앞에서 본 신경영양인자(뉴로트로핀)는 뉴런에게 햇빛과도 같다. 뉴런들이 서로 경쟁하며 사용하는 술수라는 측면에서 뉴런의 전략을 이해할 수 있는 날이 언젠가 올지도 모른다.
앞에서 강조했듯이, 이번 장에서 우리가 본 것은 모두 우리가 지금의 기술을 구축하는 방식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엔지니어들은 효율성, 최소요건, 깔끔함을 직관적으로 추구하고 자랑한다. 이처럼 정돈된 상태를 추구하다보면, 연결된 선들이 적어진다. 그러나 혼돈의 가장자리에서 균형을 잡는 능력, 뜻밖의 사태에 대비하는 능력, 신속한 변화를 실행할 능력은 심을 수 없는 방법이기도 하다.
이제 우리는 뒤편에서 내내 어른거리던 의문에 주의를 돌릴 준비가 되었다. 어린이의 뇌가 어른의 뇌보다 훨씬 더 유연한 이유가 무엇일까?
나이든 개에게 새로운 재주를 가르치기가 더 어려운 이유
삶의 궤적들은 일반적인 사실 하나를 강조해 준다. 인간 아기들에게는 처음부터 내장된 기술이 거의 없고 가소성이 대단히 큰 반면, 어른들은 유연성을 희생하고 특정한 작업에 통달하게 된다는 것이다. 적응력과 효율 사이에 거래가 이루어져, 우리 뇌는 특정한 작업을 잘 수행하게 되는 대가로 다른 작업들과 씨름하는 능력을 조금 잃어버린다.
삶의 현실을 지적한 말(펄먼의 팬이 그런 연주솜씨를 가질 수 있다면 평생이라도 바치겠다고 말하자, 펄면은 "저는 그렇게 했습니다.)이다. 한 가지 일을 잘하게 되기 위해 다른 일들로 통하는 문을 닫아야 한다는 것. 우리 인생은 한 번 뿐이므로, 자신이 어떤 일에 헌신하는 가에 따라 특정한 길을 따라가게 되고, 나머지 길은 모두 '가지 않는 길'로 남는다.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의 말 중에서 내가 좋아하는 인용구로 이 책을 시작한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모든 사람은 여럿으로 태어나 하나로 죽는다."
언어의 발음이라는 측면에서 다른 문화에 완전히 동화될 수 있는 능력은 약 10년 동안만 열려 있을 뿐이다. (보통 일곱살 이전에 새로운 나라로, 그 나라의 언어를 원래 그 나라 사람들만큼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다. 소리를 포착하는 민감기의 문이 아직 열려 있기 때문이다.
"유년기에 얻은 습관은 작은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바꿔 놓는다!"
- 아리스토텔레스-
최근에는 수녀원에 사는 수녀 수백명을 수 십년에 걸쳐 조사한 연구에서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이 수녀들을 모두 정기적으로 인지기능 검사를 받고, 병원진료 기록을 공유하고, 사망 후 뇌를 기증하는 데 동의했다. 놀랍게도 일부 수녀들은 인지력이 전혀 저하되지 않아 계속 예리한 사고를 유지했는데도 사후 부검에서 알츠하이머 병이 뇌를 잔뜩 헤집어놓은 것이 드러났다. 다시말해서, 그들의 신경망이 물리적으로 퇴화했는데도 그들의 기능은 저하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정신적으로 계속 활발한 생활을 했기 때문에 그들의 뇌는 일부 신경망이 물리적으로 무너지는 와중에도 계속 새로운 다리를 만들 수 밖에 없었다. 병리검사에서 알츠하이머 병이 밝혀졌는데도 인지적 증상이 나타나지 않은 수녀가 무려 전체의 1/3이나 되었다. 아주 나이가 많아도 정신적으로 활발한 생활을 계속하면 새로운 신경회로가 만들어질 수 있다.
우리는 유연성을 잃는 대신, 전문성을 얻는다. 우리가 힘들게 구축한 갖가지 연상의 연결망이 100퍼센트 옳지도 않고, 심지어 내적인 일관성조차 없을 수도 있지만, 그것들이 합쳐져서 인생경험, 노하우, 세상을 대하는 태도가 된다.
기억
- 단기기억
- 장기기억 - 외현기억 - 사실
- 사건
- 암묵기억 - 기술과 습관
- 전형적 조건화
- 조작적 조건화
- 점화하기
- 습관화
- 민감화
동물들은 심각하지 않는 부상으로 아예 모든 기능을 닫아버리는 일은 없기 때문에 늑대는 절룩거리면서도 계속 나아간다. 우리가 만드는 기계도 늑대처럼 행동해야 한다.
어머니 자연은 늑대의 뇌에 고정된 프로그램을 심는 것이 의미없는 일임을 안다. 신체 형태는 바뀐다. 환경도 바뀐다. 능력과 행동 사이의 복잡한 관계도 바뀐다. 미리 정해진 회로를 심는 것 보다 더 좋은 방법은 효율적인 목적 달성을 위해 그때그때 스스로를 변화시키며 모든 것을 최적화하는 굴절보정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목적 중에는 장기적인 것(예를들어 생존)도 있고, 단기적인 것(도망치는 순록을 잡기 위한 협공작전을 생각해 내는 것)도 있다. 어떤 경우든 뇌는 목적을 위해 스스로를 조정한다.
미래의 자가환경 설정장치들은 '기계수리'라는 말의 의미를 바꿔놓을 것이다. 건설노동자나 자동차정비사는 무슨 일이 있어도 잘 놀라지 않는다. 건물이나 엔진의 한 부분이 파손되었을 때, 그 결과를 꽤 합리적으로 예측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젊은 신경학자는 대개 확신이 없어서 불안해 한다. 뇌에 문제가 생겼을 때 상당히 정확하게 그것을 알아보고 진단할 수는 있지만, 항상 교과서적인 사례에 들어맞는 환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좌절한다. 교과서가 왜 모든 것을 설명해주지 못하는가? 각자의 뇌가 그 사람의 과거, 목표, 습관을 바탕으로 저마다 독특한 궤적을 따라왔기 때문이다. 먼 미래의 건설노동자와 자동차정비사는 특정한 전선이나 나사에서 문제를 찾아내기 보다는 일반적인 원칙을 찾기 위해 주위를 더듬거리는 신경학자와 더 비슷해질 것이다.
'생후배선(livewired)'은 앞으로 우리 사고에서 항상 한 부분을 차지할 것이다. 주변을 연구하다보면, 뇌의 역할을 더욱 더 분명히 알게 될 것이다.
1990년대 중반에 미국의 범죄율이 급격히 뚝 떨어진 것을 생각해보자. 그 원인을 분석한 가설 중 하나는, 자동차 휘발유를 유연에서 무연으로 바꾸게 한 '청정공기법'이라는 단 하나의 법이 이런 결과를 낳았다는 것이다. 공기 중 납 함유량이 줄어들기 시작한 지 23년 뒤 범죄율이 크게 떨어졌다. 알고보니 공기 중 납 함량이 높으면 유아의 뇌발달을 방해하기 때문에, 아이가 자랐을 때 충동적인 행동이 늘어나고 장기적인 사고가 힘들어진다. 납 함량과 범죄 사이의 상관관계가 우연의 일치일까?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여러나라가 저마다 다른 시기에 무연휘발유 사용을 의무화 했다. 그리고 그 나라에서 모두 23년 뒤 범죄율이 떨어졌다. 납 함량이 줄어든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이 어른이 되는 딱 그 무렵이었다. 만약 이 가설이 옳다면 청정공기법이 범죄 예방에 미국 역사상 그 어느 정책보다 많은 일을 했다는 뜻이다. 이 가설을 입증하려면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지만, 누구도 모르는 사이에 생후배선이 각종 분자, 호르몬, 독성물질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강조해준다. 뇌 가소성이 지닌 의미에 조금이라도 의심을 품은 적이 있다면, 그 영향이 개인에서 사회까지 미치는 것이 확실하니 안심하기 바란다.
생후배선으로 인해 우리 각자는 공간과 시간의 그릇이 된다. 우리는 지상의 어느 특정 지점에 떨어졌을 때 그것의 세세한 특징들을 모두 진공청소기처럼 빨아들인다. 본질적으로, 우리가 세상에 거하는 순간을 기록하는 장치가 되는 것이다.
우리가 어르신을 만나 그 분의 의견이나 세계관에 충격을 받을 때, 그분 역시 자신이 살았던 시대와 직접 겪은 일을 기록하는 장치라는 사실에 공감하려 애써보면 좋을 것이다. 언젠가는 우리 뇌도 세월의 흐름으로 인해 어느 한 순간에 단단히 굳어져 다음 세대 젊은이들을 좌절에 빠뜨릴 것이다.
2023.8.15.화요일, 광복절 아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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