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드는 대신(약간의 ) 돈을 절약해 줄 수도 있는 소비자의 이런 최적화 열망은 우리로 하여금 다른 사람의 일을 하게 만들고 심지어 그 대가로 돈까지 지불하게 만든다. 게다가 여기서 치명적인 악순환이 생겨난다. 우리가 몇 푼을 아끼기 위해 계속해서 인터넷을 뒤져댄다면 결국 소규모 업체는 사라지고 대기업만 살아남을 텐데, 그러면 기업은 점점 더 많은 서비스를 고객의 몫으로 떠넘기면서 비용을 절감하려 들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소비자가 이런 식으로 기업화 되어가는 과정의 다음 단계는 이미 시작되었다. 웹 2.0은 고객에게 단순히 서비스를 떠넘기는 데서 그치지 않고, 고객을 더욱 강력하게 가치 창출의 사슬에 통합시킬 수 있는 기술적 여건을 마면해주었다. 고객을 신제품 개발에 참여시키는 방식이 그 예다. 사회학자인 포스 교수에 따르면 '고객은 아우런 대가를 받지 않지만 회사는 연구비를 상당히 줄일 수 있다.'
좀 더 자세한 예를 들어보자. 한 소프트웨어 대기업이 오류가 많은 새 프로그램의 베타버전을 일단 시장에 던져놓는다. 그러면 열광적인 컴퓨터 광들은 그 안에서 프로그래밍 오류를 순식간에 찾아내고, 최상의 경우 곧바로 교정을 해준다. 전문가들은 고객의 손에 들어가서 비로소 숙성한다 하여 이런 상품을 '바바나 상품'이라고 부른다. '스레드리스'라는 의류업체는 고객이 디자인한 티셔츠를 판매한다. 여기서는 800명이 넘는 아마추어 디자이너가 매주 회사로 디자인을 보낸다. 또 레고에는 'Adult Friends of Lego, AFoLs'라는 성인 동호회 모임이 있다. 이 동호회 회원들은 새 모델을 독자적으로 개발하기도 하는데 그러면 레고 측은 그 대가로 그들의 이름을 포장박스에 기재해 준다. 아마존 역시 힘든 키워딩 작업에 수천 명의 유저를 동원하고, 록 벤드인 비스티 보이즈는 수십 명의 아마추어 카메라맨에게 콘서트 비디오 촬열을 맡긴다. BMW나 아디다스 같은 국제적 대기업도 유사한 방식으로 고객의 잠재력을 활용하고 있다.
심지어는 아이디어가 풍부한 아마추어와 연구 과제의 문제점을 체계적으로 연결시켜주는 '이노센티브' 같은 플랫폼도 있다. 예를 들어 '콜게니트파몰리브'는 치약을 튜브 안에 좀 더 쉽게 주입하는 방법을 이 플랫폼을 통해 공모했다. 그러자 한 자동차 기술자가 가공 전의 치약 분말에 정전기를 일으킨 상태에서 튜브를 접지하는 솔루션을 제시하여 2만5천달러의 상금을 받았다. 그 밖에도 이제는 많은 비즈니스 모델이 일반 참여자의 네트워크를 통해서 돌아간다. 예를 들어 유튜브는 유저에 의해 순전히 자발적으로 (공짜로) 생산된 콘텐츠로 운영된다. 저널리즘에는 독자 리포트나 블로거가 저렴한 비용으로 다양한 폭로 내용을 제공한다. 예전 같으면 값비싼 파파라치를 고용해야 했을 정보들이다.<워싱턴포스트>는 '위키피디아가 번스타인과 우드워드(닉슨의 워터게이트 사건을 폭로한 워싱턴포스트의 두 기자)를 능가한다'며 자조 섞인 어조로 새로운 형태의 시민저널리즘을 평했다.
대중의 노동력과 사고력을 체계적으로 이용하는 이런 방식을 '크라우드 소싱 Crowdsourcing' 이라고 한다. '대중crowd' 과 '아웃소싱 outsourcing'이 합성된 말이다. 예전 같으면 값비싼 비용을 치르고 전문가에게 맡겼던 일을 이제는 한 때 '왕'으로 불리던 고객에게 시킨다. 보상은 '감사하다' 는 인사나 포장박스에 '빌리 뮐러 공동 디자인' 따위의 문구를 적어 넣는 것으로 끝내 버린다. 이 같은 현실을 트렌드 옹호자들은 '집단 지능', '고객 충성도', '상호 가치창출' 등의 그럴듯한 키워드를 이용하여 혁신적 이미지로 포장한다. 포스 교수는 이렇게 설명한다. "스타벅스가 고객에게 매장 구성과 인테리어 아이디어를 모집한다고 공고하면 순식간에 수천 가지 아이디어가 등장한다. 그렇게 짧은 시간에 더구나 무료로 이런 아이디어를 제시할 수 있는 에이전시는 단 한 곳도 없다. 이것은 전혀 새로운 형태의 노동력이다. 직장인이 24시간 연락 가능한 수단읠 사용하면서 직장과 사생활의 경계가 허물어졌듯이 이제 또 다른 측면에서 경제가 사적인 영역으로 침입하고 있다."
더 많은 자유와 자립과 자기 결정을 지향하는 가치 변화는 소비의 일상에서 작용하는 최적화의 열망을 강요로 바꾸어놓는 두 가지 흐름을 만들었다. 하나는 각 개인마다 제 몫을 기여해야 하는 더 나은 세상에 대한 소망이며, 또 하나는 우리로 하여금 점점 더 많은 일상 영역에서 점점 더 많은 책임을 지도록 만드는 'DIY Do it Yourself'의 지상 ㅕㅇ령이다. 그 결과 우리는 이제 '일하는 고객 working customer'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무언가가 잘못 되었을 때는 그 책임을 스스로 짊어지게 되었다. 이를 통해 우리가 실제로 자신의 삶을 개선시킬 수 있는지의 여부는 또 다른 문제다. 분명한 것은 우리의 좋은 취지가 많은 기업에게 수익성 높은 새로은 사업분야를 창출해주고 있으며, 노동하는 고객이 되어 그들에게 수백만 유로의 비용을 절감해준다는 점이다.
되돌아갈 수는 없다. 자유가 많은 시간을 요구하면서도 돈은 거의 절약해주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다시 자유를 빼앗기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인터넷과 함께 성장한 세대는 이런 것에 아예 신경도 쓰지 않느다. 일상에서 아주 사소한 결정을 내릴 때에는 인터넷 검색을 이용하는 포스 교수의 딸은 아버지의 연구를 쓸데없는 기우로 치부하려 한다.
한편 이에 대해서 이비 반反 트렌드가 생겨나고 있다. 셸은 주유소에 다시 사람을 배치시키기 시작했고, 항공사는 승용차 서비스를 제공하며, 기차는 고객이 원한다면 집까지 찾아와서 짐을 가져간가. 예전의 그것과 비슷한 수준이다. 다만 다른 점은, 이제는 특별 서비스라는 명목으로 상당한 추가 요금을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다.
- 완벽주의의 함정(클라우스 베를레, 소담출판사)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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