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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9. 중용[사서집주1.], 주희, 삼성출판사, 1989.

햇살처럼-이명우 2025. 3. 9. 14:01

679. 중용[사서집주1.], 주희, 삼성출판사, 1989.

해제 차주환
<<중용>>은 <<예기(禮記)>> 49편 중의 제31편으로 들어있는데 후에 그 중요성 때문에 표출되어 단행하게 되었다.

  자사(子思)는 공급의 자(字)로 그는 공리(孔鯉)의 아들이고, 공자(孔子)의 손자다. 전해지기로는 증삼의 제자로 노목공(魯穆公)의 스승이었다. 후세에 그가 공자의 덕(德)을 천명했다는 것을 기려 그를 술성(述聖)으로 부르기도 했다. 그가 <중용>을 저술했다는 내용이 고기록(古記錄)에 보이기 때문에 대체로 의심을 둘 여지가 없는 것으로 여겨져 왔다.

  주희는 <중용>의 깊은 뜻을 연구하는데 오랜 세월을 보냈다. 그가 <중용장구>를 낸 것은 그가 60세 되던 해인 순희(淳熙)16년(1189년) 이었다. <<예기>>의 <중용편>은 본래33절로 되어 있는데, 주씨는 여기 주해를 붙였다. 주씨의 <중용장구서>는 그의 <대학장구서>와 더불어 극히 잘된 글로 평가되어 학인들 사이에 널리 애송되는 바 되었다. <중용장구서>에 주씨는 <<중용>>은 "자사자가 도학이 그 전통을 잃게 될까봐 근심하여 지은 것이다. "라고 하여 도통(道統)의 전승을 서술하고 있다. 그가 내세운 도학의 전수 내용으로 <<위고문상서(僞古文尙書)>> <대우모(大禹謨)>에 나오는 "인심은 위험하고, 도심은 미세하니, 오직 정밀하고 오직 한결 같아야 진실로 그 중용을 잡게 된다.(人心惟危 道心惟微 惟精惟一 允執厥中, 인심유위 도심유미 유정유일 윤집궐중)"이라는 대문을 세우고, 인심과 도심을 논하고 나서 도심이 늘 몸의 주인이 되고, 인심은 언제나 그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도학의 전통, 즉 도통은 주씨의 논조에 따르면 요, 순, 우, 탕, 문, 무, 고요, 이윤, 부열, 주공, 소공, 공자, 안회, 증삼, 자사, 맹자, 정씨형제, 주씨 자신으로 전승되어 내려온 것이 된다. 주씨는 자사가 요순 이래로 전승되어 내려온 뜻의 근본을 추구하고 그것을 평소에 그가 들은 사부의 말씀을 가지고 대증(對證)하여 번갈아 풀어나가 이 <<중용>>을 만들어 후세에 배우는 사람들에게 일러준 것이라고 중용의 구성까지 언급하였다. 주씨가 <<중용장구>> 첫머리에 인용한 정자(정명도, 정이천 형제, 정호, 정이 형제를 일컬어 정자라고 함)의 말을 옮긴다.
  "치우치지 않는 것을 중(中)이라 하고, 바뀌지 않는 것을 용(庸)이라 한다. 중은 천하의 정도(正道)이고, 용은 천하의 정해진 이치다. 이 편은 공문에서 전수된 심법이다. 자사는 그 심법이 오래되어서 착오가 생길까 염려하였기 때문에 그것을 책에다 써가지고 맹자에게 주었다. 그 책은 처음에는 한 가지 이치를 말하고, 중간에는 만사로 분산되고, 끝에서는 다시 한 가지 이치로 합쳐진다. 그것을 드러내 놓으면 육합(六合)에 가득하고 그것을 말아들이면 단단하게 오므라든다. 그 맛이 무궁하다. 다 실학(實學)이다. 잘 읽는 사람이 완미탐색 하여서 거기서 얻는 것이 있으면 평생토록 써도 다 쓰지 못할 것이다. 하여서 거기서 얻는 것이 있으면 평생토록 써도 다 쓰지 못할 것이다."

1章
  하늘이 명하신 것을 성이라 하고, 성을 따르는 것을 도라하고, 도를 닦는 것을 가르침이라 한다.
  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 솔성지위도(率性之謂道), 수도지위교(修道之謂敎)

  도리라는 것은 잠시도 떠나지 못할 것이니, 떠난다면 도가 아니다. 이런고로 군자는 자기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경계하고 삼가며, 자기가 듣지 못하는 바에 두려워한다.
道也者(도야자)는 不可須臾離也(불가수유리야)니, 가리(可離)면 비도야(非道也)라. 시고(是故)로 군자(君子)는 계신호기소불도(戒愼乎其所不睹)하며 공구호기소불문(恐懼乎其所不聞)이니라.

  숨는 것 보다 더 보이는 것이 없으며, 미소한 것보다 더 나타나는 것이 없으니, 고로 군자는 그 혼자 있을 때를 삼가한다.
  막견호은(莫見乎隱)이며 막현호미(莫顯乎未)니 고(故)로 군자(君子)는 신기독야(愼其獨也)니라.

  기쁨과 노여움과 슬픔과 즐거운 것이 나타나지 않은 것을 중이라 하고, 나타나서 다 절도에 맞는 것을 화라고 이르는 것이니, 중이라는 것은 천하의 큰 근본이요, 화라른 것은 천하의 통달한 것이다.
  희노애락지미발(喜怒哀樂之未發)은 위지중(謂之中)이오, 발이개중절(發而皆中節)은 위지화(謂之和)니, 중야자(中也者)는 천하지대본(天下之大本)이오, 화야자(和也者)는 천하지달도야(天下之達道也)니라.

  중과 화를 이루면 천지가 위치하며, 만물이 육성할 것이다.
  치중화(致中和)면 천지위언(天地位焉)하며, 만물(萬物)이 육언(育焉)이니라.

14章.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활을 쏘는 것이 군자와 같은 일이 있으니, 정곡(正鵠)을 맞추지 못하면 돌이켜서 그 원인을 그 원인을 자신에게 구할 것이다.
  자왈(子曰), 사유사군자(射有似君子)하니 실제정곡(失諸正鵠)이오, 반구세기신(反求諸其身)이니라. (正은 베에 그린 것이고, 鵠은 가죽에 그린 것이니, 다 과녁의 가운데요 쏘는 표적이다.)

20章.
  배우지 아니함이 있을지언정 배운다면 능하지 않고서는 그만두지 않으며, 묻지 않을지언정 묻는다면 알지 않고서는 그만두지 않으며,
생각하지 않을지언정 생각한다면 얻지 않고서는 그만두지 않으며,
분별하지 않을지언정 분별한다면 분명해지지 않으면 그만두지않으며, 행하지 않을지언정 행한다면 독실치 않고서는 그만두지 않아야 하며,
남이 한 번에 잘하게 되면 자기는 백번을 하며,
남이 열번에 잘하게 되면 자기는 천번을 하는 것이다.
유불학(有弗學)이언정 학지(學之)인댄 불능(弗能)을 불조야(弗措也)하며,
유불문(有弗問)이언정 문지(問之)인댄 부지(弗知)를 불조야(弗措也)하며,
유불사(有弗思)이언정 사지(思之)인댄 부득(弗得)을 불조야(弗措也)하며,
유불변(有弗辨)이언정 변지(辨之)인댄 불명(弗明)을 불조야(弗措也)하며,
유불행(有弗行)이언정 행지(行之)인댄 불독(弗篤)을 불조야(不措也)하며,
인일능지(人一能之)어든 기백지(己百之)하며, 인십능지(人十能之)어든 기천지(己千之)니라.
(군자는 학물을 하지않으면 말되, 하면 반드시 그 이루기를 요구하는 고로 항상 그 공을 백배로 하는 것이니, 이것은 곤하게 알고 힘써 행하는 자로서 용맹한 일이다.)

21章.
  성(誠)으로 말미암아 밝히는 것을 성(性)이라 하고, 명(明)으로 말미암아 성실하여지는 것을 가르침이라 하는 것이니, 성실하면 밝아지고, 밝으면 성실하여진다.
  자성명(自誠明)을 위지성(謂之性)이오, 자명성(自明誠)을 위지교(謂之敎)니, 성즉명의(誠則明矣)오 명즉성의(明則誠矣)니라.

25章.
  성(誠)은 스스로 이루어지는 것이오, 도(道)는 스스로 인도하는 것이다.
  성자(誠者)는 자성야(自成也)오, 이도(而道)는 자도야(自道也)니라.

  성(誠)은 만물의 마침과 시작이다. 성실하지 않으면 만물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고로 군자는 성실한 것을 귀중하게 여긴다.
  성자(誠者)는 물지종시(物之終始)니 불성(부不誠)이면 무물(無物)이니 시고(是故)로 군자(君子)는 성지위귀(誠之爲貴)니라.

2023.9.10. 일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